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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의 아내 1
이미강 지음 / 가하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요즘 감정이 매우 매말라가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이럴 때면 로맨스 소설을 꼭 읽어줘야지, 생각하지만, 로맨스 소설을 읽을 때면 누가 묻지 않아도 얼굴이 빨개져서는 이런저런 핑계거리를 대며 '그래서 내가 로맨스 소설을 읽는거야.'라고 정당화시키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그러니 나는 어떤 로맨스가 좋은 로맨스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러다가 눈에 띈 '푸른 수염의 아내'라는 책제목을 가진 이미강 작가의 신작. 나는 사실 이미강 작가는 처음 들어본다. 작가는 이미 '늑대의 정령'이라는 전작으로 인해 알려진 상태로 보였기 때문에 내가 아마 로맨스를 매우 좋아하는 팬이었다면, 당연히 알 수 있는 그런 작가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푸른 수염의 아내'라는 이 책이 이미강 작가의 첫 작품이기에 너무 기대를 하지 않고, 혹은 기대를 가득 품고, 혹은 무미건조한 상태로 그녀의 책을 집어들었다. 사실 몇달 전, 혹은 몇일 전에 읽었던 '겨울 신부'라는 책을 읽으며 미친듯이 히스테리를 부렸기에, (그래서 그 책은 서평을 쓰지도 않고 이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제발 그런 책만은 아니길 간절히 바라며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기 위해 처음 집어든 것은 친구의 웨딩 촬영에 도와주러 갔을 때였다. 친구의 웨딩 드레스를 초이스해주고 나니, 화장고치고, 머릴 다시 매만지는데 족히 3,40분이 걸렸다. 그래서 가져오길 잘했지. 하며 손바닥을 쫙 펴고 책을 얹어놓으면 한 손에 쏙 들어와 기분을 좋게 하는 이 책을 앉아서 한 장, 두 장 읽기 시작했다.
장순영이라는 여자는 낮에는 청소부, 저녁에는 편의점 알바생으로 살고 있는 여자다. 그런 여자에게 강도우가 우연처럼 들어서게 된다. 그녀의 말투에서 행동에서 고학력임을 느낀 그는 슬슬 떠보지만 그녀는 경계를 정하며 아닌 것은 아니라는 듯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딸의 출산을 도와주고자 그녀에게 청소를 맡겼던 아줌마가 돌아오자 그녀는 낮의 일자리를 잃게 된다. 게다가 편의점 사장에게 혼이 나고 있는 그녀를 구해주겠다는 일념으로 들어서서 그녀의 저녁의 파트타임까지 잃게 만든다. 그런 그가 미안한 마음에 좀 더 나은 자리를 찾아서 그녀에게 내밀자 그녀는 뛸 듯이 좋아하면서 등본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에 대번에 거절을 하는 모습을 보며 그는 그녀를 조금씩 의심하기 시작한다. 도망자? 수배자? 도대체 그녀의 정체는? …… 그러다가 그는 그녀를 자신의 가정부로 고용하게 되는데…… 그러다가 그녀는 도우의 아파트에서 신세를 지게 되고, 결국 도우의 진심 앞에서 무력해진 순영은 본래의 이미노로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도우를 위해 1권의 끝에서 그의 곁을 떠나려고 준비를 한다. 하지만 떠나는 것은 혼자가 아닌 둘. 본래 둘이 왔으니 떠나는 것도 둘이어야 마땅한 것. 언급되지 않은 또 한 명의 정체는?
사실 여기까지가 1권 90p까지의 내용이다. 더 이상 말하면 내가 이 책을 읽으려고 준비하는 모든 독자들의 재미도 감동도 떨어뜨릴게 뻔하기 때문에 모든 내용을 쓰기가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쓴 이 책의 요약본 8줄은 이 책을 읽는데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기에 이 책의 제대로 된 묘미를 알고 싶다면 책을 한번쯤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하지만 본래 로맨스는 로맨스다워야 한다 라는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 책을 읽는데에 약간의 무리가 따를지도 모르겠다. 바로 내가 그랬으니까. 로맨스를 읽으며 이렇게 화가 치민 적도 없었거니와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지도 않았다. 그들의 사랑이 예뻐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아마 그 두근두근거림은 sos 24시를 보는 것과 비슷한 감정일거외다. 난 이렇게 무서운 로맨스는 처음이다. 읽어본 사람은 내 마음에 동요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한 편을 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질질 끌었던 것에 비해 결말이 흐지부지하게 끝난 것만 같아서 마음이 편치가 않다. 정말 사람의 마음이 한 순간에 그렇게 바뀔 수 있을까? 자신의 아킬레스건의 말 한 마디에? 음, 과연. 좀 더 탄탄한 구성의 결말을 지닌 그녀의 작품이 사뭇 기대가 된다. 그녀의 전작 또한 흥미가 일었으나, 흠뻑은 아니라 하더라도 내 마음을 되돌아보게 한 촉촉해진 감정으로 만족하기에 당분간 로맨스는 안녕,해야겠다.
신경 쓰인다는 말은 잘못 나온 말이었다. 단지 그저 조금 호기심이 일었을 뿐이었다. 항상 침대 머리맡에 두었던 책처럼 다음 장이 궁금해서 미치겠는, 그냥 그런 호기심. (p72) 도우가 느끼는 순영 아니, 미노에 대한 감정이 독자가 그녀에게 가지는 감정과도 동한다. 그녀를 더욱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커져가고, 그녀를 다 안 것 같은 안도감을 내쉴 때 즈음, 뒷통수를 맞았음에도 관자놀이가 아파오고, 까도까도 다 까지 않은 양파와도 같음에 결국 답답함과 짜증이 하늘을 치솟지만, 그럼에도 책을 덮을 수 없게 만들며, 결국은 끝 페이지까지 숨도 쉬지 못하고 내달리게 만드는 이미강 작가에 감탄하며, 그렇게 이 책을 읽었다. 오랜만에 읽은 로맨스 소설을 잘 골랐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로맨스 소설을 읽으면 분명 그들의 사랑을 부러워하고, 눈을 흘길 정도로 시샘하던 나였는데, 이 책의 도우와 미노는 그런 감정보다 가슴아픔과 애달픔이 더 컸다. 다 읽고 나서 그들의 사랑을 부러워하기보다 '다행이다'라는 말만 뇌까렸으니 이미강 작가도 쓰면서 그들의 사랑을 쓰면서도 가슴이 얼마나 짓물렀을지. 그들의 사랑을 완성시키고 가장 기뻐한 것은 이미강 작가가 아닐까 싶다.
그래, 그의 말대로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자. 과거는 떠올리지도 말고 미래 때문에 두려워 움츠러들지도 말자. 지금의 감정에만 충실하자. 마음이 가는 대로 내버려두자.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그를 사랑하자. 나중에 헤어져서도 후회 없게 그리고 그가 나와 함께했던 이 순간만큼은 절대 잊지 못하게……. (p197) 또 한번 나와 그의 관계를 이 문장을 읽으며 정리했다. 그래,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자고. 항상 나에게 주문을 외듯 하는 말이지만, 아직도 힘겹다. 나는 내일을 돌아보지 않았는데 벌써 와서 날 기다리고 있을까봐. 도대체 이런 불안의 근원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싶다. 늘 언제나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주문처럼 외는 말이지만, 또 잊고 어느샌가 불안에 떤다. 고맙다, 작가에게. 내 머릿 속 한 귀퉁이에 까마귀 고기를 먹듯 잊고 사는 내게 당연한 말을 다시 한번 몇일 동안은 잊지 못하게 새겨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