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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 기준이 되지 않도록 - 부러움을 받으면 행복해지는 줄 알았던 당신에게
윤현 지음 / 홍익 / 2023년 8월
평점 :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자신을 잘 안다고 자신하는 것이 착각일지 모르겠고 한편으로는 그 믿음이 어리석음에 가닿는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날것의 내 감정을 자주 들여다보곤 했던 지난날들을 고작 어리석음으로 점철 지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내게는 ‘지금의 내 상태’를 안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나의 상태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나는 침묵을 택하게 되었다. 이전의 나라면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일이다. 누군가에게 내 상태를 말해야만 속이 풀린다고 믿었으니까.
개인적인 일기가 아닌 타인이 볼 수 있는 글을 쓸 때에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나 혼자 기록하기 위한 글이라면 내가 언제나처럼 끄적이는 연습장에 있는 단어들만 난무할지 모른다. 가장 최근에는 “개구리가 야옹거리면서 풀벌레에게 기댔다. 그러니까 당신은 갈대가 아닐까.” 이따위의 말도 되지 않는 문장들을 써재낀 적이 있는데 이건 단순하게 그때 당시에 생각난 단어들로만 조합한, 정신세계가 모호하다고 판단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문장이니까. 이런 조합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내가 나에게 비웃음을 보인다. 그러니까, 결국 글도 읽히기 위해, 누군가에게 도달하기 위해 쓰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에, 그것도 전체 공개로, 저런 글을 쓸 수는 없는 거니까.
어떤 것을 결정하거나 선택할 때 이러기도 하고 저러기도 하는 나를 보면서 내가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알아내려고 애를 썼었다. 그런데 그 고민을 하는 것은 결국 두 가지 모두를 원하는 것이기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둘 이상의 모두를 가질 수는 없는 일이었고 어쨌거나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은 점점 더 늘어났다. 그럴 때 선택의 기준점에서 남들 시선은 늘 배제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아니 어쩌면 이 삶을 살아가면서 남들의 시선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안타깝게도 “나는 남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도 결국 남을 의식하고 있으니 내뱉는 말일 수밖에 없다. 어쩌다가 우리는 남들의 시선을 이렇게까지 의식하고 살아야만 하게 된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아니 태어날 때부터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날 수밖에 없으니까.
글을 쓰다보니 타인의 시선이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무단횡단을 하려고 할 때에도 타인의 시선 때문에 멈칫하게 되기도 하고 담배를 피우려다가도 타인의 시선 때문에 거두게 되기도 하며 쓰레기를 버리려다가도 타인의 시선 때문에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기도 한다. 타인의 시선이 없다면 우리는 금지된 행위들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뜩 든다.
하지만 무언가를 선택할 때는 내 기준이 제대로 확립되어야 타인의 오지랖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특히 삶을 살아가면서 자주 질문란에 있는 성적, 학교, 취업, 결혼, 출산, 육아 등등의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분명한 선이 있어야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를 지지해주는 부모님에게 실망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 또 주변 지인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학교를 나와 좋은 회사에 취업을 한 뒤 남부럽지 않은 결혼을 하고 아들딸 하나씩 낳고 살면 그게 성공한 인생일까? 그것을 행복이라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본인의 만족이 없다면 그것 역시 결핍으로 촘촘하게 채워진 인생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 역시도 그렇게 살아왔다. (체념의 의미는 아니지만) 하지만 지금은 그것도 인생이고 이것도 인생이고 저것도 인생이겠거니 싶다. 인생은 한번뿐이니 이렇게도 살아보고 저렇게도 살아보고 그렇게도 살아볼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것이다. 불과 3-4일 전에 한 카페에서 한 글을 봤다. 그 사람이 하는 생각을 나도 똑같이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전체가 보는 공간에서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나는 저러지는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 글을 보는 순간 느낀 것은, 추해보인다는 생각뿐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발설하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끼게 한 일이었다.
내가 지금은 이렇게 사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면 그대로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는 한번도 내가 계획하지 않은 삶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이제까지 내가 계획한대로 살아왔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내가 계획할 수 없는 것은, 죽음뿐이라고 막연히 짐작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아니었다. 어느 순간 내 삶에 침입한 수많은 무계획들이 나를 괴롭혔고 그때마다 나는 자주 넘어지고 깨어지고 부러졌다. 유연성을 가지고 산다는 것에 대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성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무계획 속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까마득히 멀어진 것만 같은 내 과거를 회상하게 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별반 다를 것이 없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때의 선택을 지금도 똑같이 하게 될까? 하고 생각해보면 답이 달라지는 것들도 꽤 있을 거라 생각하니 나는 아직도 점점 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크고 있네, 나. 라며 스스로를 격려하고 보듬어주게 된다.
책 속의 문장
8. 이제는 지난날들로부터 그리움보다 깨달음을 느끼려한다. 부러움을 받는 것과 행복의 차이를 찾아가던 날들. 삐뚤삐뚤 서툴렀지만 나답게 사랑하던 날들. 낯선 세상에 부딪히고 도전하던 날들. 그속에서 삶의 '기준'을 배운다. 적어도 내 삶에 결국 남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헷갈리지 않기 위해.
190. 살다 보면 쌩쌩 달리는 기차 안에서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처럼 수없이 많은 관계와 상황이 우리 삶을 스친다. 때로는 그 스침이 안타까워 전부 다 붙잡아두고 싶을 때도 있지만 조금씩 기준을 세워 본다. 흘려 보내야 할 군더더기는 무엇인지, 내 곁에 꼭 남겨두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말이다. 언젠가 길을 잃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어둠 속에 갇히더라도 결국 지켜내야 할 소중함이 끝내 우리에게 길을 알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