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걷는다 고로 존재한다 - 걷기에 생각을 더해 에너지를 극대화하는 의식적 걷기
다닐로 자넹 지음, 오경희 옮김, 안광욱 감수 / 새로운제안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01.
지금의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해서 산책을 즐겨 하는 편이지만, 나에게도 걷는 것을 싫어했던 시기가 있었다. 너무 명확하게 생각나는 것. 육교나 지하도에 있는 계단이 너무너무 싫어서 횡단보도까지 빙 돌아서 갔던 적은 애교요, 걸을 법한 한두 정거장도 꼭 버스를 탔었다. (아! 한 정거장이 너-무 길어서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탔던 적도 많은데, 버스정류장의 구간 설정이 너무 엉망이다. 걸어서 30분이 넘는 거리가 한 정거장이라니, 그건 좀 너무하지 않아?)
그때는 걷는 게 왜 그렇게 싫었을까, 생각해보면 너무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나는 순전히 엄마의 욕심으로 초등학교를 집 근처가 아닌 옆 동네의 초등학교로 다니게 되었다. 중학교도 마찬가지였고. 초등학교는 걸어서 30분이 넘게 걸렸고, 중학교는 더 멀어서 40분 내지 50분을 소요해야만 했다. 불행히도 당시에 우리 집과 학교들 사이에는 버스 노선이 지금처럼 발달되어있지 않아서 집에서 학교까지 운행하는 버스는 고작 한 정거장이었다. 그 한 정거장을 가고 나머지는 걸어야 했던 것인데, 당시 정말 걷기 싫은 날에는 그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됐었다. 그 한 정거장이 800m에 언덕이 있어서 아마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걷기 : 마음을 열고 모든 것을 의식하는 수단
어쨌든 그렇게 나는 강제적인 걷기를 학습하고 난 뒤였기 때문에 걷기가 내게는 무척이나 고되고 힘든 것이어서 내가 걷는 것을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등록했던 헬스를 3개월 동안 꽉꽉 채워 다니고 헬스를 다시 등록하기 전까지 임시방편으로 운동을 하겠다며 회사에서 집까지 걸어오게 된 것이 걷는 것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당시 회사와 집까지 거리는 5.5km였지만, 이후에 회사가 이전을 하게 되면서 8.2km가 되는 거리를 퇴근길에 걸어서 다녔다. 이제까지 내가 살면서 그때만큼 다이어트 의지를 불태웠던 적은 없는 것 같다는 비밀스러운 말도 살짝. (하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멋지게(?) 한 것은 아니었기에 멋쩍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운동을 해야겠다는 것도 있었지만, 걸어서 퇴근하는 날에 버스를 타지 않은 돈을 저금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이건 지금 생각하면 약간 미련스럽기도 한 부분) 그런데 가장 좋았던 것은, 무엇보다 당시에 내가 일에 적응을 하지 못해서 무척이나 힘들게 해내고 있었기 때문에 걸으면서 상념에 잠길 때가 많았는데,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언제나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떤 대답이 마음속에 생겨났다.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무너져버리는 것이 문제였지만. 걸으며 어떤 일에 대해 나의 생각을 열어보는 일,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생각할 일이 많으면 부러 걷곤 한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물론 걷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생각이 더 많아질 수 있다는 단점도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생각이 더 깊어지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에 좀 더 집중을 할 수 있게 된다.
02.
‘의식적 걷기’
① 우리 내면의 고정적인 지점, 즉 ‘의식’에 완전히 밀착한 다음 그 순간의 모든 움직임과 완전히 접속하는 행위
②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모든 현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그 모든 것을 좀 더 진하게 맛보는 것
③ 나 자신과 세상을 탐험하는 행위
④ 자신의 내면을 만나는 활동
서론이 너무 길었다. 나는 지금도 충분히 즐기며 걷고 있지만, 내가 이 책을 읽기로 한 것도 좀 더 재미있게, 즐겁게 걷기 위해서였다. 책에서는 걸음을 떼어 걷는 것과는 별개로 ‘의식적 걷기’를 이야기하는데, 기본 전제는 현재이고, 키워드는 부드러움이다. 걷기를 활동적인 명상이라고 일컬으며, 평범한 것에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말은 걷는 것의 즐거움을 말할 때 꼭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걷기의 진정한 즐거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03.
말은 지금의 순간을 의식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따라서 의식적 걷기를 하는 동안은 침묵하며 걷기를 권한다. 그래야 걸어가고 있는 이 모든 순간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의식적 걷기의 중요한 포인트다. (P.16)
의식적 걷기를 하려면, 우선적으로 말을 줄이고 나의 내면과의 접속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건 정말 너무나도 확실하게 나도 동의하는 부분이어서 굉장히 흥미를 가지고 읽었던 부분이다. 전화통화를 하거나 대화를 하며 걷는 경우에는 내가 아닌 타인에게 집중을 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나의 내밀한 내면까지 보기 위해서는 혼자,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걸어보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일 것만 같다. 개인적으로는 혼자서 있을 때가 좀 더 쉽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 상대도 나와 같이 각자의 내면을 들어가 보길 바라는 사람이 아니라면 의식적 걷기는 실행될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내면과의 접속은 곧 나의 모든 것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의 실질적인 예로 ‘호흡’을 말하며 호흡법에 대해 저자는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나의 생각에 집중을 했지, 호흡에는 한 번도 집중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호흡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생소하게만 들렸다. 그러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코로 호흡을 하라는 부분에서부터 나는 약간의 공포감을 느꼈다. 어릴 적 천식이 있어 입으로 호흡을 하는 습관을 자연스레 가지게 된 나는, 지금도 잘 때도 무의식적으로 입을 벌리고 자기 때문이었다. 이 책을 읽고 코 호흡에 대해 찾아본 이후로 입으로 하는 호흡이 신체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코로 호흡을 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우습게도 지금 나의 당면 과제는, 내가 시시때때로 코로 호흡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돼 버렸다. 따라서 책에서 설명하는 본격적인 호흡법은 아직 시도해보지도 못했다.
04.
순간이 제공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을 때 걷기가 즐거워질 수 있다. 순간이란 시간 밖의 시간이다. 우리가 걷는 것은 어쩌면 그 새로운 차원을 만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P.53)
‘목표 없이 걷기’ 책에서는 목표 없이 걷는 것을 추천하고 있는데, 걷는 것 자체보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가 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까지 목적지를 두지 않고 걸어본 적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 느낌은 어떨까 싶어서 이건 꼭 해봐야지 싶어서, 슬며시 9월의 목표에 적어두었다. 이때는 책에서 나오는 호흡법도 살짝 해보고 싶기 때문에 아무래도 산책로를 알아봐야 할 것 같다.
05.
가장 우스웠던 것은, ‘아프간식 걷기’인데, 이 방법이 우습다는 게 아니라 내가 이 걸음을 이미 알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그런데 이 방법이 나의 경우에는 내면과 만나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아프간식 걷기라는 것은 걸음수와 호흡수를 일정한 리듬에 맞추어 걷는 방법인데 걸음 수를 셀 때 말의 음절로 대신할 수도 있다고 한다. 나는 아프간식 걷기를 시도했던 때가 여러 번인데, 집으로 가는 골목길과 헬스장에서 가장 많이 시도했었다. 걷기가 너무 힘들거나 혹은 싫은데 집까지는 거의 다 왔으니 조금만 더 힘내자는 식으로 발걸음의 숫자를 세거나 말의 음절로 발걸음을 떼었고, 헬스장에서는 오기를 부려서라도 목표치를 채우기 위해 발걸음 하나에 음절 하나. 발걸음 둘에 음절 둘. 집에 갈 때는, 아.도.대.체.집.은.왜.이.렇.게.먼.거.야.언.제.다.도.착.하.지. 뭐 이런 것을 많이 했고,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걸을 때에는 내.가.지.금.이.게.재.미.있.어.서.하.는.줄.아.냐.목.표.치.채.우.려.고.하.는.거.지 가끔 머릿속에 생각이 나는 게 없으면 가족들의 이름을 걸음 수에 넣어 걷기도 하고, 어떤 때는 헬스장에서 흘러나오는 노랫말을 걸음 수에 넣어 걷기도 했다. 그런데 걷기의 즐거움을 안 지금은 더 이상 그러지 않지만, 아마 헬스장을 간다면 다시 발걸음에 말의 음절을 넣을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강제적으로 걸어야 하는 걸음에 그런 소소한 재미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하.
06.
이것들은 내가 책에서 인상 깊게 본 것이나 경험해본 것의 일부를 적어놓은 것이고, 그 외에는 호흡법에서는 의식적 걷기를 할 때나 일상의 다양한 호흡법을 다루고 있고, 걷기 전 필요한 준비에서는 신발이나 배낭을 선택할 때의 기준, 수분을 섭취하는 방법, 워킹스틱의 사용법, 걷기 전 워밍업을 다루고 있다.
내가 지금보다 이전에 걷기가 힘들기만 하고 재미가 없는 것으로 여겼던 것은, 말 그대로 발걸음을 떼는 것이라고만 치부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상기시킬 수 있었다. 그러면서 지금의 나와 비교를 하며 책을 읽으며 도입 부분에서는 흥미가 동하는 부분이 많아 집중하며 읽었는데, 점점 갈수록 호흡법까지 익혀야 하다 보니, 정말 이런 걸 인지하면서 걸을 수 있을까? 했다. 도심에서 걸을 때가 많은 나는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을 할 수가 없다는 점에 있다. 도심에서 걸을 때면 횡단보도를 기다리기 위해 서야 할 때도 있고, 횡단보도가 아니라 하더라도 골목길에서는 차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경계를 하면서 걸어야 하기 때문에 이 책에 나와 있는 호흡법을, 내가 걷고 있는 도심에서는 실행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호흡법에 대해서는 깊은 관심을 두고 읽지는 못했다는 점이 안타깝지만, 몇 년 후, 남편 J와 도보 여행을 꿈꾸고 있기 때문에 그때를 위해서라도 조금씩 시도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9월에 넣어둔 목표 중 ‘목표 없이 걷기’를 산책로에서 하게 된다면 살짝 욕심이 나기 때문에 그때 시도해보기로. 내가 이후에 07.을 추가해서 호흡법을 시도했던 것을 쓴다면 참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