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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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은 무서워지고 사람들은 참을성을 잃고 자기 감정대로 행동하는 것 같다. 이건 왜 그럴까. 세상이 빨리빨리 흐르고 지구환경도 안 좋아져서 그런 것 같다. 사람을 많이 죽인 사람이 왜 그렇게 됐는지 말하는 걸 보면, 거의 어린시절이 그리 좋지 않았다. 부모가 아닌 사람 때문일 때도 가끔 있지만, 부모 때문에 힘들게 지낸다. 그 사람이 가장 처음 죽이는 사람은 부모다. 이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하고도 이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이때 생각할 수 있는 건 부모 어느 한쪽에 질투를 느끼는 게 아니고 부모를 넘으려는 마음이다. 어릴 때는 부모가 아주 커 보여서 반항하지 못하지만, 자라면 부모가 별로 크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자신을 때리고 괴롭히는 부모라도 아이는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아이에 한한 게 아닐지. 아이는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다. 부모는 나이를 먹고 힘이 없어진다. 나도 문제가 아주 없지 않았지만, 누구나 크고 작은 일을 겪고 산다. 그런 가정을 평범하다 여긴다면,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힘이 빠진 부모를 안쓰럽게 여길 거다. 이런 생각으로 흐르다니.

 

앞에서 환경문제를 잠깐 말했지만, 내가 자세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냥 갑자기 생각났다. 먹는 것도 상관있지 않을까. 살기에는 편한 게 많지만 그것 때문에 잃은 것도 많다. 그렇다고 해서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렵겠지. 원시시대나 조선시대에도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있었고, 자기 부모나 형제를 죽인 사람도 있을 거다. 그때는 그 일이 여기저기에 알려지지 않았겠지. 지금은 정보가 아주 쉽게 빠르게 여기저기로 흘러간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 정보에는 올바른 것과 올바르지 않은 게 섞여 있다. 멀리에서 그걸 보는 사람은 그걸 그대로 믿기도 한다. 이 책은 정보의 옳고 그름과는 상관없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만약 과학이 지금보다 발달해서 갓난아이가 자라서 살인자가 된다는 걸 알 수 있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은 갓난아이가 어떻게 자랄지 모른다. 나중에 그걸 알아볼 수 있는 게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 든다. 그런 시대를 생각하고 아이를 끝까지 지키려는 엄마 이야기 괜찮을 것 같다. 좀 다르지만 <터미네이터가>가 생각나네.

 

모든 사람이 갓난아이는 착하다 생각한다. 사이코패스는 자라는 환경 때문에 되기도 하지만 태어나기도 한다. 내가 그런 걸 많이 알아본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만난 책이 그렇게 생각하게 했다. 부모한테 문제가 없다 해도 그런 아이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유전자는 오래전 것도 이어지니까. 많이 거슬러 올라가면 조상 가운데 사이코패스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나도 그럴 수 있다 생각해야겠구나). 그런 것까지 말하는 책을 본 적은 없지만. 이것도 이런저런 책을 보고 생각하게 된 거겠지. 여기에 나온 유진도 그런 경우일 것 같다. 확실하지 않아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어떤지 알 수 있는 건 자아를 갖게 되는 때겠지. 지금도 갓난아이뿐 아니라 어린이는 순수하고 착하다 생각하는 사람 많을 거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생각하는 게 있을 텐데. 그런 아이 가운데도 다른 아이와 좀 달라 보이는 아이가 있을 거다. 유진이 그랬다. 조용하지만 마음속에 무서운 것을 숨긴 아이처럼 보였다. 엄마 배 속에 유진이 생기고 낳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깐 생각한 것 때문은 아닐까. 작은 일이라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구나. 《케빈에 대하여》에 나온 엄마도 아이를 낳고 싶어하지 않았다.

 

어릴 때 사이코패스에서 최고 레벨 프레데터(이 말 처음 알았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지. 앞에서는 갓난아이가 그러면 어떻게 하냐고 했는데. 갓난아이든 조금 자란 아이든 엄마가 받는 충격은 클 거다. 유진 엄마는 어떤 일을 보았다. 그 일을 못 보거나 보았다 해도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좀더 커 보였을 텐데, 유진 엄마는 사랑보다 두려움이 더 커 보였다. 엄마는 유진이 다른 사람한테 해를 입히는 걸 막고 싶었던 걸까, 자신이 해를 입는 걸 막고 싶었던 걸까. 사람은 누구나 좀 이상한 면이 있다. 엄마와 이모 사이도 그랬는데, 그건 생각하지도 않고 유진 엄마는 이모가 하자는대로 했다. 남편과 큰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자신이 의지할 사람은 이모밖에 없다고 여겼던 것일지도. 사람을 약으로 어떻게 하는 건 별로 안 좋다고 생각한다. 우울증은 약도 먹고 상담도 받아야 한다지만, 충동을 막으려고 약을 먹게 하다니. 약을 안 먹었을 때 느낌을 알면, 약을 안 먹는 일이 자주 있을지도 모를 텐데. 유진이 그랬다. 유진은 약을 먹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못했다. 어떤 충동이 일어나는 거겠지. 유진은 자신의 본성을 알게 되고 일을 저지르지만 그 일에 충격을 받고 잠시 잊어버린다. 잊어버린 일은 다시 떠올려야 한다. 피 냄새에 잠에서 깬 유진은 자신이 한 일을 조금씩 떠올린다.

 

이걸 읽는 것보다 쓰는 게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유진이 되어서 써야 하니까. 책을 읽는 사람은 유진이 생각하는 걸 죽 따라가야 한다. 유진이 했다는 걸 알아도 그게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도 조금 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사람한테 어떤 성향이 있든 그건 조금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리게 한다거나. 유진은 수영을 하고 싶어했는데 그걸 못하게 하다니. 어릴 때는 어쩔 수 없이 엄마 말을 따라도 크면 달라질 수 있는데 그건 생각하지 못했나보다. 사람은 못하게 하면 더 하려고 한다. 엄마가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면 더 나았을 것 같다. 유진한테 검사 결과를 솔직하게 말하고 함께 이겨내려 해야 했다. 그런 건 솔직하게 말하기 어려울까. 다른 사람 마음을 잘 모르는 사람이 다 사람을 죽이는 건 아닐 거다. 알아듣게 설명하면 조금은 생각하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어둠을 갖고 있다. 많은 사람이 그걸 드러내면 안 된다 여기고 끊임없이 자신과 싸운다. 유진은 그런 기회를 빼앗겼다. 다른 방법을 썼다면 지금과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서 달아나려고 한다. 그건 사람이 약하기 때문이겠지. 자신이 이기지 못한다 해도 힘든 일에서 눈을 돌리기보다 마주보고 눈싸움이라도 하면 좋겠다.

 

 

 

희선

 

 

 

 

☆―

 

잊기는 최고의 거짓말이다. 나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완벽한 거짓이다. 내 머리가 내놓을 수 있는 마지막 패이기도 하다. 어젯밤 나는 멀쩡한 정신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고, 해결책으로 잊기로 했고, 나 자신에게 속아 바보짓을 하며 하루를 보낸 셈이었다.

 

모든 걸 알게 된 지금에 와서야 나는, 내가 살인을 저지르리라는 걸 예감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랬기에 하구언 길의 위험한 놀이를 그만두라고 스스로 경고했겠지. 그런데도 자꾸 했던 건, 상상의 경계를 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 사회 자아가 견고하다고 믿었다. 즐거운 한때와 삶을 맞바꿀 만큼 분별력이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에 대한 과대평가, 나를 제어할 수 있다는 헛된 믿음이 어젯밤 운명의 손에 내 목을 내주게 만든 것이었다.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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