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쇳물 쓰지 마라

  제페토

  수오서재  2016년 08월 16일

 

 

 

 

 

 

 

 

 

 

 

 

제페토는 나무 인형 피노키오를 만든 할아버지예요. 꼭두각시 인형이던가요. 이런 생각을 하다가 제페토는 정말 할아버지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할아버지로 보였는데. 피노키오는 사람이 아닌 나무로 만든 인형인데 말을 하고 움직였습니다. 그건 제페토가 바랐기 때문이겠지요. 피노키오는 사람이 아닐뿐 어린이와 다르지 않아요. 장난치고 거짓말 하는 게. 남자아이가 다 그런 건 아닐 테지만.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졌지요. 요정은 피노키오한테 거짓말 하지 않는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해요. 이 동화는 아이를 가르치려고 썼다는 말 언젠가 보았습니다. 제가 어릴 때 피노키오를 보고 착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지금은 좀 다릅니다. 착한 게 나쁘지 않지만, 생각하지 않고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건 착한 것과는 상관없지요. 착하다는 건 다른 사람 마음을 알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사람 마음이 어떤지 알면 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겠지요.

 

이 시집을 쓴 사람 이름이 제페토여서 피노키오를 만든 제페토를 잠깐 생각했습니다. 오래전에 봐서 자세한 건 다 잊어버렸습니다. 제페토는 목수였을까요. 좀더 알면 좋겠지만 아는 게 없네요. ‘댓글 시인 제페토’는 이 책 나왔을 때 알았어요. 이런 사람도 있구나 했지요. 저는 신문뿐 아니라 텔레비전 뉴스도 보지 않습니다. 부끄러운 일을 말했네요. 인터넷에서 기사 같은 거라도 찾아서 보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도 괜찮을 텐데 그것도 하지 않습니다. 인터넷 기사는 거의 제목만 보고 말 때가 많아요. 충격스러운 일은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그것을 본다고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생각하지만 길면 잘 읽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읽게 하려고 인터넷 기사 제목은 자극스럽게 짓고 내용은 짧게 쓰는 거군요. 그것도 깊이 읽으면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페토는 인터넷 뉴스를 읽고 댓글을 시로 씁니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쓴 댓글시와 마음가는 대로 쓴 시를 여기에 실었습니다.

 

다른 사람 글을 보고 댓글을 쓰는 것과 다르지 않군요. 인터넷 뉴스도 사람이 쓴 거잖아요.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을 일부러 본 적은 없고 무심코 본 적은 있는데 별로 좋은 말이 아니더군요. 그런 거 보고 마음 안 좋아지는 사람도 있겠지요. 2011년에는 송지선 아나운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더군요. 텔레비전을 안 보니 그런 아나운서가 있었는지도 몰랐습니다. 송지선 아나운서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 안 좋은 소문과 나쁜 말이 쓰인 댓글 때문이더군요. 요즘은 인터넷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은 더 쉽게 인터넷에 드러나죠. 좋은 말은 못해도 모르는 일은 말하지 않았으면 해요.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건 아니군요. 1등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짓눌려 목숨을 끊은 고등학생도 있고, 여러 학원에 다니느라 힘든 아이도 있습니다. 소풍에는 보내달라고 새엄마한테 부탁했지만, 새엄마는 아이가 거짓말 했다고 죽을 때까지 때렸습니다. 한동안 그런 이야기 들었어요. 새엄마가 아이를 죽인 일이나, 젊은 부부가 갓난아이를 죽은 일. 그런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겠지요. 세상에는 어른보다 나이 많은 어린이만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도 마찬가군요. 어른이 되지 못해도 괜찮으니 아이는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반 십육 번

박정호가 죽었네

영어학원 건너려다

뺑소니를 당했네

 

레커차 달려오고

경찰차 달려오고

사이렌 요란한데

그 애의 텅 빈 눈은

먼 하늘만 보았네

 

박정호가 죽었어요

훌쩍대는 전화에

울 엄마는 그 아이

몇 등이냐 물었네

 

<학원 가는길>, 87쪽

 

 

 

오늘같이 추운 날

당신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면

당신 몸은 오늘도 최선을 다한 것이다

당신 키 작은 구성원들은

당신이 잠든 동안에도 쉬지를 않나니

지친 당신 기운을 내라

당신 안 모든 것들은

당신이 잘되기만을 바라고 있지 않은가

 

<소한>, 129쪽

 

 

 

한국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세계에는 더 많은 사람이 삽니다. 그 많은 사람 일을 다 알기는 어렵습니다. 자기 살기도 바빠서 관심 갖지 않기도 하지요. 가까이 있는 사람과 마음을 나누고 사는 것도 좋습니다. 가끔 세상에는 슬프고 안타깝고 멋진 일도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건 어떨까요. 주인을 살린 개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개를 돕는 개도 있더군요. 동물도 힘든 친구를 돕고 삽니다. 사람도 그래야 할 텐데요. 여전히 한국은 장애인이 살기에 좋지 않습니다. 시각장애인이 다니기 어렵게 고치는 곳도 있었습니다. 세상은 오른손잡이나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장애인이나 얼마 안 되는 사람도 생각해야죠. 쓸데없는 관심 갖는 건 별로여도, 이웃이 어떤지 살피는 건 괜찮겠지요. 예전에는 가난해도 서로 마음을 나누고 살았는데. 저도 못하는 일이고 조금 걱정스럽기도 해요. 혼자 살다 죽을 테니까요(이런 말을). ‘고독사’라고 하잖아요. 어쩐지 그 말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혼자 산다고 해서 그 사람이 쓸쓸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이 많아서 그렇게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잘 모르면서 불쌍하다 여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기 삶을 살다 조용히 가는 사람도 많을 거예요.

 

제페토가 댓글 쓴 기사에는 슬프고 안타까운 일도 있지만 날씨나 밝은 일도 있어요. 눈이나 비 온다는 것을 보고도 쓰다니. 시로 남은 이런저런 일이고,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뉴스 보면서 많은 사람이 ‘나한테는 저런 일 일어나지 않겠지’ 할 거예요. 사건사고로 죽은 사람을 보고는 안됐다 잠깐 생각하고 잊겠지요. 쉽게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잊지 않아야 하는 것까지 잊어서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걸지도 몰라요. 이 말 처음 하는 게 아니군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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