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김탁환 지음 / 돌베개 / 2017년 4월
평점 :
시간은 아무 문제없이 잘도 흘러간다. 지구가 도는 것을 시간이 간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세계 곳곳에서는 날마다 사람이 죽겠지. 그것뿐 아니라 세상에 태어나기도 하겠다. 세상에 온 아이 모두 부모가 반기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낳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낳은 아이도 있겠지. 부모한테 사랑받지 못해도 그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나타나기를 바란다. 그게 꼭 사람이어야 하는 건 아닐지도. 그 아이를 따르고 좋아하는 동물도 괜찮겠다. 이상하게 난 무엇이든 다 가진 사람보다 무언가 모자란 사람을 더 생각한다. 내가 그 쪽이어서 그럴지도. 아니 부모가 있고 가진 게 많다 해도 채워지지 않는 게 있겠지. 사람은 다 모자란 부분이 조금은 있을 거다. 살면서 그것을 채우려 하는 사람도 있고 끝내 채우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 꼭 채워야만 할까. 비어 있으면 비어 있는대로 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렇게 말해도 나도 가끔 헛헛함을 느끼고 어떻게 하면 그게 사라질까 생각하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거짓말이다》를 보고 바다에 가라앉은 세월호에서 시신을 모시고 나온 민간 잠수사 이야기를 조금 알았다. 그것은 소설인데 소설 같지 않았다. 이것 또한 그렇다. 조금은 실제와 다르게 썼겠지만 친구한테 구명조끼를 벗어주거나 친구가 살게 도와준 이야기는 정말일 거다. 사람은 큰일이 일어나면 자기 몸을 생각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돕는다. 자신만 살려고 하는 사람도 조금 있지만. 세월호에서는 선장이나 선원이 그렇지 않았나 싶다. 그 사람들은 배가 위험하다는 걸 알았을 거다. 그런데도 가만히 있으라고 하다니. 그렇게 말하기보다 차례를 잘 지켜 나오라고 하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들은 아이들은 불안한 마음에 부모한테 문자를 보냈다. 그때 아이한테서 문자를 받고 밖으로 나오라고 말하지 못한 부모 마음이 어떨지. 배는 본래보다 두시간 반이나 늦게 떠났다고 한다. 제시간에 갔다면 그런 일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건 나만은 아닐지도(배가 늦게 떠났다는 건 실제와 다를까). 벌써 일어난 일이고 되돌릴 수 없다 해도 어떻게 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난 이렇게 책을 볼 때나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하겠지만, 그때 아이와 식구를 잃은 사람은 그때부터 아직도 생각하겠다.
이 책을 보는 데는 용기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이런 말하면 책을 보려다 주춤하는 사람도 있을까. 그래도 보기를 바란다. 영화 <타이타닉>은 엄청난 일을 사랑으로 포장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시간이 흘렀기에 그럴 수 있었을까. 언젠가 세월호 참사를 그런 식으로 영화로 만들까. 그런 건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고 보면 80년에 일어난 일이나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이나 그밖에 예전에 일어난 일을 영화로 만들었구나. 그런 건 잘 만들어야겠다. 소설가는 이런 생각을 할 것 같다. 남의 슬픔을 써서 돈을 벌어야 할까 하는 마음과 그때 일을 많은 사람이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마지막 소설 <소소한 기쁨>에 그런 작가가 나온다. 그 작가보다 편집자 소중과 소중이 맡은 다른 작가 이야기가 더 많지만. 소설에는 다른 이름으로 나오지만 세상을 떠난 작가는 신영복 님이 아닐까 싶다. 힘들다 해도 어떤 일은 써야겠지.
그날 2014년 4월 16일에 배 안에서 일어난 일이 아주 없지 않지만, 그다음 이야기가 더 많다. 남은 사람 말이다. 살아 돌아온 아이, 배 안에서 시신을 모시고 나온 잠수부, 죽은 아이 부모, 할머니……. 목숨을 잃은 304명 한사람 한사람을 다 말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건 쉬운 일이 아니겠지. 2015년에 만난 시집 《엄마, 나야》를 보면서 꿈이 많았을 아이들이 죽어서 마음이 아팠다.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와 살고 어릴 때부터 할머니 심부름을 잘한 형수. 형수는 그림을 잘 그렸다. 할머니 모습을 많이 그렸는데, 형수는 고등학교를 마치면 돈을 벌어 할머니를 편안하게 해드리려 했다. 엄마하고만 살고 사진작가가 되려 한 재서, 어릴 때 헤어진 엄마를 수학여행 가기 전에 찾아가 만난 찬우. 정후 아버지는 여름방학에 정후와 여기저기 다니려고 했지만 정후와 함께 가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언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하다. 정후 아버지는 여권에 출국도장이 찍힌 걸 보면 아직도 정후가 세계 여기저기를 다니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슬프게 들린 말이지만, 보이지 않고 볼 수 없을 뿐이지 정후는 지금도 세계 곳곳을 다니고 있을 거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고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일어나지 않아야 했다. 그 일만 그런 건 아니구나. 앞으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자기 자리에서 제대로 일을 하고, 의심도 하기를. 마음 아픈 사람 마음을 다 알지는 못해도 조금은 헤어리면 좋겠다. 사건 사고는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다.
희선
☆―
“사람은 모두 한 그루 나무란다. 저마다 자리에서 저마다 방식으로 자라는 나무. 이 나무가 결코 저 나무가 될 수 없고, 저 나무가 또한 이 나무가 될 수 없지. 그 둘을 하나로 만드는 모든 일이 인류를 불행하게 만들었어. 우리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야. 우리 둘!”
실망하는 학생들을 보고 이렇게 살짝 희망도 주셨지요.
“저마다 자리를 지키며, 저마다의 가지를 뻗고 꽃과 열매를 맺지만, 땅속 깊은 곳에선 두 나무 뿌리가 만나 인사 나누고 엉켜 평생을 보내기도 한단다. 내게 ‘사랑’은 땅속 그 뿌리들과 같아.” (<제주도에서 온 편지>, 1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