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디자인에 눈을 뜨다 - 문화와 환경이 어우러진 도시디자인 산책
김철 지음 / 조이럭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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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전문적 내용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저는 도시계획이나, 건축 분야의 전공자가 아니며, 책의 의도 역시 도시디자인에 대한 깊이 있는 내용보다 현장에서 보고 들었던 도시디자인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도란도란 들려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라고 저자는 겁도 없이 과감하게 타이핑 쳐냈다. 그러나 사실 난 그가 도란도란 들려준다는 이야기는 고사(姑捨)하고 실은 사진만 들여다보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사진 한장마다에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작가의 손가락이 닿는 곳엔 애증어린 시선이 닿아있었고, 그와 함께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기쁜 일이었고 그 기쁨의 두배는 그에 합당한 활자를 보는 일,이라고 여지없이 생각하고 있는 참이었다. 하지만 도시디자인,이라는 것에 나의 지식이 얕았던 탓일까,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책을 다 덮고나서도 이렇다 할 정도로 뇌리 속에 박히는 단어조차 남지 않은 채 그대로 부서져 내렸다. 그래서 이 책을 나와 같은 시기에 접하여 써내려간 다른 이의 서평과 그와 부합하는 별의 개수를 보노라면 그 틈새에는 여지없이 지극히 주관적인 내 불만과 불평의 개입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그래.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어, 라며 내 별점수를 보는 순간, 내가 책을 잘못 읽었나, 라는 착각을 갖게 만들어 혼동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들과 나의 차이는 어떻게 해야 좁혀질까, 사고 방식? 책을 받아들이는 방식? 에라, 모르겠다.

 

 

 

강의 시간에 최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불현듯 떠오른다. 다른 나라에서 몇 년 걸릴 공사를 한국에선 6개월도 채 걸리지 않는다는 말. 그 때는 나에게 다가오지 않아 헤헤거리며 흘려들었지만, 그와 비슷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나로서는 '아, 정말이었어'라는 생각지도 않은 말이 나오게 된다. 지금은 몸 담고 있지 않지만, 작년 12월달부터 한달간을 한 디자인 시공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현장에 나가 실측하고 캐드 도면을 그려주고나서 심사 뒤에 ok 해버리는 식의 공사가 비일비재했고, 그 일을 하면 할 수록 졸업 작품에 허비했던 1년이라는 시간은 덧없이 느껴지기 일쑤였다. 나는 그 곳에 있는 동안 2개의 건물을 만들어냈고, 일을 관둔 한달하고도 보름만에 1개가 완공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게 된다. 후엔 언니도 회사를 사직 의사를 전해서 나머지 한개의 행방은 알 길이 없다. 훗 날 그곳에 지나다들러 돌아봐야 알 수 있을터다. 번갯불에 콩 구어먹기 식의 공사는 이른바 삼풍백화점, 와우아파트, 성수대교와 같은 부실공사를 연상케한다. 아, 말이 흘렀다.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야지.

 

 

 

하물며 건물 하나에도 이렇게 신경을 써야하는 판에 도시디자인이라니? 그것도 하나같이 견줄 수도, 견주어서도 현저히 저평가되어 있는 한국에 비해 프랑스 「라데팡스」, 「마른라발레」와 「리브고슈」, 독일의 「프라이부르크」와 「라이프치히」 「유럽, 그 도시의 취향」과 마지막으로 아마 비판을 가했을 것만 같은 「한국의 도시디자인」이라는 흥미있는 타이틀로 독자를 향해 손을 내미니 그 유혹적인 곳에 끌리는 사람이라면 그의 손을 잡지 않을 사람은 드물다,고 판단된다. 나 역시 뭣 모르고 그의 손을 덥썩 잡았지만, 부푼 마음을 계속 안고 그와 함께 발 맞춰 그곳을 돌아보기엔, 기대감을 충족시켜주기엔 러닝 타임이 너무 짧았고, 도시디자인에 관한 내 지식이 얕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프랑스의 「라데팡스」는 저자가 말하기에 마천루로 된 숲 사이에서도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편하게 숨 쉴 수 있다는 점이 라데팡스의 특징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라데팡스는 외국 관광객은 고사하고 프랑스 사람들에게까지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들은 바 있다. 그 까닭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고층건물에서 찾을 수 있는데,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고층건물이라는 폐쇄적인 의미는 사람들에게 쉽사리 닿지 못함을 저자는 간과했던 모양일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 개선문 계단에서 한가로이 오후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가진 사진에서는 뜨악했다. 외면받고 있다고만 생각했던 라데팡스에 사람이 찾아든 것이다. 글쎄, 가보지 않은 나는 왈가왈부 떠들어댈 순 없겠지만, 주관적인 생각으로 라데팡스는 프랑스의 도심으로 자기메김하기엔 매우 큰 부족함을 안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매력적인 도시임엔 틀림이 없다, 생각한다.

 

 

 

그 후에 사실 나머지는 어떠한 감흥도 내 안에서 일어나지 않았음에 과감히 생략하고, 가장 인상깊었던, 이미 독일 사람들이 살고 싶은 곳 1위로 꼽히고 있는 독일의 친환경 도시「프라이부르크」사실, 저 위에 별 세개는 프라이부르크에 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세밀하게 잘 표현해내주었다. 도시디자인이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어? 라고 어깨를 으쓱대며 독일 사람도 아닌 주제에 남모를 자부심을 표출하며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이 도시를 한껏 구경하며 이내 얼굴이 붉어짐을 느꼈다. 프라이부르크는 미래지향적인 에너지 수급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데 그 대안으로는 에너지 보존, 신기술 사용, 재생가능한 에너지원을 사용하는 것 등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시도가 이루어지게 된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점은 교통정책을 꼽을 수 있는데, 매연과 보행자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서민들이 교통체계에 가지는 불편함을 줄여 나가고 있다는 점과 전차의 이동에 대해서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뒤섞여 이동한다는 것과 특히 도로의 주인이 사람이라는 것을 보며 자연스레 정말 사람의,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모든 사람들이 꿈꿔온 그런 도시구나, 라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게 만들었음에 실로 경이로워 눈을 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글쎄, 한국이 이 정도로 발전하려면 억만년이 걸릴까? 하는 생각에 절로 한숨이 폭, 새어 나온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한국 도시디자인을 이야기하기 전에 사람을 향하는 도시디자인의 조건이라며 인본주의적 문화기반과 철학, 도시 정체성을 고려한 장기적 비전,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라는 이 세가지를 짚고 넘어간다. 그리고서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부족하고 심지어 광장으로서의 제 기능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광화문이라던가, 길가에 널부러져있는 자전거모양은 자전거도로의 현 주소를 설명하는 듯 했다. 사실 어느 자전거도로의 표기는 같을테지만. 도시디자인이란 선진국 따라잡기가 아닌 지역의 특성과 본래의 의미를 살린 것임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될 것이고, 그에 따른 시민들의 참여 역시 소홀해서는 안될 것이다.

 

 

 

 

(p52 , 8째줄) 늘어난 인구의 수용을 위해 시작된 주택개발과 공금으로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주택난은 어느 정도 완화되는 시점을 완화되었습니다.

(p56 , 3째줄) 각 구역별 개발은 하위 자치단체와 민간 개발업자 그리고 지역주민이 구체적인 색칠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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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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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목적이 있는 예를 들면 여행에세이라거나 감성에세이가 아닌 어떠한 작가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여 그 책의 저자에 대한 호감을 짙게 혹은 옅게 만드는 산문집이라는 것을 실로 오랜만에 접해보는 것 같음에 무당개구리같은 이 책을 끌어안고는 미묘한 떨림을 느꼈다. 산문집이라고 한다면 왠지 그 자가 펴낸 책을 적어도 한 권쯤은 읽어보았어야 하고, 그 자에 대한 애증없이 읽지 못할, 그러니까 어떤 작가의 애독자 정도는 되어야 그것을 즐길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박혀있어 쉽사리 손을 뻗지 못했던 이유가 그 곳에 있다. 그래서 그가 나의 두 손에 안겨주었을 때에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실없이 허허 웃곤 했지,싶다. 그 후에도 읽어야지, 언젠가. 하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으나 차일피일 미뤄왔었다. 산문집도 읽을 만 하다, 라는 것을 안겨준 책은 단연 고 장영희 님의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라는 책이 있었기에 전처럼 산문집이라면 정말 싫다며 손사레를 치고 고개를 돌려가며 거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단숨에 읽어내리기엔 자신이 없었다. 실은 일전에 그녀가 써 낸 「친절한 복희씨」를 세 번이나 손에 집었다가 놓은 것도 박완서,라는 작가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하기에 알맞은 온도를 갖고 있기에 틀림이 없었던 것이 그 까닭이다. 그 소설은 관찰자 혹은 2,30대 시점에만 익숙해져 있는 나를 보기좋게 깔아뭉개고 50대의 여인을 주체로 그 시선을 따라간다. 사실, 부끄럽지만 단편 중 고집스럽게 첫번 째 단편만을 세 번 모두 쉬이 읽은 적 없이 힘겹게 마무리를 하고 신경질적으로 책을 덮고는 다시는 그녀의 책을 찾지 않으리라, 혼자 다짐했었더랬다. 그러다가 그녀의 에세이가 그러니까, 80세인 박완서 작가의 시선으로 본 이 책이 나에게 넝쿨째 굴러들어왔으니, 내가 지레 겁먹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

 

 

 

내가 꿈꾸던 비단은 현재 내가 실제로 획득한 비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p25) 이 글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니 바꿔 말해, 이 글을 몇 번이나 되돌려 읽으며 맞아, 맞아를 연거푸 되뇌었던 이는 비단 나뿐이었을까.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과 회한이 담긴 문장들은 어느 노작가의 슬픈 독백으로 귓가에 스며들었고, 그것은 나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로 다가왔다. 나는 내가 가지 못한 길에 대해 끈덕지게 미련을 두고 자꾸만 뒤돌아보며 잘 가던 길에 의구심을 드러내며 주춤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에 대해 얼마만큼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이게 진정 내 길이 맞긴 한건지 (…) 하지만 이 물음엔 언제나 그렇듯 답이 없다. 인생의 주체인 내가 내 삶을 살아가며 배워야하고, 감당내야하며, 풀어나가야 할 나만의 과제인 셈이다. 누구도 풀어줄 수 없는, 내가 만드는, 나의 길.

 

 

 

책을 다 읽어내리고 덮고 난 후 작가가 만들어낸 정갈한 문장들이 고요하다,라는 동사 말고 어떤 말이 어울릴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기쁜 순간도 슬픈 순간도 요동치지 않는 바다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돛단배처럼 흔들림이 없고 잔잔하여 그것은 이윽고 마음의 안정을 되찾게 하기에 충분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작가는 우리를 심연의 고요 속에 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애정 그득한 문장으로 다시 손을 내밀어 어잇차! 하며 일으켜 세워주기도 하고, 지금 나와 같은 세대가 살지 못한, 허나 그녀는 숨쉬던 그 시대 - 한국전쟁 - 에 대해 우리 귓가를 살랑살랑 간지럽히며 그 때가 있었음을 잊지말고 기억해달라, 당부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라고 주관적인 판단 아래에 그녀의 글에 녹아들었다. 혹자는 먹먹함을 맛보았다 하였는데, 나에게 다가온 것은 먹먹함보다는 텃밭을 가꾸는 모습에서 아기자기함이 더욱 돋보였다 말하면 여든이 된 노작가에게 실례가 될까. 사실 한국전쟁을 언급하며 내 나이 때의 작가 삶을 이야기할 때에서야 그 먹먹함의 의미를 어렴풋 느낄 수 있었으나 어떤 면이? 라고 다른 이의 서평에 혼잣말로 반문했다. 물론 한국전쟁에 얼룩진 겨우 이십대를 태동하던 그녀의 삶 자체에 마음 아픈 이들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보다 작가의 너무도 무덤덤한 듯 말하는 말투가, 또 그 문장이, 당시에 내가 마시고 있는 식어버린 커피와도 같아서 초콜렛을 하나 넣고는 휘휘 저었다. 식어버린 커피에서 풍기는 진한 초콜렛 향이 시린 코 끝을 달콤하게 만들었다.

 

 

 

이 산문집의 1부는 온전히 그녀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내「 생애의 밑줄」로 시작해서, 2부엔 그녀가 다른 책을 읽으며 자신의 느낌을 쓰다 다른 길로 새어버렸다며 「책들의 오솔길」이라는 엉뚱하지만 재치있는 문구가 독자를 향해 손짓하며 그 안에 들어있는 책을 함께 교감하려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고 해야할까. 나는 이랬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 라며 나에게 되물어오는 것 같음에 기가 죽어버리기 일쑤였다. 또한, 그 뒤를 이어 3부인 「그리움을 위하여」라는 곳엔 이미 황천길을 가고 있을터, 하지만 그녀의 손길로 살아숨쉬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는 김수환 추기경과 박경리 선생과 박수근 화백을 볼 수 있다. 그녀의 책을 덮음으로서 아무래도 이 산문집 역시 책장에 고이 꽂아두고 한 두 해가 지난 후에 다시 한번 꺼내어 먼지를 탈탈 털어 다시 곱씹어야겠다고, 입 안에서 웅얼거리는 울림을 느낀다. 또한 그녀의 신작이 나오면 그 땐 주저하지 않고 읽어보겠다고,도. 하지만 나는 그녀의 「친절한 복희씨」를 읽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고, 손에 잡고 읽을 날이 있을지 또한 의문이다. 그러나 훗날, 언젠가는 내게도 그 나이가 오리니, 지금보다는 그 때에야 손에 붙들고 한 자, 한 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읽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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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 청춘의 밤을 꿈을 사랑을 이야기하다
강세형 지음 / 김영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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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던 여고생이었을 땐 얼른 스무 살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돈을 벌고 싶은데, 소위 괜찮은, 눈에 차는 '알바'라는 것에는 스무 살이라는 나이 제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스무 살이 되지 않았어도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 고작 2,3살 어리다고 하여 내가 못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번번히 퇴짜를 맞곤 했었더랬다. 게다가 야간자율학습이라는 틀 안에서의 고등학교 생활은 잡았던 일도 포기하게 만들어 버리기 일쑤였기에, '내가 스무 살만 되봐라' 라며 입을 앙 물고 스무 살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어느덧 꿈꿔왔던 스무 살이라는 나이를 지나쳐 스물세 살이라는 나이에 이른 지금에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라고는, '아 - 다시 고등학교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라는 마음 뿐이걸. 스물세 살이라는 나이를 먹고도 아직 내 앞에 주어진 삶이 마냥 불만스러워 투덜거리기를 밥 먹듯 하고, 힘들다며 찡찡거리는 것도 단연 최고라며 엄지 손가락을 추켜 세우는 나의 지인들이 있고, 누가 날 미워하면 눈물부터 나는 아직도 마냥 어린 애 티를 못벗은 채로 어른이라는 가면을 억지로 씌워 쓰고 있는 꼴이다. 그런 나에게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라며 거부할 수 없는, 유혹적인 제목을 가진 이 책이 품 안에 스며들었다.

 


 

 

다 읽고 나서 말이지만 이 책을 한 자리에서 휘리릭 읽을 수도 있었고, 밤을 꼬박 새서라도 읽을 수 있었다. 그만큼 손에 착 감겨 떨어질 줄을 몰랐던 책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한 자도 허투루 읽을 수 없었던 이유, 아마 읽은 사람이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래, 나도 이런 때가 있었지' 라며 공감도 하고, 내가 미처 발을 들여놓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옆집 언니가 '앞으로 세상은 너에게 이럴지도 몰라' 라며, 조언해주는 듯 하여 활자를 읽으면서도 고분고분 옆에서 듣는 시늉을 내기도 했다. 실은 책에서 '그'와 '그녀'를 지칭하는 주어가 분명하게 나와있기에, 뭐를 중심으로 쓰는 것인지도 몰랐던 나는 작가가 여자라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았더랬다. 나의 그가 작가가 여자니까 그렇지, 라고 내뱉었는데 난 당연하다는 듯 '아니야, 남자작가야' 라고 반문하면서도 의아해서 급기야 책을 덮고는 강세형 이라는 작가의 이름 세자를 검색창에 재빨리 써넣고는 검색을 망설였더랬다. 내 예상대로 하마터면 작가가 남자였더라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불만이 응어리져 터져나오며 그간 읽었던 활자에 배신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었기에.

 

 

 

누구에게나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실망' 중 하나는 이것일 테니까. 나 자신에 대한 실망. (p119) 실망이라는 것엔 여러 종류가 있고, 그것을 느끼는 주체는 항상 내가 된다. 그러던 9월의 어느 날, 내 자신에 대해 극도의 자괴감에 빠져 허덕거릴 때가 있었다. '왜 난 이 모양, 이꼴인거야? 그렇지, 그동안 허투루 했으니까, 충분한 노력이 이뤄지지 않았으니까' 라며 자책하다가 급기야는 '이것 하나 해내지도 못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 라며 나 자신에 대해 회의감이 넘쳐흘러 더는 주체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무엇으로도 붙잡지 못했던 그것을 붙잡아준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나의 마음가짐이었다. '까짓것 다시 해보면 되는거지, 못하는게 어딨다고' 라며 다이어리에 '난 나를 믿어'를 몇 번이나 끄적여 놓았는지 모른다. 아무리 옆에서 '넌 그것밖에 안 돼, 그냥 포기해'라고 말한다 한들 반대로 '이대로 포기하지 마.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한다 한들 내 자신의 한계는 나만 알고 있다. '난 결국 이것밖에 안 되는 건가, 여기까진 건가?' 나 조차도 이런 생각이 들 때 그 한계를 넘을 수 있는 건 결국 믿음, 나에 대한 믿음, 자신감이다. 실패. 좌절. 이런 것들이 한두 번도 없는 삶은 아마 없을 거다. 자신감을 잃지 않고 그것들을 넘어서느냐, 넘어서지 못하느냐. 어쩌면 꿈을 이뤄내는 사람과 이뤄내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그것뿐일지도 모른다. (p334,335) 어떻게 그것으로 빠른 회복을 거머쥐었는지 나조차도 의아해하던 찰나, 이 글귀가 눈에 와 닿았다. 그래, 내 자신에 대한 믿음. 아마 나에게 그런 일이 없었다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반문했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이 글귀를 발췌하여 그에게 보내주었다. 나에게 닿은 이 글귀가 그에게도 닿기를, 간절히 바라며.

 
 
 
내가 이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끌어안을 수 있다고 감히 내뱉진 못하겠다. 이 책은 그녀가 말하고 싶어하는 그 많은 사연들 중 '아니아니-' 라며 고개를 저으며 회피해버리고 싶은 것도 있기에,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분명 내가 상상하는 것처럼 쉬운 것만은 아닐테지만, 그것을 같이 공유하고 위로해줄 이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또 한번 각인시켜준 셈이다. 언젠가 삶의 무게에 깔려 버티기 힘들어 누군가의 손길조차 마음의 짐처럼 느껴질 때에, 다시 한번 펼쳐들고 싶은 책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한 책,이라며 책을 마무리했다. 강세형 작가, 마침표만 보고 세상을 살아가느라 쉴 틈조차 쉽사리 허용하지 못했던 나에게 쉼표,를 내밀어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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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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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이라는 이유로 내가 기피해왔던 책들이 한 두권 일까, 하지만 단편임에도 그 이야기 속에 생명력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작년 즈음 김영하 님의 단편집을 「오빠가 돌아왔다」 이후로 매우 오랜만에 접했는데, 항상 마음에 드는 책을 읽을 때에 느끼는 감흥은 좀처럼 올라오지 않고 그대로 멈춰서 꼼짝도 안했었다. 그러고보면 그 때에도 역시 단편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이야기를 제대로 들여다 보지 못했구나, 라는 아쉬움이 물밀 듯이 밀려든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혹여나, 이 책도? 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어서 주변 지인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받고 있고, 그 중 한 지인에게 선물받은 책임에도 좀처럼 손에 잡고 읽을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그 까닭임을 의심할 여지조차 없다.

 

 

 

내 눈이 그가 써놓은 문장을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책을 읽어내렸다. 그렇게 그의 작품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키고 나서 숨을 고른다. 그러나 사실은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인 곳이 단 한 장도 없을 만큼 문장은 간결하고 마음에 와닿는 구절 또한 찾아보기가 힘이 든다. 다른 이가 발췌해놓은 문장을 보아도 마음은 좀처럼 일렁이지 못하고 이게 왜? 라고만 반문하고 있는 꼴이다. 그는 호흡을 절대 길게 가져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은 독자가 호흡을 할 시간을 벌어 주는 작가의 세심함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것에 갑갑증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 사실 내가 그랬다 - 조금은 길게 끌어도 될 것 같은데, 하는 사이 이미 끊어져있다. 그가 내놓은 이야기가 이미 끝났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단편의 치명적인 점은 결말을 명료하게 지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아니다. 결말이 완전한 이야기는 그것은 정말 말 그대로 한낱 이야기에 불과할테고, 그것은 이미 죽어있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지, 더 이상 살아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 된다. 그렇기에 그것은 그것의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충분히 순화시킬 수 있지만, 미안하게도 단편이라는 자체를 내 안에서 품을 수가 없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끌어안는다는 것엔 - 적어도 - 나에겐 무리가 뒤따른다. 책을 덮고 나서 13개의 단편 중 생각나는 것은 서너개밖에 없을 뿐더러, 그 후의 것은 책을 들춰봐야 그제서야 아, 맞다! 라며 바보처럼 실실 쪼개는 것이 다반사가 되어버렸다.

 

 

또한 무척이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단편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에게 이름을 달아준다는 것은 부질없다고 생각하기에 읽는 내내 내가 이들을 다 기억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었다. 물론 지금 제대로 된 이름을 대보라고 한다면, 현주, 마코토 뿐이다. 그러나 정작 1인칭이었던 그녀가 생각나지 않는 바람에 책을 다시 한번 들춰 그녀에게 지영이라는 고유명사가 붙어있었구나,라며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장편을 읽어도 시간이 지나면 이름을 잊기 마련인데, 하물며 이처럼 짧은 이야기 속에 있는 각기 다른 사람들을 한번에 기억하기엔 나의 뇌 용량이 수용하지 못하는 까닭에 쉽사리 그들을 머릿 속에서 게워내고 마는 것이다. 그의 책 중 「오빠가 돌아왔다」를 처음으로 읽었었다 위에 고백했는데, 그 책에서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그 단편에서 생각나는 것을 꼽자면 「오빠가 돌아왔다」로 시작해서 「오빠가 돌아왔다」로 끝낼 수 있다. 그것이 단편이라는 이름으로 되어있는 책의 치명적인 단점이고, 나는 아직도 그것에 대한 대책을 생각해낼 수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라는 이 책에서는 「로봇」「여행」「악어」「밀회」「명예살인」「마코토」「아이스크림」「조」「바다이야기1」「바다이야기2」「퀴즈쇼」「오늘의 커피」「약속」이렇게 열 세 가지 단편이 수록되어있다. 만약 나에게 가장 기억하고 싶은 단편이 무어냐고 얘기한다면, 사실 아직 잘 모르겠다,는 것이 솔직한 내 대답이다.

 

 

그러나 그 중 가장 만만한 「로봇」에 대해 이야기를 깨작깨작 거리자면, 수경은 자신이 로봇이라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아마 작가와 같은 언변가일테지. 얼굴도 모르는 자신이 로봇이라는 그 남자를 상상하며 연신 낄낄,거리며 이야기를 읽어 내린다. 요즘 로봇의 에너지원은 다양합니다. 저는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을 주 에너지원으로 하도록 만들어진 로봇입니다. 가장 효율이 높은 것은 옥수수고요. 적당한 알코올도 도움이 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앞에 놓인 잔을 들어 화이트 와인을 한 모금 삼켰다. (p28) 가관이다 정말, 아무리 세상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이성과 잠자리까지 할 수 있는 로봇이 어디 있겠느냐 말이다. 아까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외치는 순간, 내 머릿속의 프로그램이 이제 당신을 떠나야 할 때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런 열정적 사랑은 인간인 당신을 해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내게 떠나지 말라고 명령하기 전에 내가 먼저 가야합니다. (p30) 낄낄거리며 읽는 사이 벌써 막바지로 치달았다. 읽고 나니 현실에 깔린 거짓들을 이야기에 몸서리가 쳐지며 씁쓸함이 전해져오더라, 이거다. 그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단편이라는 이유로 이 책을 편파적으로 적어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단편집을 꺼려하는 나에게도 그 중 단연 최고라 꼽을 수 있는 단편이 있는데 그것은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 그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단편임에도 책이 아닌 작가를 읽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을 읽을 때도 이 작가인 김영하 작가를 읽을 수 있을까, 하며 내심 기대를 했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것은 내 손에 채 들어오지 못하고 그대로 녹아내리고 그를 대변하는 책만이 남았다. 아마 처음부터 '이것도 그것처럼'이라는 무서운 생각이 새로운 책을 읽는 데 방해가 된다는 생각을 미처 떨궈내지 못했던 것이 실수였다는 점을 자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또 그만의 매력이 있는 것이니 더 이상 무어라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하지만 내가 이 책에 주는 별 네 개 중 책의 내용은 세 개뿐이고, 나머지 한 개는 김영하 작가에게 거는 기대감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는 타고난 언변꾼임에 틀림이 없다. 다만 그 빛이 단편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볼 수 없다는 것이 원통할 뿐. 하지만 그 속에서도 혹자는 그의 언변 수준을 척척 잘도 찾아내더라, 그 말이다. 그렇다면 이유는 두 가지, 그의 책이 나에게 맞지 않다거나 혹은 내가 너무 갇힌 채로 그의 이야기를 읽고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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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불의 집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시작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 미스터리물을 읽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고 종전에 읽은 미스터리라고는 기분좋게 읽은 '새의 살인'이 나를 굽어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읽을 책과 확연히 다른 점은 '밀실사건'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밀실이라하면 내용이라던가 구성에서 조금 아쉽게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과 후'를 생각해내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아쉬움을 이 책에서 찾고자 한 것이 화근이었다. 서평을 쓰는 지금, 햇빛이 가을이 오는 것을 원치 않는지 맹렬하게 압박하여 다시 여름이 억지로 찾아온 것만 같은 기분마저 감도는 오늘은 9월의 어느 날이다. 오늘같은 날 읽었더라면 조금 다른 느낌이었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보지만 금세 마음을 바꿔먹고는 하긴, 날씨에 책의 느낌이 달라진다니 그보다 억지는 없을 것이다,라며 이 책을 읽은 그 때를 떠올린다. 실은 나에게 '기시 유스케'라는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럼에도 낯설지 않음이 원래 다니던 길을 지나가는 것과 같이 익숙하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알고 있는 '검은 집'을 원작이 아닌 영화로 먼저 접했던 나에게 그 작품은 '광란' 이라는 단어로 자리매김하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원작이 더욱 괜찮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영화의 거대한 무게에 짓눌려 원작을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검은 집을 쓴 작가는 머릿 속에 각인되기도 전에 그렇게 잊혀져갔다. 한참 후에야 그의 작품인 이 책을 들었을 때에 검은 집을 떠올리며 좋은 영화는 좋은 원작이기에 나올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때문에 기대감을 한껏 안고 시작했다. 오 마이 갓, 책을 펼친지 두장만에 소녀가 죽었다. 장소는 밀실이다.

 

 

 

 

아, 제기랄. 방심했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넌더리가 났다. 단편이었던 것을 하나의 단편이 끝난 뒤에야 알아차렸다는 점과 또 하나는 기시 유스케라는 작가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안았다는 점이다. 기시 유스케의 책이기 때문에, 라는 이유로 이 책을 끌어안기엔 상당히 큰 무리수가 있음에 분명하다. 이 책은 「도깨비불의 집」「검은 이빨」「장기판의 미궁」「개는 알고 있다」라는 총 네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챕터 하나하나가 어째서, 왜? 라는 말만 되풀이되게 만드는 이 책을 도무지 정성어린 손끝으로 애무할 수 없음이 그 까닭이다.

 

 

 

특히나 「장기판의 미궁」에서는 "잠시만요. 증거는 아무 데도 없어요." 라고 말하며 범인의 입을 막으려 들지만 도리어 범인이 "아니에요, 증거는 이미 충분해요." 라고 뇌까리는 밀실의 도대체 어느 부분이 흥미롭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음에 가슴이 꽉 막히며, 이보다 해괴망측한 일도 없을거라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개는 알고 있다」를 다 읽고 난 뒤에는 추리 한번 저질…스럽다,라는 말이 제 멋대로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와 나조차도 화들짝 놀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케이 씨가 풀지 못하는 밀실도 있군요. 저도 반성해야겠어요. 케이 씨에게 물으면 뭐든지 답이 나온다고 안이하게 생각했거든요……. 하긴 이번에는 조사를 엉성하게 하더군요. 그러니까 수수께끼도 풀지 못하죠." (…) "그쪽은 쉽게 포기하면 되지만, 전 밀실 수수께끼를 풀었다고 큰소리 뻥뻥 쳤다고요! 저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되지요?" (p300) 준코의 말을 눈으로 훑으며 '뭐 이딴 여자가 다 있어'라고 생각했다면 내가 망언을 한 셈이 되는가? 어째서 전직 도둑에게 자신의 권리를 모조리 떠넘기고자 안이한 변호사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준코의 저 말은 어린 아이가 사탕을 달라며 보채는 꼴이지 뭐냔 말이다.

 

 

 

 

이 책에 나는 도무지 후한 점수를 줄 수도 없고, 주고 싶지도 않기에 다른 분의 서평에 있는 달려있는 별 다섯개 또한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은 소감이라고 할 것 없이 적어도 이 책을 읽은 뒤 느낌은 '밥을 먹기 위해 반찬을 다 차려놓았는데 정작 밥이 없을 때' 처럼 허망하기 그지없기에 그처럼 표현해도 무방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으로 기시 유스케에게 실망을 했다거나 다시는 그의 책을 들여다보지 않아! 라고 할 망언을 하지 않는 이유는 이 책이 나에겐 그의 첫 작품이고 다른 책을 읽어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으리란 생각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까지 그의 다른 작품에 거는 기대가 꽤 크기에 이 책으로는 덮어버릴 수 없다, 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는 아직도 그의 작품이 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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