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처럼
김경욱 지음 / 민음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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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이라는 이 책을 손에 집기 전에 그 장르의 작가로 정평난 이미강 작가의 '푸른 수염의 아내'를 접했었는데, 그 속에서 실로 오랜만에 얼굴이 새-빨개지고 가슴이 콩콩뛰는 두근거림을 맛봤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로맨스 소설의 작가는 여자였기에 여성독자들이 원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고, 그것을 빌미로 감수성을 최대화로 끌어올리는 역할들을 너무나도 충실히 잘해주어서,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늘상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그런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는 듯이 현실이란 놈이 내 위에서 날 내려다보며 비웃음을 날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때 느끼는 허망함이란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내가 그 책들을 읽으며 얻을 수 있는 것이 겨우 이런 허망함뿐이냐며, 다시는 틀에 갇힌 비현실적 로맨스 소설은 읽지 않겠다, 남몰래 다짐하기도 수차례였다. 그런데 남성작가가 로맨스 소설을 쓰겠다고? 글쎄,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감성을 실감나고 맛깔스럽게 표현하는 작가는 단연 요시다 슈이치만한 작가를 보지 못했던지라, 한껏 부푼 기대를 조금은 사그라뜨리고 오랜만에 읽는 그의 책에 빠졌다. 그런데 빠져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동화처럼'이라는 제목이 시사하는 것과 같이 속이 훤히 다 보일 정도로 투명한 물풍선이 방울방울 날아다니는 예쁜 romance를 상상했나보다. 그러나 막상 접한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는 현실감이 밑바탕이 되어있어 이상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괴리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뭐 이런 아이러니한 일이란 말인가. 나는 그동안의 로맨스는 비현실적이라며 손을 휙휙 내저을 정도로 거부감을 드러내왔었는데, 막상 현실적인 로맨스에는 도무지 정이 안가더란 말이다. 특히 연애의 끝을 '결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아직 미혼인 나를 미칠듯한 깊은 심연의 나락으로 빠뜨렸다. 멍한 표정으로 책을 덮으면서 머릿 속까지 새하얘졌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장미와 명제, 흔하디 흔한 로맨스의 시작, 노래패라는 동호회에서 만났지만 서로 좋아하게 되겠지, 라는 내 생각을 벗어나 서로에게 호감을 내비치기는커녕 그들은 시선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우와 서영이라는 다른 인물에 닿아 있다. 그들이 만나면 서로 할 말이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서로에게 무관심 그 자체였다해도 과언이 아닐 듯한데, 6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에 만나게 된다. 글쎄, 그저 책으로 보이는 약간 짧은 듯 보이던 연애에는 내가 꿈꾸던 것 - 서로를 사랑하는 열정 - 은 이미 휘발된 상태인 듯 보였던 것이 틀림없다. 적어도 나라면 명제와 애당초 결혼을 꿈꾸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했으니까. 어찌됐든 책 속의 그녀는 내가 아니라 장미였고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결혼이라는 타이틀 아래, 과연 그들이 행복이라는 것을 느낄 틈이라도 있을지 그게 의문이었다. 역시나 - 라고 낮은 신음소리가 날 정도로 신혼 여행에서부터 엇나간 그들의 현실적인 그들의 결혼생활은 보는 나로 하여금 외줄타기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읽는 도중에 손을 떼고 싶은 충동까지 일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생활을 활자로라도 읽을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단단하지 못하였던 것은 나에겐 결혼이라는 것이 가져다주는 로망이 아직까지는 내 속에 몽글몽글 피어나고 있었던 것이 그 까닭이다. 그렇기에 난 당장이라도 그 책을 내동댕이 쳐버리고 내 멋대로 장미와 명제를 잇기만 하면 그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마지막 페이지를 향해 숨가쁘게 달려갔던 것은 로맨스 소설은 항상 해피엔딩이라는 고정관념때문이었다.

 

 

 

-우린 아무래도 안 되겠어.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것 같아. (p294)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는 것,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과 결부시킨다하여도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서로의 언어를 조합시키는데에 있어서 서로의 이해와 배려, 양보가 필요하거늘 그들은 그것을 무시해버린 채 자신의 언어만이 옳다고 고집한 꼴이 되어버린 셈인 것이다. 실은 나 또한 지금 그 사람에게 나의 언어를 이해해달라고 온갖 투정과 짜증을 있는 그대로 다 내어버리고 그 사람의 언어는 듣지 못한다는 식의 무관심으로 일관해버리기 일쑤다. 그것때문에 이따금 서로에게 본의 아닌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솔직히 다 내려놓고 말한다면 외면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사이를 좁혀갈 수 있었던 것은 서로가 살아온 환경 방식에 대한 존중이었고, 그것에 따른 이해였다. - 나는 여전히 황소처럼 내 고집만 부리고 있지만 - .. 어찌됐건간에 장미와 명제의 두 번의 헤어짐과 세 번의 만남이 나에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다가와 여느 드라마의 뻔한 스토리를 보는 것과 같이 진부했고, 그들의 공백기는 결국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러나 내가 지쳐있는 사이 그들은 성장하고 있었고 그 성장의 결과는 또 다른 시작이었다,라고 생각했다. 헤어짐과 만남이 그들에게 남긴 것은 결코 만신창이가 된 사랑이 아닌 내 속의 또 다른 자아와 자신을 마주보게 만들어준 시간이라고 해석해도 될지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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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애
김별아 지음 / 문학의문학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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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한 송이를 냉장고에서 냉동실로 옮긴지 10분, 후에 꺼내어 딱딱해진 포도를 한 알, 한 알 입에 포도알을 밀어넣어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책의 마지막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 달던 포도 중 한 알이 미간을 찌푸릴 만큼 시어서 눈물이 고였다. 그 때 마침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였는데, 아이러니하게 눈물이 멈추지 않고 쪼르르, 하고 흐르는 것이 아닌가. 지금은 책을 끝낸지 2시간 남짓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이 책의 감흥은 식지 않았을 뿐더러 도리어 다홍빛이었던 것이 베어버릴 듯한 붉은 색으로 물들어가고 그 또한 더욱 더 선명해지고 있는 중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을 70페이지를 겨우 읽고 이 책을 이미 접했던 다른 이들의 서평을 들춰보았다. 그것은 전에 없던 극히 드문 일 중 하나였는데, 그것은 그녀의 책을 읽고자 하였지만 ¼이라는 분량을 읽고도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던 중 혹자의 서평에서 이 책의 결말을 너무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 체한 것처럼 속이 메스꺼웠다. 그 서평에 한바탕 난리를 칠까 하다가 발을 쿵쿵 구르고 손을 꽝, 내리치며 그것을 읽은 내 잘못이라며 내 탓을 했다. 그러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실존 인물이었고 그것은 작가의 독단적인 결말이 아닌 원래에 정해져있던 불가피한 것이었음을 책을 다 읽은 지금에야 알게 된 것을 애통하게 생각한다. 이로써 내 짧은 지식에 새로운 지식을 대롱대롱 매달아준 셈이었다. 책을 읽던 중엔 읽으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말이 뇌리에 박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경질적으로 책을 덮고는 방치해두었더랬다. 그래도 김별아 작가, 그녀의 책을 읽어야겠다며 읽던 페이지를 찾아 책을 펴고 앉았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그럴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보다 박열과 후미코, 그들의 熱愛가 궁금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후미코, 그녀의 유년기는 끔찍할 정도로 격정적인 외줄타기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하여 어머니와 살게 되지만, 어머니는 후미코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창녀촌에 팔려고 하다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하고서 외갓집에 맡겨버린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부모가 없는 것만도 못한 학대와 설움을 받게 되고, 친절하게 다가왔던 친할머니에게 가게 되지만 그곳에서의 상황 또한 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7년동안 지내다가 쫓겨난 그곳에서 간 곳은 아버지의 집에서 그녀의 아버지는 외삼촌이 가지고 있는 절의 재산을 노리고 후미코와의 결혼을 성사시키려한다. 결국 후미코는 처절하게 혼자임을 깨닫는다. 맙소사. 부모라는 작자들이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후미코의 유년시절을 읽으며 쉴새없이 방망이질하는 심장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후미코의 아픔을 고스란히 받고있자니 불에 타고 남은 재가 각막을 찢으며 들어와 머릿 속까지 갈기갈기 찢고 있다는 기분마저 들어서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감에 질려 몸을 떨었다.

 

 

지독한 외로움에 헐떡이는 그녀는 사랑이 간절했기에, 또 그것을 이용하여 다가오는 이들을 사랑이라 착각하며 자신을 위로하려 하지만 결국 사랑이 아님을 깨닫는 데에는 남들보다 더 오랜 시간과 상처와 아픔이 고스란히 잔재들처럼 깊숙히 남아있다. 아주 잠시, 그렇게 행복했다. 사랑이라고 믿기도 했다. 오랫동안 외로움을 앓던 사람에게 착각과 혼동을 불러일으키는 간사한 마음의 장난질. (p142) 그런 그녀를 보며 난 무슨 생각을 가졌는지 모르겠으며, 그저 울컥하는 마음들을 억지로 달래지 않고 그저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것으로 그녀의 아픔을 감히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러다 그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라는 시를 지은 작자 박열에게 구애를 하게 되고, 그가 그녀에게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하며 그의 '그리운 나라'가 어느덧 자신의 '그리운 나라'가 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사랑……. 그래. 그건 언제나 낯선 말이야. 하지만 사랑이 낯설 수밖에 없는 건 여전히 삶이 익숙지 않기 때문일 거야. 삶에 익숙해지면 사랑에도 익숙해져. 익숙해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 다만 누추한 관성일 뿐이지. 나는 사랑에도, 삶에도 언제까지나 익숙해지고 싶지 않아……." (p219)

 

 

 

혹자는 말한다. 식민지 시대라는 그늘이 짙어서 정작 책의 제목인 '열애'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것은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느끼게 해주려고 작가가 후미코와 열의 시선을 빌미삼아 꾀하고 있다 생각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음 직한데.. 같은 곳을 향한 그의 깊은 두 눈에, 삶의 풋내와 죽음의 악취를 동시에 맡고 있는 그의 우뚝한 콧등에, 그리고 수많은 말을 침묵으로 대신하는 그의 메마른 입술 위에 점점이 입맞춤하였다. 그것이 생에 마지막일지라도, 뜨거운 입맞춤의 순간 속에 그들은 영원처럼 아득하였다. (p265) (…) 어떤 이는 한 권이라는 짧은 책 속에서 '열애, 역사, 신념, 사상' 이라는 많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건져내려 무던히 애를 쓰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후미코의 상처 가득한 유년시절과 그 이후의 처연하리만큼 애절한 사랑, 후의 결말을 오롯하게 보고 느낀 후에 그녀의 들썩이는 어깨를 잡아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았던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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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살인
윌리엄 베이어 지음, 김승욱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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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더웠던 올 여름을 과감하게 안녕,하고 보내자니 뜨뜻미지근한 무언가가 나를 붙잡고는 놓아주질 않아 한참을 애먹었다. 작년 즈음엔 추리소설의 대가라 불리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모든 책을 섭렵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작품만 거진 열 권 안팎의 책을 읽었기에 인물들의 동선에 따라 쫓고 쫓기는 긴박감이 넘치는 남부럽지 않은 추격적을 몇 차례고 했었다. 그러나 올해는 추리소설이라고 해봤자 '이게 추리소설이 맞아?' 라고 되물음을 할 정도로 기가 차지 않는 소설들이 나로 하여금 실소를 터뜨리게 만들기에 충분했기에 그 후로는 추리 소설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고 손을 뻗지도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아마 그 이후로도 추리 소설에 눈길도 주지 않아 '새의 살인'을 접하지 못했더라면 매우 애석한 마음을 감추지 못할 뻔 하였음을 책을 다 읽고 난 뒤에야 안도의 숨을 고르며 토로한다.

 

 

 

여기자 팸은 아이스링크에서 새 한마리가 스케이트를 타던 여자의 목을 물어뜯어 잔인하게 살해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그 기사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해고의 위기에서 탈출하게 됨은 물론이고 극적으로 스타로 등극한 팸은 그 자리를 유지해야겠다는 일념때문이었는지 더 큰 특종을 잡기 위해 새를 관찰하던 중 그 새는 송골매라는 것을 알아냈고, 그 매 뒤에는 그것를 조종하는 사냥꾼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 와중에 그녀는 몇 차례 발신인이 송골매인 어떤 사람에게서 우편을 받게 된다. (…)

 

 

 

시점은 여기자 팸과 형사 제이넥과 매사냥꾼인 홀랜더의 시점이 맞물려서 이야기를 꾸려나가기에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 다방향으로 그들이 역할 수행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지 제 3의 입장에서 오롯하게 관찰할 수 있다. 혹은 각자가 팸, 제이넥, 홀랜더의 입장이 되어 사건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대부분 추리 소설을 읽을 때면 나는 온전한 제 3자가 되어 전체적인 구도에 관련된 인물들을 관찰하지만 이번만큼은 1인칭인 '패멀라 배럿'이나 '제이넥'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1인칭인 '홀랜더'에 시선을 꽂고는 그의 행동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책의 또 다른 주연은 단연 송골매였다. 새를 쳐다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소름끼쳐해서 보기만 하면 고개를 홱 - 돌려버리고 외면하는 내가 어째서 이 책에 시선을 주었는지 모를 일이다. 어찌됐건 그 정도로 새를 싫어하는 나에겐 작가가 친절하게도 송골매를 매우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것이 나에겐 매우 불친절하게 다가왔다. 그 와중에도 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그저 네트워크상에서 따온 것으로 치부해버리기에는 역량부터가 달랐음에 감탄을 자아내며 그것을 작가의 손길이 스쳐간 활자 그대로를 상상하며 읽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읽고 나서 최고다, 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들 정도는 아닐지언정 이 정도는 되어야 제대로 된 추리 소설 한 권을 읽었다 얘기할 수 있지, 싶었다. 사실 이 책은 범인을 아니, 반전을 400페이지가 넘는 중에 200페이지도 안되서 노출시켜 버린다. 헌데 그것이 오돌토돌한 것 또한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매끄러움으로 노출시키기 때문에 그것을 읽어내리는 독자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책의 끄트머리도 아니고 중반을 넘어가지 못하고 반전을 드러내는 책이라니. 그래서 결말까지의 간극을 어떻게 꾸려나갈지에 대해 더 많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던 것이 사실이고, 한편으로는 그 간극동안 독자가 범인을 알고 있기에 겪어야하는 지루함이라던가, 단조로움이라던가 하는 고초들도 생각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 것 조차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끝까지 독자의 긴장 상태를 고스란히 가지고 끌고 이야기를 매끄럽게 풀어나간다. 비록 결말이 무책임할 정도로 아쉬운 듯 보였지만 그 결말이 아니고 다른 결말이었더라면 만족했을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도 나름대로의 생각할 거리를 만들었다 생각했다. 오랜만에 좋은 작가를 만났다. 윌리엄 베이어, 그의 이름을 수첩에 적어놓으며 또 다른 작품을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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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견
손아람 지음 / 들녘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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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엔 쌀쌀하더니 지금은 바람이 산들산들 부는 것이 제법 가을 티를 내는 듯 하다. 그러나 느낄 수 있을만큼의 기분 나쁜 꿉꿉함은자동적으로 에어컨과 성푼기에 손이 가게 만들지만 3분도 채 되지 못하게 틀고는 꺼버린다. 그로 인해 온 몸에 오한이라는 스크래치가 생기고 꿉꿉함은 얄궂게도 다시 돌아온다. 그것은 검사의 아니, 대한민국의 비린내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아직 서평을 쓰지 않아 집으로 직행되지 못한 그 책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한참을 쳐다보다가 다시 손에 쥐어본다. 어떤 것이든 표현하지 않고 잊고 있는다면 아무리 좋았던 감정도 엷어지기 마련이라 오래 묵혀두어 혹시 쉰내가 나지는 않을까, 걱정했더랬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직 녹록지 않은 그것은 서평을 쓰는 동안에도 손님처럼 찾아왔는데, 그 느낌이 어찌나 말랑한지 좀 더 오래도록 내게 머물러주길 희망했다.

 

 

 

'소수의견'에 대한 대다수 독자들의 서평을 들여다보면 '용산 참사'가 생각난다고 했다. 이 책은 그것을 모티브로 썼다고 작가가 말하지 않더라도 읽는 독자에게서 그 사건을 상기시킨다면 그것은 이미 그 사건인 셈이다. 09년 용산 참사로 얼룩진 어느 날에 '100분 토론'을 시청했었다. 한가지 사건에 두가지 의견이라니, 참 매력있다 생각하면서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는 정부측 패널들을 보며 '너희가 국민을 상대로 준비한 변명이 고작 그 정도니' 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올 때, 이따금 들려오는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의 의견은 바라보는 국민의 입장에선 박수라도 치고 나설 만큼 경쾌함과 대범함이 실려있었다. 그걸 보며 그와 같은 견해를 가진 혹자 한 사람은 이 사건이 잠잠해질 때 즈음에 책으로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나올 줄이야. 게다가 아마 그 때의 사건을 정확히 알지 못했었고, 사건의 경위에 관심을 두지 않았더라면 이 책이 '용산 참사'의 실제적 결말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이 책은 잘 짜여진 플롯을 독자에게 과감히 밀어부치는 힘을 가진 책이라 더욱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놀기도 바쁜 팔 월의 여름 휴가, 내가 과연 책을 읽을 수나 있을까, 의구심을 품으며 나를 따라나서기 싫다던 윤 변호사의 손을 우악스럽게 잡아 끌고는 기차에 탑승했다. "지난 2월말 경찰이 아현동 뉴타운 재개발 사업부지의 현장을 점검하고 있던 철거민들에 대한 진압에 들어갔습니다. 철거민들은 망루를 세우고 저항했지요. 진압 중 폭력 사태로 철거민 한 명과 경찰 한 명이 사망했고, 죽은 철거민은 열여섯살 학생이고 폭행으로 사망했는데, 현장에 같이 있었던 사망한 학생의 아버지가 진압 경찰 중 한 명을 둔기로 내리쳐 골로 보낸 모양이오. 검찰은 그 아버지를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혐의로 구속기소했소. (…)" (p36-37) 국선 변호인인 윤 변호사는 국가의 명령에 반기를 들어 사직서를 쓰고는 박재호에 의한, 박재호를 위한, 박재호의 변호사가 되고, 그에게 있어 피고인은 대한민국이 된다. 대한민국에 청구하는 배상액은 100원. 그렇다. 그들은 단지 여론을 환기하려는 목적, 그 뿐인 것이다. 그리고 급기야 국민참여재판까지 문을 두드렸고 그 재판이 당신의 귀가 쫑긋하고 시선이 가 닿을 때 시작된다. 실체따위 존재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가운데에 피고로 세우고 진실을 호도하려는 자와 진실을 규명하려는 자의 싸움이 법원이라는 국한된 곳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자, 이제 감았던 눈을 뜨고 그들의 판을 지켜보아라.

 

 

 

사건에는 항상 진실과 거짓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공존해있고, 그것은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서 놀아나고 있는 자들을 강타하여 진실은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은폐하고 대신 거짓을 표면에 매끈하게 발라놓기에 우리는 거짓을 보고도 진실이라 스스로를 납득시키기고 그것을 믿기에 이른다. 이 책에서 독자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진실은 단연 p36-37 뿐이고, 이것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한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작가조차도 범접할 수 없는 오롯하게 사건을 읽는 독자의 몫이다. 소설의 전개에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는 땀마저 나의 숨을 옥죌 만큼 무더운 여름이었지만 소수의견이라는 좋은 책을 만나서 참 행복한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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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 민음 경장편 3
하재영 지음 / 민음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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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비가 날리고 있는 한 낮의 한가로운 오후에 연신 뻐끔거려 눈에 그렁그렁 매달은 눈물을 스윽 닦아내고는 그간 읽은 책의 서평을 쓰려 손가락 사이에 끼운 볼펜을 한바퀴, 두바퀴 빙빙 돌리고 무언가 생각난 듯 한참을 끼적거리다가 두서없는 글에 금세 샐쭉해져서 그마저도 두고 그와 상관없는 책을 내리 읽어가다가 겨우 30페이지가 남은 책을 읽을까 말까 10초쯤 망설였을까, 결국 그 자리에서 책을 다 읽어버리고는 엉켜있던 책의 내용을 제 자리에 끼워 맞춰놓았다. 책 한 권을 끝마친지 10분도 안되서 새로운 다른 책을 손에 움켜잡고 읽기란 대단한 과욕이라 생각하는 내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고는 햇빛에 뽀송뽀송 말린 이불을 배까지 끌어올려 덮고 잠을 자는 것 뿐인데, 아무리 일이 없다한들 회사에서 잘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리하여 내가 선택한 것은 하재영 작가의 '스캔들'에 대한 같잖은 서평이라는 구색에 대강 맞춘 글짓기이다. 하지만 그리 재미도 감동도 감성을 끌어내지 못하는 이 책에 대해 쓰라고 하니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할지 생각조차 하지 않은 나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책의 질과 양이 얼마만큼 비례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장편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의 두께를 보고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과 함께 고개를 좌우로 절로 저으며 읽었던 책이었다. 그럼에도 다 읽고 나서는 '질과 양은 반비례하다'라는 문장이 머릿 속에서 새로이 성립되기를 희망했으나, 책을 다 덮고 난 후에는 그것을 희망했다는 것조차 머쓱해질 정도였으니 이만하면 알만하지 않은가. 책의 중점은 '연예인의 자살'이라는 주제로 묶여져 있다. 아니 그런 듯 하다. 중간중간 주제를 잊게 만드는 알 수 없는 요소들이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그런 듯 하다는 이유가 된다. 그것은 혀를 간지럽혀 구태여 내 입술 사이로 짜증이 새어나오게 만든다. 제기랄. 책에서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당연하지, 그래서 이 책은 아미가 죽은 원인을 명확하게 제시하지도 않는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그런 의도따위는 없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저 그들을 향한 잣대가 그들을 죽였다고 그것을 비판하지만 그것에 대응할 수 있는 어떠한 - 혹은 잘 알려져있는 구식이라도 - 문제해결방법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저 문제점만 제시해놓고는 뒤꽁무니가 빠져라 도망가버리는 식이다. 이런 식의 내용이 혹자에게는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며 좋아할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거부한다.

 

 

 

루머는 스스로 번식한다. 루머의 자가 번식에 필요한 것은 불특정 다수의 호기심뿐이다. 호기심은 선의에서 우러나지 않는다. 그 안에는 타인의 치부를 훔쳐보고 싶은, 관음증을 닮은 저열한 욕망이 있다. 호기심에 사로잡힌 이들은 루머의 끝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더라도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할 결말을 지어내려 하지 않을까? 그 결말이 완전한 창작, 100퍼센트의 허구여도 말이다. (p116)

 

아무리 이 책에 반감을 가졌다한들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컴퓨터 앞에서 끼적끼적대는 누리꾼들의 자세이다. 재미삼아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죽는다고. 하지만 그에 따른 대응들은 눈에 보이지 않을만큼 더디지만 조금씩 자리메김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가. 네트워크상의 가장 큰 문제인 익명제를 실명제로 탈바꿈(완전하진 않지만)되고, 사이버 수사대가 출동한다. 그것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것은 그들을 손가락만으로 중얼중얼거릴 수 있는 악플러들로부터 도피시킬 수 있는 방법이고, 그것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가 힘들어 세상을 놓아버리는 꼴이 도대체 왜, 불쌍하고 안타깝게 여겨지는지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런 것도 헤쳐나오지 못하는 어리석고 우둔한 동물,이라는 생각만이 머릿 속을 맴돈다. 혹은 요즘같은 연예인들의 도미노식 자살은 관심받고 싶은 그들의 최후의 발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스치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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