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철을 느끼고 사는 건 아니다. 그저 오면 오는구나, 하고 가면 가는구나 한다. 여름이나 겨울은 덜하지만 봄이나 가을은 올 때가 좋은 것 같다. 따스한 햇살, 서늘한 바람이 좋으니까. 뜨겁고 차가운 것도 나름대로 괜찮지만 오래 이어지면 지내기 힘들다. 더울 때는 덜 자서 좀 낫지만, 추우면 일어나기 싫다. 싫기보다 힘들다고 해야겠다. 움직이면 괜찮은데 그렇게 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추울 때도 빨리 일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 춥다고 말할 때는 아니구나. 시간이 가고 철이 바뀌어도 하는 건 그리 다르지 않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즐겁게 하면 좋을 텐데, 늘 즐거운 것은 아니어서. 뚜렷한 목표도 없이 해서 그런가. 꼭 그런 게 있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 지금 찾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자꾸 하다보면 뭔가 생기거나 알 수 있을지도. 이런 막연한 마음으로 하다니. 어쩌면 찾다가 끝날지도.

 

 

 

 

 

 

 

피해자 식구 못지않게 괴로운 가해자 식구

 

  봄날의 바다

  김재희

  다산책방  2016년 05월 13일

 

 

 

 

 

 

 

 

 

 

 

 

 

 

 

10년 전 그 사건 이후로 희영은 삶다운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단 한번도 들지 않았다. 가족사진에서처럼 웃은 적도 드물었다. 밤마다 동생 사건과 관련된 문건들을 찾아내서 지워나가면서 가해자 식구로 겪는 괴로움을 곱씹으며 속으로 꾹꾹 눌러 담았다.  (31쪽)

 

 

사건이 일어나면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고 그 사람 식구가 있다. 피해자 식구는 피해자 식구대로 가해자 식구는 가해자 식구대로 힘들 거다. 피해자 식구는 자신의 아픔을 말할 수 있지만 가해자 식구는 좀 어렵겠다. 한사람이 저지른 일 때문에 다른 식구도 가해자로 보기도 한다.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요즘은 가해자 식구 정보가 인터넷에 퍼지는가보다. 그런 건 어떻게 알아내고 쓰는 건지, 그런 거 하는 사람 대단하구나. 그건 또 다른 가해자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그런 사람을 법으로 어떻게 했다는 말은 못 들은 듯하다. 누가 그런 일을 하는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겠지. 누군가 신고를 하면 할지도. 컴퓨터 인터넷을 쓰지만 그런 걸 찾아본 적은 없다. 내가 그런 일을 겪지 않아서겠지. 살면서 어떤 일 피해자나 가해자 식구는 되고 싶지 않다. 이게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려나. 살다보면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니까.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겠지.

 

아무 일 없이 보내는 열해와 어떤 일이 일어난 뒤 보내는 열해는 아주 다를 거다. 어떤 일이 생기면 더는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희영은 힘든 열해를 보냈다. 열해 전 동생 준수가 은행원 김수향을 죽였다는 걸로 잡히고, 준수는 재판을 받기 전에 희영한테 자신이 한 게 아니다는 말을 하고 구치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사건은 준수가 죽어서 판결이 나지 않았다. 이것도 해결되지 않은 사건일까. 준수가 범인이라는 게 확정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은 준수가 은행원 여자를 죽였다 여겼다. 희영과 희영 엄마는 살인자의 식구로 살았다. 엄마는 준수가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말하고 준수한테 죄가 없음을 밝히려 했다. 희영은 그 일을 돕지 않았다. 피해자 식구도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사이가 틀어지기도 하겠지. 누군가는 그만 잊자 할지도 모르고 그럴 수 없다 하고 매여 살기도 할 거다. 서로 보듬고 살아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니겠지. 가해자 식구는 어떨까. 준수가 하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열해 전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준수 마음이 알고 싶은데, 희영이 기억하는 준수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버지 사업이 잘 되지 않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엄마는 희영과 준수를 데리고 제주도에 가서 살았다. 아버지가 있었을 때도 엄마는 일을 하러 다녀서 희영이 준수를 돌봐야 했다. 동생을 잘 챙기는 누나도 있지만 그걸 싫어하는 누나도 있겠지. 자신도 어린데 어린 동생 보는 게 쉽지 않았을 거다. 제주도로 가서는 좀 달라졌지만 많이 바뀌지는 않았다. 희영은 제주도에서 단짝 친구를 만났다. 준수는 여전히 누군가와 잘 사귀지 못하고 혼자 지냈다. 엄마가 일을 나간다고 해도 일을 하고 집에 와서 아이한테 조금 마음을 썼다면 나았을까. 엄마는 준수가 사달라는 건 다 사주었다. 희영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것 때문에 희영도 준수한테 마음을 덜 썼을지도.

 

예전에는 아이들이 바깥에서 뛰어 놀았다. 지금은 그런 아이가 적다. 아이가 하나나 둘인 사람이 많을 거다. 이건 사회에서 마음 써야 하는 걸까, 부모를 대신할 수 있을까. 이런 책을 보고 부모가 아이를 잘 기르면 범죄자가 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오래전에는 아이를 그냥 내버려두어도 괜찮았던 것 같기도 한데, 지금은 그러면 안 될 듯 싶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많을까, 얼마 없겠지. 부모와 아이 사이가 좋으면 아이가 다른 사람과도 잘 지낼지 모를 텐데. 부모가 아이를 다 안다고 할 수도 없다. 이야기를 해도 마음 깊은 곳을 알기 어렵다. 부모가 아이를 믿어주기도 해야 하지만, 잘못한 일은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자기 아이가 사람을 죽였다는 일 믿고 싶지 않겠지만. 엄마는 준수가 한 일을 받아들이지 않고 죽기 전에 희영한테 준수의 누명을 벗겨달라고 한다. 희영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받아들이지 않고 모르는 척하고 살았다. 열해가 흐른 뒤에야 그 일과 마주한다.

 

 

“누나, 마음 진정해요. 하지만 진실을 자꾸 외면하면, 언젠가 그게 부풀고 커져서 엄청난 크기로 굴러 떨어져 내린대요.”  (194쪽)

 

 

한 가지는 확실했다. 희영도 준수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이렇게 되기까지 그 누명을 벗겨보고자 했다는 것.

 

식구의 마지막 명예와 이름을 어떻게든 깨끗하게 지켜주고자 그가 가고 나서도 이렇게 하였다는 것. 어쩌면 희영과 김순자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으면서도 같은 결과로 끝나리라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그 힘든 여정을 걸어왔던 게 아닐까.

 

그리고 가장 크게 싸고돌던 불안감과 두려움은 진짜로 준수가 김수향을 죽인 범인이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는 그것에서 온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그래서 사건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밀쳐놓았던 것이 아닐까.  (313쪽)

 

 

희영이 준수 일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도 희영은 살인자 식구였다. 대중매체에서는 가해자 식구나 피해자 식구를 시청률을 올리려고 이용하지 않나 싶다. 그런 일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좀더 생각했으면 한다. 언젠가 피해자 식구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보았는데, 가해자 식구도 다르지 않을 듯하다. 가해자 식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건 잘 모르겠다. 죄를 지은 식구 때문에 나머지 식구도 죄인처럼 살아야 하다니. 피해자와 피해자 식구한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겠지. 그렇게 죄를 갚고 살려는 사람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다른 사람 목숨을 빼앗는 거다. 죽은 사람은 한사람일지라도 그 사람과 관계있는 사람 마음도 죽이는 거다. 그런 걸 생각하면 나쁜 짓하기 어려울 텐데. 남의 눈에서 눈물 흘리게 하면 자신이나 식구는 피눈물을 흘린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삶은 실체 있는 한바탕 꿈

 

 

 

 

당신 이마에 이 키스를!

이제 당신과 헤어지면서

이것만은 인정하리다,

삶은 꿈이라는

당신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그렇다면 환상으로든 아니든

밤새 그랬든 하루 만에 그랬든

희망이 줄어든 것은 없지 않은가요?

우리가 보는 것 믿는 것은 모두

꿈속의 꿈일 뿐이니까요.

 

파도에 시달리는 바닷가

거친 소리에 에워싸여 서서

금빛 모래를 한줌 쥐어 보지만

잡히는 것은 얼마나 적은지! 그나마도

내가 슬피 우는 사이 바닷물에 씻기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구나,

내가 슬피 우는 사이에!

오 하느님! 좀 더 꼭 쥐어도

그것을 잡을 수는 없는 건가요?

오 하느님! 이 무정한 파도에서

모래 한 알도 건질 수 없는 건가요?

우리가 보고 믿는 것은 모두

꿈속의 꿈일 뿐인가요?

 

-<꿈속의 꿈>, 에드거 앨런 포

 

 

 

꿈속의 꿈 하면 생각나는 건 장자의 호접몽이야. 어느 날 장자가 나비와 노는 꿈을 꾸고는, 삶을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꾸는 것인지, 나비가 내가 된 꿈을 꾸는 것인지 했어. 동양에서만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더군. 에드거 앨런 포도 시에 그런 것을 썼어. 가상현실이라는 말을 보니 저런 게 생각났는데 좀 다른 것일지도 모르겠어. 가상현실은 진짜가 아니니까. 사는 게 꿈과 같다 해도 여기에는 실체가 있지. 가상현실은 상상이라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아. 상상한 것을 이야기로 쓰기도 하니까.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을 써서 세계 곳곳에 있는 사람과 쉽게 이야기하지만, 정작 가까운 사람과는 제대로 말하지 않아. 인터넷 속 세상도 가상현실이겠지. 그것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고 현실과 다르지 않다 여기면 좀 낫지 않을까. 인터넷에서 만나던 사람이 실제 만나기도 해. 그렇게 만나고 그 자리에서 서로 자기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면 안 될 텐데. 아니 말로 하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이야기할지도. 이건 그 자리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거니 좀 낫겠지.

 

 

                      

 

 

 

과학소설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영화는 조금 보았어. 이것도 오래전 일이야. 영화 원작이 소설일 때가 많으니 영화를 보는 게 과학소설을 조금 엿보는 것과 다르지 않겠지. 이런 말을 하는 건 SF를 원작으로 한 영화에 나오는 기계 같은 것을 지금 쓰기도 하기 때문이야. 사람이 할 일을 기계가 하게 된 게 제4차 산업혁명인가봐.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무엇인가 일어나는구나. 빨리 바뀌고 사라지는 것도 많고. 가장 걱정스러운 건 사람이 할 일이 얼마 없게 되는 거야. 회사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마음 써야 하는 사람한테 일을 시키기보다 프로그램만 되어 있으면 몇 사람치 일을 하는 기계를 쓰려 해. 지금은 사람이 기계한테 밀려나는 시대야. 나이 많은 사람은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기도 해. 젊은이도 마찬가진가. 오십대는 조금 다르다고 하더군. 그동안 쌓은 경험을 살리는 일을 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어. 모두가 즐겁게 살기는 어려워. 같은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찾으면 괜찮겠지.

 

온라인 책방 때문에 많은 책방이 문을 닫았는데, 언젠가부터 동네책방이 생겼어. 동네책방은 별로 크지 않아. 그런 곳에 한번도 가 본 적은 없지만, 책방에 사람이 별로 없으면 난 쉽게 들어가지 못할 것 같아. 이번에 두 곳을 소개했어. 음악책을 전문으로 파는 ‘초원서점’과 그림책을 전문으로 파는 ‘작은 정원’이야. 얼마전에 우연히 인터넷에서 동네책방을 이야기하는 기사를 보았는데, 한곳은 시집을 전문으로 팔고 한곳은 추리소설을 전문으로 팔았어. 시집 파는 곳은 주인이 시집을 추천하고 시를 옳겨 써 보는 공간도 있대. 동네책방에서는 책만 파는 게 아니고 모임도 가져. 난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가기 싫지만,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 일본말로 쓰인 책을 전문으로 파는 책방도 괜찮을 것 같은데. 난 멀어서 못 갈 것 같지만. 거기에서 사도 값이 싸지 않을 것 같기도 해. 동네책방이니 책값을 다 받지 않을까. 동네책방을 살리는 것이니 그건 그대로 받아들여겠군. 요새 동네책방이 생기는 곳은 서울과 경기 쪽이야. 서울에 더 많겠지. 다른 지방에도 동네책방이 하나도 없는 건 아닐 텐데. 이게 바로 남과 다른 것이기도 하지. 하지만 이것이 잠시 퍼지다 사라지면 안 될 텐데. 아니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 건 사라지고 남을 건 남을 거야.

 

이번에 반가운 사람이 나왔어. 내 쪽에서만 알지만. EBS 라디오 방송 <북카페>에 인터넷 책방 알라딘 인문 MD 박태근이 나와서 이런저런 책 소개를 해. 라디오 방송에서만 만나던 사람을 책에서 만나서 반가웠어. 가진 책이 이만권이라니. 어마어마하군. 책에 묻혀 살지도 모르겠어. 다른 것보다 책이 많다는 것만 기억하다니. 일하는 곳도 책에 둘러 싸여 있어. 어니스트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는 제대로 만나보고 싶어. 예전에 한번 보기는 했는데. 지금 사람은 자신이 나이를 먹었을 때 돈없고 힘없는 것을 걱정하겠지. 그런 때라 해도 자신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다면 사는 게 덜 쓸쓸하겠지. 그게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건 책이야. 책은 자신이 찾을 때 언제나 거기 있잖아. 땡스북을 돕는 여러 사람이 책 열권을 먼저 읽었어. 열권 안에 만나보고 싶은 것도 있어. 잊어버리지 않고 기회를 봐서 만나면 좋을 텐데 어떻게 될지 나도 잘 모르겠어(전에도 이 말 했군). 한권이라면 기억했다가 만나볼 수도 있을 텐데. 책연이 있기를 바라야겠어.

 

책을 읽는 사람이 적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 한국에 한해 동안 나오는 책이 4만종이래. 엄청난 숫자야. 그 안에는 좋은 책도 있고 별로인 책도 있을 거야. 좋은 책을 자주 만나면 좋을 텐데. 별로인 책에서도 배울 게 있겠지. 책을 읽으면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아. 아주 남다른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만. 저도 모르게 무언가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지키는 힘을 얻기에 책만큼 좋은 건 없어. 이렇게 말하지만 여전히 흔들리기도 해. 이건 사람이기 때문이겠지. 책에 쓰여 있다고 해서 다 옳은 건 아니야. 그걸 제대로 보려면 이런저런 책을 만나고 스스로 생각해야지. 책을 읽고 생각하고 실천하면 더 좋은 삶이 될 거야. 언젠가 좋은 꿈꾸고 간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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