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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만 거지같은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아주 오랜 시간동안, 계속적으로, 벗어날 수 없는 거지 같은 날들이 계속되리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 사람들은 이런걸 가지고 '절망'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p176

이런걸 뭐라고 하지. 별 기대없이 들었던 책이 뺨을 맞은 것처럼 얼얼한 후유증을 남긴다는 것을.
'가족'은 피를 나눈 사람들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지않은가. 하지만 이 작품이 사랑스럽게 내려다보며 감싸안아주고 있는 동구네 집에서는 그런 말이 무색할 만큼 냉랭한 기운만이 퍼진다. 기득권을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해하는 할머니와 침묵으로 일관하는 엄마, 그 두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일관된 모습으로 엄마에게 화풀이하는 아빠. 이 가족의 문제라면 불통이라는 거대한 시한폭탄를 안고 살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가족에게 소통이라는 것을 던져주게 된 사건은 1977년 동생 영주가 태어나고 부터가 아닌가 싶다. 실제로 이 책은 영주가 태어나면서부터 첫 장이 시작된다.
동구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그 눈 속에 예쁘고 좋은 것들만 담아주고 싶었지만, 작가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예쁘고 좋은 세상보다는 더럽고 추악한 모습을 동구 눈에 더 많이 담아준 듯 하다. 그래서 동구가 너무 빨리 성장을 한 건 아닌지 가슴이 아파온다. 무슨 일을 했건간에 잣대는 항상 동구에게 날아오고 그 잣대들은 난독증이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 동구는 난독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특별학교에 갈 뻔 했지만, 박영은선생님과의 공부방법에서 집에서 배웠어야 할 소통이라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스스로 읽고 쓰는 것은 아직 어눌하긴 하지만, 문제될 것은 없게 됐다. 요즘엔 기사를 보면 별별 기사가 다 뜨기 마련이다. 학생에게 아무 이유없는 체벌을 내린 교사부터 심지어 교사를 폭행하는 학생까지. 그런 사람들이 동구와 박영은선생님을 접해본다면 과연 자기네들이 떳떳한 선생 또는 학생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박영은 선생님을 보며 마음을 읽는 교사라는 게 어떤 교사인지 그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만 하는지에 대해 생각한
좋은 기회였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 가족에게 불통이라는 것이 해결됐다면 동구가 난독증이라는 그토록 힘든 짐을 안고 살 이유가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작가는 하나 더 동구를 절망시키기에 충분한 짐을 얹어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은 생각할 수 없을 만큼의 아픔과 슬픔을 동반하는 일이다. 작가는 그런 동구에게서 두 명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다. 나이가 어리면 잘 모르겠지. 하는 생각은 어른들의 편파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이 아닌가 싶다. 어린 아이라도 감정이 있고, 그 감정을 표출하는 일이 항상 참기만 했던 동구에겐 낯설기만 했을 것이다. 차라리 난 동구가 엉엉 소리내어 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동구를 작가가 감싸안아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두 사람을 떠나보냈을 때에도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는가 라는 생각이 아직도 머릿 속에서 윙윙 맴돈다. 이토록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동구에게 작가는 너무 힘든 과제들을 안겨주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왔다.
동구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보며 나의 정원은 지금 어떻게 꾸며지고 있는가 생각해보았다. 지금 나의 정원은 지금 무성한 잡초만이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그것조차 자랄 수 없이 황폐해져서 텅텅 버린 땅만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부터 내 안을 조금 더 들여다보고 가꿔나가야겠다.
우리의 소통이 엉키지 않도록 요술 같은 방법으로 누군가는 기다리게 하고, 누군가는 직진하게 하고, 누군가는 직진하게 하고, 누군가는 좌회전하도록 지도하던 우리의 푸른 신호등은 영원히 잠들어버렸다. 우리는 신호등 없이는 교차로를 지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p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