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 키만 큰 30세 아들과 깡마른 60세 엄마, 미친 척 500일간 세계를 누비다! 시리즈 2
태원준 글.사진 / 북로그컴퍼니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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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단 둘이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상상하는 것도 내게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빠는 물론이거니와 엄마 역시도 ‘삶’에 우리를 끌어다놓기 위해 무진 애를 쓰셨다. 현재도 여전히 주어진 삶 속에서 삶을 살아가느라 바쁜 부모님이신걸. 결혼 후에도 2박 3일 제주도 티켓을 끊으려고 부모님의 의향을 여쭈었을 때도, 아빠는 우여곡절 끝에 Ok. 하지만 엄마는 끝까지 No. 물론 당신의 사업이 있고, 또 그것을 내치지 못함을 알고는 있지만, 겨우 2박 3일인데! 라고 생각하니, [결혼 전에도 그 핑계로 제대로 된 여행을 못했었기에 더 했다.] 내 서운함을 극치를 달리며, “내가 앞으로 엄마랑 여행을 간다고 하나봐라!”라며 성을 내었었다. 그런데 작가는 엄마랑 여행을 간다니. 그것도 300일씩이나 말야? 고작 2박 3일도 시간을 낼 수 없는 부모님이기에 국내 제주도 여행도 힘든 나는 그런 작가가 부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엄마랑 여행을 한다,는 기정사실만으로도 부러움을 자극했다. 아, 이 부러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내 마음이 다 표현되는 거지? 키만 큰 30세 아들과 깡마른 60세의 엄마의 여행. 시-작.

 

 

 

“엄마는 살면서 처음으로 내일이 막 궁금해져.”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당신에게도 소망하는 내일과 기대하는 미래가 있었을 텐데, 엄마가 된 이후로는 자신을 내려놓은 채 온전히 누나와 나만을 위해 살았다는 사실을. p78

 

 

 

나에게 가고 싶지 않은 나라가 있다면, 단연 중국이었다. 그리고 좀 더 넓게는 아시아권. 아시아를 갈 바에야, 그 돈 좀 더 모아 유럽을 가겠다.는 생각이 커서 사실 아시아 여행을 다룬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보다는 유럽여행을 다룬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가 더 끌렸던 것도 사실. 하지만, 더 맛있는 것은 깨작깨작 아껴먹는다는 생각으로 먼저 펼쳤던 것이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였다. 또 그게 그들의 여행 1편이기도 했고. 여행을 앞둔 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두근두근한 설레임이 가득한 그 향긋한 내음이 소리소문없이 내 마음에도 얹히었다.

 

 

 

하지만 여행은 예기치 않은 사건들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중국에서 아이폰을 잃어버린 사건이라던지, 중국에서 인기 있는 간식 중 하나인 ‘썩은 두부’의 고약한 냄새 때문에 말 그대로 개고생한 원준씨, 치앙마이에서 더위를 먹은 동익씨, 푸켓으로 가는 버스에서 도난당한 두 번째 아이폰과 여러 가지로 실망감이 뚝뚝 묻어나는 라오스편 [이웃 우쑤님의 라오스 여행기에서 특히 루앙프라방의 매력을 느낀 터라 내가 다 아쉬웠다.] 그러다가 여행 100일째, 위기에 봉착하고 만다. 어차피 장기레이스인데 왜 진작 이럴 생각을 못 했을까?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여행 자체가 인생에 찾아온 방학이라고 생각했는데, 여행이 일상이 되고 보니 그 안에도 또 다른 방학이 필요했다. p233 때문에 원준씨와 동익씨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급히 ‘여행방학’이라는 처방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그도 잠시, 3일이 지나자 그들은 다시 근질근질해오기 시작하며, 그들 자신을 천생 여행자,라고 일컫는다. 이후에 한 톨의 미련도 없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유령도시 브루나이와 이집트에서의 질긴 호객꾼들, 마지막으로 국경 심사가 혹독했던 이스라엘.은 또 그들에게 웃음이 가득한 여행만을 선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참 운이 좋게도, 여행 도중에 만난 호스텔에서의 ‘만두 빚기 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하고, 태국의 쏭끄란 축제[태국의 설날]에서 물 축제를 즐기기도 하며, 이집트에서 최초의 민주주의 대통령이 당선되는 역사적인 하루를 함께 맞이하기도 한다. 그리고 휴가를 내서 방콕으로 온 딸과 여유롭게 여행을 하는 둥, 그들은 참 재미있게 여행을 한다. 그렇게 그들의 발걸음에 따라 여행을 하다보니, 벌써 요르단의 페트라까지 와있었다.

 

 

 

 

 

 

밑줄긋기.

 

바로 이 순간이다. 내가 엄마와 함께 여행을 하고 싶었던 이유. 거창할 필요가 있나? 그저 엄마가 ‘노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좀 더 정중히 표현하자면 엄마가 아무런 걱정 없이 어린아이처럼 순간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p40

 

‘세계’라는 테마파크에 첫발을 내디딘 호기심 가득한 ‘아이’ p44

 

자식이 어렸을 때는 엄마가 자식을 지키고 염려한다. 하지만 나이가 든 엄마는 어느 순간 자식에게 모든 걸 의지한다. 그러니 나는 엄마를 지키고 염려해야 한다. 이 짠한 사실을 깨닫기 위해 나는 엄마와 여행을 떠난 건 아니었을까. p62

 

 

 

전편인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에서는 숙박을 돈을 주고 했었다면,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에서는 ‘너희 집 소파 좀 빌려줄래?’라는 의미인 ‘카우치 서핑’을 한다는 점이 플러스된다. 비단, 현지인의 집에서 무료로 숙박을 한다는 것에 의미를 둘 것이 아니라, 현지인들과 여행하는 나라에 대한 문화를 교류를 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 즉, 카우치 서핑은 그렇게 사람의 情을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소통 창구인 셈이다. 이 母子는 ‘아들과 어머니가 여행을 한다’는 소재만으로도 카우치 서핑에 남들보다 좀 더 쉽게 초청받을 수 있었지, 실제로는 초대해줘!라고 해서 단숨에 그래 좋아!라고 초청받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 또, 이 모자가 만난 사람들 중 나쁜 이들은 없었지만, 아니 오히려 너무 좋은 사람들만 있었다는 점. [독일 베를린_ 식탁에 동그란 냄비 모양의 자국을 남겨놓았는데, 군디아줌마는 오히려 “아하하하! 나한테 이렇게 갑자기 선물을 주기야? 그대들을 기억할 수 있는 마크를 새겨주다니 너무 고마워!”] 카우치 서핑을 좋은 의도로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 목적이 위험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니 조심스럽게 접근을 해야 한다는 글을 본 적 있다.

 

 

하지만 난 조금 많이 실망이다. [너무 주관적이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첫 페이지를 열자마자 아니, 이건 프라하잖아! 여기 틴성당이랑 천문시계탑이 있는 구시가지야! 라며 마음이 들떴다. 프라하는 언제쯤 나올지, 두근두근하며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막상 프라하는 없고, 프라하의 외곽에 위치한 체스키 크룸로프의 사진을 쿵쿵쿵쿵 몇 장 박아놓고, 여기저기 써있던 진부한 동화같은 나라.라고 하는 탓에 실망이 컸던 거다. just passing이라 하더라도, 첫 페이지에 프라하 사진이 버젓하게 있는데 말이다. J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더니 “그 사람은 우리처럼 몇 일 동안 있지 않았나보지. 다른 사람들도 프라하는 거의 지나가는 식으로 들른다고 하잖아.”라는 말로 위안을 한다. 그런데 나 여기 다녀왔다, 식으로 미션클리어 쾅쾅 찍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부분들 때문에 있어서 전편에서 느꼈던 애잔하게 떨리는 감동이 없었던 것은 참 아쉽게 다가온다. 혹은 내가 느끼지 못한 것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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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단 가고봅시다! 키만 큰 30세 아들과 깡마른 60세 엄마, 미친 척 500일간 세계를 누비다! 시리즈 1
태원준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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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단 둘이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상상하는 것도 내게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빠는 물론이거니와 엄마 역시도 ‘삶’에 우리를 끌어다놓기 위해 무진 애를 쓰셨다. 현재도 여전히 주어진 삶 속에서 삶을 살아가느라 바쁜 부모님이신걸. 결혼 후에도 2박 3일 제주도 티켓을 끊으려고 부모님의 의향을 여쭈었을 때도, 아빠는 우여곡절 끝에 Ok. 하지만 엄마는 끝까지 No. 물론 당신의 사업이 있고, 또 그것을 내치지 못함을 알고는 있지만, 겨우 2박 3일인데! 라고 생각하니, [결혼 전에도 그 핑계로 제대로 된 여행을 못했었기에 더 했다.] 내 서운함을 극치를 달리며, “내가 앞으로 엄마랑 여행을 간다고 하나봐라!”라며 성을 내었었다. 그런데 작가는 엄마랑 여행을 간다니. 그것도 300일씩이나 말야? 고작 2박 3일도 시간을 낼 수 없는 부모님이기에 국내 제주도 여행도 힘든 나는 그런 작가가 부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엄마랑 여행을 한다,는 기정사실만으로도 부러움을 자극했다. 아, 이 부러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내 마음이 다 표현되는 거지? 키만 큰 30세 아들과 깡마른 60세의 엄마의 여행. 시-작.

 

 

 

“엄마는 살면서 처음으로 내일이 막 궁금해져.”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당신에게도 소망하는 내일과 기대하는 미래가 있었을 텐데, 엄마가 된 이후로는 자신을 내려놓은 채 온전히 누나와 나만을 위해 살았다는 사실을. p78

 

 

 

나에게 가고 싶지 않은 나라가 있다면, 단연 중국이었다. 그리고 좀 더 넓게는 아시아권. 아시아를 갈 바에야, 그 돈 좀 더 모아 유럽을 가겠다.는 생각이 커서 사실 아시아 여행을 다룬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보다는 유럽여행을 다룬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가 더 끌렸던 것도 사실. 하지만, 더 맛있는 것은 깨작깨작 아껴먹는다는 생각으로 먼저 펼쳤던 것이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였다. 또 그게 그들의 여행 1편이기도 했고. 여행을 앞둔 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두근두근한 설레임이 가득한 그 향긋한 내음이 소리소문없이 내 마음에도 얹히었다.

 

 

 

하지만 여행은 예기치 않은 사건들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중국에서 아이폰을 잃어버린 사건이라던지, 중국에서 인기 있는 간식 중 하나인 ‘썩은 두부’의 고약한 냄새 때문에 말 그대로 개고생한 원준씨, 치앙마이에서 더위를 먹은 동익씨, 푸켓으로 가는 버스에서 도난당한 두 번째 아이폰과 여러 가지로 실망감이 뚝뚝 묻어나는 라오스편 [이웃 우쑤님의 라오스 여행기에서 특히 루앙프라방의 매력을 느낀 터라 내가 다 아쉬웠다.] 그러다가 여행 100일째, 위기에 봉착하고 만다. 어차피 장기레이스인데 왜 진작 이럴 생각을 못 했을까?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여행 자체가 인생에 찾아온 방학이라고 생각했는데, 여행이 일상이 되고 보니 그 안에도 또 다른 방학이 필요했다. p233 때문에 원준씨와 동익씨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급히 ‘여행방학’이라는 처방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그도 잠시, 3일이 지나자 그들은 다시 근질근질해오기 시작하며, 그들 자신을 천생 여행자,라고 일컫는다. 이후에 한 톨의 미련도 없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유령도시 브루나이와 이집트에서의 질긴 호객꾼들, 마지막으로 국경 심사가 혹독했던 이스라엘.은 또 그들에게 웃음이 가득한 여행만을 선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참 운이 좋게도, 여행 도중에 만난 호스텔에서의 ‘만두 빚기 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하고, 태국의 쏭끄란 축제[태국의 설날]에서 물 축제를 즐기기도 하며, 이집트에서 최초의 민주주의 대통령이 당선되는 역사적인 하루를 함께 맞이하기도 한다. 그리고 휴가를 내서 방콕으로 온 딸과 여유롭게 여행을 하는 둥, 그들은 참 재미있게 여행을 한다. 그렇게 그들의 발걸음에 따라 여행을 하다보니, 벌써 요르단의 페트라까지 와있었다.

 

 

 

밑줄긋기.

 

바로 이 순간이다. 내가 엄마와 함께 여행을 하고 싶었던 이유. 거창할 필요가 있나? 그저 엄마가 ‘노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좀 더 정중히 표현하자면 엄마가 아무런 걱정 없이 어린아이처럼 순간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p40

 

‘세계’라는 테마파크에 첫발을 내디딘 호기심 가득한 ‘아이’ p44

 

자식이 어렸을 때는 엄마가 자식을 지키고 염려한다. 하지만 나이가 든 엄마는 어느 순간 자식에게 모든 걸 의지한다. 그러니 나는 엄마를 지키고 염려해야 한다. 이 짠한 사실을 깨닫기 위해 나는 엄마와 여행을 떠난 건 아니었을까. p62

 

 

 

 

전편인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에서는 숙박을 돈을 주고 했었다면,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에서는 ‘너희 집 소파 좀 빌려줄래?’라는 의미인 ‘카우치 서핑’을 한다는 점이 플러스된다. 비단, 현지인의 집에서 무료로 숙박을 한다는 것에 의미를 둘 것이 아니라, 현지인들과 여행하는 나라에 대한 문화를 교류를 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 즉, 카우치 서핑은 그렇게 사람의 情을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소통 창구인 셈이다. 이 母子는 ‘아들과 어머니가 여행을 한다’는 소재만으로도 카우치 서핑에 남들보다 좀 더 쉽게 초청받을 수 있었지, 실제로는 초대해줘!라고 해서 단숨에 그래 좋아!라고 초청받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 또, 이 모자가 만난 사람들 중 나쁜 이들은 없었지만, 아니 오히려 너무 좋은 사람들만 있었다는 점. [독일 베를린_ 식탁에 동그란 냄비 모양의 자국을 남겨놓았는데, 군디아줌마는 오히려 “아하하하! 나한테 이렇게 갑자기 선물을 주기야? 그대들을 기억할 수 있는 마크를 새겨주다니 너무 고마워!”] 카우치 서핑을 좋은 의도로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 목적이 위험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니 조심스럽게 접근을 해야 한다는 글을 본 적 있다.

 

 

 

하지만 난 조금 많이 실망이다. [너무 주관적이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첫 페이지를 열자마자 아니, 이건 프라하잖아! 여기 틴성당이랑 천문시계탑이 있는 구시가지야! 라며 마음이 들떴다. 프라하는 언제쯤 나올지, 두근두근하며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막상 프라하는 없고, 프라하의 외곽에 위치한 체스키 크룸로프의 사진을 쿵쿵쿵쿵 몇 장 박아놓고, 여기저기 써있던 진부한 동화같은 나라.라고 하는 탓에 실망이 컸던 거다. just passing이라 하더라도, 첫 페이지에 프라하 사진이 버젓하게 있는데 말이다. J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더니 “그 사람은 우리처럼 몇 일 동안 있지 않았나보지. 다른 사람들도 프라하는 거의 지나가는 식으로 들른다고 하잖아.”라는 말로 위안을 한다. 그런데 나 여기 다녀왔다, 식으로 미션클리어 쾅쾅 찍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부분들 때문에 있어서 전편에서 느꼈던 애잔하게 떨리는 감동이 없었던 것은 참 아쉽게 다가온다. 혹은 내가 느끼지 못한 것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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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 진주를 품은 여자
권비영 지음 / 청조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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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졌다 한다. 그 여자는 그 년이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결코 보아서는 안 될, 아버지가 휘두르는 폭력의 한계를 본 그녀는 가출을 결심한다. 제주도,였다. 안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악착같이 그녀를 찾아내어, 그녀의 머리채를 우악스레 잡아채는 어머니, 뒤에서 그런 그녀를 비웃는 아버지. 더 이상은 안 되었다. 그녀가 사랑하는 에민, 그가 살고 있는 나라 터키로 다시금 몸을 싣는다. 그곳에서 만난 파샤. 가족,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고, 가족에 대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은주, 내게 김이설 작가의 환영에서의 서윤영을 연상케 했다. 아닌 줄 알면서도 그 지독한 현실을 위태로이 살아내었던 그 여자처럼, 소위 등신짓을 하면 어쩌지. 내가 이 책을 어떻게 끝까지 읽어내야 하지,에 대한 끊임없는 걱정은 그녀가 두 번째 가출을 감행하는 순간, 비로소 안절부절하던 마음이 조금은 놓이게 된다. 잘했다, 잘했다. 연신 토닥이며. 하지만.

 

 

 

 

사람과 사람, 문명과 문명의 융합은 좀 더 오랜 시간과 좀 더 깊은 교류가 있어야 해결되는 문제였다. p303

 

책은, 폭력으로 얼룩진 가정을 견딜 수 없어 짐을 꾸릴 수밖에 없었던 은주의 문제 외에도, 그녀가 떠나기 전에 다문화센터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며 가르쳤던 국제결혼 이주 여성들의 고충을 조명한다. “아저씨? 아니 이년이 미쳤나? 너한테 들어간 돈이 얼만데 그따위 소리를 해.” 사람을 돈으로 사온다,는 것. 일종의 인신매매. 그들이 새로운 가정을 생성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불순하기 때문에, 그들은 새 가정에 마음을 온전히 놓질 못한다. 이를테면, 메싸의 얼른 돈 벌어서 우리 가족한테 좋은 집을 지어 주고 싶어요,에서 우리 가족은 고국에 있는 가족이며, 그것이 그녀에겐 진정한 가족이다.

 

 

 

 

“(……) 사실 자식이 부모를 용서한다는 말은 있을 수 없는 말이란다. 자식은 언제나 용서를 받아야 할 존재야.” p253

 

결국, 끝내, 가족이다. 그녀가 家族이라고 믿고 지내왔던 사람들,의 비밀이 벌거벗은 몸뚱아리처럼 밝혀졌을 때에도 매몰차게 뒤돌아서지 못한 것은 그동안 남몰래 쌓아둔 이 있어서가 아니었을 거다. 그저 가족이었던 혹은 가족이라고 믿고 왔던 사람들이, 가족이 아니라고 한 시점부터 가족이 아닐 수 없게 되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그녀가 돌아왔다. 그녀는 곪아터진 상처를 고스란히 감싸 진주를 품어내었다. 그 진주가 세상에 온 빛을 내게 될 터다. 당신의 진주는 안전한가?

 

 

 

 

 

누구에게도 이야기 할 수 없었다. 성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친하다는 것은 서로의 균형이 맞았을 때 솔직해질 수 있는 관계였다. p118

 

 

누구에게나 타인의 인생에 대해서는 너그럽다. 그것은 어쩜 자신의 인생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것이다. p121

 

 

인간은 누구나 똑같이 소중한 존재야. 하나의 뜨거운 심장으로 숨을 쉬고, 두 개의 눈으로 세상을 읽고, 두 귀로 세상을 듣고, 두 팔과 두 다리로 세상의 고난을 이겨 내는 거지. 피부 색이나 언어나 혹은 가난하다는 것으로 차별해서는 안 되지. 삶의 질은 노력하기에 따라 변하는 거니까.” p146

 

사람 사는 게 어디서나 비슷한 거 같아요. 사는 곳도 그렇고 사람의 신념이나 사는 방식도 대동소이하다고 봐요. 행복한 삶이 최종의 목표 아니겠어요? 행복의 척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말이예요. (……) 불행은 스스로 자초하는 것, 사람에 대한, 타인에 대한 이해는 내 마음의 깊이만큼 인 것 같아요.” p214

 

 

 

 

세상은 원망이나 분노를 안고 살기엔 너무 짧다네. 나로 인한 것이든 타인으로 인한 것이든, 이해할 수 있는 아픔이든 이해할 수 없는 아픔이든, 모든 원망은 스스로 이겨 내야 하는 거라네.” p256

 

 

 

소망은 한가지였다. 악몽을 꾸지 않기를!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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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시절
안드레아스 알트만 지음, 박여명 옮김 / 박하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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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란 우둔한 존재다. 희망하는 일을 멈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사 이제껏 현실에서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다 해도 말이다. p125

 

 

 

음경을 가진 그가 태어난 직후, 베개로 그의 얼굴을 짓눌렀던 어머니. 카톨릭 신자였던 어머니는 아들을 죽이려 했던 죄책감으로 그를 사랑하는 아들로 부르지만, 누이가 태어난 이후에 어머니에게 그는 더 이상 사랑하는 아들이 아닌 의무의 대상일 뿐임을 직감한 그가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기 위해 발악하는 모습들 - 가령, 손톱을 물어뜯어 의 손톱이 없어진다던가, 코를 후빈다던가, 머리카락을 뜯는다던가, 배변행위를 거부하는 것들의 행위 - 엄마, 보세요. 나 피가 나요.” 그 말은, “엄마, 보세요. 나는 엄마의 사랑을 원해요.”의 것과 다름없었지만, 파멸의 끝에서 돌아오면 또 다시 외면하는 어머니. 고위험 속에서만 어머니에 대한 권리를 느낄 수 있었던, 애처롭고 처량하며 가엾은 한 어린 짐승. 안드레아스 알트만.

 

 

그리고, 어느 순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프란츠 사버 알트만. 그렇게.

 

2차 대전의 나치친위대 대원이었던 아버지가 돌아온 알트만 하우스에는 암묵적으로 전쟁이 선포되었다. 첫 번째 희생양은 나약한 어머니. 하지만 어머니가 쫓겨나면서 안드레아스, 그의 유예기간도 끝난 것과 다름없게 되고, 그때부터 프란츠 사버 알트만의 로 길러지게 된다. 아버지가 막내아들에게 주는 달콤한 취침 전 선물이라는 것은 네 번의 따귀 세례,가 전부였던 그의 유년시절,은 전쟁으로 인한 폐허에서 살아난 아버지에 의해 다시 한 번 선포된 알트만 하우스의 전쟁에서 으스러지고 짓밟힌 채로 나동그라져 파괴된 개의 새까만 심장이었음을. 그리고 열아홉의 나이가 되는 해, 그는 광분한 목소리로 아버지 아니, 개자식에게 소리치며 알트만 하우스에서의 독립을 선언하고는 그 길로 그곳을 빠져나간다. “만프레드, 놔둬! 그래 봤자 저 개새끼는 영원히 이해 못 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늙은이는 여전히 개자식이었고, 나는 여전히 패배자였다. p235

 

 

그는 거랏(쇠 목조르개)을 이용해 아버지를 처형하는 꿈을 꾸는 때를 제외하고는, 두 발로 걸어다니는 개,였고 말하는 개,였으며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도 개,였다. 그렇게, 그는, , 개 같은 시절,을 살아내었다. 안드레아스, 그의 실제 이야기라는 개 같은 시절의 이 책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문장이 아닌, 객관적인, 흡사 제 3자의 입장에서 쓴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담담하다. 그래서 더욱 애끓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살갗에 남은 상처들을 어루어 만져주기에는 부족함을 고백한다. 실체로 존재되는 이야기인 까닭에 어떻게든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특히나 한 가정이 가장에 의해 파괴되는 것이기에.) 안드레아스 알트만은 아버지를 세계적으로 개자식으로 만들어놓았다. 물론 그에게 주어진, 또 그가 길러진 환경에서 어쩔 수 없다, 생각은 되지만 그는 책의 끄트머리, 그러니까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죽은 아버지를 인간적으로 그것도 마음 깊이 이해하게 된다. J에게 분노 섞인 목소리로 이 책을 왜 냈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했다. 나는 이 책을, 썼을까,보다는 왜 출간했을까,에 의구심을 갖게 되는 거다. 글을 씀으로써 자기의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서? 그렇다면 왜 쓰다,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내다,로 끝내야했을까. 이미 아버지를 이해했다면서. 그게 글을 쓰면서든, 이미 다 쓰고 나서든. 참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더 솔직하게 말해볼까. 개자식에게 파괴된 유년시절을 치료받기 위해, 그 치료비를 이 책으로 보상받기 위한 글쓰기,로밖에 보이지 않다고 말한다면, 너무 모진 말일까. 또한 나는, 아버지 목소리만 들어도 오줌을 지리고, 배변까지 본다는 어머니가 살아있다는 전제하에, 그 어머니가 이 책을 읽는다면- 그 후의 파장도 생각해봄직 하다. 그러기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지만. 그는 이 책을 냄으로써, 비참했던 자신의 유년시절을 내보임과 동시에, 부모가 나란히 그들 자식의 유년시절을 파괴한 라는 것을 발표했다. 이 책, 정말이지 (여러 의미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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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장 속의 치요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 박상희 그림 / 예담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백수가 된 남자, 이상하리만치 저렴한 월세방을 얻었다. 그런데 벽장 속에서 밤마다 나타나는 여자아이. 벽장 속의 치요, 한 여자를 좋아한 두 남자, 그리고 그들의 우정 call, 쌍둥이 딸 어머니의 러시아 수프, 애인을 죽인 남자, 시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방문한 청소업자 예기치 못한 방문자, 음식으로 서로를 죽이려는 부부 살인 레시피, 빨리 죽기를 바라는 시아버지를 간병하는 며느리에게 시아버지가 선물하는 반격 냉혹한 간병인, 숙부가 남긴 집과 고양이 늙은 고양이, 숨바꼭질을 하다가 사라진 여동생을 찾기 위해 나선 언니 어두운 나무 그늘, 어린시절 물에 빠져 죽은 친구를 그리워하는 신이치의 자전거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서우면서도 유쾌하다. 무서우면서도 유쾌한 이야기라니. 이런 조합이 성립이 되는 걸까? 호러라고 따지면, 이 책의 제목인 벽장 속의 치요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신이치의 자전거다음으로 무난했던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렇다, 이 책은 단편. 단편임을 알고 나서 ? 이거 뭐야! 설마 단편이야?”라는 내 말에 벨라씨 지금 단편이라 실망하고 있다.”라고 말하던 J 옆에서 단편이라고 툴툴대던 나. 하지만 단편은 참 반갑게도, 짬을 내서 읽기엔 참 적격이라는 매력을 가지고 있어서, 잠깐잠깐 틈이 날 때마다 읽었는데, J의 근무가 야간일 때 읽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난 참 무서웠다. 특히나 냉혹한 간병인은 읽다가 소름이 쫙 돋아서 불이 꺼진 거실에 나가기도 무서웠을 정도였으니까.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책 뒤편을 보게 되었는데, call에서 당신은 이 소설을 반드시 두 번 읽게 될 것이다.”라고 써있었다. 순간 웃음이 푸핫. 역시나. 나도 해당되었던 것. 단편은 장편의 한 조각일 뿐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서 어느 순간 잊혀진다는 사실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 책은 오랫동안 기억이 날 것만 같다. 그만큼 흥미진진했지만, 남는 게 많지는 않은, 그저 재미로만 읽었던 책,으로 남을 것 같다. 다음엔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봐야지,싶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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