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근래의 책 선정에 아쉬움을 진하게 가지고 있었기에 허기를 채우러 도서관을 찾았다. 묵직한 활자에서 벗어나 허기를 채울 수 있을 법한 고요한 마음에 돌멩이를 툭 하나 던지는 그런 책이 필요했다. 보자마자 이거라며, 책을 안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경쾌하다 못해 넘실거렸다. 미야모토 테루의 작품은 <금수>와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를 이어 마지막 <환상의 빛>까지 왔다. 참 오랜만에 감정이입해서 읽은 책.

 

 

 

 

 

 

「환상의 빛」 「밤 벚꽃」 「박쥐」 「침대차」 네 단편을 묶는 것은 죽음이다. 죽음의 형태가 어떻든, 죽음은 남은 사람에게 상실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환상의 빛」과 「밤 벚꽃」 이 정말 정말 좋았는데, 사실 단편인 줄도 모르고 이야기가 끝난 것이 아쉬워 첫 단편인 「환상의 빛」을 놓지 못하고 그러안고 있었다.

 

 

 

 

 

 

환상의 빛

 

 

서른두 살이 된 유미코, 사별한 지 칠 년이 되었다. 전차에 몸을 맡긴 남편의 자살,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그녀의 재혼의 이유는, 당신이라는 사람이 따라다니는 풍경에서, 소리에서, 냄새에서 도망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재혼 후의 삶에 안정됨을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남편의 뒷모습에 말을 거는 것으로, 위태롭게 시들어버릴 것 같은 자신을 지탱해왔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80. 당신의 뒷모습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떠올랐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는 불행이라는 것의 정체가 비쳤습니다. 아아, 이것이 불행이라는 것이구나, 저는 당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확실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남편은 왜 죽었을까,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하고 유미코는 내내 생각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가, 하고. “사람은 혼이 빠져나가면 죽고 싶어지는 법”이라고, 새로운 남편은 말했다. 그녀는 그 말을 믿기로 한 게 아니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믿게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것 말고는 남편의 죽음의 이유를 생각할 수 없었으므로.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믿기로 한다.

 

 

 

 

82. 자 보세요, 또 빛나기 시작합니다. 바람과 해님이 섞이며 갑자기 저렇게 바다 한쪽이 빛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어쩌면 당신도 그날 밤 레일 저편에서 저것과 비슷한 빛을 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상실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아득해진다. 상실이라니. 그것도 믿고 의지하던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이유도 모른 채. 정말이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야,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완전하게 그가 될 수는 없으므로,라는 생각을 하면서 막연하게 슬퍼지는 것이다. 끝내 나는 또 그렁그렁한 눈으로 오래오래 단편을 마음에 담아두기로 한다.

 

 

 

 

 

 

 

 

밤 벚꽃

 

 

108. 멀리 바다가 보이고 활짝 핀 벚꽃으로 둘러싸여 있고, 일 박으로 갈 수 있는 곳이고, 게다가 예산은 5천 엔 밖에 안 드는 곳, 당신의 바람을 이룰 수 있는 곳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생각나지 않았거든.

“예쁜 밤 벚꽃이지.”

 

 

 

 

밤 벚꽃에 대해 예쁘다고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있었어도 생각이 나지 않으니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여름의 문턱을 넘어선 계절, 밤 벚꽃이 그렇게나 보고 싶어지게 만들었던 이야기. 그 언젠가 그와 손을 잡고 밤 벚꽃을 올려다보며 걷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