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늑대 : 괴짜 철학자와 아름다운 늑대의 11년 동거 일기

The Philosopher and the Wolf : Lessons from the wild on love, death and happiness (2008)

마크 롤랜즈   강수희 옮김

추수밭  2012년 11월 02일

 

 

 

몇해 전에 늑대와 염소가 친구가 되는 만화영화 <폭풍우 치는 밤에>를 보았다. 동물이라고 해서 다 똑같이 사는 건 아닐지도 모를 일이다. 동물이 이야기 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다르게 사는 모습은 사람이 만들어 낸 거기는 하지만. 더 높이 날려고 한 갈매기 조나단……, 다른 것도 생각나면 좋을 텐데 없다. ‘마당을 나온 암탉’ 더 있을 텐데. 앞에서 말한 염소와 늑대가 있다. 염소와 늑대가 만난 건 폭풍우 치는 밤으로 비를 피해 들어간 오두막에서다. 둘은 서로가 보이지 않아서 서로가 달아나고 먹히는 관계라는 것을 몰랐다. 염소는 늑대를 염소라 생각하고 늑대는 염소를 늑대라 생각했다. 둘은 오두막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느낌이 좋아서 다음 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만난다. 둘이 만났을 때 서로가 어떤지 알고 그만둘 수도 있었지만 둘은 그 뒤로도 친구로 지낸다. 둘 사이가 서로의 무리에 들키고 둘은 무리한테 괴롭힘 당한다. 무리는 둘한테 서로를 알아오면 용서해주겠다고 하지만 염소와 늑대는 서로한테 거짓말할 수 없었다. 둘은 함께 살 수 있는 곳으로 떠난다. 어쩐지 두 집안이 결혼을 반대하는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는구나. 힘든 일이 있었지만 염소와 늑대(메이와 가브)는 바라는 곳에 간다.

 

 

       

                     <폭풍우 치는 밤에> (오른쪽 위, 가브 마음 속) 친구지만 맛있겠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늑대와 염소가 친구가 되다니. 고양이와 쥐도 친구 되기 어렵겠지. 고양이와 개도 사이 나쁘지만 가끔 친하게 지내는 것도 보인다. 늑대 브레닌은 염소하고도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브레닌은 늑대지만 거의 개처럼 살아서. 그렇다고 브레닌 삶이 나빴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가 좀 안됐다고 생각하는 건 동물원에 사는 동물이다. 이것도 내 처지에서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동물원에 살아도 여러 사람이 마음을 써서 동물이 거기에서 자유롭게 살게 하겠지. 그러면 좋을 텐데. 브레닌은 부모가 사람과 살아서 야생에서 살기에는 어려웠다. 만화에는 동물을 기르는 모습이 좋게 나온다. 사람이 가끔 골치 아픈 일을 겪기도 하지만. 고양이는 그저 소파를 긁거나 아끼는 바지를 긁을 뿐이다. 그게 다가 아닐 거다. 동물이 집안을 엉망으로 만드는 걸 잘못이라 할 수 없다. 사람이 아니니까. 어린이도 집안을 어지르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걸 다 알고 동물을 길러야겠지. 마크는 태어나고 여섯주가 된 늑대를 보러 가서 첫눈에 반하고 바로 샀다. 브레닌을 고를 때 여러 가지를 생각하다니. 브레닌은 마크 집에 간 첫날부터 물건을 부쉈다. 마크는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는데 브레닌을 집에 혼자 두지 않았다. 혼자 두면 집안이 엉망이 되어서. 학교에서 늑대를 데리고 학생을 가르치는 걸 내버려두었다니. 마크는 강의계획서에 늑대가 있다는 말도 썼다.

 

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가 이 책을 봤다면 마크를 부러워했을 것 같다. 마루야마 겐지는 커다란 개를 기르고 싶어했다. 마크는 브레닌 훈련을 잘 시켰다. 브레닌을 힘들게 한 건 아니고 몇가지를 알아듣게 하고 함께 놀고 달렸다. 요즘은 개를 집안에서 키워서 개가 마음껏 뛰어놓지 못할 거다. 개와 걷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날마다 그것을 하려면 힘들겠지. 나 같은 사람은 개를 기르면 안 되겠다. 생각도 하지 않는다. 개 산책 시키기 아르바이트 있을 것 같다(소설에서 봤구나). 마크가 철학을 해선지 브레닌을 보고 영장류와 늑대를 생각하기도 한다. 어쩐지 늑대가 더 낫다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사람이 동물보다 더 뛰어나다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도 동물에 들어가고 지구에 사는 생물에서 하나일 뿐이다. 사람은 사람 처지에서 생각할 때가 많다. 그 점은 바꿔야 할 텐데. 겸손해야 한다. 야생에서는 사람이 가장 힘이 없겠지. 사람이 문명을 만든 것도 진화가 아닐까. 힘이 없어서 살아 남으려고. 사람은 그것을 잊고 지구 주인처럼 산다. 늑대는 세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지금도 사라지는 생물이 많겠다. 저절로 그렇게 되기도 하겠지만 사람 때문에 사라지는 것도 많을 거다.

 

동물과 사람이 함께 살게 되어 기쁜 날이 있지만, 언젠가 끝이 찾아온다. 개는 열다섯해 살기도 하던데 브레닌은 열한해쯤 살았다. 겨우 두해쯤 산 햄스터가 죽었을 때 슬펐는데, 열한해 함께 산 늑대가 죽으면 더하겠다. 브레닌이 자연스럽게 죽지 않아 조금 아쉽다. 암에 걸리다니. 죽기 한해 전에 브레닌이 아파서 마크가 무척 힘들게 돌봤다. 그때는 나았지만 다시 암에 걸려서 마크는 마음을 먹었다. 브레닌이 더 아프지 않게. 난 철학보다는 브레닌과 함께 산 이야기를 더 즐겁게 보았다. 마크와 브레닌은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하고 식구처럼 지냈다. 마크는 브레닌을 형처럼 동생처럼 생각했다. 요즘은 애완동물이라기보다 반려동물이라 한다. 누군가한테는 동물이 식구다. 함께 살던 동물이 죽는 건 식구가 죽는 것과 같겠지. 세상에 브레닌은 없지만 마크와 브레닌이 함께 산 흔적이 남아서 다행이다. 마크는 다른 브레닌을 만났다. 브레닌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아이 이름을 그렇게 지었겠지.

 

목숨 있는 게 언젠가 죽는다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아름답다. 동물이나 식물도 자기 삶을 힘껏 살다 가지 않을까. 자연은 순리대로 산다, 남과 견주지 않고. 사람이 사는 데 그렇게 큰 뜻이 있을까. 뜻이 아주 없다고 하면 덧없겠지만. 지금 순간을 즐기고 사는 게 좋을 듯하다. 이 말을 잘못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날을 아쉬워하거나 앞날을 걱정하기보다 지금 하는 것을 열심히 하면 좋겠다. 이런 말이 왜 생각났는지, 마크가 비슷한 말을 했는데 내 생각과는 다를지도 모르겠다. 브레닌 마음을 내가 알 수 없지만, 브레닌도 마크와 살아서 즐거웠을 거다. 마크는 브레닌과 함께 살아서 자신이 좀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이 말은 마루야마 겐지도 했다). 동물과 사람이 다르다 해도 마음을 나눌 수 있다. 그건 늑대도 마찬가지다.

 

 

 

 

 

 

 

햄스터의 하루

 

 

 

제 하루, 별 거 없습니다

거의 잠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제가 일어나는 때가 언제냐구요?

그거야 밥먹을 때죠

 

저한테 밥을 주는 사람은 가끔 저를 귀찮게 합니다

잠자고 있는데 갑자기 통속에서 꺼내서는

자기 손바닥에 놓는 거예요

제가 그 위에서 잠을 자겠습니까

잠이 쏟아질 때는 그냥 자기도 하지만 아주 잠시예요

얼마 뒤 사람은 저를 통속에 넣거든요

그러면 저는 자리를 잡고 다시 잡니다

 

제가 먹는 것은, 밥도 있고 콩도 있습니다

자기가 밥먹을 때 콩 두개씩 줍니다

뭐든 많이 먹으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많이 먹지 못해요

제 몸은 엄청 작답니다

볼 속에 넣어두고 조금씩 꺼내 먹기도 하지만

제가 더 많이 먹지 못하면 사람은 아쉬워하더군요

그러면 개나 고양이를 키울 일이지……

 

처음에는 같이 사는 동무가 있었는데,

어느 날 없어졌습니다 저는 동무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요

하지만 말할 수 없습니다

동무가 없어졌을 때 사람이 무척 슬퍼하더라구요

그 모습을 보고 저는 오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가끔 저를 귀찮게 해도 저를 좋아해서 그런 거겠지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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