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시간과공간사 클래식 2
버지니아 울프 지음, 손현주 옮김 / 시간과공간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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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나는 언제, 어떻게 완성될 수 있을까.




난 항상 ‘내 방’을 그리워했다. 내가 어릴 때는 거실을 제외한 방이 두 개뿐이어서 방에 2층 침대를 두고 동생과 함께 써야 했고, 그 이후에는 우리 집에서 함께 살게 된 스무 살의 친척 언니와 함께 써야만 했다. 그리고 비로소 고등학생 때 내 방이 생겼다. 어쩌면 중학생 때일지도 모르겠고. 그때의 나이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은 너무나도 확실했다. 아늑하다는 느낌.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내 방은 생겼지만, 좀 더 근사한 내 방이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 것이다. 나는 그 방에서 결혼 전까지 기거했다.




기혼이 된 지금에도 내 방이 따로 있진 않다. 방은 총 3개. 부부 침실, TV방, 옷방. TV를 거실로 빼내는 대신 방으로 들였고 대신 책장을 거실로 내놓았다. 그러다보니 거실은 온통 내 공간이 되었다. 그러니까 내게 필요한 것은, 내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책을 읽고 영상을 보고 일기를 쓰는 공간. 딱 내가 바라던 공간이었다. 프라이빗하게 방을 가지게 되었다면 더 좋았을까? 그런 방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어떤 느낌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 내 방을 가질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148. 그녀에게 자기만의 방과 매년 500파운드의 소득을 주고, 그녀가 마음껏 생각한 바를 말하게 하며, 지금 써넣은 것들의 절반쯤은 덜어내게 한다면, 머지 않아 그녀는 더 훌륭한 책을 써낼 거예요.


울프는 ‘여성과 소설’을 주제로 한 강연을 준비하며 적은 글을 책으로 펴냈다. 과거의 여성들은 자유가 제한되었다. 경제적인 독립은 꿈도 꾸지 못했고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조차 숨겨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그렇다면 역으로 지금은 자유로운가에 대해 물어야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조금 다르다. 스스로 제한된 자유의 빗장을 풀어내었는가를 물어야한다. 자기만의 방은 말 그대로 혼자서 사유할 수 있는 방 혹은 공간을 얘기하겠지만 다른 말로는 시간을 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그러니까, 누구에게나 공평한 그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물어야한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과거에 비해서 현재는 여성의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인한 단절을 제외할 수는 없지만 그것 또한 모든 여성이 그런 것은 아니니까.




이번에 읽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단순하게 페미니즘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만일 그렇게 치부된다면 너무 억울할 것만 같다. 책에서는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없고 경제적 독립이 어려운 여성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결국은 여성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순되는 것은 1928년에 연 500파운드라면 당시 7000만 원 전후라고 하는데, 그건 내가 한 달 꼬박 일을 해서 받는 급여와 맞먹는다. 그런데 이 금액을 일하지 않고도 꼬박 들어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한다는걸까. 이 부분은 실제로 버지니아 울프가 어린 나이에 고모인 캐럴라인 에밀리아 스티븐으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기에 본인과 다를 수 있는 타인의 처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본인은 어쩌다보니 출발선 앞에 서있게 되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영영 주어지지 않는 출발선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






177. 우리가 한 세기쯤 더 살아간다면ㅡ개별적인 존재로서 영위하는 작은 삶이 아니라, 진정한 삶인 ‘공통의 삶’을 말하는 거예요ㅡ그리고 우리 각자가 일 년에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된다면, 우리가 자유를 습관화하고 생각하는 그대로를 써 내려갈 용기를 갖게 된다면, 우리가 공동 거실에서 조금은 탈출하여 인간의 서로의 관계 속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재’와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게 된다면, 그리하여 하늘과 나무 혹은 그 무엇이든 사물 자체를 대면하게 된다면, 그 누구도 우리 시야를 가로막아서는 안 되기에 밀턴의 도깨비 너머를 바라게 된다면, 의지할 팔 따위는 없으며 우리가 홀로 걷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 관계는 오직 남성과 여성의 세계만이 아니라 ‘실재의 세계’와 맺어져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그때 비로소 기회는 찾아올 테고, 셰익스피어의 누이였던 그 죽은 시인은 자신이 수없이 내려놓았던 그 육신을 다시 입게 될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가 이 책에서 얻어내야하는 것은, 나를 위한 시간을 어떤 공간에서 소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스스로를 좀 더 알기 위해서는 관찰해야하고 사유해야하고 써야한다. 마지막으로 경제적인 자유에 대해 덧붙이자면 울프는 기회를 부여받았지만, 나는 기회를 일궈내고 있다. 이게 울프가 그토록 궁금해하던 100년 후의 한 여성의 모습인데, 날 보고 그녀는 뭐라고 말하고 싶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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