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정지용 시집 (미니북) - 1935년 시문학사 초판본 오리지널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정지용 지음 / 더스토리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몇해 전(2014)부터 일제시대에 시를 쓴 시인 시집 초판본이 나왔다. 다른 출판사에서 처음 나온 건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이다. 사두기만 하고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건 처음 나왔을 때 글자 그대로여서 바로 못 본 것 같다. 김소월 이름은 알아도 김소월이 어떤지 잘 몰랐다. 그 뒤에 김소월을 알았느냐 하면 아니다. 내가 안 건 김소월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뿐이다. 이런 말은 김소월 시집을 본 다음에 썼다면 좋았을 텐데. 초판본 김소월 시집 다음에 윤동주, 백석, 한용운 시집이 나오는 걸 보고 정지용 시집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오래전에 나온 초판본을 지금 볼 수 있게 해준 곳은 다른 곳이지만, 그곳 말고 여러 곳에서 초판본을 냈다. 이것도 초판본이기는 하지만 한글은 지금 말로 고친 것 같다. 여기에서는 시집을 두가지로 냈다. 하나는 보통 크기, 하나는 좀 작은 것으로. 내가 본 것은 작고 귀엽다. 글자 볼 수 있을까 했는데 읽기에 그렇게 힘들지 않다. 그래도 한번에 죽 보기보다 조금씩 보는 게 나을 듯하다.

 

 

 

유리창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방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유리창1>, 21쪽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 잘 모르겠는데, 학교 다닐 때 일제강점기 시인이나 소설가를 좀 알았다. 알았다기보다 국어시간에 배웠다고 해야겠다. 그 안에 정지용 시도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시는 <유리창1>이다. 그 시를 선생님이 가르쳐준 건지 책에 있었는지. 학교에서 배운 게 아니고 다른 데서 듣거나 본 걸 학교에서 배웠다고 기억하는지도 모르겠다. 기억이 선명하지 않은 건 내가 학교 다닐 때 시와 소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설지도. 공부라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국어 영어 수학에서 국어 점수가 그나마 나았던 것 같기도 한데. 국어 좋아하지 않았지만 싫어하지 않았나 보다. 그때도 시를 좋아했다면 좋았을 텐데. 또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다니. 고등학교 다닐 때 책은 거의 읽지 않았는데 그런 내가 문예부였다. 글 쓰는 게 좋아서 거기에 들어간 건 아니고 거기가 남아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문예부였다 해도 글 쓴 기억은 거의 없다. 그때 뭐 하고 시간을 보낸 거지. 내가 문예부였던 적 한번 더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다. 그때도 어쩔 수 없이 거기에 들어갔겠지. 두번이나 문예부였다니.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시를 쓰고 시집도 냈다. 선생님은 프랑스말을 가르쳤는데. 예전에 내가 시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시와 아주 먼 것도 아니었구나. 좀 우습다. 책(시 소설)은 고등학교를 마치고서야 봤다. 중, 고등학생 때 책은 잘 몰라서 읽지 않았지만 일기나 편지는 썼다.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밖에.

 

-<호수1>, 77쪽

 

 

 

 앞에서 김소월 잘 모른다고 했는데, 정지용도 잘 모른다. <유리창1>에는 아이를 잃은 슬픔이 담겼다. 다른 시에도 그런 걸 조금 담았다. 김소월은 이름만 알고 시 조금만 알았는데, 정지용은 예전에 시집을 한권 보았다. 거기에서 기억하는 시는 <향수>와 <호수1>이다. <향수>는 노래 때문에 많은 사람이 알겠다. <향수>를 보면 정겨운 시골 모습이 떠오르고, 그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구나. 한때 정지용 시도 볼 수 없었겠지. 정지용은 일제강점기에 시 쓰는 사람으로 여러가지 했는데,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북으로 가고 거기에서 죽었다. 정지용 시는 윤동주도 좋아했다. 정지용은 윤동주 3주기 유고시집에 서문을 썼다. 그 일을 윤동주는 저세상에서 기뻐했을까.

 

 

 

해바라기 씨를 심자.

담모롱이 참새 눈 숨기고

해바라기 씨를 심자.

 

누나가 손으로 다지고 나면

바둑이가 앞발로 다지고

괭이가 꼬리로 다진다.

 

우리가 눈감고 한밤 자고 나면

이슬이 나려와 같이 자고 가고,

 

우리가 이웃에 간 동안에

햇빛이 입맞추고 가고,

 

해바라기 첫 시약시인데

사흘이 지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아니 든다.

 

가만히 엿보러 왔다가

소리를 깩! 지르고 간 놈이─

오오, 사철나무 잎에 숨은

청개구리 고놈이다.

 

-<해바라기 씨>, 102~103쪽

 

 

 

할아버지가

담뱃대를 물고

들에 나가시니,

궂은 날도 곱게 개고,

 

할아버지가

도롱이를 입고

들에 나가시니,

가문 날도

비가 오시네.

 

-<할아버지>, 116쪽

 

 

 

별똥 떨어진 곳,

마음해 두었다

다음날 가보려,

벼르다 벼르다

인젠 다 자랐소.

 

-<별똥>, 120쪽

 

 

 

 정지용은 동시도 썼다. 정지용 시를 본 뒤 윤동주는 시를 조금 다르게 썼다 한다. 여기에도 동시가 실렸다. <호수1>도 동시처럼 보이는데,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잘 담겼다. 시를 쓰려면 어린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한다. 무엇에든 관심을 갖고 새롭게 보는 게 어린이 마음인가. 난 어린이였을 때 그러지 않은 것 같은데, 더 어릴 때는 달랐을까. 어렸을 때 난 글짓기 대회에 나가 본 적은 없지만, 글짓기 시간에 쓴 글 칭찬받은 적은 있다. 겨우 한번이었던 것 같다. 난 그걸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난 무엇을 좋아했을까.

 

 시집 이야기보다 재미없고 생각도 잘 나지 않는 내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이 시집을 봤기에 그때 일을 떠올린 거니 괜찮은 거 아닌가 싶다. 일제감정기에 한글로 글 쓰기 어려웠을 텐데, 한글로 시나 소설 쓴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런 사람에서 한사람이 정지용이다. 정지용이 한자말을 아주 쓰지 않은 건 아니지만, 한글을 잘 살려썼다. 그런 부분을 눈여겨 보면 괜찮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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