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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농장
하하키기 호세이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17년 2월
평점 :
한사람 목숨이 여러 사람을 다시 태어나게 했다는 광고를 본 적이 있다. 뇌사한 사람이 장기를 기증해서 그렇게 되었다. 갑작스런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자기 장기가 다른 사람 몸에서 살면 좋을까. 이런 생각은 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뇌사한 사람이 장기를 기증하는 경우는 그 사람이 살았을 때 그런 뜻을 밝히거나 뇌사한 사람 식구가 결정할 테니까(죽기 전에 결정한 사람은 그렇게 되기를 바랐겠구나). 뇌만 죽고 다른 장기는 살아있는 것을 보고 그 장기를 쓸 수 없을까 생각한 사람은 의사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장기 이식을 연구하고 동물로 실험하고 사람도 하게 됐겠지. 그때 동물 아주 많이 죽었겠다. 사람이 장기 이식을 하게 되고는 죽을 사람이 많이 살았을 거다. 죽을 사람이 장기 이식을 받고 살았으니 좋게 여겨야 하지만 이게 좋은 면만 있는 건 아니다. 뇌사하는 사람보다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사람이 더 많다. 뇌사한다고 다 장기를 기증하지도 않는다. 어딘가에서는 산 사람 장기를 사고팔기도 한다. 돈 없는 사람은 자기 장기를 팔지도 모르겠다. 어떤 곳에서는 건강검진을 한다면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그 사람한테 제대로 말도 하지 않고 장기를 가져갔다. 장기를 빼앗긴 사람은 다른 나라에서 일본으로 일하러 온 사람이었다.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 《나를 보내지 마》에서는 장기 이식에 쓰려고 복제인간을 만들었다. 그건 더 심하다. 복제인간은 부모 없이 시설에서 자라고 때가 오면 장기를 모두 주고 죽는다. 복제인간이라고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닌데 말이다. 언젠가 그런 세상이 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주제로 나온 소설이 많을지도 모를 텐데 내가 본 건 얼마 되지 않는다. 예전에 장기 이식을 받은 사람이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았다. 그것까지는 마음 쓰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장기 이식을 받고 살다보면, 바뀔 수도 있다. 어려울 때는 그때만 지나면 잘 살 텐데 하지만, 그때가 지나고 좀 나아지면 게을러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닐 거다. 자신한테 장기를 준 사람을 생각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도 있다. 그 소설은 다른 것도 생각하게 했다. 뇌사한 사람이 정말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가였다. 그런 걸 생각하면 장기 이식이 어려워질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보고 무뇌증이나 무뇌아를 찾아보았다. 말은 들었지만 대체 어떤 건지 상상하기 힘들어서. 머리가 있어야 하는 곳이 푹 꺼지고 눈은 튀어나왔다. 무뇌증 아이는 태어나도 얼마 못 살고 죽는다고 한다. 정말 모두 그렇게 죽을까. 더 사는 아이가 아주 없는 건 아닐 거다. 뇌가 없으면 보통 사람과 다를지 모르지만 사람이다. 우연히 무뇌아가 죽고 장기를 다른 아이한테 이식하는 건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일부러 무뇌증을 만들어내는 건 어떨까. 무뇌증을 연구하는 의사는 무뇌아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자기 아이가 장기 이식을 받지 못하고 죽은 간호사는 무뇌아를 신이 준 축복이라 여겼다. 무뇌아 장기로 다른 아이가 살 수 있다면서. 누군가는 무뇌아를 장기덩어리라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돈을 바라는 의사, 자기 연구를 하려는 의사, 돈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사람. 돈을 받고 무뇌아를 낳은 사람도 있다. 자신이 처음부터 무뇌아를 낳을 것을 안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것을 몰랐던 사람도 있었을 거다. 나중에 무뇌아라는 것을 알고도 아이를 낳은 건 병원 사람이 돈을 준다고 해서였겠지.
우연히 무뇌아는 중절수술을 하면 안 될까 하는 말을 보았다. 지금은 아이를 가지면 아이한테 장애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다. 엄마 배 속에 있다 해도 살아있는데. 사실 나도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잘 모르겠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건 처음부터 아이를 갖지 않게 조심하기다. 자기 몸을 생각하고 안 좋은 건 하지 않기도 있겠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부모도 있지만, 버리는 부모도 있다. 여기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낳은 지 얼마 안 된 아이한테 장애가 있어서 더는 기를 수 없다면서 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아이 엄마가 아이를 안고 창문으로 뛰어내려 죽었다. 우울증 탓도 있었을지도. 세키레이 종합병원은 산 중턱에 있어서 케이블카가 다녔다. 케이블카를 운전하는 후지노 시게루는 장애가 있지만 자신이 맡은 일을 잘하고 모형도 잘 만들었다. 후지도 시게루는 자신한테 장애가 있다 해도 살아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장애를 가진 아이가 힘들까, 아이를 돌보는 부모가 힘들까. 둘 다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부모가 아이한테 사랑을 주면 나을 텐데. 내가 겪지 않은 일이어서 이렇게 말하는 거겠지. 엄마가 바빠도 먹을 것을 제대로 해주면 아이는 괜찮다는 말을 아마기시 노리코가 하는데, 정말 그럴 것 같다.
쓰다가 하나 더 생각났다. 부모가 없는 아이 장기를 다른 아이한테 이식하는 이야기다. 장기를 이식 받은 아이는 돈 많은 부모를 두어 살고, 부모 없는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죽다니. 실제 그런 일이 있을지 그건 모르겠다. 예전에는 장기 이식을 하면 더 살 수 있구나 하고 좋게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좀 다르다. 모든 일에는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이 있지만, 안 좋은 점이 생기지 않게 할 수 없을까. 목숨을 좀더 소중하게 여기기는 어떨까. 사람은 다 똑같지 않다. 어딘가 이상이 있는 사람도 있고 괜찮은 사람도 있다. 그건 그저 다른 것이다. 무뇌아도 그렇게 생각하면 좋겠다.
희선
☆―
삶이 어떤 형태로 갑자기 끝을 맞이하든 그건 중단이 아니라 완결이다. 최선을 다해 산 결말이다. (3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