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크아웃 11
최은영 지음, 손은경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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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에 나오는 몫은 뭘까. 제 몫을 하다는 말이 생각나고 자신한테 돌아오는 양도 생각나. 이 소설에서는 제 몫을 다하다 같기도 한데, 나도 잘 모르겠어. 그렇다면 자기 할 일이라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 내가 늘 제목을 깊이 생각해 보는 건 아니지만. 이번에는 뭘까 생각해 봤는데 앞에서 말한 게 맞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여기 나오는 세 사람은 대학생 때 교지 편집부에서 만났어. 글 쓰는 사람으로 해야 할 몫도 생각나. 교지 편집부 사람은 다 사회 문제를 생각하고 글을 쓰는 걸까. 그런 글 말고 다른 글도 쓸 수 있잖아. 대학생이어서 그런 건가. 대학생은 좀더 사회에 관심을 갖기는 하지. 대학을 나온 뒤에는 먹고 사는 일에 바빠서 그러지 못하지만. 모두 그런 건 아니겠지만. 운동권 사람 나중 이야기를 보면 그런 게 있잖아.

 

 사회 문제에서도 여성 문제를 생각하는 느낌이 들었어. 세 사람이 여성이어설까. 같은 여성이라 해도 여성한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다 알지는 못할 거야. 여성은 참아야 한다는 말을 듣기도 해. 오랫동안 남편한테 맞다가 남편을 죽인 사람도 있었지. 예전에 나도 그런 거 뉴스에서 봤어. 이 소설에 나오는 남성은 남편한테 맞았다고 죽여야 할까 했는데,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어. 맞는 건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지. 남성은 같은 남성한테 맞기도 하겠지만. 그런 말은 맞아보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어. 그리고 때리기만 했겠어. 폭력스런 말도 많이 했을 거야. 맞거나 안 좋은 말을 자꾸 듣다보면 거기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하더군. 세 사람 해진, 희영, 한학년 선배인 윤정 가운데 남자한테 맞은 사람은 없어.

 

 책을 보다 보니 인상 깊은 말이 있었어. 미국 사람이 아닌 한국 사람이 기지촌(해방 뒤 한국에 주둔한 미군 부대 가까이에 생긴 마을) 여성을 죽였다면 화를 냈겠냐는 말.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듯해. 미국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여성을 죽이면 화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 같은 한국 사람이 그랬다면 남자는 그걸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아. 희영은 대학을 마치고 기지촌에서 활동하게 돼. 난 해진과 희영이 쓴 글 보고 싶기도 했어. 단편이니 그것까지 넣기는 힘들었겠지. 두 사람이 쓴 글과 비슷한 글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해진은 희영이 쓰는 글을 부럽게 여겼어. 자신은 희영처럼 쓸 수 없다고. 그래도 교지 편집부에 끝까지 남은 사람은 해진이야.

 

 한학년 선배인 정윤은 공부를 하다 결혼하고 자기 공부는 그만두고 남편이 공부하는 미국으로 함께 가. 해진은 그걸 아쉽게 여겼어. 해진은 정윤 남편보다 정윤이 공부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어. 이런 일도 많겠지. 남성이어서 공부하고 여성이어서 그만두는 일. 그런데 정윤과 희영한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저 내 마음대로 생각할 수밖에 없군. 그게 맞을지 아닐지 잘 모르겠어. 어쩌면 잠시 동안의 감정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지. 세 사람에서 한 사람 희영은 병으로 죽어. 해진이 그 소식을 여러 사람한테 알리고 정윤한테도 알렸는데 정윤은 별 말 하지 않아. 그래도 해진을 만났을 때 정윤은 슬퍼한 것 같아. 두 사람이 함께 슬퍼한 걸까.

 

 짧고 작은 책인데 읽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아 힘들었는데 어떻게든 썼군. 쓰기는 했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어. 여성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 그저 세 사람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해. 세 사람이 여성인 거지. 글이라는 것도 조금 생각하게 했어. 글에 힘이 있기는 해도 글만으로는 안 된다는 거. 그래서 난 내가 하지 못하는 건 잘 쓰지 않아. 해야 할 텐데 하는 건 가끔 쓰지만. 자신이 할 일을 잘 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

 

 

 

희선

 

 

 

 

☆―

 

 글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건지 모르겠어. 정말 그런가…… 내가 여기서 언니들이랑 밥하고 청소하고 애들 보는 일보다 글 쓰는 게 숭고한 일인가,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누가 내게 물으면 난 잘 모르겠다고 답할 것 같아.

 

 희영은 열어놓은 창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 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들. 편집부 할 때, 나는 어느 정도까지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 내가 그랬다는거야. 다른 사람들은 달랐겠지만.  (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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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과 밤엔 서늘한 공기

뜨거운 낮이 가고

시원한 밤이 오면

조용히 노래하는 풀벌레

빨갛게

노랗게 익는 열매

그리고

새파란 하늘

 

가을은

소리없이 스며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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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갑자기 찾아온 헤어짐에

마지막 인사도 못했습니다

 

미안해요

고마워요

늘 잘 지내세요

 

 

 

2

 

어떤 만남이든

마지막은 찾아옵니다

 

한참 지나고 나서

아, 그게 마지막이었구나

하는 날도 있겠지요

 

언제나

처음이자

마지막인 듯

인사해야겠어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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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오시겠다는 전갈 문학동네 시인선 110
한영옥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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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는 시인이 많다고 합니다. 별처럼 많은 시인이라 말해도 괜찮을까요. 아니 시인이 별보다 적겠습니다. 시나 시집을 만나지 못해도 우연히 시인 이름을 듣기도 하는데 이번에 본 시집을 쓴 시인 한영옥은 처음 알았습니다. 1973년 《현대시학》에 시를 발표하고 시인이 되었군요. 1973년이라니 꽤 오래전이네요. 그래서 제가 잘 몰랐을지도. 문학동네 시집 뒤에는 시인이 언제 태어났는지가 적혀있기도 한데, 지금 생각하니 처음에 1973년을 시인이 태어난 해로 생각했군요. 지금 한영옥 시인이 1973년에 시인이 되었다는 걸 알고 시와 시인이 조금 이어졌습니다. 제가 글을 보고 그 글 쓴 사람 나이를 잘 알아보는 건 아니지만, 시를 보면서 1973년생 시인이 이런 시를 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처음에 제대로 봤다면 시를 더 잘 봤을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일은 바라도 그렇게 되지 않겠지만, 저는 슬픔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정말 이건 어려운 일이겠네요. 사람이 사는 것 자체가 슬픈 일이기도 한데. 시인은 슬픔이 올 테면 와라 하더군요. 슬픔이 온다고 말하고 온다면 잘 대비하고 견딜 수 있을지.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다 중요하겠지요. 슬픔을 아는 사람이 슬픈 사람 마음을 알잖아요. 슬픈 사람 마음을 다 알지 못하겠지만. 남한테는 별거 아닌 것도 슬프게 여기는 건 어떨까요. 어쩐지 제가 그런 듯합니다. 어쩌면 그건 슬픔이 아닌 다른 감정일지도 모를 텐데 그걸 잘 몰라서 뭐든 ‘슬프다’ 여기는 건지도. ‘슬픔 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한 허수경 시인 첫번째 시집이 생각나는군요. 이 말을 생각하니 슬픔을 안 좋게만 여기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자신을 자라게 해주는 것이니. 그래서 한영옥은 슬픔한테 올 테면 와라 했을까요.

 

 

 

비겁하게 달라붙는 하루살이 같은 잡생각들

때려잡겠다고 파리채 잡고 이러저리 뛴다

동지도 지나고 12월이 다 가도록 함초롬 피어

애련을 돋우는 분홍, 보라 과꽃을 쳐다보며

애련에나 깊이 물들어보려 하는데 어쩌자고

이깟 것들이나 달라붙어 치근덕거리는 것인지

아예 애련에 물들기는 틀렸다는 쓸쓸함으로

오래전 접어준 책갈피나 무심히 펼쳐 보는데

레비나스, 타인을 존중하라고, 이 말 저 말로

어깨 두드려준 그에 대하여 “극도의 조심성과

신중함, 그리고 겸허한 태도를 유지한 사람”

이라고 평전은 전해주고 있었다, 그렇지, 이런

사람이어야지, 한순간 마음먹어 든든해지는데

유지해야지, 유지해야지 애를 써대는 중인데

이깟 것들 아직 휘몰아치는 냉랭한 11월이여

애련한 과꽃 송이 다 스러지도록 눈이나 모셔라

이깟 것들 아주 기어들어가도록 펑펑 모시거라.

 

-<이깟 것들>, 19쪽

 

 

 

 가끔 아니 자주 쓸데없는 생각이 몰려오기도 합니다. 제가 하루 동안 가장 많이 하는 게 쓸데없는 생각이군요. 책을 볼 때는 이야기에 빠져들기는 해도, 틈이 생기면 또 해요. 그런 생각 안 하면 좋을 텐데, 해 봤자 답은 나오지 않으니까요. 제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을 많이도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고 ‘이깟 것들’이라 말할 수 없어요. 시간이 흐르면 좀 나아질지. 어쩐지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이 시에서 말하는 건 사람 때문에 하는 생각일까요. 이 시집에 실린 시에는 사람 관계를 말하는 시가 조금 눈에 띄기도 합니다. 저만 그렇게 여기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닌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걸 알고 시인은 잠시 눈물 흘리기도 해요. 잘 모르는 사람이어도 그런 마음 들기도 하겠지요.

 

 

 

어제의 괴로움 짓눌러주는

오늘의 괴로움이 고마워

채 물 마르지 않은 수저를

또 들어올린다

 

밥 많이 먹으며

오늘의 괴로움도 대충

짓눌러버릴 수 있으니

배고픔이 여간 고맙지 않아

 

내일의 괴로움이

못다 쓸려 내려간

오늘치 져다 나를 것이니

내일이 어서 왔으면,

 

일찍 잠자리에 든다

자고 일어나는 일이

여간 고맙지 않아

 

봄 여름 가을 없이

둘레둘레 피어주는 꽃도

여간 고맙지 않았으나.

 

-<여간 고맙지 않아>, 51쪽

 

 

 

 고맙다는 말이 있어서 긍정스런 시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여간 고맙지 않았으나.’로 끝나는군요. 고맙기는 하지만 다음에는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요. 어제 괴로움을 오늘 괴로움이 눌러준다니, 그건 늘 괴로운 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니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괴로움이 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겠지요. 날이 갈수록 괴로움이 덜하면 좋겠지만, 언젠가는 그게 반대가 되지 않을까요. 날이 갈수록 더 괴로운. 제가 생각한 건 몸의 괴로움이군요. 몸이 괴로운 때가 온다면 둘레에 핀 꽃이나 나무를 보고 그걸 달래야겠습니다.

 

 여기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뚜렷하게 말하기 어려워도, 그냥 어떤 느낌이 들기도 하는 시가 많습니다. 그저 느끼는 것도 괜찮겠지요. 이 말 여러 번 했네요. 옮기려다 옮기지 않은 시 하나에는 이런저런 걱정거리를 모아두고 차를 마시는 모습이 나오기도 해요. 그렇게 하면 걱정거리가 조금 덜할 듯하네요. 살살 달래는 건가. 그럴지도. 이건 그저 제 생각일 뿐입니다. 자신없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다 몰라도 가끔 시 만나는 거 좋네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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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계는 어제까지만 해도 잘 움직였는데, 한번 멈추고 더는 움직이지 않네 마치 멈추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사이처럼 시계는 움직이지 않네

 

 다시 시계를 달래 보았지 약을 갈고 시간을 맞추었지만 시계는 조금 움직이다 멈추었네 이젠 움직이기보다 쉬고 싶은 건가

 

 약을 갈고

 고장난 곳을 고치면

 다시 움직이는 것도 있지만

 약을 갈아도

 고쳐도

 움직이지 않는 것도 있다

 

 목숨이 다해서

 멈춘 시계는

 쉬게 해주자

 억지로 움직이게 해봤자

 다시 멈출 거다

 

 끝난 사이도

 되돌릴 수 없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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