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흔적을 걷다 - 남산 위에 신사 제주 아래 벙커
정명섭 외 지음 / 더난출판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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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상을 보면 아주 오래전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상상하기 어렵다. 공룡과 동물이나 식물만 살았던 지구는 어땠을까. 너무 멀리 갔구나. 한국, 아니 한반도가 일본한테 나라를 빼앗겼을 때는. 한반도가 일본 지배에서 벗어난 지 아직 한세기가 지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는 우리 역사에서 빼고 싶은 때일지 몰라도 그럴 수 없다. 잘될 때보다 잘되지 않을 때 배울점이 많다고 하지 않는가. 일본이 조선을 넘본 건 오래전부터다. 조선을 지나 명나라에 쳐들어 간다고 했지만 조선을 그저 지나는 길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는 다행하게도 일본한테 조선을 빼앗기지 않았지만 일본에 끌려가거나 전쟁으로 죽은 사람이 많았다. 그때 그 일을 좀더 생각하고 잊지 않았다면 나중에 일본한테 나라를 빼앗기는 일은 없었을까. 이건 확실하게 말하기 어렵다. 지나간 일에 만약은 없다고 하니.

 

역사를 되돌릴 수 없지만 지금은 바꾸어갈 수 있다. 역사라고 해도 그건 다 지나간 일은 아니다. 그때가 있어서 지금이 있다.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도 역사가 된다. 좋은 것을 쌓아가면 좋겠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한사람 역사도 그런데 한 나라 역사는 더하겠지. 오래전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다 사라진 건 아니다. 오래전 사람이 남긴 자손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시간이 흐르면 땅에 새로운 것을 짓기도 하는데 오래전 것이 남아있다는 게 신기하다. 새로운 것을 지으려다 오래전에 무엇인가 있었던 터나 물건을 찾아내서 그렇구나. 그런 건 자연스럽게 시간이 흘러 땅 속에 묻힌 거겠지. 한국은 나라를 되찾고 일제가 남긴 것을 많이 없앴다. 그것을 남겨야 할지 없애야 할지 어느 한쪽만 말하기는 어렵다. 일본은 한반도 정기를 끊으려고 별 것을 다했다. 풍수지리를 이용해 중요한 곳에 쇠말뚝을 박았다. 그런 건 당연히 없애야 한다. 일본은 한국 문화재도 많이 가져갔다. 나라를 빼앗겨서 한국 사람은 그것을 그냥 볼 수밖에 없었겠지. 어쩌면 조선 사람은 그런 일을 잘 몰랐을지도 모르겠다. 힘들게 일하고 밥도 잘 먹지 못하고 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일본에 끌려가서 일한 사람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한반도에서 일을 한 사람도 많고 살던 곳에서 쫓겨난 사람도 많았다.

 

일본 사람은 아주 많은 신을 섬긴다. 서울이나 인천에 신사를 지었다는 말은 처음 보았다. 이제는 그런 곳이 남아있지 않으니. 그래도 기록에는 있겠지. 신사는 일본에서 조선에 온 사람 때문에 지었겠지. 그러고 보니 일본은 조선 사람한테 신사 참배를 시키기도 했다. 신사에 가서 기도를 드리는 게 다 나쁜 건 아닌데 조선 사람은 싫었겠지. 일본은 사람을 신으로 모시기도 한다. 신사 참배를 시킨 신사에는 전쟁을 일으킨 사람을 신으로 모셨을 것 같다. 일본에도 그런 곳이 있다. 일본이 전쟁에서 지고 일본 사람이 일본으로 돌아가자 조선 사람은 신사를 부수었다. 그래도 모두 사라지지 않았다니 신기하다. 오래전에 한반도 사람이 왜에 건너가 일본 문화를 꽃피우기도 했는데, 한반도에는 일제가 쳐들어온 흔적이 남았다니. 이건 한반도 사람뿐 아니라 일본 사람도 알아야 하는 거 아닐까 싶다. 이 책이 일본말로 일본에 나오면 좋을 텐데. 한국 사람도 잊고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본이 물러가고 미군이 한국에 와서 한국인데 미국 땅 같은 곳이 생겼다. 용산이 그랬다. 그곳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은 건물이나 벙커가 아직도 남아있다고 한다. 그게 남아서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인천에는 은행 건물이 남아있다. 예전에는 잘 몰랐던 것을 이 책을 보고 알았다. 조선 사람이 농사 지은 땅주인이 일본 사람이었다는 거다. 아니 이건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 나왔는데 내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본이 쌀을 빼앗아간 건 알았는데. 소설 《토지》에 그런 게 나올 것 같다. 군산 발산초등학교와 군산간호대학이 나오다니(예전에는 개정간호대학이었다). 차를 타고 지나간 적은 있다. 군산간호대학 가까운 곳은 가 본 것 같기도 하고, 예전에 거기에서 일제강점기가 배경인 드라마를 찍었다는 말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군산이지만 예전에는 ‘군’이나 ‘면’이었다. 그게 다 군산시가 되었다. 그렇게 합쳐지는 게 좋은 걸까. 내가 사는 곳이 나와서 조금 신기했다. 이곳에는 일본이 쌀을 빼앗아간 항구가 있었다. 군산보다 밑에 있는 여수도. 내가 어렸을 때 다닌 초등학교 가까운 곳에는 일제강점기 건물이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한국 곳곳에는 일본이 남긴 것이 있을 거다. 봐도 잘 모르고 지나칠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일이 없게 안내판이라도 세워두면 좋을 텐데. 예전과 똑같은 모습은 아닐지라도 그것을 보면 일본한테 지배를 받은 때가 있었다는 걸 기억하겠지. 아름다운 풍경을 보러 제주도에 가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곳에도 일제가 남긴 흔적이 있다. 제주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뻔했다는 말 다른 책에서 본 것 같다. 다행하게도 그건 피했지만, 같은 나라 사람한테 죽임 당한 사람이 많다. 역사는 멈추지 않고 흐른다. 흐른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바라보기만 하지 않고 가끔 뒤돌아보기도 해야 한다. 일본이 한국에 남긴 것을 걷는 것은 그런 일이겠지. 건물이나 터를 바라보는데 거기에서 일하고 힘들게 살았던 사람이 보였다.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만 대단한 건 아니겠지. 자신과 남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앞세대한테 부끄러운 역사를 만들지 않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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