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나이트 다이버
덴도 아라타 지음, 송태욱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여기저기에서 사건 사고로 사람이 죽고 자연재해로 더 많은 사람이 죽는다. 그런 일이 일어나도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간다. 큰일이 일어난 다음 날은 전날과는 아주 다른 하늘이다. 그런 하늘을 보면 마치 너와 난 아무 상관없어 하는 것 같다. 네가 슬퍼한들 난 내 일을 한다고 자연은 말한다. 사람은 그런 세상을 자연을 원망해도 마음은 괜찮지 않다. 그 다음에 사람은 어떻게 할까. 자신을 탓할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은 죽고 자신은 살았다는 죄책감. 그런 건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나을까. 그 아픔 죄책감은 평생 갈 것 같다. 괴로운 일을 겪고도 사람은 살아가기는 한다. 산 사람은 자기 마음과 달리 몸이 살려고 하지 않을까. 가까운 사람이 죽어서 아무리 슬퍼도 사람은 목이 마르고 때가 되면 배가 고프다. 무엇인가를 보고 재미있어서 웃기도 하고 철이 바뀌면 저도 모르게 희망을 가질 거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걸 힘들게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

 

 어느새 시간이 많이 지났다. 2011년 3월 11일에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사고가 일어났다. 지진 때문에 일어난 해일에 마을과 사람이 휩쓸려 갔다. 일본은 지진이 자주 일어나서 지진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거의 다 알 거다. 하지만 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난 지진은 피하기 힘들었겠지. 어떤 사람은 마을 동사무소 같은 데서 마을 사람들한테 빨리 높은 곳으로 피하라는 방송을 하고, 그 사람은 해일에 휩쓸려 죽었다. 마을은 해일에 휩쓸렸지만 많은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그렇게 살았다 해도 해일이 휩쓸고 간 마을을 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했을 것 같다.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에는 아직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많을 거다. 엄청난 자연재해 앞에서 사람은 아주 힘이 없다. 그래도 왜 자신한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싱각하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 소설 배경은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고 네해가 지난 후쿠시마다. 2011년 3월 11일 세나 슈사쿠는 허리가 아파 집에서 쉬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은 배를 고치러 바닷가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슈사쿠는 형이 자기 대신 어머니 아버지와 나간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날 피해를 당해 아내와 딸을 잃은 다마이 준이치는 바다로 휩쓸려간 마을에서 물건을 가져오면 어떨까 했다. 후쿠시마는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나서 마을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면 바다에서 들어가면 어떨까 했다가 바닷속에 잠긴 마을에서 죽거나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사람 물건을 가지고 나올 생각을 했다. 바닷속에 들어가서 그 일을 하는 게 바로 슈사쿠다. 제목 ‘문나이트 다이버’ 뜻은 책을 보다가 깨달았다. 슈사쿠는 달이 높이 뜨는 날 바다에 들어갔다. 달빛이라도 있어야 바다로 나가고 바닷속에도 들어가겠지.

 

 해일에 휩쓸려 죽거나 사라진 사람 물건에서 돈이 될 만한 건 가져오지 않아야 하고 회원인 사람과도 만나면 안 되었다. 그런데 한사람 마베 도코가 슈사쿠한테 말을 했다. 도코가 남편 반지를 찾아달라고 하려는 건가 했는데 그 반대였다. 도코는 슈사쿠한테 반지를 찾지 마라 했다. 사람은 참 이상하게도 하지 마라 하면 더 하고 싶어한다. 슈사쿠도 도코 말에 마음을 많이 쓰지 않으려 했는데 바닷속으로 들어가서는 반지를 찾으려 했다. 두사람은 만나면 안 되는데 만나고. 도코가 남편이 지진이 일어나고 돌아오지 않았지만 어딘가에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살면 안 될까. 사실 난 옆에서 그런 모습을 보고 ‘넌 행복하게 살아야지’ 말하는 거 싫다. 재해가 일어나고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언젠가 돌아올지도 몰라’ 하면 이상할까. 남편 죽음을 받아들이고 사는 게 도코한테는 더 낫겠지. 도코는 실제 일어난 일에서 눈을 돌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난 여전히 도코가 앞으로 혼자 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지금 생각하니 작가는 재해나 사고로 누군가 죽고 자신이 살았을 때 죄책감을 느끼는 건 죽은 사람을 사랑해서다 말했다. 그럴 때 세상을 떠난 사람은 산 사람이 잘살기를 바란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 말 틀리지 않다. 내가 만약 누군가를 돕고 죽는다면 그 사람이 죄책감을 느끼기보다 자기 삶을 살기를 바랄 거다. 죄책감뿐 아니라 제대로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도 느끼지 않으면 좋겠다. 죽은 사람을 잊지 않고 자기 대로 살면 된다. 이런 말하기는 쉽지만 그렇게 살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것을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슈사쿠와 도코는 그런 시간을 지나, 자기 나름대로 살려 하는 것 같다.

 

 

 

희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