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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75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9월
평점 :
앞부분을 조금 읽다가 머릿속에 잘 남지 않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보았다. 그렇게 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만약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죽 읽고,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더 봤다면 많이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알아들었을지도 모를 텐데. 책은 한번밖에 못 봤다. 중간부터는 아예 길을 잃은 것 같다. 잘 읽지도 않았으면서 이렇게 쓰다니, 며칠전에도 그랬는데. 그래도 그건 조금 나았다. 이건 내 생각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책이든 재미있게 잘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려운 일이다. 가즈오 이시구로 책은 이번이 세번째인데 예전에 본 두권도 쉽지 않았다. 두권 봤으니 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걸 보려 한 것 같다. 노벨문학상 받은 영향도 있겠다. 이창래 책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이 책을 보다보니 이창래가 떠올랐다. 두 사람 공통점은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살지 않고 영어로 글을 쓰는 것 정도인데, 왜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본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 두권에는 일본 사람이 나오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일본 사람이 나온다. 이런 게 처음은 아니겠구나. 가즈오 이시구로는 《창백한 언덕 풍경》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남아 있는 나날》 세권을 같은 책으로 생각한단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살지 않아도 작가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아주 잊지 않는 것 같다. 이창래도 다르지 않나 싶다. 줌파 라히리도. 여기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마스지 오노(일본 식으로 쓰면 오노 마스지)는 화가로 한 때 이름이 잘 알려졌다. 예술가는 정치 문제와 멀 것 같기도 하지만 멀지 않기도 하다. 마스지 오노는 전쟁 때 일왕을 찬양하는 그림을 그렸다. 오노가 정치 문제와 상관없이 그림을 그렸다면 이런 소설은 나오지 않았겠다.
책을 보면서 생각한 건 내가 만약 일본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거였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난 전쟁을 반대하고 일왕이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아마 난 전쟁을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고 그냥 살았을 것 같다. 이것도 그렇게 좋은 건 아닐 테지만 그때 그런 사람 많았을 것 같다. 전쟁이 끝나고는 세상이 바뀌었다. 전쟁을 일으킨 사람을 안 좋게 보고 책임을 지게 했다. 마스지 오노는 자기 경력 때문에 둘째딸 노리코가 결혼하지 못할까봐 예전 친구를 찾아간다. 자기 이야기를 묻는 사람이 있으면 잘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오노가 그렇게 한 건 첫째딸 세쓰코가 말해서다. 그런데 뒤에서 세쓰코는 자신은 그런 말한 적 없고 둘째딸이 결혼한 집안에서는 마스지 오노 경력을 몰랐다고 말한다. 누구 말이 맞는 걸까. 앞에 나온 건 마스지 오노가 생각한 거고 뒤에 나온 건 실제 일어난 일일까. 알 수 없구나.
사람은 자기 생각이 옳다고 믿을 수도 있겠지. 남이 봤을 때는 틀린 것이라 해도. 한국도 그럴 때가 있었는데(지금이라고 아주 달라진 건 아닐지도), 일본은 나라에 충성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건 일본만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느 나라든 국민한테 나라에 좋은 일을 하라고 할지도. 하지만 나라가 다 옳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만 생각하지 않고 무엇이 옳은지 늘 생각하면 나을 것 같다. 마스지 오노가 예전에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 말하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 듯하다. 둘째딸 결혼이 잘되기를 바라고 그런 말을 했다. 그런 모습이 조금 우습게 보였다. 제대로 못 봤다면서 이런 말을. 전쟁이 끝난 뒤 일본에는 마스지 오노 같은 사람 많지 않았을까.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든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