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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ㅣ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김려령 작가의 책을 처음 만난건 <완득이>였다. 그 책은 처음 읽을 때 사실은 아주 많은 추천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나에겐 별 감흥이 없어서 그것을 끝으로 김려령 작가를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책이 작년즈음 새로 출간되었다는 <우아한 거짓말> 소식을 듣게 되었지만, 전작의 여파때문인지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나의 그 사람이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자꾸만 울컥하게 되서 채 읽지를 못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보고 꼭 읽어보라며 자신이 다 읽고 넘겨주겠다고 해서 얼떨결에 읽게 된 책이다. 받자마자 어떠한 내용인지 짐작도 못한 채, 표지가 참 예쁘다... 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읽고 있던 책을 끝낸 직후여서 그 자리에서 바로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지만 , 마음 속에서 울컥하는 내용이라기에 조금 덮어두었다. 그 전에 읽은 '벽장 속의 아이'의 후유증 때문이었다. 아픈 마음에 또 한번 칼질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음을 달래줄 책을 두어권 읽고 나서야 이 책을 펼쳐들고 무슨 내용이건 김려령 작가의 글을 좇기보다는 이 책을 쓸 때의 마음을 따라 읽겠노라고 생각하며 첫 문장을 눈으로 따라 읽었다. 그 문장은 안그래도 간신히 달래놓은 내 마음을 지뢰밭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내일을 준비하던 천지가, 오늘 죽었다.
천지는 열네살이라는 숫자만으로도 예쁜 나이에 자살을 선택했다. 안타깝다는 마음이 들어야 마땅하지만 왜 그랬을까, 라는 생각이 먼저 튀어나온다. 작가의 글을 따라가다보면 그 질문의 답을 찾게 된다. 어느 날 아침 몇 달이나 남은 생일선물로 mp3를 사달라고 하는 천지에게 전세 보증금을 올려줘야 한다며 거절하는 엄마. 그 날 천지는 세상과 작별을 고한다. 고작 mp3라는 이유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모르는 뭔가가 있을거라며 언니인 만지는 천지가 남겨놓은 흔적을 따라 천지가 닿았던 자취를 좇게 된다. 원인은 화연때문이었는데, 화연 역시 집에서 생계에 바쁜 부모님 대신에 학원으로 돌려지게 되고, 그로 인해 제대로 된 사랑 한번 못받은 화연은 애정 결핍이 생기게 됨으로서 아이들에게 애정을 받기 위해,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천지를 골탕먹이고 친구라는 위선적인 명목 하에 천지를 거리낌없이 가지고 놀게 된다. "애들이 자꾸 나만 술래 시켜." "안 한다고 해." 그렇게 얘기해봤어요, 엄마. "그래도 자꾸 시켜." "그럼 걔들이랑 놀지 마." 그럼 나는 누구랑 놀아, 언니? 그날부터입니다. 친구에 대해 더 이상 엄마와 언니에게 상의하지 않게 된 때가. (p20) 천지는 분명 가족에게 SOS를 청했지만 엄마와 언니, 그 누구도 대수롭게 생각하는 이가 없었다. 아이의 보호막 , 울타리 역할이 되주어야 할 가족의 무관심의 끝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내가 학교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여전히 한 반에 한명씩 왕따가 존재한다. 내가 중, 고등학교 때는 왕따라는 개념이 확연히 달랐다. 중학교 때는 한 아이를 두고 괴롭혔다고 한다면, 고등학교 땐 아이들이 놀아주지 않는 아이를 왕따라고 칭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무리를 지어다니는 애들을 일컫는 말도 되었다. 우리는 그들을 두고 끼리끼리 논다라고 칭하기도 했고, 그들이 지나가면 수군수군대기 일쑤였다. 읽으며 나는 누구였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같이 어울려다니는 애들 앞에서는 웃다가도 싫은 사람이 말을 걸면 정색하며 싫은 티 팍팍 내며 무표정하게 대답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고보면 나는 화연이나 주변 아이들보다 더 끔찍했던 것 같다. 누가 누구를 왕따시키든 말든 관심도 없었기에 그것에 동조하지도 않았으며 난 내 할 일만 하면 되었다. 간혹 아이들이 꺼려하는 그들은 나에게 말을 시키곤 했는데, 사실 나는 그게 무척이나 싫었다. 내가 같은 처지가 될까봐 싫었던 것이 아니라, 애들이 싫어하면 그런 이유가 있겠지,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 책을 읽고 화연이와 주변 아이들을 도끼눈을 뜨고 바라보며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그들을 욕하면서 이야기를 읽어내려갔다. 우리는 누굴 피해자라 부르고, 누굴 가해자라고 하는가. 그런 상황이 다시 온다고 한다면, 나는 천지와 같은 아이들을 감싸안아줄 수 있을까? 아니, 사실 그러진 못할 것 같다.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조종당하는 것. 천지는 회의감이 얼마나 들었을까, 나같으면 난리났었겠다고 생각하며 천지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착하디 착한 천지는 그러지 못했다. 털 뭉치 속에 엄마, 언니, 미라, 화연, 그리고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편지를 남겨두고 세상과 안녕,하고 돌아섰다.
우아함을 가장하여 가해지는 멸시는 극단적인 '죽음'이라는 선택을 코 앞에 두게 만든다. 그들은 죽기 전 유서를 쓰고, 그 유서에는 짐작컨대 이렇게 적혀져 있을 것이다. '내가 죽음으로서 너희에게 복수할 것이다.'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왜 그런 안타까운 상황을 만들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얘기하진 않겠다. 하지만 정말 복수하는 길은 그 안에서 살아서 행복하게 사는 길 뿐이다. 사실 나같아도 내가 싫어하는 골칫덩어리가 없어지면 룰루랄라하겠다.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은 나는 무서워서 생각지도 못할 자살이라는 것을 뻑하면 한다. 그래서 유명연예인이 죽었다고 하면 '또 죽었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들릴 때도 있다. 나는 사실 자살한 그들을 두둔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불쌍하다 여기지도 않는다. 그저 그들 자신이 힘들고 괴로워서 찾은 돌파구일 뿐이다. 그들은 매우 이기적이라서 남은 사람 생각따위는 애초에 하지 않는다. 하지만 썩은 물에 고기를 넣어둔다고 그 고기가 온전히 살지 못하는 것처럼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살으라고 독촉할 수는 없는 일이고 또 그만큼 괴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보니, 세상은 생각했던 것처럼 화려하고 근사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미리 세상을 버렸다면 보지 못했을, 느끼지 못했을, 소소한 기쁨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거면 됐습니다. 애초에 나는 큰 것을 바란게 아니니까요. (p227) 작가의 말을 보고 또 한번 느낀다. 아무 대가없이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 먼저 내미는 손이 그들에게 절실할 것이라고. 그러면 내가 힘들어 할 그 어느 날에 그들이 내 손을 꼬옥 쥐어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