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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 - 최갑수 골목 산책
최갑수 글.사진 / 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최갑수 작가의 에세이는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이라는 작품을 처음으로 만났었다. 그 때 만났던 책은 사실 엄청난 감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유난히 우울에 빠져있었던 나를 더욱 더 감성적이 되게 만들었지만, 뭔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그래서 저자가 이번엔 '골목 산책'이라는 에세이로 찾아왔다는 소문을 듣고서도 나중에 도서관에서나 빌려봐야지, 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지인의 선물로 인해 품에 안고 대출 시간에 쫓기지 않으며 사진 하나, 하나 놓치지 않고 여유있게 볼 수 있음에 고마워하며 책을 펼쳤다. 몇 개의 사진을 먼저 선보여주고 '골목 산책 안내'라고 해서 차례가 있는데, '골목 산책'이라는 어감이 좋아서 계속 입 속에서 혀를 굴리며 되뇌었다. '골목'이라는 말을 듣거나 보면 나는 '뒷,골목'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살아왔고, 아직도 살고 있는 이 동네는 유난히 다른 곳보다 골목이 많은 편이고, 그로 인해 치뤄지는 많은 나쁜 사건들이 동반되기에 최적의 상태인 곳으로 손꼽히고 있고 , 혹여나 한번 발걸음을 할라치면 그 속에선 아직 젖내음이 나는 어린 아이들이 피는 담배냄새가 코를 박박 긁고 싶게 간지럽히며 내 콧털의 신경을 곧추세우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저자에겐 감성적으로 스며든 '골목'이라는 단어가 이 책을 읽기 전 , 내게는 어두운 면만을 제공하는 곳을 의미하기에 충분했다고 생각된다. 저자는 골목을 걸으며 귀가 팔랑팔랑거리는 단어들만을 초이스해서 우리에게 하나의 완성된 문장을 선보이고 있다. 그 아른아른거리는 문장들을 보며 이미 저자가 걸었던 골목들을 그의 발자취를 따라 나도 함께 걷게 된다면, 나 또한 그런 감성적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 계단'은 친절했고 사려 깊고 다정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그 계단'에는 계단을 만든 사람의 마음이 묻어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골목 여행의 매력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고작 계단 하나에서 마음을 느끼고 감동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 (p51) 계단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자체가 신기함을 넘어서 얼렁뚱땅하다고 생각되었다. 어느 곳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동네의 젊은이들도 한번쯤은 쉬었다 가야 할 계단에서 다른 이처럼 쉬기도 하고, 홍제동 개미마을의 높고 가팔라서 아찔했던 계단도 서슴지않고 조심스레 발을 옮기는 저자를 보며, 그 계단을 오르는 나를 상상하니 있는 짜증에 곁들여 없는 짜증까지 만들어내며 오르는 내가 상상되서 나도 모르게 미간을 있는대로 찌푸리게 됐다. 저자가 사소한 골목을 보며 늘어날대로 늘어난 감성을 글로서 쓸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저자는 현재 그런 곳에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동네 주민들이 그것으로써 느낄 힘겨움은 생각지않고 그것들에 또 다른 감정을 이입시켜 불어넣는 것은 위험하고 이기적인 처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보게 된다.
주민들은 카메라에 상당히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주민들의 이런 태도에 십분 공감이 간다. 자신들의 삶의 공간에 불쑥 들어와 한마디 양해도 구하지 않고 신기한 구경거리를 대하듯 다짜고짜 카메라부터 들이미는 이방인들의 무례가 달가울 리 없다. 자신들의 고단한 삶을 한낱 구경거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마냥 친절하게 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p298) 이제 얼마 남지않은 골목들이라서 사진 좀 찍는다 하는 사람들이나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를 벗어나 옛 것인 과거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자주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에겐 그들은 분명 달가운 손님보다는 무례한 침입자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밤골마을이나 태극도마을의 주민들이 특히 그랬다. 그렇다해도 낯선 이방인들에게 시원한 물 한잔, 막걸리 한 잔 대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저 개발이 되지 않는 동네에서 살고 있는 자신들의 처지를 원망하고 있을 뿐이다. "카메라 들고 놀이 삼아 오는 사람들이야 좋지. 하지만 여기서 살아봐. 얼마나 불편한지." (p111) 아직도 현 시대와 동떨어진 곳에서 우리들은 모르는 많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고 있는 그들을 불쌍히 여길 필요도 없고, 엄숙한 분위기를 풍길 필요도 없다지만, 잠시, 적어도 우리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전에, 가난해서, 과거에 묶여 살아서 문명의 빛을 볼 수 없는 그들의 삶을 존중해주며 예의를 갖추어야하는게 당연지사가 아닐까.
만약 당신이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밥이 아니라 사랑받고 혹은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싶다면 철길마을로 가보기를 권한다. 한나절 철길마을을 천천히 거닐어보시라.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햇빛이 들어오는 이 곳에 아침 일찍부터 고추를 내어놓고 빨래를 널어 말리는 것도, 국화를 심어놓은 화분을 문 앞으로 밀어놓는 것도, 벽 한쪽에 자전거를 비스듬이 기대어놓는 것도, 기차가 지나다니지 않는 철로 위에 자리를 펴고 나물을 말리는 것도, 밤이 되면 가로등 불빛이 켜지는 이유도, 불빛을 받은 철길이 필라멘토처럼 반짝거리는 것도, 창문 너머에서 텔레비전 소리와 아이 울음소리와 냄비 여닫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도 이 모든 일은 어쩌면 우리가 아직은 사랑받는 존재임을 알려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p84) 우리는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무엇인가로부터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한다. 하지만 그 사랑은 갈구해서 받아도 받아도 끝이 없는 사막과도 같은 목마름의 근원이다. 그런 우리에게 저자는 주변을 둘러보며 사랑받고 있음을 스스로가 깨닫길 원하고 있다. 우리는 너무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고 있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으나, 물질주의인 우리는 손에 잡히는 것만을 사랑의 징표 혹은 표본이라고 생각할 뿐, 소소한 것들에 대한 행복은 그저 당연한 것이라고만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요근래 내게 힘든 일이 닥쳤을 때 그들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기에 그 일을 해결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며, 믿었던 타인들도 나를 도와줄 수 없을거라 생각하니 결국 사람 개개인은 혼자라고 생각했던 요즘, 어쩌면 나는 이 문장들에 많은 것을 위로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매미가 울고 있는 것도, 온도가 30℃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더위에 시원한 얼음물을 마실 수 있다는 것도, 밤에는 시원한 바람이라는 손님이 찾아온다는 것도, 내가 사랑받는 존재임을 알려주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내가 보고 맡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그 모든 것이 나를 사랑해주는 것들이 된다.
이런 순간이 필요해. 마음에 드는 장소를 만나면 걸음의 속도를 늦추고 멈춰서는 일. 그저 바라보고, 감각하고, 즐기는 일. 이런 순간을 일주일에 십여 분 정도 만들어주는 것이 생에 대한 예의를 지키며 사는 것이 아닐까. (p224) 좀 더 편하게 살자며 바뀌는 나날이 발전하는 세상의 빠른 변화에 발맞추고 그것을 따라가며 나의 내면이 메말라가는 것도 모른 채 시속 150km/h로 주위를 쳐다볼 겨를도 없이 달리기만 한 것은 아닐까, 때로는 멈춰 서서 주위를 스-윽 둘러볼 때가 필요한 날이 있을텐데, 내 마음의 안식처를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줄여가고 있었다. 살면서 어느 순간은 몸을 꼿꼿이 피고 얼굴을 들어서 하늘을 바라볼 때도 필요하고, 허리를 접어서 땅을 굽어볼 때도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너무 잊고 살았던 모양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시골처럼 전부 골목길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집은 골목길을 쭉 따라와야만 들어갈 수 있기에 나는 퇴근길에 항상 골목길을 따라 집을 들어간다. 나는 항상 집에 가는 그 길을 걸으며 길이 도로처럼 아스팔트가 아니라서 구두굽이 빨리 닳는다던지, 바닥에 깔려있는 벽돌들이 화가 난 것마냥 삐족빼족 튀어나와 있어서 자주 넘어진다거나 하는 온갖 핑계란 핑계는 다 붙여서 그 길을 싫어했다. '골목'을 '뒷,골목'으로만 생각했던 내 고정관념을 '우리가 살아온 무시할 수 없는 세계'라고 정정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그런 마음을 안겨준 저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이번 책은 하나의 주제를 엮어 만들었을지라도 읽으면서 이곳도 이곳같고, 그곳도 이곳같은 구성이 아닌 독특하진 않더라도 조금은 색다르고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테마를 원했던 나에겐 좀 지루함을 안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