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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미나토 가나에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미나토 가나에의 세번째 작품인 '소녀'를 읽었다. 전작인 '고백'을 매우 재미있게 읽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그 뒤를 이은 '속죄'는 전작보다 깔끔하지 못한 느낌을 받았지만 페이지가 휙휙 넘어갈 정도로 흡입력 강하게 읽었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세번째 작품인 '소녀'가 나왔다. 나는 바로 구매해서 보지 않고, 좀 더 뒤에 지인에게 선물을 받아 읽게 되었는데, 읽기 전 평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치솟는 기대를 가까스로 바닥에 깔아버리고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보고 싶다―. 인간의 죽은 모습을. 아니, 사오리가 본 것이 시체라면 나는 죽는 그 순간을 지켜보고 싶다. 사오리가 베스트프렌드의 시체를 봤다면 나도 그만큼 가까운 누군가의. - 누가 있지? 아쓰코를 보니 나를 맹하니 바라보고만 있다. (p37) 친구의 죽음을 목격했다고 말하는 사오리를 보며 아쓰코와 유키는 '사람이 죽는 순간을 보고 싶어!' 라는 무서운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 사실 그것은 유키만의 생각이고 아쓰코는 그런 유키와 멀어지지 않기 위한 최후의 발악인 셈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여름방학 동안 아쓰코는 노인요양센터에서, 유키는 소아과 병동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다. 두 소녀는 '죽음'이라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지만, 그것은 쉽사리 두 소녀의 시야에 잡히질 않는다.
어떻게 사람이 죽는 순간을 보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는거지. 게다가 유키는 자신과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말 저 생각을 하고 있는 유키를 보며 가슴에서 답답함이 차올랐다. 정말 유키가 책 속에 있는 소녀가 아닌, 실제 소녀라면 멱살을 쥐어 마구 흔들어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유키가 책 속에 있는 소녀라는게 원통하고 분해서 짜증이 났다. 그래서 곧바로 책을 덮었고, 책을 읽지 않을 작정이었다. 이런 미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유키가 싫었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유키를 만들어낸 미나토 가나에가 싫었다. 겨우 40페이지도 채 못읽은 이 책은 벌써 몇 년전의 일을 상기시켰고, 나는 그날 밤 악몽을 꾸었다. 온 몸이 펄펄 끓는 물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뜨거웠고, 땀이 줄줄 흘렀다. 곧바로 선풍기를 켰고, 책을 폈다. 선풍기로 인해 싸늘하게 식어버린 땀때문에 온 몸에 오한이 서렸다. 선풍기를 끄고 몸을 달달 떨며 책을 읽었다. 두 소녀가 1인칭 시점을 번갈아 차지하며 독백형식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데 이를 미나토 가나에가 중심에 서서 둘의 확실한 경계선을 매듭짓고, 심리변화를 정확히 꿰뚫어보아 두 소녀의 감정변화를 신랄하게 그려내야하는데, 그것들의 부재를 느꼈다. 이 책에서 '나'는 세명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1인칭 시점은 2명의 '나'가 된다. '나'는 시점이 불필요하리만큼 쉽게, 자주 바뀌어서 속이 매스꺼움을 느꼈다. 읽다보면 점점 적응해가며 이제 누가 아쓰코고, 누가 유키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긴박감이 넘쳐나거나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켜야만 하는 진정제따위는 필요도 없는 유 - 하게 흘러가지만, 한번 읽은 것처럼 결말을 뻔히 드러내보이는 이 책의 클라이막스는 억지로 끼워맞춘 것 같다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다. 어디서 감흥을 얻고, 재미를 얻어야 할지를 모르겠던 책 중의 하나였다. 책을 다 읽었음에도 찝찝함이 남았다. 이 찝찝함을 무엇으로 말끔하게 씻어버려야 할지 의문이다. 책을 다 읽고 발작을 하듯 갑작스럽게 애린이가 보고 싶어졌다.
나도 처음에 전작에 못 미치는 이 책을 읽고서 전작들과 비교하며 신랄하게 비판하게 될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왜 사람들이 전작인 '고백'과 '속죄'를 들먹여가며 전작보다 별로다, 라는 식의 발언을 하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 책이 약간의 미스터리 성향을 띠고 있긴 하지만, 범인을 뒤쫓는 숨막히는 추리도 없기에 구태여 그에 따른 복선을 찾아낼 필요도 없는 띠지에 붙어있는 말 그대로 미나토 가나에는 <시크릿 청춘 소설>이라는 다른 양상으로 새로운 변화를 꾀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은 독자들은 그녀의 전작들과 비교하며 이번 작품을 깎아내리기에 급급하고, 그녀의 새로운 시도에는 아랑곳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미안하게도 그녀의 새로운 시도에 갈채는커녕 미소조차 지어보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