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의 머리일까?
차무진 지음 / 끌레마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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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를 기반으로 한 팩션을 좋아한다. 실제 존재하기 때문에 간과할 수 없는 역사의 산물을 아울러 작가의 상상력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달 첫 팩션으로 고른 차무진 작가의 첫 작품인 <김유신의 머리일까?>는 매우 도발적이고 위험하다. 경주 선도산 자락에 위치한 각간묘의 주인이 김인문이냐, 김유신이냐에 대해서 여전히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소재를 갖다썼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역사를 배우며 각간묘에 대한 것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더라도 언뜻 들었었던 것도 같다. 생각이 뚜렷하게 나지 않는 걸 보니 그 시간에 열심히 꾸벅꾸벅 졸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자의 소재가 매우 참신하다는 것을 기반으로 해서 이 책에 관심을 집중시켰었고, 드디어 품에 들어와 한껏 여유를 부리며 읽어야지 하며 첫 장을 넘겼다.

 

 

 

경주의 왕릉 마을에서 1932년 의문의 관이 발견되는데, 관 속에는 몸뚱이는 없고 미라의 머리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철저히 비누화가 진행되고 있어서 썩지않고 생생한 모습을 하고 있다. 천년 전의 왕 혹은 장군일 것이라는 근거없는 의문만이 난무하는 가운데 법민과 겐지가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추리해나가게 된다. 그러던 중 김유신의 묘를 지키는 봉우당의 차녀이자 법민의 부인인 수영이 머리마저 잘린 채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된다. 그런데 진범이 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의 묘를 지키는 유곡채에 정신질환을 앓고있는 장남(법민의 형)이라고 단정짓게 되지만, 그 또한 찝찝함이 남아서 법민과 겐지는 함께 추리해가기 시작하는데……

 

 

 

저자는 책을 빌려 가야왕족 후손인 김유신이 가야인을 위해 쿠데타를 일으켜 살해당했기 때문이라고 삼국유사를 거론하며 자신의 입지를 늘려나가려고 꾀한다. 하지만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는 삼국유사뿐 그 어디도 그의 주장을 그럴싸하게 대변해주진 못한다. 따라서 그의 주장은 그 주장을 마지막으로 즉각 얼어버리고 말았다. 한낱 자신의 주장이라 할지라도 조금은 중립적인 입장에 서서 객관적이고 냉철한 눈으로 뚫어봐야한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랬다면 저런 가설을 생각해낸 저자의 머릿 속에 몇개의 가설이 조금 더 존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쉬움이 가장 컸던 것 중 하나는 p107-113만 보더라도 삼국유사의 입지 또한 늘려나가며 근거를 제시하는 듯 하지만, 그것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저자가 삼국유사를 읽고 느낀점을 쓰는 것 같은 느낌 또한 안겨주기에 충분했고, 그러면서 삼국유사에만 너무 의존해있는 저자를 보며 그곳에서 해방시켜주고 싶은 충동감까지 일었다고 말한다면 독자로서는 매우 위험한 발언을 한 셈이다.

 

 

 

이 소설의 핵심을 파악하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사실 핵심을 파악하는 것은 읽으면서 자연스레 눈으로 익히고 손가락으로 전율을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이 작품은 사실 읽은 후인 지금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핵심이 불분명하다는 것은 독자가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거나 애초에 핵심자체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 그런 일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 저자가 간과한 것 중 하나는 독자의 시선을 분산시켰다는 것에 있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시선을 미라에 집중시켜야 하는 것인지, 풍수에 집중시켜야하는 것인지, 것도 아니면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한 미스터리에 집중해야하는 것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미라의 머리에만 집중시키자니 뒤이어 또 하나의 신(新)머리가 등장한다. 그럼으로써 독자는 어느 것에 집중을 시켜야하는 것인지 혼란이 오고, 그러다가 쭉쭉 읽는다면 기존에 등장했던 미라의 머리는 자연스레 독자의 머릿 속에서 뿌얘지는 셈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미라 머리의 등장은 애초에 솜털처럼 가벼워지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고, 자연스레 독자는 책의 제목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된다. 그렇다고 풍수에 집중시키자니 그것도 여간 피곤한 것이 아니었다. 중간중간 작가가 던지는 말들은 풍수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 같으면서도 독자의 이목을 잡아채지 못했던 것이 흠이었다. 게다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맥을 끊는 것이 독자로서는 피곤함을 자아냈고, 같은 말을 다른 말로 맞바꾸며 번복하는 현상도 느낌과 풍수에 대한 지식의 한계를 느끼면서 두통을 유발했다. 그래서 결국은 어쩔 수 없다,라는 생각으로 마지막까지 이끌어나간 미스터리에 집중시키려고 했더니 이게 왠걸. 많은 사건을 벌려놓고 저자는 끝까지 뒷심을 발휘하지 못했다. 한계가 있었다는 셈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 많은걸 털끝만큼의 실마리를 저자 자신이 꽁꽁 쥐고 있으면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독자인 내가 조바심을 치며 읽었으나, 읽고 난 후에는 머릿 속이 멍해졌고 맥이 풀렸다. 저자는 트릭에 속았다는 것이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에겐 트릭 자체가 없었던 듯 보인다. -내가 잘 해석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저자는 안쓰럽게도 이야기를 마무리지어야했는데 다른 방향으론 미처 생각지못했던 것일까, 한 사람의 입으로 줄줄 내뱉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아빠가 아이에게 동화를 들려줄 때 아무런 감흥없이 구연이 아닌 활자를 읽어주기만 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과 같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아이도 흥이 나질 않고, 결국은 아빠와 아이 둘 다 재미없는 것을 억지로 붙들고 있는 셈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범인을 추격할 때에도 작가가 꼭 쥐고 놓지않는 그것들때문에 독자들은 읽으며 이 사람일 것이다, 라고 예측만 할 뿐이지 이렇다 할 실마리가 없어서 근거도 없이 예측만 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저자가 독자를 위해 조금 더 실마리를 풀어주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까지 아쉬운 소리를 하게 생겼다. 내가 이 책에 끌렸던 이유 중 하나는 위험한 소재였는데, 그것을 제대로 살렸더라면…하는 말줄임표가 자꾸만 떠나질 않는다. 그러나 차무진 작가는 대한민국의 작가로 발돋움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열어나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안게 해주었다. 아직은 신인 작가라는 타이틀로 어깨에 달린 짐들이 버거울 수도 있을텐데 자꾸만 아쉬운 소리만을 내뱉어서 기가 죽으면 어쩌나 걱정도 된다. 혹여라도 다음 작품이 출간된다면 잊지 않고 챙겨보고 싶긴하다. 독자라는 이름으로 한 권의 책으로 한 작가를 가늠한다는 것은 건방진 처사이기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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