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2010년에 읽고 난 이후 정말 오랜만에 손에 들었다. 이 책을 읽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이 책을 내게서 떠나보내기 전 마지막 애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이 책을 2010년에 읽었을 때 그렇게 좋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주위에 많은 분들이 좋은 책 혹은 괜찮은 책이라고 품평을 한 까닭이었다. 사람이라는 게 원래 그렇지 않나. 내가 봤을 때는 별로이긴 하지만, 다른 이들이 좋다고 하면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되는 것. 이번에도 좋지 않다면 내게서 떠나보내리라 작정을 하고 있던 터였다. 그리고 너무나 우연하게도 유월에 같은 책을 읽고 편지를 나누기로 한 민정님이 이 책을 후보에 올렸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정돈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이 책은 시작되었다.




내가 이전 서평에 이런 내용을 썼던가, 문장의 행간이 참 고집스럽다고. 고집스럽지만 이내 그곳에 빠져들었다고. 하지만 그 고집을 나는 내내 배타적으로 대했다. 빠져들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단순하게 지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컸다. 글을 쓴 것은 작가이지만, 내 호흡대로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더 컸다. 그러면 그럴수록 자꾸만 나는 대립되었다. 문장의 행간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중간 즈음에서였다. 어느 부분인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부터 서서히 나는 그 속도대로 책을 읽고 있었다. 분해야 하는데, 분함보다 평온함이 더 컸다. 참 우스운 일이다.




이 책의 어느 부분부터 말을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눈을 맞으며 그녀는 서 있었다.


올 줄 몰랐어요.

하지만... 기다렸잖아.




나는 이 부분을 책의 처음이자 마지막 부분.이라고 믿고 싶다.

진심으로.




실은 나, 이 책을 2010년에 읽었을 때에는 이 책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2010년에 썼던 서평을 보니, 자기 연민에 치우친 한 여자의 회고록이라고 판단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 이후에 찾아본 서평은, 무척이나 부끄러워 비공개로 전환해둘까 하고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니, 어쩔 수 없잖아.

하지만 우스운 점은, 그때의 시선이 지금은 완전히 사그라든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배우라는 신념으로 똘똘 뭉친 미남과 그 옆에서 어딘가 모르게 머뭇하던 박색의 여인의 전례가 있었기에 그는 그녀에게 눈길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는 여전히 하고 마니까.



그렇기에 나도 묻고 싶었던, 131. 그 친구를.... 좋아하고 싶은 거니, 아니면 좋아해 주고 싶은 거니?

나도 계속해서 의문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아버지를 더 많이 닮은 그는, 어머니를 同情하기에 생긴 결과물이 아닐까 하고.


하지만, 고마웠어요. 라는 말에 지구가 정지한 느낌이었다면,

동정, 호의, 연민. 세 개의 창 중에서 하나는 사랑임에 틀림이 없었겠지.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혹은 그렇게 믿고 싶거나.





54. 종착역에 이를 때까지 기차에서 내리지 못하는 인간처럼, 인생의 어느 지점까지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일부가 있다는 사실을...

나도 몰랐다. 나는, 너는, 우리는, 항상 지금만을 사니까. 종착역에 도착하지 못한 사람이 아직도 무수히 많다. 타인을 이해하려면 우리가 그 종착역에 도착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르는 것. 하지만 어느 순간, 나에게 비밀이라는 게 생기면서부터는 완전히 타인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믿어야 하고 믿을 수밖에 없고 믿고 싶은 사람의 경우에는 인정하려고 해본다. 책의 말처럼, 내가 그 사람의 종착역을 가본 것은 아니지 않나. 또 그 사람이 종착역에서 내렸는지, 내리지 않았는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며 후회하는지, 후회하지 않는지, 하는 것들을.




71. 절대 단련할 수 없는 급소가 몇 군데 있어. 그중 하나가 눈이야! 그중 하나가 눈이라고,

나는 눈에 대한 콤플렉스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내가 그 콤플렉스를 말해버리면 타인은 내 눈을 유심하게 쳐다보았다. 지금은 전처럼 그렇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 순간의 시선을 참지 못해 눈을 내리깔고 만다. 지금은... 정말 시시하게 여기고 있으면서 아닌 척하면서 살고 있지만, 어릴 때 받았던 눈에 대한 상처는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그때의 공격은 내 두 눈을 찌르다 못해 실명시키기에 틀림이 없는 사건이었다. 눈이라는 게 왜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잔뜩 가졌던, 초등생 2학년.의 사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체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어냐, 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눈이라고 말한다. 모순이래도 어쩔 수가 없다. 결국, 눈이다.




모든 것이 시시하게만 여겨지는 여름,에 아버지는 새로운 사람과 결혼식을 올렸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는 추녀를 만난다.

추녀라니. 누가 누굴 보며 추녀라고 단언하는 거야.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들었던 의문은 그것이었다. 왜, 예쁨을 강요하지. 왜, 예뻐야 하는 거지. 그렇다면 못생김의 기준은 뭐지. 누구라도 와, 저 사람 진짜 못생겼네. 라고 할 만한 사람인 건가. 그럼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 거지. 1980년대의 美의 기준과 2019년의 美의 기준이 조금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 이 불쾌함은 뭐지. 정말 별로다.




156. 인간은 대부분 자기(自己)와, 자신(自身)일 뿐이니까. 그래서 이익과 건강이 최고인 거야. 하지만 좀처럼 자아(自我)는 가지려 들지 않아. 그렇게 견고한 자기, 자신을 가지고서도 늘 남과 비교를 하는 이유는 자아가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끝없이 가지려 드는 거야.

나는 자족하며 산다고 말하지만, 정말 자족하며 살고 있을까 의심을 할 때가 있다. 가지고 싶으면 나도 가지면 되지, 라고 생각은 하지만 왜인지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때도 분명히 있기는 있다. 그게 때에 따라 좀 다를 뿐이지.

나는 부러움은 인간이 지닌 감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질투나 시기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부러움은 부러움으로 그쳐야지, 질투나 시기로 번지면 비교가 되고 결국 나 자신을 나락으로 빠트리는 것이 되어버리니까. 그러면 인생은 결국 늪에 빠져버리고 만다. 켄터키 입간판의 작은 <희망>이 흐릿하게 보이다가 결국 점멸하고 마는 것처럼...




164. 세계라는 건 말이야, 결국 개인의 경험치야.

세계가 그렇게 좁아터졌던가, 라고 반발하려다가 내 세계는 어떻지? 하고 생각해보니 결국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내 세계는 그리 넓지 않으니까. 오히려 편협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래서 자조 섞인 웃음으로 화답했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괜찮다는 생각이, 서평을 쓰며 문득 들었다. 경험이 늘어야 세계를 넓힐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세계도 결국 편협한 거 아닌가. 어쨌든 자기의 경험치잖아. 이래도 편협하고 저래도 편협하다면 넓고 좁은 것은 아무 차이가 없네. 편협한 세계 속에 옹그리며 살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지키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크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나의 신념을 때때로 들여다봐주는 것. 그것이 바뀌면 바뀌는 대로 반질반질 투명하게 닦아내어 나의 갈 길을 가는 것.



244. 세상은 거대한 고아원이다.

세상은 거대한 고아원이라지만, 그와 그녀, 그리고 요한은 고아원의 일원이었다.

그것도 무척 친밀한.




185. 그게 사랑이지.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極)을 가진 전설과 같은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 누구나 사랑을 원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까닭은, 서로가 서로의 불 꺼진 모습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무시하는 거야. 불을 밝혔을 때의 서로를... 또 서로를 밝히는 것이 서로서로임을 모르기 때문이지.


192. 아마도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겨울이었을 것이다. 무엇을 해줄까,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런 보잘것없는 기억의 편린조차도 더없이 눈부신 순은(純銀)의 반짝임으로 떠오른다. 인생에 주어진 사랑의 시간은 왜 그토록 짧기만 한 것인가. (…) 왜 인간은 지금 자신의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니 망각하는 것일까. 알 수 없다.


2174. 영원한 장소도 영원한 인간도 없겠지만, 영원한 기억은 있을 수 있겠다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느린 마차처럼 서울로 돌아오던 버스와... 그 속의 지친 공기, 누군가 벗어둔 신발의 말똥 냄새마저도 그저 인간이 발할 수 있는 인간의 체온으로 느껴지는 밤이었다.


214. 모든 인간은 투병(鬪病)중이며,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누군가를 간호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228.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 가는 거야.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그래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시시해질 자신의 삶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지.


299. 사랑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라 생활이었다.


328.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살아야 하고,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서로를 스치거나 만나야만 했던 것이다. 왜 모두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그런 이유로 우리는 겨우 이곳에서의 외로움을 견디고 모면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기대를 걸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포기를 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존재이다. 신의 기대대로 살 순 없다 해도, 그래서 인간은 끝까지 스스로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동물이다.

사랑이 있는 한

인간이 서로를 사랑하는 한은, 말이다.



내 사랑은 어떤 형태인지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게 했던 문장들.

덩달아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던 문장들.이기도 했다.

사랑은 사랑으로써 아름다워야지. 사랑이니까, 그러니까,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378. 당신이 무사해서... 당신이 무사하니까 이제 저도 무사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느릿한 몇 곡의 재즈와 함께 나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느낌이었고, 그 순간이 지나고 나자 다시 사소한 말들, 아무것도 아닌 말들이 필요한 시간이 우리에게 돌아왔다.


터널이 느릿느릿 올 수도, 길게 올 수도, 시시때때로 올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분명한 것은, 내가 지금 아무렇지 않게 지내는 이 순간들이, 이 시간들이 나를 고여있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필요한 것이라는 것. 모를 리가 없지만, 난 또 모르겠다. 잃지 않으면 지금의 소중함들도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게 바로 인간일 테니까. 소중하다고 생각해야지, 하면서도 나는 금세 잊을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확신한다.


오로지 진실인 이유로 평범할 수밖에 없는 문장들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늘 곁에 있어서,

아무렇지 않게 읊조리는 말들이지만,

진심이 아닌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고.









책 속의 밑줄_




55. 인생은 늘 막연하면서도 확연한 안개와 같은 것이었다.


68. 젊은 아버지의 얼굴 앞에서 특별한 감정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누군가를 사랑해 온 인간의 마음은 오래 신은 운동화의 속처럼 닳고 해진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어떤 빨래로도 그것을 완전히 되돌리진 못한다... 변형되고, 흔적이 남은 채로... 그저 볕을 쬐거나 습기를 피해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115. 누구에게나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시절이 있는 법이다.


140. 사람의 웃음이...창(槍)처럼 사람의 배를 찌를 수 있다는 걸 믿으세요? 믿어...하고, 나는 뿔이 잘린 트리케라톱스처럼 고개를 끄덕였었다. 결국, 세상의 매듭을 푸는 것은 시간이다.


152. 버스는 오지 않고 여전히 달이 자신의 이면(異面)을 감춘 채 하늘의 서편에 머물러 있는 새벽이었다. 인간은 끝끝내... 자신의 내면을 감춘 채 사라지는 저 달과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164. 태양과 바다와 꽃들은 실은 언제나 이 세계에 머물러 있고, 우리에겐 그 사실을 망각하지 않을 테크닉이 필요할 뿐이었다.


174. 그게 인간이야. 모든 인간에게 완벽한 미모를 준다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아. (…) 왜 다수가 소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야. 그건 끝없이 부끄러워ㅡ하고

부끄러워하기 때문이야.


217. 그 사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지금의 후회를 조금은 줄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결국 <그때>의 인간처럼 무능한 인간은 없다.


220. 보잘것없는 인간들의 세계는 그런 거야.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봐줄 수 없는 거라구.


346. 추억이란 이런 것이다. 결국 인간의 추억은

열어볼 때마다 조금씩 다른 내용물이 담겨 있는 녹슨 상자와 같은 것이다.


360. 잠을 자고 난 머릿속이 멸망해 버린 세계처럼 텅 비어 있는 느낌이다. 아닌 게 아니라 모든 것이 사라진 세계다.


361. 누군가를 사랑한 삶은 기적이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던 삶도

기적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242. 숙제처럼 밀려 있던 날과, 아무런 검사도 받지 못한 지난 날들이 엎드린 시체처럼 자신의 얼굴을 감추고 누워 있던 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과 강철의 숲
미야시타 나츠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피아노를 배우게 된 지 벌써 5개월이 다 되어간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중간에 몇 주는 뺀 적도 있고 2주가 다 되어 한 수업을 받기도 하지만 여전히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의지는 있다고 자신한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서 며칠 동안 엄마를 조르다가 겨우 다니게 된 피아노 학원인데, 당시에 유행하던 수두로 인해 몇 번 가보지도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니 피아노는 언젠가부터 로망에 자리 잡았다. 그런 내가 매우 어설프게나마 연주라는 것을 하고 있다니! 하며 부끄럽지만 혼자 흐뭇해하기도 한다.



피아노를 배우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 민정님께 선물로 받은, <양과 강철의 숲>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나를 응원해주신다며 선물해주셨는데, 나는 피아노를 배우고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지식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은 겁부터 났다. 피아노에 대한 무거운 이야기들이 담겨있어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이면 어쩌지? 하는 그런 걱정. 그런데 그동안 책의 권태기를 겪었던 나를 너무 아무렇지 않게 다시 책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 조용하지만 따듯한 책.




7. 숲 냄새가 났다. 가을, 밤에 가까운 시간의 숲. 바람이 나무를 흔들어 나뭇잎이 바스락바스락 우는 소리를 냈다. 밤이 되기 시작한 시간의 숲 냄새.

처음의 문장, 참 좋아서 나는 이 문장을 계속해서 곱씹었다. 어쩐지 내가 이 냄새를 알 것만 같아서.

전에는 숲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어서 숲에 가면 조금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갇혀있다는 느낌, 미로 같다는 느낌. 그런데 언젠가부터 취향이 바뀐 탓인지, 비온 뒤의 숲 냄새가 너무 좋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다. 이후에도 숲에 대한 불안감이 없잖아있어 혼자서는 잘 찾지는 않지만, 공간이 트여있는 곳의 녹음이 짙은 공간을 꽤 좋아하게 되어 혼자서도 종종 찾게 되었다. 숲 냄새, 밤에 가까운 시간의 숲. 바람이 나무를 흔들어 나뭇잎이 바스락바스락 우는 소리, 밤이 되기 시작한 시간의 숲 냄새. 나도 느껴보고 싶은, 냄새.





눈앞에 크고 새까만 피아노와 처음 마주한 도무라.

그는 피아노를 조율하던 이타도리 소이치로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타도리는 피아노의 다정한 소리,라고 말하지만

그는 다정한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모르기에 그렇군요.라고 답한다.


그는 피아노의 소리에 대해...

악기가 내는 소리라기보다 더 구체적인 형태가 이는 무언가가 내는 소리, 더없이 그리운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만 같은, 정체는 잘 몰라도 무언가 아주 좋은 것.

조용하고 따뜻한 깊이를 내포한 소리. 라고 생각한다.





29. 피아노는 연주되고 싶다. 처음에는 그저 소리였는데, 이타도리 씨가 조율하고 정돈하자 단숨에 윤택해졌다. 선명하게 뻗는다. 다랑, 다랑, 단발적이었던 소리가 달리고 엉켜 음색이 된다. 피아노가 이런 소리를 내던가. 잎에서 나무로, 나무에서 숲으로, 산으로. 이제 막 음색이 되고 음악이 되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문장들을 읽고만 있을 뿐인데, 다랑, 다랑,하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부드러운 소리, 상냥한 음색.

유려하지 않지만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 나긋나긋한 문장들이 탄생했을까, 부러움마저 인다.





이후에 도무라는 이타도리를 찾아가 청한다. “제자로 받아주실 수 있나요?”

그는 아직 학생인 도무라에게 조율 공부를 하기 좋은 학교를 추천해준다. 도무라는 그 학교에 진학을 했고, 졸업한 후에 고향 근처의 작은 마을로 돌아와 악기점에 취직하게 된다. 이타도리 씨가 있는 그 가게, 에토 악기.


이제 막 취직한 도무라는 마음이 급하다.

조율사에게는 음을 맞추는 것 이상이 요구되는데, 본인은 아직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도무라에게 이타도리는 말한다. “초조해하면 안 됩니다. 차근차근, 차근차근입니다.”

“차근차근 어떻게 하면 되나요? 어떻게 차근차근해야 올바른 건가요?”

“우리가 하는 일에 옳고 그름의 기준은 없습니다. 올바르다는 단어를 쓸 때에는 조심하는 게 좋아요.”

“차근차근 수비하고 차근차근 히트 앤드 런입니다.”




밝고 조용하고 맑고 그리운 문체, 조금은 응석을 부리는 것 같으면서 엄격하고 깊은 것을 담고 있는 문체, 꿈처럼 아름답지만 현실처럼 분명한 문체.

는 어느 누군가의 목표지향점이 된다. 밝고 조용하고 맑고 그리운 소리, 조금은 응석을 부리는 것 같으면서 엄격하고 깊은 것을 담고 있는 소리, 꿈처럼 아름답지만 현실처럼 분명한 소리.





첫 조율을 따라나선 것은 쌍둥이의 집이었다. 가즈네와 유니-

어느 날 조율이 취소된 것을 두고 이런저런 걱정을 하였는데, 역시나.

조금 슬프지만, 그리 걱정할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피아노를 치고, 누군가는 그 피아노를 조율해줄 테니까.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의 대상이 될 테니까.




198. "피아노로 먹고살 생각은 없어요."

"피아노와 함께 살아갈 거야."


220. 가즈네는 부러울 만큼 고결한 정신으로 피아노를 마주한다. 피아노를 마주하는 동시에 이 세상과 마주한다.

가즈네와 유니의 피아노에 대한 극진한 사랑과 열정이 참 예쁘고 부러웠다.




175. 세계의 윤곽이 진해진 것 같았다.

도무라의 조율 공부, 아마 앞으로도 세계의 윤곽은 점점 진해지겠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잘 하고 싶다는 그 마음,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지 - 하며 오랜만에 그 마음을 느껴본다.





잔잔하고 은은한 책 한 권을, 급하지 않고 소화를 시켜가며 참 잘 읽었다.



ps.

내가 생각하는 피아노 소리는 어떤 소리일지 생각해보면,

많은 것은 인내하는 소리.인 것 같다.

내가 엉뚱하게 쳐서 소리가 어긋나도 바로잡아줄 수 있는 다정한 소리.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어떤 소리로 변화될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지금 나한테 피아노의 소리는 그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름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겹다.

내가 책을 중간 즈음 읽었을 때부터 책의 서평을 쓸 때는 이 단어를 첫 마디에 써야지, 생각하고 있던 말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 말을 쓰기 위해 나는 서평을 쓰는 건지도 모르겠다.

박범신 작가는 작가의 말에 구태여 썼다. 단순히 부도덕한 러브스토리로만 읽지 말라고.

나는 단순하게 부도덕한 러브스토리로만 읽지 않았다.

김진영이 천예린에게 마음이 기울었을 때, 그럴 수도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것은 인간의 꿈틀거리는 욕망이어서가 아니라,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에게 더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법이니까.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역겹다고 말하는 것은, 숭고한 것을 너무 추잡하고 추악한 방식으로 더럽혔기 때문이다.


이 책을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하다가 김진영, 그의 이야기부터 시작해보기로 한다.

48. 50대의 나이는 변수가 적다.

그러나 삶이란 끝이 없다.

삶이 계속되는 한 어느 날 갑자기 우리들 뒷덜미를 사정없이 잡아채어 수렁 속으로 내던지고 마는, 악마의 손길 같은 삶의 어두운 변수는 결코 끝나는 법이 없는 것이다.

정말 50대가 되면 변수가 적을까. 생각하다가,

J를 보면서 치열하게 사는, 또 살아야 하는 20대, 30대, 40대보다는 더 많이 내려놓게 되겠지, 한다.

요즘은 백세시대라고 떠들어대지만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어쨌든 사람은 노화가 진행되어가는데 백세시대면 무얼 할 텐가.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여성은 50대가 되면 자연스레 폐경을 겪을 테고, 갱년기도 올 텐데.

백세시대라고 하더라도 폐경이나 갱년기가 80세에 올 수는 없을 거다.

오히려 폐경은 더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의학 기술이 발달한다고 하지만 얻는 게 있는 만큼, 우리는 무언가를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소맷부리 단추, 그 하나가 불러온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새삼스럽게 모든 것이 짜증스러운 날, 맹렬한 적개심이 일었다.

그러면서 중심 어딘가가 비어있다고 느낀다.

그것을 그는,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60. 나는 도대체 여태껏 뭘 해왔을까.

스스로를 자조하며 지내던 어느 날, 노란 우비에 이끌려 미술 학원을 들어가게 된다.

천예린, 그녀의 이미지

1. 소녀, 노란색

2. 눈빛의 광채

3. 스케치북에 그린 옛 꿈이 이미지

김진영 씨가 그녀에게 이끌렸던 것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쩌면 자신을 인정해주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반면에 그림을 그릴 거라는 그의 말에 질린 표정을 한 아내에게서, 뻔한 일상에 사로잡힌 평범한 아줌마의 모습을 본다. 아내와의 관계에 대해 황폐한 간격 / 너무나도 뻔한, 기계로 찍어낸 싸구려 공산품 같은, 황폐하고 부식된 삶. 이라고 표현하는 모습에서 나는 현기증이 이는 것을 느꼈다. 가족에게서 로봇 취급은 물론이거니와 희로애락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주지 않는 삶을 보냈으니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하겠지만 많이 슬픈 부분이었다.

103. 확실히 예감하진 못했으나, 그때 이미 나는 내 앞에 은밀히 놓인 덫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삶이란 때론 그렇다, 평온하고 안정된 삶일수록 은밀히 매설된 덫을 그 누구든 한순간 밝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생의 심연이 지닌 본질적이고 절대적인 권한일는지도 모르겠다. 생이라고 이름 붙인 여정에서 길은 그러므로 두 가지다. 멸망하거나 지속적으로 권태롭거나.

아들 선우에게 "고향 집 어귀에 있던 미루나무들이 싹 베어지고 없더라."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가족을 등진 김진영 씨. 심지어 그는 회사 자금을 횡령하여 갔기 때문에 가족은 그가 떠난 후에 완벽하게 파멸을 할 수밖에 없었고,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인해 실어증과 기억상실이 같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 선우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김진영 씨라고 아십니까?"

그는 아버지를 만나러 동시베리아에 이르쿠츠크 지역을 가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아버지는, 천예린의 주검을 지키고 있다.

33. 주름살 투성이의 거무튀튀한 얼굴, 푹 꺼진 눈, 바짝 말라 함몰된 볼, 그리고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눈빛. 불과 2년 만에.


 

나는 김진영 씨에게 갱년기가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성의 갱년기는 더욱 황폐하다고 들었으므로 그것이 김진영 씨에게 닥칠 위험천만의 순간들을 오롯하게 함께 겪을 수 있겠구나.

언젠가 J에게 갱년기가 찾아온다면, 이라는 기대를 가지며 읽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결국 이것인가?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텅 빈…… 자유가 거기 있네. 침묵의 방이…….

라는 것 같았지만,

나는 하나도 와닿지 않았다.

천예린이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고,

그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까지 헌신적이던 김진영씨는,

왜 자신의 아내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김진영,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한 적이 없고,

미안한 마음을 가진 적도 없다.

설령 그렇게 묘사를 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진심일 리 없다.

매우 이기적인 인간의 한 전형을 보았다.


 

책의 묘사에 대해서는 읽는 독자의 고유한 권리라고 본인이 쓰셨으니 욕 좀 해야겠다.

책에는 성관계가 묘사되어 있다.

아주 상세하게.

그런데 이보다 더러울 수가 없다.

참 더럽게도 쓰였다.

왜 이런 부분이 쓰여야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고, 나의 관할은 아니었기에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끝을 보자 싶어서 끝까지 읽어나가기는 했지만,

읽으면서 외설스러운 묘사들의 행진에 나도 모르게 낮게 욕을 내뱉기도 했다.

이 책을 썼을 당시,

작가가 엄청난 소용돌이에 휩싸여있었나? 하고 생각할 만큼,

-하지만 결코 이해하고 싶지는 않은- 격정적이다.

그에게 성행위란, 성관계란, 섹스란, 이런 것일 수밖에 없나?

급기야 책을 읽으며 작가에 대한 인간성까지 의심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그는 사랑이 밑바탕이 되어 있는 섹스를 경험해본 적이 없는지에 대해서까지 다다르게 된다.

<은교>를 읽으면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기에 나는 더 이상 그의 책을 읽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50대 아버지'라는 부분에서 또 멈칫했던 거다. 또 다른 <소금>일 줄 알았겠지.

/

아,

사람이 산다는 게 무어냐.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도,

그게 행복인 줄을 모르고 산다.

그렇게 찾고 싶었던 자신의 생 앞에서,

결국 그는 무엇을 찾았나 말이다.

그는 단 한순간도 자신을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고,

그저 한 여자의 그림자만 밟으며 쫓아다니는 꼭두각시였을 뿐이었다.

자신을 찾았다고 생각하지 말라.

도대체 어느 부분이 자신을 찾았다고 말하는가.

텅 빈 자유가 거기 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도

결국 자신이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천예린이 남긴 부분에서 알게 된 것이 아닌가.

그는 애초에 주체적인 인간이 아니었던 거다.

그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졌던가.

참 인생무상[人生無常]이다.

ps. 50대 여자에게 천예린이라는 이름은 가명이었을까?

50대 여자에게 천예린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 편견이겠으나, 읽는 내내 몰입이 안 돼서 혼났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감 2019-06-13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소금 한권만 읽었는데요, 하늘보리님의 리뷰를 보니 박범신은 이제 안읽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근래의 책 선정에 아쉬움을 진하게 가지고 있었기에 허기를 채우러 도서관을 찾았다. 묵직한 활자에서 벗어나 허기를 채울 수 있을 법한 고요한 마음에 돌멩이를 툭 하나 던지는 그런 책이 필요했다. 보자마자 이거라며, 책을 안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경쾌하다 못해 넘실거렸다. 미야모토 테루의 작품은 <금수>와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를 이어 마지막 <환상의 빛>까지 왔다. 참 오랜만에 감정이입해서 읽은 책.

 

 

 

 

 

 

「환상의 빛」 「밤 벚꽃」 「박쥐」 「침대차」 네 단편을 묶는 것은 죽음이다. 죽음의 형태가 어떻든, 죽음은 남은 사람에게 상실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환상의 빛」과 「밤 벚꽃」 이 정말 정말 좋았는데, 사실 단편인 줄도 모르고 이야기가 끝난 것이 아쉬워 첫 단편인 「환상의 빛」을 놓지 못하고 그러안고 있었다.

 

 

 

 

 

 

환상의 빛

 

 

서른두 살이 된 유미코, 사별한 지 칠 년이 되었다. 전차에 몸을 맡긴 남편의 자살,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그녀의 재혼의 이유는, 당신이라는 사람이 따라다니는 풍경에서, 소리에서, 냄새에서 도망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재혼 후의 삶에 안정됨을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남편의 뒷모습에 말을 거는 것으로, 위태롭게 시들어버릴 것 같은 자신을 지탱해왔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80. 당신의 뒷모습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떠올랐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는 불행이라는 것의 정체가 비쳤습니다. 아아, 이것이 불행이라는 것이구나, 저는 당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확실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남편은 왜 죽었을까,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하고 유미코는 내내 생각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가, 하고. “사람은 혼이 빠져나가면 죽고 싶어지는 법”이라고, 새로운 남편은 말했다. 그녀는 그 말을 믿기로 한 게 아니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믿게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것 말고는 남편의 죽음의 이유를 생각할 수 없었으므로.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믿기로 한다.

 

 

 

 

82. 자 보세요, 또 빛나기 시작합니다. 바람과 해님이 섞이며 갑자기 저렇게 바다 한쪽이 빛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어쩌면 당신도 그날 밤 레일 저편에서 저것과 비슷한 빛을 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상실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아득해진다. 상실이라니. 그것도 믿고 의지하던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이유도 모른 채. 정말이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야,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완전하게 그가 될 수는 없으므로,라는 생각을 하면서 막연하게 슬퍼지는 것이다. 끝내 나는 또 그렁그렁한 눈으로 오래오래 단편을 마음에 담아두기로 한다.

 

 

 

 

 

 

 

 

밤 벚꽃

 

 

108. 멀리 바다가 보이고 활짝 핀 벚꽃으로 둘러싸여 있고, 일 박으로 갈 수 있는 곳이고, 게다가 예산은 5천 엔 밖에 안 드는 곳, 당신의 바람을 이룰 수 있는 곳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생각나지 않았거든.

“예쁜 밤 벚꽃이지.”

 

 

 

 

밤 벚꽃에 대해 예쁘다고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있었어도 생각이 나지 않으니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여름의 문턱을 넘어선 계절, 밤 벚꽃이 그렇게나 보고 싶어지게 만들었던 이야기. 그 언젠가 그와 손을 잡고 밤 벚꽃을 올려다보며 걷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잘돼가? 무엇이든 -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 이경미 첫 번째 에세이
이경미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다른 이웃님의 서평을 통해 몇 번이나 접했었다. 에세이인 것은 알고 있었는데 대체로 평이 좋은 편이었지만 끌리지는 않았다. 전에는 에세이는 아무 생각 없이 읽기가 좋아서 부러 찾아읽었다면, 지금은 부러 찾아보지 않는 장르이기 때문에. 속사포로 출간되는 에세이들만 보더라도 나는 어쩐지 조금 질리는 기분이 들기도 하니까.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서 구경하다가 이 책을 손에 든 나를 보았다. 4월에는 시험이 있다는 이유로 책을 멀리했었고 활자들에 질려서 (아, 요즘 질린다는 표현을 자주 한다.) 책을 읽다가 말아버리는 때가 너무 많아서 다른 분들이 즐겁게 읽었다던 이 책을 나도 모르게 집었나 보다.




이 두껍지 않은 책에는, 사랑, 엄마, 아빠, 영화가 가장 큰 주제인 것 같다.


책을 보면서 웃는다는 것을 이해를 못 하는 편이다. 심지어 티비나 영화를 보면서도 잘 웃지 않는다. 아예 웃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웃으라고 만든 부분에서도 잘 웃지를 못한다. 웃음보다 울음에 좀 더 관대한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책을 읽으며 피식피식 웃는 사람은 아니어서 책을 읽으며 박장대소했다는 것에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딱 한 번 웃었던 게 있다.


"너는 언니가 돼가지고 왜 이렇게 철이 없니?"

'내가 철이 없다고? 와, 진짜 내가 얼마나 똥을 잘 참는데!'

누구를 위해 하는 훈련인지 모를 똥 참기 훈련에 돌입했다.

똥을 참는 횟수를 세고, 결국 그녀는 변비에 시달린다.


풋.



그리고 신기했던 부분.

이걸 문화 차이(?)라고 해야 하나?


필수는 쓰레기통을 부엌 싱크대에서 닦는다.

자기네 가족은 원래 그런다고 한다.


나는 쓰레기통을 욕실에서 닦는다.

요리하는 자리에서 쓰레기통을 닦다니 말도 안 된다.


필수는 얼굴을 닦는 자리에서 쓰레기통을 닦다니 토 나온다고 한다.


어렵네.



먹는 걸 닦는 곳에서 쓰레기통을 비우는 게 나한텐 더(...)




책에 대한 소감은, 잘 다듬어진 일기장을 엿본 느낌이었다. 특히 아빠에 대한 부분.

아빠한테 나를 증명하는 일은 세상에 나를 증명하는 일보다 늘 어려웠다.

아빠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구나. 그리고 지금도 그렇겠구나. 그래서 그토록 아웅다웅하는 거겠구나. 싶다.

어쩌면 그녀는 이미 인정을 받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덧. 사랑은 서로의 생명력을 주고받는 일이라는데, 나는 얼마만큼의 생명력을 주고받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