식물을 보듯 나를 돌본다 -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앨리스 빈센트 지음, 성세희 옮김 / 유노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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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은 식물에 관한 책을 읽으려 노력한다. 내가 아니어도 잘 지내는 식물들이지만 그렇게라도 그들의 안위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이 되니까. 그리고 내가 그 친구들을 데려올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언제 어떻게 데려왔는지, 그들이 내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 경각심을 좀 가지고 싶기도 하고. 이것들은 내가 데려온 친구들을 소중히 다루고 잘 길러내고 싶다는 마음들이 여전하다는 것이기도 하니까.

 

 

싱그러운 책의 표지에 “나는 식물에게 인생을 배웠다”라고 쓰여있는 문장을 보고, 저자는 어떤 시기에 식물을 만났을까. 어떻게 마음을 주게 되었을까. 어떤 마음들을 전해 받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저자는 동거 중인 애인이 있다. 하지만 열정이 식은 것 같다는 애인의 말에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받는다. 상상해본 적이 없는 이별이기에 당황스럽기만 하다. 이별의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면 다시 이전의 상태로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저자도 마찬가지로, 이별의 원인을 본인에게 두면서 애인이 원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읽을수록 자신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안타까웠다.

저자가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해 해왔던 가드닝도 이별 이후에는 헛짓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힘든 일상에서 보게 된 발코니에서 주변의 우울함에 맞서 도도하게 반짝거리는 양귀비. 통통한 털복숭이 양귀비 꽃대가 밖으로 터져 나오 빳빳이 흠도 없이 세탁한 이불깃처럼 새하얀 꽃잎들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식물들은 내가 사랑을 하는지, 애정이 식었는지 상관하지 않았고, 낙심한 내가 자신들을 관리하기를 멈췄다는 것도, 처음부터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 손댈 필요조차 없던 뭔가를 찾아 보살피려는 의도로 가드닝을 시작했다는 것도 상관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양귀비의 작은 기적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계속 살아간다는 것이라는 조언을 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 식물을 천천히 살펴보기로 한다.

 

 

애인과 헤어진 6월부터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1월, 2월, 3월, 4월, 5월. 1년의 기록이 이 책에 담겨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이건 정보를 전달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순전히 개인적인 기록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을 돌보다가도, 초록의 환경에 쌓여있다가도 이별에 연연해하는 모습을 볼 때면 제3자의 입장에서는 좀 답답해지기도 하였으나, 그게 솔직한 마음이겠지 생각해 본다. 그렇게라도 마음의 응어리를 풀 수 있었다면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그러다가 저자는 새 애인을 만나게 된다. 원나잇으로 만나게 되었지만, (진실은 모르겠으나 (=문화가 다르기도 하고 원나잇에 대해 좋지 않은 관점으로 바라보는 나이기에)) 다행히 새 애인은 좋은 사람인 것처럼 책에는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저자는 전 애인을 잊지 못한 상태에서 새 애인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렇기에 이따금 오는 혼란과 충돌이 당황스럽다. 그렇기에 새 애인과 그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도 없다.

 

 

베란다에서 키우는 식물 이야기를 하다가, 정원 이야기를 하다가, 도시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남자 이야기로 돌아가 뻥 뚫린 가슴을 다시 막아버린다.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남자들로 컨디션이나 자존감이 좌지우지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고, 답답하기도 해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저자는 이별의 아픔이 식물들로 인해 치유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글을 읽는 내 입장에서는 단지 새 애인이 생겼다는 것과 그 사랑에 대해 집착하지 않게 된 것이 전 애인의 이별을 종식시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128. 부들레야는, 나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이해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기분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행복이 돌아오고 있었다. 나의 행복은 부들레야처럼 매일 규칙적으로 자라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들어 그들의 달라진 모양과 키를 확인하는 일에서, 달력과 시계가 보여주는 어떤 숫자보다도 큰 변화를 체감하게 만들었다.

 

 

책에는 자주 부들레야가 등장한다. 부들레야, 나도 부들레야처럼 천천히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유난스럽지 않게, 천천히, 올바르게, 그러면서 단단하게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성장했겠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부들레야처럼.

 

 

오탈자 P116. 8월 _ 언니는 임신 3개월에 접어드는 중으로 볼록 나온 배가 작은 몸에 익살맞게 붙어있었다. 폭신하면서도 단단한 아기 주머니. 내 손을 대보라고 보여주던 언니의 손이 기억난다. 언니가 “거기가 아기 엉덩이야!”라고 말했다. 같은 방, 같은 소파 위였으나 완전히 다른 세상에 있는 태어나지 않은 존재의 작은 엉덩이를 느낄 수 있었다.

10월_ 눅눅한 목요일 아침, 해도 뜨기 전에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한나 언니의 아들이 태어났다고.

임신 3개월에 아기의 엉덩이를 느낄 수 없을뿐더러, 8월에 3개월밖에 안 된 아기가 10월에 태어나다니...

문맥상 8월에 8개월이어야 맞지 않을까?

 

 

오탈자 P208. 핏줄은 유전자로만 이어지 않는다. → 이어지지

오탈자 P305. 엄나는 나에게 그게 정상이라고 → 엄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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