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늪 지혜사랑 시인선 34
권순자 지음 / 종려나무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넓다란 이 세상에 시인은 계속 나오고 있지만 , 내 마음 속 깊이 동경하고 있는 몇 안되는 시인 중 윤동주 시인과 김수영 시인 덕분이다. 짤막한 시도 문학이냐며 , 시집을 읽는게 책을 읽는거랑 동급이 될 수가 있냐며 비아냥거릴 때가 있었다. 하지만 가끔 몇 백마디의 소설보다 고작 짤막한 몇 줄의 시가 더 마음에 와닿을 때가 있다. 내가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 시의 모든 단어는 우리가 상상할 수 조차 없이 많은 것을 담아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을 우리는 은유라고 부른다. 그런 시를 볼 때면 , 가끔은 멍해진다. 어떻게 이런 단어를 끌어와서 썼나 싶기도 하고 ,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들을 오묘하게 조화시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시키기도 하는 마법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다. 고등학교 때 , 수능이라는 시험때문에 우리는 정지용 , 이육사 , 김소월 , 박목월 , 박두진 , 조지훈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시인들을 만났고 , 그들의 시대에서 함께 숨쉬며 그들의 문학을 이해했다. 그 때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마저 보장되지 않은 시대였기에 , 우리들이 만난 시인들은 은유법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을 해부하듯 , 시를 해부하는 문학시간이 즐거웠다. 그러나 지금의 시인들은 추상어 대신 구체어를 쓰기에 다분히 직설적인 면을 보이게 된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현대 내노라 하는 시인들의 시는 읽지 않게 되었음은 물론이고 , 누가 있는지조차에 대해 관심이 없다. 또한 시를 언제 읽어보았는지 가물가물해질 정도였으니 알만하다.

 

 

그러다가 정말 오랜만에 두께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작고 얇은 시인 권순자의 시집을 손에 들게 되었다. 저자가 궁금해서 , 좀처럼 잘 보지 않는 작가소개를 제일 먼저 보았다. 이게 왠걸 , 1958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경북대 영어학과와 국민대 교육대학원 영어학과를 졸업했으며 2003년 『심상』 신인상으로 시단에 나왔다. 시집 『우목횟집』이 있다. 짤막한 글로 4줄도 채 채우지 못하는 작가의 이력을 보니 아직 페이지를 넘겨보지 못했음에도 실망스러웠고 , 기대 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읽기가 싫어졌고 급기야 인터넷에서 시인에 대해 찾아보았지만 , 헛수고였다. 제대로 된 이력이 없었다. 내가 너무 이력에 신경을 쓰느라 제대로 된 글을 읽지 못하는 건 아닐까 살짝 걱정이 되기 시작했고 , 우선은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시를 읽기 전 , 차례부터 훑어보았다. 시집을 읽기 전 버릇이다. 시집은 전의 내용과 연결되는 것이 없어서 무엇을 먼저 읽어도 매끄럽게 읽힌다는 장점이 있다. 그 중 '다시 일어서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이 유난히 눈에 띄어서 그 시가 있는 페이지로 손놀림이 가빠진다. 하지만 좋은 느낌은 제목뿐이었던 것일까 , 설레임보다는 실망이란 놈이 먼저 찾아와 괜스레 한숨을 쉰다. 그리고는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가 읽기 시작했다.

 

 

 권순자 시인의 시에선 바다 냄새가 났다. 어머니에서도, 아버지에서도, 심지어 사랑에서도 바다 내음새가 풍겨왔다. 나는 그 냄새를 코로 킁킁거리며 읽어내렸다. 멍하게 만드는 시는 없었고 , 마음을 동하게 하는 시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사랑에 대한 짤막한 지문』이라는 시에선 예쁜 어감이 나는 단어는 눈을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매우 직설적이어서 이 시에 대한 해석이 알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것처럼 모두 내보였다. 따라서 해석이 필요없는 시였다. 나는 이런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을 읽고는 이런 것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구나, 라는 걸 느꼈다. 그러나 『달빛 전차』에서는 은유의 끝을 보여줬다. 이제까지 보여왔던 것처럼 달빛을 뚫고 달리는 전차일 거라고만 예상했다. 아니, 사실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고 읽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시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전차가 아닌 , 욕망이었다. 그러고보니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라는 연극이 떠올랐다. 그러고보면 전차는 , 욕망이라는 것에 자주 비유가 되는 모양이다.

 

 

 사실 시보다 더 재미있었던 것은 문학평론가인 황정산씨의 해설이었다. 황정산씨는 이 시집을 『사랑의 문신』이라 일컬으며 전체적인 것들을 종합해서 4문단으로 나누어 해석한다. 하지만 난 NO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꾹 참고 한번 더 replay 했다. 그제서야 시들이 눈에 조금씩 익게 되었고 , 이래서 시는 두세번은 번복하고 번복해서 꼭꼭 씹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그 이유라고 한번 더 곱씹었다. 그러나 답답함은 견딜 수가 없다. 정화시켜야겠다. 윤동주의 간을 읽어야겠다.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창문을 여는 것과 같이 윤동주의 시집을 찾는 내 손길은 가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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