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드엔딩은 없다 - 인생의 삑사리를 블랙코미디로 바꾸기
강이슬 지음 / 웨일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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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삶의 엔딩을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하다가 언젠가의 일을 기억했다. 나는 육십까지만 살 거야!라고 그저 흘러가는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며 정말 육십까지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스물여덟의 어느 날이었다. 아픈 것을 참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했지만, 아픈 것을 참고 견디는 일은 죽기보다 더 싫은 일이라고 느끼면서 말이다. 지금 건강할 때 건강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하고, 육십이라는 나이에 올 건강의 적신호를 먼저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마지막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죽는 것이 목표였다. 물론 지금도 같은 마음이지만, 내가 죽는다는 상상을 하면 눈물이 글썽글썽 차오르는 갑자기 감성이 충만해진 남편의 앞에서 전처럼 푼수처럼 말하지는 못한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제목만으로도 나는 하루의 엔딩을 가늠하고 판단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대체로 즐거웠고 기뻤고 웃으며 보냈지만, 어느 날은 슬펐고 어느 날은 우울했고 어느 날은 시니컬했고 어느 날은 지루했다. 그런 날은 오늘 하루는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잘 지냈어. 괜찮은 하루였어.라고 끝맺음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잘 살아내었다는 방증이 되었다.

저자는 책 제목을 <새드엔딩은 없다>라고 할 만큼 슬픈 일들이 많았던 걸까, 하고 생각하게 된 것은,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치 울긴 왜 울어~’의 캔디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슬프지만 긍정을 노래하는 그런 분위기의 저자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술을 먹고 윗니 네 개를 해먹고도 크게 좌절하지 않고 부서진 치아들에게 밍키와 쫄병들이라고 이름을 붙여주는 일

사랑을 염세적으로 보지만, 사랑을 하며 피로한 쪽이 100배는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일

연애를 그렇게 쿨하게 하는 편이지만, 정작 자신 앞에 다가온 사랑은 모르고 지나칠 뻔했던 일

꿈에도 몰랐던, 고양이 강짱과 함께 사는 일

고시원의 집게벌레와 반지하의 바퀴벌레, 옥탑의 꼽등이를 극복하고 드디어 1층으로 이사를 왔는데 이제 쥐와 살아야 하다니!

의도치 않게 선을 넘어 단골이 된 것을 포기한 일

아무렇지 않은 일들에 대해 고향 친구들의 눈물을 바라보며 함께 우는 척도 하고 놀리기도 하는 일

바바리맨을 놀려주는 일

팔짱을 끼고 화장실을 같이 가던 일

엄마에게 가방을 선물하던 일

서른이 되어서야 엄마의 서른을 이해하는 일

그래서 연보라색 블라우스를 입고 싶어 했던 엄마에게 미안해서 파스텔톤의 옷을 선물로 사드리는 일

복점 대신에 길고 붉은 흉터가 아로새겨진 일

죽기 전에 후회할 일이 고작 반 뼘짜리 타투였으면 하는 일

서른이 되는 것이 너무너무너무 무섭고 싫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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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책 한 권에 담아내는데, 꽤 심각한 일도 담백하고 담담하게 그린다. 풋, 하고 웃음이 터질 때도 있고, 마음이 아련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글이 찐득찐득했다. 문장이 찐득거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입천장에 달라붙어 조금씩 혀로 핥아먹는 기분을 느끼게 하던 그런 캐러멜처럼, 조금씩 닳는 페이지가 아쉽기만 했다. 강이슬이라는 작가는 다른 책도 아니고 에세이에 불과한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람이었는데도 읽으면 읽을수록 자꾸만 호기가 생겼다.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와닿았던 이야기

고등학교 입학 첫날, “동방신기가 좋아, SS501이 좋아?”라는 말에 이승기가 좋은 것 같다고 말했던 저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더 이상 누군가의 팬인 척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가장 좋았다고 했다. 그걸 보면서 나는 너무나도 깊은 공감을 했다. 중학교 시절,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브로마이드, 테이프, 씨디, 팬클럽 가입 등을 하며 우르르 거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도 누군가를 좋아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부담이었다. 당시에는 신화, GOD, HOT, 젝스키스 등 왜 이렇게 많았는지 (휴)... 하지만 내가 거기에서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말을 하면, 내 거짓말이 탄로 날 것을 알았기에 당시 듣고 있던 노래의 가수를 좋아한다고 말했었다. 그게 유승준이라니.

그러던 어느 날 나한테 “너는 어때? 괜찮아?”라고 하길래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고, 들어보니 유승준이 입대한다고 해놓고 미국으로 튀었다는 이야기였다. 아니 난 걔가 군대를 가든 안 가든 상관이 없었는데 너무 귀찮은 일이라 “어! 정말 실망했어!!!"라고 분노하듯 이야기했다. 난 그렇게 덕후인 척하는 것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렇기에 저자가 느낀 그 후련함을 너무나도 깊이 공감했다.

 

주변은 나만 빼고 모두 덕질을 하고 있다.

그 이후에도 나는 사람이든 물건이든 어떤 것에 대해 열렬하게 좋아하거나 모으는 편이 아닌데, 주변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좋아해서 사 모으고, 누군가를 좋아해서 그 사람에 대해 알려고 한다. 그런 사람들 중 가장 가까이에는 내 남편이 있는데, 내 남편은 레플리카(축구 유니폼)을 사 모은다.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용돈을 모아서 사는 걸 보면 징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렇지 못해서일까.

아, 생각해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게 있긴 있네. 남편이랑 술. 좋았다 싫었다 해서 문제지. 남편은 요즘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더 좋아진다며 자꾸 졸졸 따라다니고 엉겨 붙고(이 단어를 쓰면 자기가 머리카락이냐고 묻는다), 술은 요즘 다이어트한다고 먹지 않은 지 어언 20일이 다 되어간다. 일주일에 7번 술을 먹으라고 해도 매번 맛있게 잘 먹는 난데!

좋아하는 것 중 책도 있는데, 책은 읽기 싫은 시기가 종종 있고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모든 책을 사 모으고 싶지는 않으므로... 대부분의 것들이 책과 같은 이유로 완전하게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경우인 것 같다. 분명 좋아하기는 하는데 그만큼은 아닌 것 같고... 뭐 그렇다.

학창 시절의 친구가 가장 오래간다는 말에 대해서 저자는, 머리가 굵어지니 취향이라는 것이 확고해졌고 사람에게도 취향이랄 게 생겼다고. 내 취향의 사람에게 더 강하게 끌리는데 그런 사람들은 교실처럼 같은 공간 안에 오랜 시간 붙어 있지 않더라도 이야기 몇 마디로 금방 농도 짙은 친밀감을 공유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그 말에 대해서는 틀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렇게 친밀감을 갖게 된 사람들을 소개하는데, 솔직한 심정으로는 많이 부럽기도 했다. 나도 몇 년 전부터 몇 번의 시도를 (생각보다 많이) 해보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크게 얻은 게 있는 것 같지는 않아서 슬프기까지 하다. 낯가림이 심하고 경계가 심해서 친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한 내 성격이 한몫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하다 보면 그 취향에 맞는 사람들도 만나게 되겠지. 하며 지내야지.

284. 올해는 최대 미니멈의 강도로 일하면서 최소 맥시멈의 자유를 느끼고 최소 미니멈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최대 맥시멈의 수입이 있기를.

어떤 책의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라는 문장이 생각났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 수 있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살면 참 좋겠다. :)

오탈자 p136. 혼자서 한 칸을 차지하는 일은 잘 없었다거의 또는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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