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 강철의 숲
미야시타 나츠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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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말보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은 소설 제목 이야기다. ‘양과 강철의 숲’은 뭘까, 이건 피아노면서 조율사가 걷는 숲이기도 하다. 피아노를 만드는 데 가장 많이 쓰이는 건 나무지만, 피아노 안에 들어가는 해머는 양털로 굳힌 펠트로 만들고 해머가 치는 현은 강철로 만든다. 피아노 겉은 봤지만 안은 사진으로만 봤다. 피아노는 현악기일까 타악기일까. 두가지 요소가 다 들어간 악기 같다. 피아노 건반을 치면 소리가 나는데, 그건 피아노 속에서 건반과 이어진 해머가 현을 쳐서다. 피아노 치는 사람은 그것도 느낄까. 피아노를 배울 때 그런 걸 알았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쉽다. 난 그저 손가락으로 건반을 친다는 느낌만 알았다. 해머가 현을 쳐서 피아노 건반이 무거운가보다. 무겁다고 했지만 아주 무거운 건 아니다. 그건 기분 좋은 묵직함이다.

 

 도무라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경험을 한다. 이타도리가 학교 체육관 피아노를 조율하는 소리를 듣고 거기에서 숲 냄새를 맡았다. 피아노 소리에서 숲 냄새를 맡다니. 그 일은 도무라를 조율사가 되게 했다. 자기 삶을 아주 많이 바뀌게 하는 일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그런 일이 찾아온다 해도 많은 사람은 그것을 잘 모르고 지나갈지도 모르겠다. 도무라는 산골 마을에 살고 딱히 바라는 게 없었다. 고등학교를 마치면 아무 일이나 하고 살겠지 했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만났다. 그게 피아노 조율이다. 도무라는 이타도리가 가르쳐준 조율 전문학교에서 두해 동안 공부하고 이타도리가 일하는 에토 악기에서 일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 소설은 도무라가 조율사라는 꿈을 갖고 그것을 이뤄가는 이야기가 아닌, 도무라가 조율사로 사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도무라 삶이 모두 담긴 건 아니다. 여기에는 도무라가 조율사로 살고 두해 남짓한 시간이 담겼다. 도무라는 여전히 조율사로 살겠지.

 

 글렌 굴드 피아노 이야기를 보고 피아노에 조율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굴드가 연주한 피아노를 오랫동안 조율한 사람은 베른 에드퀴스트다. 피아노 연주는 듣기 좋지만 조율하는 소리는 그렇게 좋지 않다고 한다. 그래도 어긋난 피아노 소리를 잘 맞추면 무척 기쁘겠다. 피아노에 어울리는 소리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겠지. 피아노만 생각하면 안 된다. 피아노 치는 사람이 바라는 소리를 시작해 어디에서 치는지 어떤 곡을 치는지도 조율에 영향을 준다. 도무라가 조율 전문학교를 마치고 조율사가 됐지만 처음부터 잘하지는 않았다. 도무라는 조율 보조로 따라간 곳에서 쌍둥이를 만난다. 도무라는 쌍둥이에서 언니 쪽인 가즈네 피아노를 더 좋아했다. 어떤 사정으로 쌍둥이가 피아노를 칠 수 없었을 때 도무라는 그게 가즈네가 아니기를 바랐다. 시간이 흐르고 가즈네는 피아노와 살기로 마음먹는다. 피아노로 먹고사는 게 아닌 피아노와 살겠다니. 도무라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이 가즈네 피아노를 조율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피아노는 피아노와 그것을 연주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고 조율사도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피아노를 자주 치면 소리가 좋아진다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그건 피아노 조율을 자주 해서일 수도 있겠다. 피아노를 자주 치지 않으면 소리가 어긋날 일은 없을 테니 조율은 거의 하지 않겠지. 피아노를 어느 정도 치느냐에 따라서도 조율이 바뀐다. 연장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잘 쓰지 못하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피아노가 낼 수 있는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건 아쉽지만. 피아노를 아주 치지 않게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피아노가 좋고 조율을 아주 잘해도 그 소리를 부담스럽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거다). 조율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고 피아노 치는 사람이 가진 것을 알게 하기도 한단다. 피아니스트가 되려 한 아키노는 이타도리가 조율한 피아노를 치고 연주자가 아닌 조율사가 되었다. 이루지 못할 꿈을 언제까지고 잡고 있기보다 놓는 용기도 있어야겠다. 아키노가 피아노에서 아주 멀어진 것도 아니다. 아키노가 조율사가 된 건 피아노를 좋아해서겠지. 쌍둥이 동생 유니도 피아노를 치지 못하게 되고 조율사가 되기로 한다. 가즈네 피아노를 조율하려고. 나중에 도무라와 유니 두 사람에서 누가 가즈네 피아노를 조율했을까. 둘 다 했을지도 모르겠다. 도무라는 가즈네가 칠 피아노 조율을 먼저 했다.

 

 이야기가 좋아도 그것을 잘 말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여러 가지 생각을 잘 정리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피아노가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도무라가 부러웠다. 도무라가 조율사가 되고 헤매기도 하지만, 이타도리는 그런 도무라한테 차근차근 하라고 한다. 피아노 조율은 잠깐 하고 잘하게 되는 게 아니겠지. 조율만 그런 건 아니다. “재능이란 무지막지하게 좋아하는 감정이 아닐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대상에서 떨어지지 않는 집념이나 투지나, 그 비슷한 무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해. (143쪽)” 힘을 주는 말이지만 어떤 일이든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난 무지막지하게 좋아하는 게 없는 걸까. 또 나를 생각하다니. 도무라가 어떻게 하면 조율을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할 때 난 어떻게 하면 책을 잘 읽고 잘 쓸까 생각했다. 도무라가 조율을 그만두지 않기로 한 것처럼 나도 책읽고 쓰는 걸 그만두지 않아야겠다 마음먹었다.

 

 피아노 조율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일이다. 피아노 연주회에서 누가 피아노를 조율했는지 알고 싶어할까. 피아노 연주하는 사람은 다르겠다. 피아노는 자기 악기를 가지고 다닐 수 없어서 어떤 피아노든 친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피아노여도 조율이 자신한테 맞으면 잘 치겠다. 세상에는 조율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없으면 안 되는 게 많을 거다. 삶은 헛되지만 헛된 일은 없을지도. 도무라가 양과 강철의 숲을 걷듯, 난 나만의 숲을 걸어야겠다. 앞으로는 피아노 소리 잘 들어볼까 한다. 나도 도무라가 맡은 숲에서 나무가 흔들리는 냄새 맡아보고 싶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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