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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장 선거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생각만으로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이라부 이치로의 3탄인 <면장선거>는 종전에 나왔던 <인더풀>이나 <공중그네>와는 좀 다른 케이스라고 얘기할 수 있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강박증을 가진 평범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인더풀>, 특정분야 전문인이 주를 이루던 <공중그네>와는 또다른 매려을 발산하고 있는 <면장선거> 이 곳에는 유명인들이 나온다. 이 유명인들은 강박증보다는 유명세를 탔기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뇌할 수 밖에 없는 모습들이 스포트라이트가 되어 그들을 감싸준다.
가만보면 오쿠다 히데오는 독자가 일본식 문화를 안다는 전제로 글을 쓰는 것 같기도 하다. <면장선거>에서는 일본의 유명인들을 모티브해서 지어졌다고는 하지만, 난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음은 물론이요, 그들에 대해서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렇다해도 특정한 유명세가 일본에만 있는 것도 아니기때문에 그 분야의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우리들도 조금은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운 점은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매듭이 너무나도 빨리 지어진다는 것에 있다. 그 매듭 중에서 다시 끌러서 매듭을 다시 지어주고 싶다는 것까지 있기도 했으니 말이다. 아무 생각없이 툭 - 내뱉은 누군가의 말이 마음 속의 비수처럼 꽂힐 때가 있다. 그 말은 비수가 되어 나를 찌를 때도 있고, 나의 무능함 혹은 어리석음을 꾸짖는 약이 될 수도 있음은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 한마디로 사람이 확 달라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인데, <면장선거>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그 한마디에 너무나도 쉽게 달라진다. 어떻게 그렇게 바뀌는지 독자들이 이해할 time을 주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
이 책을 읽으며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없다는 얘기가 잘 맞아떨어지는 책이었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그냥 그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세상의 더럽고 추악한 것들을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어린아이같은 이라부의 눈으로 보고싶었기 때문이었달까. 이번에도 역시 이라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고, 누구나 짜증낼 수 있는 순간임에도 이라부는 그 최악의 상황들을 최적의 상황으로 변화시킨다. 이것은 이라부가 똑똑해서도 아니요, 잘나서도 아니다. 이라부는 정신연령이 낮아서 나이와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듣기 거북한 말투와 행동을 반복하지만 그에 차츰 편안해짐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은 아닐까.
얇은 책에, 이라부의 천진난만함에 피식거리며 웃을 수 있고,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의 마음 한 켠에 따뜻한 봄바람처럼 머무를 수 있다는 것.
그 책이 오쿠다 히데오 작가의 매력이 아닐까. 또한 작가 자신이 혹은 읽는 독자 개개인이 이라부 이치로가 되어 힘든 세상 속에 머리를 맞대고 투쟁할 수 밖에 없는 우리를 혹은 나를 다독거려주고 위로해주며 감싸안아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익숙한 것과의 동행이냐 결별이냐의 갈림길은 매 순간 선택을 강요한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문제는 끊어낼 수도 마냥 쥐고 있을 수만도 없는 딜레마이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시리즈물이 안고 갈 수 밖에 없는 딜레마이며 동시에 극복해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p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