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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인연 - 최인호 에세이
최인호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최인호의 인연. 오랜만에 읽는 에세이였다. 에세이인 줄 모르고 책을 들었던 나는 약간의 실망감을 안고 조금은 삐딱한 시선으로 읽어내려갔다. 최인호의 인연이라는 두껍지않은 이 책엔 그가 살면서 그와 닿은 인연들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사람과의 인연이건, 풍경과의 인연이건, 사물이나 시간과의 연인이건 내게 인연을 마주하고 상대하는 일은 서툴고 어리숙하게만 느껴진다.(p15) 어렸을 때부터 낯가림이 매우 심했던 나는 누가 옆에서 한발짝 다가오면 난 뒤로 두세발짝 물러났던 아이였다. 지금은 그 낯가림이 좀 옅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약간은 그것이 남아있어서 낯선 사람을 보면 경계를 먼저 하게 되고 다가오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던 중 북카페를 알았고, 북카페에서 온라인상이지만 소중한 인연들을 만났다. 대한민국이라는 한 공동체에서 살고 있기에 시간내고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인연인 것이다. 가끔 힘든 일이 있을 때 곁에 있는 친구보다 더 위로가 될 때도 있고, 좋은 일들에 나보다 더 기뻐해주는 인연들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욕심이 많은 아이고, 의심도 많은 아이었기에 아주 미안한 일이지만, 사실 처음엔 가식적이야. 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책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그 안에서 소소한 것들에 대해 함께 행복해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보다 기분좋은 일이 어디있나 싶다.
우리는 모두 그 누군가의 붓이 디어 세상에 그 어떤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인연이란 내가 그 사람에게로 다가가 그 무언가가 되어주는 일이다.(p97) 인터넷에서 가끔 떠도는 말로 '나는 사람을 만날 때 가장 먼저 어딜 보는가'라는 말이 있다. 투표결과나 댓글에 '눈'을 본다는 사람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난 사람의 말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말투로 그 사람을 나의 사람으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그저 흘러보낼 것인지의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점차 긍정적마인드를 가지고 나를 다스리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진않지만, 불과 1년전까지만 해도 아니, 6개월전. 사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때그때마다 항상. 나는 상당히 부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나를 부정적인 늪에서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한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로 지금은 부정적인 면들을 점차 걷어내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시기어린 말투를 가진 사람을 가장 혐오한다. 그런 사람은 나의 모든 일에 도움이 되지 않을거라는 나만의 이유없는 판단여부에 따라서지만.. 또한 나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는데, 난 그 말을 부정한다. 세상이 개인에 따라 넓거나 좁다한들, 인연이라면 언젠간 그 고리가 생길거라는 믿음때문이다. 인연은 필요에 따라 잡힐 수도, 잡아야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 이기적이게도 나한테 해가 되는 사람과는 인연을 맺고 싶지 않다. 나와 옷깃을 스쳤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해가 되는 사람은 절대 사절이다. 오랜 기간을 친구로 지내다가 혹은 연인으로 지내다가 헤어지는 일도 흔한 요즘에 인연은 단박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듯 싶다. 내가 추구하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싶지만 말이다.
난 작가 최인호의 인연 중 가장 생각나는 사람은 아내였다. 그가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듬뿍 담겨 있는 이 책을 그의 아내가 읽으며 얼마나 행복해할까 라는 생각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이 나라에서 부모와 아내와 자식이 물에 빠지면 누구 먼저 구해낼거냐는 질문에 최인호는 아내 먼저 구한다고 말한다. 그 부분을 읽으며 아내를 향한 그의 사랑이 너무나 부러웠다. 내일 만나는 아내도 지금의 아내임에 틀림이 없지만, 내일의 아내보다 오늘의 아내가 좋고, 내일의 만남보다 지금의 만남이 좋다는 것. 실로 공감되는 구절이었다. 구지 연인이 아니더라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났다면 그 헤어짐이 얼마나 아쉬운지 우리도 함께 느낄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낭만이라고 하기엔 초라하고, 초라하다고 하기엔 너무 눈부시고 쓸쓸해서 아름다웠던 우리들의 신혼을, 나는 내가 당신과 함께 보낸 유년기라 부르고 싶다.(p230)
지금 나의 인연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말이고 어쩌면 당연한 말이지만, 나의 인생에 최고의 인연은 바로 가족이지 싶다. 이 전 세계 그 누구보다 나의 탄생을 축복해주는 사람이 없고,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할 수 없고, 나의 기쁨을 기뻐해주는 사람이 없고, 나의 아픔을 자신의 일처럼 아파하는 분들.. 바로 나의 가족뿐이다. 가족은 나의 영원한 동지이자 우군이자 나의 어깨뼈이며, 나의 척추와 내 머리에서 자라나는 검은 머리카락이자 나의 눈동자, 내 몸을 이루는 그 모든 기관이지 때문이다.(p236)
이 책은 분명 술술 읽히긴 하나, 최인호의 사람들에 관한 수필집이기에 재미는 떨어지고,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부분도 있으나, 잊고 있던 고마운 내 사람들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생각하며 혼자 미소짓기도 하고, 힘든 상황에 있는 친구들을 생각하며 멀리서나마 함께 응원의 메세지를 보내기도 했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보다 아는 사람이 많다는 슬프지만 진실된 말도 들린다. 그 말을 듣고있노라면, 인연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새로운 사람보다 지금 있는 나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영원한 내 사람들로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