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1 사계절 1318 문고 104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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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나라 정치 사회 이런 것들이 나한테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많이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영향을 미치겠지.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로 바꾸려고 애쓴 사람 때문에 지금은 한국이 자유롭다. 여러 가지 안 좋은 것이 있기는 하지만. 사회주의라고 해서 다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어떤 것에든 좋은 점 나쁜 점이 다 들어있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큰 뜻을 품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흠이 있을 거다. 이런 말을 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많은 사람이 겪고 싶지 않은 때는 일제강점기가 아닌가 싶다. 조선말로 말하거나 조선말로 글을 쓸 수 없었을 테니까. 그때는 한국사람이 모두 크고 작게 일제강점기에 영향을 받았다. 가장 힘든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나 독립운동하는 사람 식구였겠지. 이런 말을 한 건 여기 나오는 시대가 일제강점기여서다. 이 책을 보고 한국에도 일본에서 작위를 받은 사람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조선 후기에는 벼슬을 돈으로 얻은 사람이 많았다. 여기 나오는 윤형만 아버지 윤병오도 그랬다. 윤병오는 정부 사람과 친해지고 한국과 일본이 합병하는 데 공을 세우고 일본에서 자작 작위를 받았다.

 

잘사는 사람은 늘 잘살고 못사는 사람은 여전히 못사는 건 지금도 다르지 않은 듯한데. 예전에는 아이가 많은 집은 아이를 다른 집에 보내기도 했다. 이건 한국만 그런 게 아니다. 일본이나 미국도 비슷했다. 입 하나를 줄이고 남은 아이라도 잘 먹이려고 그런 것이겠지만, 아들을 낳으려고 아이를 많이 낳기도 했을 거다. 수남은 여덟번째 아이다. 아들을 낳으려고 일곱번째 딸한테 수남이라는 이름을 지었는데 아이는 일찍 죽었다. 부모는 여덟번째로 태어난 아이를 다시 수남이라 했다. 수남이라는 이름은 부모가 아이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은 게 아니구나. 조선시대 아니 한국이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도 있었던 일이다. 지금도 아들을 낳으려는 사람이 아주 없지 않겠지. 수남은 가난한 집 여덟번째 딸이다. 또 한 사람 채령은 자작 딸이다. 딸이라는 건 마찬가지지만 아버지가 자작이어서 모자란 것 없이 자랐다. 수남은 일곱살 때 채령이 여덟번째로 태어난 날 선물이 되었다. 채령 아버지 형만은 딸한테 하인을 선물하려 했다. 본래 데려오려는 아이가 가기 싫다고 하자 그곳에 있던 수남이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했다. 수남 부모는 수남을 보내고 논 서 마지기를 받았다. 수남이 간다 해도 부모가 못 가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시간이 흐른 다음 수남은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하고 한번 더 말한다. 수남이 가려 한 곳은 그리 좋은 곳이 아니었다. 그때는 많은 사람이 그것을 몰랐겠지, 보내는 사람은 알았겠지만. 벌써 이런 말을 하다니. 수남이 간다고 해서 간 남의 집이지만, 수남은 자신이 팔려간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는다. 그래도 수남은 자기 처지를 나쁘게만 생각하지 않고 한글을 배우고 일본말도 배웠다. 채령이 일본에 공부하러 갈 때 수남이 함께 간다. 수남은 새로운 세상에 간다는 기대를 품었다. 채령은 공부하려고 일본에 간 게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는 곳에서 자유롭게 연애하려고 일본에 갔다. 사람은 자기 처지가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고 부모 것이 다 제 것이다 생각하기도 한다. 채령이 그렇게 된 건 아버지 형만이 무엇이든 들어줬기 때문이기는 하다. 채령이 일본에서 독립운동하는 사람과 사귈 때 수남은 영국 사람 집에서 잠깐 일하고 영어를 배웠다. 채령이 사귀는 사람이 일본 경찰한테 잡혀가고 채령도 끌려갈 뻔했는데, 수남이 채령 대신 황군여자위문대에 간다. 수남과 채령은 많이 닮았다. 둘이 닮지 않았다 해도 채령 아버지 형만은 수남을 그곳에 채령 대신 보냈겠지. 수남은 채령이 되어 황군여자위문대에 가고 채령도 신분을 속이고 일본 사람 테라오 준페이와 미국으로 간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건 그리 좋지 않을 것 같기도 한데, 수남은 자작 딸 채령이라는 자리를 좋아하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했다. 다시 수남으로 살거나 아니면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도 괜찮았을 때도 그랬다. 그건 강휘 때문일까. 강휘는 채령 오빠로 자작인 아버지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상처로 남아서겠지. 강휘는 일본으로 공부하러 갔다가 아버지와 연을 끊고 살겠다 했는데, 강휘가 독립운동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강휘 이야기는 한참 나오지 않다가 수남이 일본군 위안부로 간 곳에서 달아난 다음에 나온다. 수남은 그곳에서 달아났다. 다른 아이들은 그곳에 남겨두고. 수남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일본말이나 영어를 해서였다. 공부는 어느 때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는 것이구나. 수남이 혼자 달아났을 때 아쉬웠다. 다른 여자아이와 달아나는 건 더 힘들었겠지만. 내가 그런 처지에 놓였다 해도 수남과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수남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한 도련님 강휘를 만나려고 하얼빈으로 간다. 수남은 시골에서 경성 일본 중국에도 가다니. 러시아에도 잠깐 가고 다음에는 미국으로 간다.

 

언제나 자기 일을 스스로 하지 못하는 채령은 미국에서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준페이는 채령을 좋아했지만 좋아한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채령은 자기 아버지가 준페이한테 돈을 줘서 자신을 미국으로 데려갔다 생각했다. 채령이 미국에서 힘들게 살았다 해도 수남보다는 덜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남이 마음껏 산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으니 말이다. 채령 이름으로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고 마쳤다. 수남은 자신이 수남이 아닌 채령으로 산다면 채령한데 큰 일이 일어난다 여겼다. 조금만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텐데. 수남이 강휘를 좋아하지 않고 그대로 미국에서 살거나 한국에 돌아가도 자작 집에 가지 않았다면 더 나았을 텐데. 보는 나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수남이 강휘와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그 시간을 떠올리지 못할 일을 당하고 말았으니 다른 건 생각할 수 없었겠지. 수남은 늘 스스로 결정했다. 본래 그렇게 될 일이었다 해도. 아니 두번째는 달랐구나. 나중에는 안 좋게 되었지만 수남이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는 모습은 본받을 만하다. 어떤 것에 호기심을 가지는 마음도. 수남은 새로운 세상에 기대를 품었다. 그래서 낯선 곳에서도 잘 지냈다.

 

여자는 어느 때든 살기 어렵다. 일제강점기나 전쟁이 일어난 때는 더했겠지.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 친일한 사람이 모두 처벌받지 않았다. 그 사람은 그때는 미국에 붙었다. 채령도 독립운동한 오빠 강휘와 수남이 가지고 온 대학 졸업장으로 집안을 되살렸다. 친일한 아버지 일을 사실과 다르게 말했다. 그런 일 아무렇지도 않았을까. 증명서라는 거 다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 든다. 그런 것을 돈으로 사는 사람도 있겠지. 사람이 잘못된 길로 가는 걸 시대 탓으로 돌려도 괜찮을까. 세상에는 아주 착한 사람도 아주 못된 사람도 없다고 하지만. 자신한테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게 좋겠다. 수남은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독립운동하는 데 관심을 갖고 조금이라도 도우려 했다. 예전에 그런 식으로 독립운동 도운 사람 많았을 것 같다.

 

힘든 시대를 산 사람 이야기여서 마음 아프기도 했다. 어쩐지 안됐다 하면 안 될 것 같다. 수남이나 채령과 강휘 그리고 준페이는 자기 삶을 열심히 살았다. 좀더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테지만, 그걸 생각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늘 생각하고 살면 조금이라도 나은 길로 가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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