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 강철의 숲
미야시타 나츠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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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배우게 된 지 벌써 5개월이 다 되어간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중간에 몇 주는 뺀 적도 있고 2주가 다 되어 한 수업을 받기도 하지만 여전히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의지는 있다고 자신한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서 며칠 동안 엄마를 조르다가 겨우 다니게 된 피아노 학원인데, 당시에 유행하던 수두로 인해 몇 번 가보지도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니 피아노는 언젠가부터 로망에 자리 잡았다. 그런 내가 매우 어설프게나마 연주라는 것을 하고 있다니! 하며 부끄럽지만 혼자 흐뭇해하기도 한다.



피아노를 배우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 민정님께 선물로 받은, <양과 강철의 숲>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나를 응원해주신다며 선물해주셨는데, 나는 피아노를 배우고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지식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은 겁부터 났다. 피아노에 대한 무거운 이야기들이 담겨있어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이면 어쩌지? 하는 그런 걱정. 그런데 그동안 책의 권태기를 겪었던 나를 너무 아무렇지 않게 다시 책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 조용하지만 따듯한 책.




7. 숲 냄새가 났다. 가을, 밤에 가까운 시간의 숲. 바람이 나무를 흔들어 나뭇잎이 바스락바스락 우는 소리를 냈다. 밤이 되기 시작한 시간의 숲 냄새.

처음의 문장, 참 좋아서 나는 이 문장을 계속해서 곱씹었다. 어쩐지 내가 이 냄새를 알 것만 같아서.

전에는 숲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어서 숲에 가면 조금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갇혀있다는 느낌, 미로 같다는 느낌. 그런데 언젠가부터 취향이 바뀐 탓인지, 비온 뒤의 숲 냄새가 너무 좋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다. 이후에도 숲에 대한 불안감이 없잖아있어 혼자서는 잘 찾지는 않지만, 공간이 트여있는 곳의 녹음이 짙은 공간을 꽤 좋아하게 되어 혼자서도 종종 찾게 되었다. 숲 냄새, 밤에 가까운 시간의 숲. 바람이 나무를 흔들어 나뭇잎이 바스락바스락 우는 소리, 밤이 되기 시작한 시간의 숲 냄새. 나도 느껴보고 싶은, 냄새.





눈앞에 크고 새까만 피아노와 처음 마주한 도무라.

그는 피아노를 조율하던 이타도리 소이치로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타도리는 피아노의 다정한 소리,라고 말하지만

그는 다정한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모르기에 그렇군요.라고 답한다.


그는 피아노의 소리에 대해...

악기가 내는 소리라기보다 더 구체적인 형태가 이는 무언가가 내는 소리, 더없이 그리운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만 같은, 정체는 잘 몰라도 무언가 아주 좋은 것.

조용하고 따뜻한 깊이를 내포한 소리. 라고 생각한다.





29. 피아노는 연주되고 싶다. 처음에는 그저 소리였는데, 이타도리 씨가 조율하고 정돈하자 단숨에 윤택해졌다. 선명하게 뻗는다. 다랑, 다랑, 단발적이었던 소리가 달리고 엉켜 음색이 된다. 피아노가 이런 소리를 내던가. 잎에서 나무로, 나무에서 숲으로, 산으로. 이제 막 음색이 되고 음악이 되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문장들을 읽고만 있을 뿐인데, 다랑, 다랑,하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부드러운 소리, 상냥한 음색.

유려하지 않지만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 나긋나긋한 문장들이 탄생했을까, 부러움마저 인다.





이후에 도무라는 이타도리를 찾아가 청한다. “제자로 받아주실 수 있나요?”

그는 아직 학생인 도무라에게 조율 공부를 하기 좋은 학교를 추천해준다. 도무라는 그 학교에 진학을 했고, 졸업한 후에 고향 근처의 작은 마을로 돌아와 악기점에 취직하게 된다. 이타도리 씨가 있는 그 가게, 에토 악기.


이제 막 취직한 도무라는 마음이 급하다.

조율사에게는 음을 맞추는 것 이상이 요구되는데, 본인은 아직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도무라에게 이타도리는 말한다. “초조해하면 안 됩니다. 차근차근, 차근차근입니다.”

“차근차근 어떻게 하면 되나요? 어떻게 차근차근해야 올바른 건가요?”

“우리가 하는 일에 옳고 그름의 기준은 없습니다. 올바르다는 단어를 쓸 때에는 조심하는 게 좋아요.”

“차근차근 수비하고 차근차근 히트 앤드 런입니다.”




밝고 조용하고 맑고 그리운 문체, 조금은 응석을 부리는 것 같으면서 엄격하고 깊은 것을 담고 있는 문체, 꿈처럼 아름답지만 현실처럼 분명한 문체.

는 어느 누군가의 목표지향점이 된다. 밝고 조용하고 맑고 그리운 소리, 조금은 응석을 부리는 것 같으면서 엄격하고 깊은 것을 담고 있는 소리, 꿈처럼 아름답지만 현실처럼 분명한 소리.





첫 조율을 따라나선 것은 쌍둥이의 집이었다. 가즈네와 유니-

어느 날 조율이 취소된 것을 두고 이런저런 걱정을 하였는데, 역시나.

조금 슬프지만, 그리 걱정할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피아노를 치고, 누군가는 그 피아노를 조율해줄 테니까.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의 대상이 될 테니까.




198. "피아노로 먹고살 생각은 없어요."

"피아노와 함께 살아갈 거야."


220. 가즈네는 부러울 만큼 고결한 정신으로 피아노를 마주한다. 피아노를 마주하는 동시에 이 세상과 마주한다.

가즈네와 유니의 피아노에 대한 극진한 사랑과 열정이 참 예쁘고 부러웠다.




175. 세계의 윤곽이 진해진 것 같았다.

도무라의 조율 공부, 아마 앞으로도 세계의 윤곽은 점점 진해지겠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잘 하고 싶다는 그 마음,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지 - 하며 오랜만에 그 마음을 느껴본다.





잔잔하고 은은한 책 한 권을, 급하지 않고 소화를 시켜가며 참 잘 읽었다.



ps.

내가 생각하는 피아노 소리는 어떤 소리일지 생각해보면,

많은 것은 인내하는 소리.인 것 같다.

내가 엉뚱하게 쳐서 소리가 어긋나도 바로잡아줄 수 있는 다정한 소리.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어떤 소리로 변화될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지금 나한테 피아노의 소리는 그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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