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

  向左走, 向右走 (1999)

  지미 리아오   이지수 옮김

  리틀빅미디어  2016년 03월 16일

 

 

 

 

 

 

 

 

 

 

 

 

어딘가에 갈 때면 왼쪽으로만 다니거나 오른쪽으로만 다닐까. 가는 곳에 따라 왼쪽으로 가거나 오른쪽으로 갈 것 같은데.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겠구나. 날마다 같은 곳에 간다면 같은 쪽으로 다니겠다. 여자가 왼쪽이 아닌 오른쪽으로 남자가 오른쪽이 아닌 왼쪽으로 다녔다면 두 사람은 더 빨리 만났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것도 반대여서 어려웠을까. 같은 쪽으로 다녀도 다니는 시간이 다르면 만나기 어렵겠다. 요즘은 바로 옆집에 살아도 서로 얼굴 보기 어렵다. 벽을 사이에 둔 아파트 사람은 더할지도 모르겠다. 그림을 보면 여자와 남자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반대쪽 집에 산다. 두 사람은 그걸 모른다. 여자는 언제나 왼쪽으로 다니고 남자는 언제나 오른쪽으로 다닌다. 두 사람은 늘 만나지 못한다. 두 사람이 만난다고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비슷하게 보이는 두 사람이 만나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까이 있는데 만나지 못하는 두 사람이 안타깝다.

 

외로워도 슬퍼도 시간은 흐른다. 춥고 어두운 겨울이 찾아오고 우연히 두 사람은 공원 분수 앞에서 만난다(그림이 분수 같지 않은데, 분수라고 늘 물이 솟아오르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떤 곳은 시간에 맞춰 물이 솟아오른다). 난 처음 만난 사람과 아무 말도 못하는데, 남자와 여자는 예전부터 사귄 사람처럼 마음이 잘 맞았다. 두 사람은 낮시간을 즐겁게 보낸다. 해가 질 무렵 하늘이 흐려지고 큰 비가 내리자 두 사람은 서둘러 전화번호를 나누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간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생각하고 잠도 잘 잤다. 하지만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보고 실망한다. 빗물에 글자가 번져서 전화번호가 잘 보이지 않았다. 이런 일 쉽게 일어날까. 전화번호 적은 걸 주머니에 넣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요즘 펜은 수성보다 유성이 더 많다. 난 없지만 많은 사람이 휴대전화기를 가지고 다닌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낭만이 없는 건가. 남자와 여자를 부러워한 비가 장난을 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두 사람을 시험한 걸까. 비 오는 성탄절 전날 여자는 남자한테서 전화가 오기를 하루 내내 기다리고 남자는 엉뚱한 번호로 몇번이고 전화를 걸었다.

 

 

 

 

 

 

 

 

 

한번 만나고 다시 만나지 못한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 두 사람은 서로를 찾아 다니지만 만나지 못한다. 서로 등을 보이고 걷거나 한 사람이 길을 걸을 때 한 사람은 지하에 있었다. 비가 오면 두 사람은 서로를 생각했다. 겨우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해가 가고 다시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오는 동안 여자와 남자는 조금 차이를 두고 같은 고양이와 놀고 같은 개한테 밥을 주고 같은 아이를 만났다. 그렇게 엇갈리기도 하다니. 남자와 여자가 같은 시간에 고양이와 놀고 같은 시간에 개한테 밥을 줬다면 서로를 봤을 텐데. 정말 운명의 장난일까. 겨울이 오자 도시는 습하고 추웠다. 두 사람은 춥고 쓸쓸한 도시를 떠난다. 여자는 왼쪽으로 남자는 오른쪽으로. 눈이 오는 길을 걷고 걷고 걷다 남자와 여자는 만난 지 한해가 조금 넘은 뒤 우연처럼 마주친다. 누구나 두 사람이 다시 만나고 이야기가 끝나리라 생각했겠지. 그것을 안다 해도 따듯한 이야기다.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지 긴 글로 쓸 수도 있고, 이렇게 그림과 짧은 글로도 나타낼 수 있구나. 그림으로 남자와 여자 마음을 보는 것도 괜찮다. 여자와 남자가 어렵게 만나고 다시 만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지만, 만나서 다행이다. 나보다 남자와 여자가 더 기뻤겠다. 두 사람은 그 해 마지막 날을 함께 보내고 봄도 함께 맞이했다. 그 뒤에도 잘 살기를 바란다.

 

 

 

*더하는 말

 

앞에서 요즘은 많은 사람이 휴대전화기를 갖고 다닌다고 했는데, 이 책이 처음 나온 1999년에는 그렇지 않았겠다. 예전을 생각하고 보면 그럴 수 있겠다고 할 거다. 지금을 배경으로 한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두 사람이 휴대전화기로 번호를 나누고 다시 연락할 수 없으려면 휴대전화기가 물에 빠지거나 부서지면 될까. 그것보다 그날은 둘 다 휴대전화기를 집에 두고 나온 걸로 해도 괜찮겠다. 그렇다 해도 예전보다는 더 빨리 서로를 찾을 수 있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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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E-9 2017-01-20 2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 갈이가 되었네요. 저는 이거 옛날 판본으로 있어요. 금성무 주연의 영화로도 나온 걸로 아는데, 기회 되시면 그것도 한 번 감상해 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희선 2017-01-21 02:05   좋아요 0 | URL
이건 예전에 나왔던 게 다시 나온 거군요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영화로 만들었다는 거 봤어요 그것도 예전에 만든 거더군요 그때하고 이 책이 시대가 비슷할 것 같기도 합니다 영화에서는 두 사람이 엇갈리는 모습이 천천히 흘러갈 듯하네요 그림도 천천히 봐야 하는데...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