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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어, ... 널 이별해
김현희 지음 / PageOne(페이지원)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어른스럽고 성숙하게 헤어진다는 것은 소설에서만 가능한 일일까?(p82)
이 물음에 자신있게 '아니,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해'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여지껏 힘든 사랑을 한 것만도 아닌데, 왜 항상 이별은 뒷맛이 쓰디써서 입에 닿기도 부담스러울 만큼의 강한 내음으로 눈시울을 적시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이 책의 주요 주제인 이별, 헤어짐이라는 단어 자체가 나에게 서글픔의 대명사가 되어 다가왔고, 나의 정신을 혼란의 상태로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역시 나 또한 헤어짐을 경험했고, 그 상처에 오랫동안이나 아파했다. 분명 처음도 아닌데, 할 때마다 가슴은 무너져내리기 일쑤다. 당시엔 그 때의 생각들에 얽매어서 '그 때 좀 달리 행동했더라면...' 이라는 희뿌연 안개가 머릿 속을 뒤덮어서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생활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후회한다고 달라질 수 있을까? 물론, 달라질 수 있다. 다시 시작하는 것. 하지만 난 그게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도 우리가 서로에게 부담이고 상처가 되는 순간부터 우리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었던 것 같아.(p244) 라고 말하고 있다. 나도 그 말에는 매우 깊은 공감을 한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헤어진 연인들이 다시 시작하면 안되는 이유'를 찾아본 적이 있다. 결론은 똑같은 이유로 헤어진다는 것 누군가는 아니라고 항의의 깃발을 치켜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주관적인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나 역시 사랑이라는 걸 했었고, 이별도 했었고, 다시 시작해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항상 끝은 여전했고, 그러다가 처음엔 그나마 좋은 추억이라도 가지고 헤어질 수 있었는데, 그 후에는 그 좋은 기억조차 남지않는 기억에서 묻혀진 사람. 그래, 그런 사람이 있었지. 저자에게 내가 사랑이 변할 수 있나요? 라고 질문을 던진다면 사람은 변하지 않으나 사랑은 변한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정답일까?
저자가 아는 지인 중에 남자친구가 무언가를 먹을 때 쩝쩝 거리는 소리를 내며 먹는데, 그걸 모르고 지내다가 어느 순간부터 보이더라는 것. 그리고 헤어지고 만났는데 그게 여전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데 사랑만 변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 역시 개개인의 차이겠지만.) 나는 이제까지 몇번의 연애를 하면서 그 사람 자체가 지겨웠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다만 함께 하는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사람이 너무 싫었다. 그저 나만 바라봐주지 않는다고 칭얼칭얼대는 그런 정도가 아니라 그 변했다는 그 순간이 오면 딱 느끼게 되는 그 무언가가 공기를 싸하게 훑고 지나간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사람이 변하기 때문에 사랑도 변한다 는 것이다. 그 사람이 변하지 않았으면, 항상 지고지순하게 바라본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언젠간 변할지도 모르는 감정이지만, 그 감정들이 칼로 물을 베어버리 듯 그렇게 쉽게 변하진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하나 더 깨달은 것은 나의 우주가 그를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었으니.(p232) 이 한 줄을 보며 지금 내 우주도 누군가를 중심으로 돌아가겠거니였다. 그러나 혹시라도 그 중심이 없어지게 되는 날이 오게 된다면, 내 균형은 깨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그 중심은 항상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내가 어느정도의 균형은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 정도이다. 물론 그게 결코 쉽지만은 않겠지만..
"모랄까, 우리 관계가 어느 순간 지겨워지더라. 딱히 불만이 있거나 다른 너를 바랬던 건 아닌데 그냥 만나는 것도, 우리 사이도 지겨웠어. 버겁기도 했고. 너와 회사. 이렇게 두 가지로 점철 지어지는 삶의 영역이 어느 순간 숨 막혔어. 그냥 다른 사람 만나면, 네가 아니면 다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 (p181) 사람이란게 참 이기적이고 간사해서 처음엔 그렇게 못헤어져서 안달복달하더니, 그 다음엔 자신은 헤어졌다고 생각안한다거나 그런 거지같은 소리를 아무런 죄책감없이 내뱉는 것. 하지만 저런 생각. 누구라도 해보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 아닐까. 나는 지겹다고 하기보다 힘들었다. 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힘들었고 그 사람때문에 힘들어하는 내가 싫어서 이별을 고한 적이 대부분이었다. 후회는 없었다. 이따금 떠오를 때는 있었지만, 그 힘들었던 기억 속으로 다시 발걸음을 내딛는다는 그 자체로도 너무 숨이 막혀와서 생각을 하다가도 급히 접어두는게 대부분이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저자만의 사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공감하고 있다는 것은, 아마 지금 하고 있는 내 사랑도 그리고 이 세상의 그 어떤 연인들의 사랑도 모두 다 특별한거 하나 없이 다 같다는 것. 한마디로 사람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