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협의 로맨티시즘

임화

아티초크(Artichoke Publishing House)  2015년 07월 29일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을 내가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여러 번 들어서 익숙한 이름도 많다. 임화는 많이 들어본 이름은 아니다. 임화를 언제 알았느냐 하면 이 시집이 나온 지난해(2015)다. 이 시집을 보다보니 그전에도 지나가면서 본 적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 때 카프라는 걸 들었으니까. 그때 배웠지만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한반도는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 북은 소련이 남은 미국이 도와주기로 했다. 그 탓일지 모르겠지만 그때 사람 이념도 둘로 나뉘었다. 그때 갑자기 둘로 나뉜 건 아니겠지만, 남과 북으로 나뉜 게 이념의 차이를 더 깊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남한에서는 공산주의를 몰아내려 하고 북한에서는 미국 스파이라는 이름으로 숙청을 했다. 그 안에 임화도 들어갔다. 임화가 1947년에 북한에 갔다는 말을 먼저 해야 했는데. 임화는 조선 레닌이라 하는 박헌영을 따라 북한으로 갔다. 글을 쓰다 북한으로 간 사람은 많지만, 내가 아는 이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시를 쓴 백석, 단편소설 동화 《문장강화》로 잘 알려진 이태준, 소설 《고향》을 쓴 이기영, 정말 얼마 안 되는구나. 이밖에 더 있을 텐데 생각나지 않는다. 관심을 별로 가지지 않아서 그렇구나.

 

세계에서 한나라가 둘로 나뉜 곳은 한반도밖에 없다고 한다. 언젠가 통일할까. 아니 조금씩 해나가야 할 텐데 싶다. 윗사람은 조금 알겠지만 일반 사람은 북한이나 한국 사정을 잘 모른다. 들리는 게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별로 좋지 않은 이야기뿐이다. 북한 사람은 한국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지금은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북한으로 넘어 간 작가 글을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작가는 다 남쪽 사람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거지 북한으로 넘어 간 사람 이름을 들었을 거다. 기억에 남은 사람이 이태준이나 이기영이 아닐지. 백석은 좀더 뒤에 알았다. 한국 작가 소설도 제대로 읽지도 않으면서, 북한으로 간 작가 글을 생각하다니. 새천년이 다가오고 작가는 북한에 가거나 북한에서 오기도 했다. 그런 만남 몇번 없었겠다. 남과 북이 통일하는 것도 괜찮지만, 두 나라로 사이 좋은 이웃 나라가 되는 것도 좋을 텐데 싶다. 거기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오랫동안 다른 길을 걸었으니. 한국 사람끼리도 생각이 달라서 싸우는데, 북한과 한나라가 되면 얼마나 더 심하게 싸울지. 그 싸움으로 피해를 입는 건 백성이다.

 

한때는 북한으로 넘어 간 작가 글을 보면 큰일났지만 지금은 자유롭게 볼 수 있다. 더 많은 작가가 알려지면 좋겠다. 임화는 만 열여덟에 시를 발표하고 글을 썼다. 본래 이름은 임인식이고 시뿐 아니라 평론도 썼다. 여기에 평론이 한편 실렸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이 임화 시를 보고 쓴 건가 했다. 읽다보니 뭔가 이상했다. 그제야 그 글도 임화가 썼다는 걸 깨달았다. 임화는 영화배우에 출판인 혁명가기도 했다. 여러 가지를 했다니. 시는 연극 대사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첫 번 항로에 담배를 배우고,

둘째 번 항로에 연애를 배우고,

그다음 항로에 돈맛을 익힌 것은,

하나도 우리 청년이 아니었다.

 

청년들은 늘

희망을 안고 건너가,

결의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들은 느티나무 아래 전설과,

그윽한 시골 냇가 자장가 속에,

장다리 오르듯 자라났다.

 

그러니 인제

낯선 물과 바람과 빗발에

흰 얼굴은 찌들고,

무거운 임무는

곧은 잔등을 농군처럼 굽혔다.

 

나는 이 바다 위

꽃잎처럼 흩어진

몇 사람의 가여운 이름을 안다.

 

어떤 사람은 건너간 채 돌아오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돌아오자 죽어갔다.

어떤 사람은 영영 생사를 모른다.

어떤 사람은 아픈 피배에 울었다.

─그 중엔 희망과 결의와 자랑을 욕되게도 내어 판 이가 있다면,

나는 그것을 지금 기억코 싶지는 않다.  (<현해탄>에서, 91~92쪽)

 

 

 

 

사랑하는 내 아이야

 

너 지금

어느 곳에 있느냐  (<너 어느 곳에 있느냐>에서, 145쪽)

 

 

 

조선시대가 끝나갈 때 일본으로 공부하러 간 사람은 많다. 지금 생각하니 공부만 하러 간 건 아니구나. 돈 벌러 간 사람도 많다. 조선과 일본 사이에 있는 바다를 현해탄이라 했다. 지금은 거의 듣지 못하는 말이다. 배보다 비행기로 가서일까. 임화는 연기 공부를 하려고 일본에 갔다 왔다. 영화도 찍었는데 그건 지금 남아 있을까. 북한에 가서 죽임 당한 사람은 아주 많겠지. 큰 뜻을 가지고 남한이 아닌 북한으로 간 사람도 많았을 텐데. 미국 스파이로 몰리기도 하다니. 남한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빨갱이라고 하면서 많은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가두었다. 임화는 미국 스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딸을 그리는 시를 썼을 때도 비판을 들었다고 한다. 자기 감정을 나타내지 못하다니. 임화는 꿈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북한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겠지. 저세상에서나마 임화 영혼이 자유롭기를 바라고 그리던 딸도 만났기를 바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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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8 14: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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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0 01: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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