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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난 신경숙의 책이 참 좋다. 신경숙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크게 미동이 느껴지지 않는 정적의 잔잔한 물결처럼 따라흐르는 강물같은 그녀의 글이 왜 이렇게 좋으냐, 하고 나에게 되묻기도 한다. 신경숙이 쓴 책의 등장인물 또한 가지각색이 아닌 , 이 사람이 그 사람같고 , 그 사람은 저 사람같은 비슷한 그녀들의 마련한 조촐한 향연이라 볼 수 있음직하다. 혹은 그녀,그들은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본다. 그녀의 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 아니 그.래.서 , 매력적이다. 같을 것으로 예상되는 인물들은 각기 다른 매력을 발산하고 있어서 읽는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또한 , 한정된 공간에서 매력포인트를 발산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녀의 글이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호소력짙게 표현되고 있다. 읽어달라고 사정하지않아도 읽게끔 만드는 , 가끔은 먹먹해서 중간에 덮어버리고 싶게 만들기도 하지만 결국은 끝페이지를 향해 달리게 만드는 그녀의 글을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다.
이 책에선 윤 , 단 , 명서 , 미루 , 윤교수 , 에밀리. 하지만 화자는 윤이고 , 때론 명서가 남겼던 갈색노트 흔적들을 간간히 보여준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주도하고 있는건 윤이지만 , 우리는 윤과 단과 명서 그리고 미루의 상처와 아픔과 더불어 그들이 느끼는 불안과 고독과 시련 , 잠시나마 느끼는 행복 , 위안을 이 짧은 책 속에서 꺼내들고 보듬어주고 위로해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확 눈에 띄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것들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집중하고 들어준다면 쉬이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구구절절 내 얘기만 하느라 서평의 1/3을 써버린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팔년만의 공백을 깨고 명서가 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들의 대학시절 은사였던 윤교수가 죽음을 머리 맡에 두고 있는 것이 전화의 목적이 된다. 그리고 병원을 가려고 채비를 하던 윤은 책상을 돌아보고 그 순간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그리고는 과거로 거슬러올라간다. 읽으면서 시대가 80년대를 그리고 있는 것 같아서 그 시대에 태어난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생각했던 것이 오산이었다.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더라도 그들이 느끼는 감정들은 고스란히 나도 느꼈던 감정이고 ,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를 압박해올 감정들이기에 내가 윤이 되고, 단이 되고, 명서가 되고, 미루가 되어서 이 책을 읽어나갔다. 사실 시대에 대해서는 친절하게 설명해준 것도 제대로 나와있는 것이 없다. 사실 시위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 우리는 아직도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을 조금 비교해보자면 지금은 국민이 주권을 가진 민주주의가 된 지금 이 마당에 (요즈음 이게 민주주의가 맞는지 의아하긴하지만.) 엄연한 그 때의 시대를 지금이라 우길 수는 없는 노릇일거외다. 컴퓨터나 휴대전화 대신에 타자기나 공중전화로 표현한 것도 시대상의 배경을 알리려고 쓴 것이라 생각할 수 밖에 없지만 , 작가는 우리에게 80년대로 읽지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미래와 그의 남자친구가 시대에 의해 사라져버린 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단과 미루까지 희생양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너무 많은 요소들이 가미되어 있고 , 그런 것들은 현시대에도 주욱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들까지 끌어넣고 싶지가 않은게 사실이다. 그리고 또 하나 , 우리가 유심히 봐야할 것은 함께 있었을 때에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말로서는 다하지 못할 위로를 마음으로 주고 받는다. - 윤미루 / - …… / - 마저 얘기해…… 마음 속에 남겨두지 말고. / - 괜찮겠어? / - 함께 싸워줄게. - 왜? - 우린 지금 함께 있으니까. (p210) 신경숙의 책에서 상처라는 것은 기본적인 명제 아래 타인이 아니고서는 치료할 수 없는 관계의 중요성이라는 속뜻을 지니고 있는 듯도 하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책을 덮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은 프롤로그는 [내.가.그.쪽.으.로.갈.까] 였던 것이 에필로그에선 [내.가.그.쪽.으.로.갈.게] 로 변화하면서 그들에게도 희망이 비추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기에 우리 또한 절망보다는 희망에 한발짝 서서 그들을 웃으면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똑같은 꿈을 꾼다. 누가 부르는 것 같아 문을 열고 나가보면 켜켜이 쌓인 어둠뿐이다. 나는 어둠 속에 내 발을 한 발 내딛고 그냥 서 있다. (p81) 나는 꿈을 꾸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내가 꾸고 싶은 예쁘고 아름답고 생기발랄한 모습의 꿈은 결코 나를 찾아와주지 않는다. 나를 찾아오는 건 매우 지독하고 고약한 꿈일 뿐이고, 그것을 꾸고 일어나면 어둠이 나를 맞이한다. 나는 어둠에 익숙해지려 노력해도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다. 회색빛 머금은 척 하는 검정색은 점점 짙어져서 본래의 색으로 돌아와 나를 공포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그 공포는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구렁텅이로 몰아넣기보다는 내가 공포를 느끼지 못하게 하려고 어둠에서 나를 꺼내주려 애쓰지만 , 결코 나를 해방시켜주진 못한다. 또 , 여느 때엔 캄캄한 것을 빌미삼아 어둠이라는 유령은 내게 소중한 어떤 것을 가져가려고 애를 쓰고 , 나는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예를 들면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있으면 눈을 잃어버린 꼴이 되버리는 것과 같은 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잘 때 불을 끄고 자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 누군가덕분에 불을 끄고 나면 눈을 질끈 감고 스르르 힘을 놓아버린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잠을 청하는 것은 아직 내게 무던히 노력해야하고 앞으로도 노력해야할 숙제로 남아있다.
윤은 도시에 익숙해지기 위해 도시를 걷는다고 했다. 걷는 윤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찾아냈고 그것을 접목시키니 윤이 내가 되고 , 내가 윤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윤과는 조금 다른 이유로 걷는다. 스무 살 때 고약한 일을 겪었다. 난 그로 인해 방황했고 , 매우 슬퍼했다. 그래서 시끄러운 음악이 함께 하는 곳에서 함께 술을 마셨고 , 그들은 내가 술을 좋아해서 마시는 거라 그들 편한대로 생각하며 단정지었다. 날이 지날수록 몸이 더이상 버텨주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고는 몇 개월을 술로 의지했던 생활을 단숨에 놓아버리게 된다. 그리고 택한 것이 잠이었는데 , 꿀 때마다 악몽을 꾸었고 , 급기야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산책을 시작했다. 그런 산책은 도보로 이어진다. 도보라고 칭했더니 얼굴이 화끈거리고 민망해지기까지해서 주위를 한번 스윽 , 둘러보게 되는걸 보니 난 그냥 걷는 것일 뿐이었던가보다. 나는 사람들이 걷는 이유를 몰랐고 , 지금도 모른다. 전에는 시간이 남아도는지 , 교통비가 없는지 , 운동을 하는지. 무슨 이유가 있어야만 걷는거라 생각해왔던 내가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왁자지껄했던 마음 속이 잔잔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고 , 그에 묘한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지금도 마음이 불편할 때면 무작정 걷는다. 누군가 스트레스 해소법을 묻는다면 , 난 주저없이 걷는 것을 추천하지만 , 내 주위의 지인들은 절레절레 고개를 젓기 일쑤다.
이 소설에서 어쩌든 슬픔을 딛고 사랑 가까이 가보려 하는 사람의 마음이 읽히기를, 비관보다는 낙관 쪽에 한쪽 손가락이 가 닿게 되기를, 그리하여 이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언젠가'라는 말에 실려 있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꿈이 읽는 당신의 마음속에 새벽빛으로 번지기를……(p378)
청소년기를 앙드레 지드나 헤세와 함께 통과해온 세대가 있었다면 90년대 이후엔 일본 작가들의 소설이 청년기의 사랑의 열병과 성장통을 대변하는 것을 보며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한국어를 쓰는 작가로서 우리말로 씌어진 아름답고 품격있는 청춘소설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내가 지금 쓰려는 소설이 그런 소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지금 청춘을 통과하고 있는 젊은 영혼들의 노트를 들여다보듯 그들 마음 가까이 가보려고 합니다. 더 늦기 전에요. 청춘에만 갇혀서는 또 안되겠지요. 누구에게든 인생의 어느 시기를 통과하는 도중에 찾아오는 존재의 충만과 부재, 달랠 길 없는 불안과 고독의 순간들을 어루만지는, 잡고 싶은 손 같은 작품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p374)
이 책은 프롤로그로 시작해 에필로그로 끝이 난다. 아니 , 정확히 말하자면 작가의 말로 끝이 난다. 나는 에필로그 , 프롤로그 , 전체적인 내용보다는 작가의 말이 가장 가슴에 박히는 말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청춘을 통과하고 있는 나에게 어떤 책이 청춘소설이 될 수 있었을까. 사실 이 서평이 계속 늦어지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도저히 나의 그 한 권을 찾지 못하겠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도 그저 그때뿐 , 그 이상의 가치를 느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나에게 청춘소설이 되기란 무리가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이 책은 적어도 방황하는 내 마음을 다잡아주기엔 충분했다고 생각된다. 또한 , 이 작품에서 가장 흔하고 흔하게 쓰이는 말 중 하나는 '언젠가'라는 단어이다. 그 단어는 불안한 현재를 꽉 잡게 만들어주는 원천이고 , 다가올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이 책 중에서 단연 돋보였던 점은 타인에겐 어떻게 다가갈진 몰라도 나에겐 번역된 일본의 청춘소설보다 더욱 더 값진 청춘소설이었다는 점이다. 이정도면 신경숙은 이 소설을 쓴 목적을 한 독자에게 오롯하게 전해졌다고 볼 수 있겠다. 함께 있을 때 , '오.늘.을.잊.지.말.자'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소망하기보다는 먼저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