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하고 글을 쓰면 더 좋을 텐데, 그냥 책을 읽고 그것을 쓰는구나.

 

 

 

 

 

공부로 자신의 세계를 넓히자

 

  공부할 권리

  정여울

  민음사  2016년 03월 10일

 

 

 

 

 

 

 

 

 

 

 

 

 

공부라고 하면 학교 다닐 때 하는 것을 많이 떠올리겠다. 난 이 책 제목을 봤을 때 무슨 생각을 했던가. 별 생각 안 한 것 같다. 책을 다 보고 나니 공부할 권리보다 공부할 자유가 더 낫겠다 싶다. 정여울이 말하는 공부는 누가 하라고 하거나 꼭 해야 하는 건 아니고,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니니까. 지금은 그렇지만 옛날에는 못하게 했을지도. 요즘은 공부하라고 한다, 평생 공부. 조선시대 선비는 평생 공부해야 한다고 했겠다. 학교나 부모는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일자리를 얻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좋은 배우자를 만나려면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은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를 구하는 건 쉽지 않다. 오랫동안 한 곳에서 일할 수 없고 비정규직이나 계약직이 훨씬 많다. 비정규직이라도 구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도 못하는 사람이 있겠지. 사는 것도 힘든데 무슨 공부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힘들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건 늘 그렇지 않을까 싶다. 내가 책을 읽고 어떤 힘을 얻은 경험은 많지 않지만 정여울은 문학과 철학 역사, 심리학과 신화학을 공부하고 힘을 얻었다. 그것을 공부할 때 신났다고 했다. 그 말 보고 난 뭘 할 때 신날까 했는데, 신이 나서 한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책을 읽을 때는 즐겁지만, 어떻게 쓰지 하는 생각에 우울해지기도 한다. 책 읽는 것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다니. 난 인문학 책은 별로 못 읽었다. 거기에도 좀 관심을 가져야겠다 생각했는데. 아주 관심 없는 것보다는 나을까. 회사에서 요즘은 인문학을 하라고 한다. 이것도 그저 좋은 일자리를 구하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걸 아는 사람을 바라기도 하니까. 인문학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이건 지식만 얻으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지금까지 몰랐던 것을 알기도 하겠지만,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 실천하는 건 쉽지 않지만, 큰 일보다 작은 일이라도 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무슨 일이든 작은 것부터니까. “한 사람의 힘이 정치권력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히틀러를 비롯한 부수는 독재자들이 지닌 한 사람의 힘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는 한 사람의 꾸밈없는 양심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필요한 한 사람의 힘입니다.” (180쪽) 한 사람이 양심을 지키면, 두 사람 세 사람…… 갈수록 늘어나지 않을까. 한 사람 힘은 작지만 크다.

 

이런 말하는 건 좀 창피하지만,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난 자존감이 낮은 편이다. 어렸을 때는 자신없다는 말을 했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자신과 자존감, 다를까. 아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자신이 없어서 그런 건지 마음이 약해서 그런 건지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아할 말에 난 마음을 잘 다친다. 그걸 하나하나 말하지는 않는다. 시간이 가기를 바랄 뿐이다. 정여울은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를 해서 다친 자신의 마음을 낫게 했다고 한다. 살면서 마음 다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 공부와 책읽기는 다를까. 누군가는 책읽기는 공부가 아니고 일상이어야 한다던데. 공부는 책으로만 하는 게 아니어서 그런 말을 한 걸지도. 뭔가 알려면 책을 보아야 한다. 우리보다 먼저 공부를 한 사람은 그것을 책으로 썼다. 나한테는 책읽기가 공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주 열심히 하는 건 아니지만. 나도 책을 읽고 마음을 단단하게 다지고 싶다. 만나는 책을 좀더 넓혀야 할 텐데. 어떤 책을 보든 생각을 하고 이렇게 쓰면 좀 괜찮겠지. 한쪽이 아닌 여러 쪽에서 봐야 한다. 그걸로 자신을 가질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책을 볼 때는 그럴 수 있을지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사람은 자기 단의 다른 자신이라 한다. 무의식인가. 예전에 만난 《헤세로 가는 길》에서도 카를 구스타프 융이나 무의식을 말했다.

 

지금 세상은 물질은 넘쳐나지만 정신은 더 가난해졌다. 우리나라는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을 겪었다. 전쟁이 끝난 뒤 사람들은 경제에 초점을 맞추고 지금에 이르렀다. 여전히 경제를 살려야 한다 말하지만, 한쪽에서는 마음을 쉬게 하려 한다. ‘피로사회’라는 말이 생각나는구나. 그 책은 읽지 않았지만. 공부가 사는 데 도움은 안 될지도 모른다. 이건 책읽긴가. 공부를 하면(책을 읽으면) 세상을 바로 보려 하고 넓게 보려 한다. 자신의 세계도 넓어지겠지. 무언가에 휩쓸리기 쉬운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려면 공부하고 생각해야 한다. 스스로를 돕고 남도 돕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

 

존엄의 근거를 바깥에서 찾으려 한다면 자존감은 쉽게 바깥 형편에 따라 비틀거리고 상처입을 수밖에 없지요. 먼저 내가 나를 도울 수 있는가? 이렇게 스스로한테 묻고, 스스로를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날 때 우리는 남한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아니 나는 가진 것이 충분하니 반드시 남을 도와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행복한 책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347쪽)

 

 

나만의 속도, 나만의 깊이를 찾아 떠나는 마음 여행, 누구도 나를 앞지를 수 없는 삶의 방식이 있다. 천천히 걷는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에서, 82쪽)

 

 

 

 

 

    

 

                     

 

                      

 

 

 

 

 

조선시대에도 산문을 썼다

 

  문장의 품격

  안대회

  휴머니스트  2016년 05월 23일

 

 

 

 

 

 

 

 

 

 

 

 

 

조선시대에 글을 쓴 건 남자고 양반이다. 언젠가 조선시대에 아이를 기른 일기를 할아버지가 썼다는 말을 들었다. 손자를 잘 키우려고 했지만 말을 잘 안 들었다고 한 것 같다. 지금은 엄마가 아이를 기를 때 일을 잊지 않으려고 일기를 쓴다. 모두가 쓰는 건 아니겠지만 부지런한 사람은 쓰겠지. 조선시대에 할아버지가 손자 기르는 일기를 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때는 여자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걸 좋게 여기지 않았으니까. 이것도 모두 다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허난설헌은 결혼하기 전에는 글공부를 하고 시를 썼다. 결혼하고도 썼지만, 죽을 때 자신이 쓴 걸 모두 태우라고 했다. 그래도 조금 남아서 지금까지 전해지는 거겠지. 그때 글을 쓴 여성이 허난설헌 말고 더 있을 텐데, 내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조선시대 그림을 보면서도 여성 화가가 신사임당만 나와서 아쉬웠는데. 이 책을 볼 때도 글을 쓴 여성이 더 많았다면 좋았을 텐데 했다. 편지는 많이 썼을지도 모를 텐데. 남은 게 거의 없어서 우리가 모르는 건지도.

 

지금까지 난 조선시대 사람이 어떤 글을 썼다고 생각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 내가 조선시대 사람이 쓴 글을 본 적이 없다는 걸 알았다. 소설에 나오는 건 봤다. 정약용과 황상 이야기가 담긴 책에서는 시를 보았다. 그것밖에 없다. 그것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조선시대 사람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했다. 난 한글로만 글을 써서 한자로 산문이나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 모른다. 세종이 일찍이 한글을 만들었지만, 한글로 글 쓰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거의 한자로 글을 썼겠지. 중국하고는 좀 다른 식으로 썼겠지만 한자로도 산문이나 소설 쓸 수 있겠다(한문소설이 있다는 건 안다). 양반은 어렸을 때부터 글 공부를 한다. 과거를 보려고 하는 공부기는 해도 여러 책을 보다보면 좋아하는 게 생기고, 뭔가 쓰고 싶을 거다. 사람은 책을 읽으면 글이 쓰고 싶어지니까. 시를 많이 썼겠지만 산문도 썼겠지.

 

여기에서는 일곱 사람 글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일곱 사람은 허균, 이용후,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이옥, 정약용이다. 이용휴와 이옥은 처음 듣는 이름이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전업작가였다는 거. 조선시대에도 전업자가가 있었을까. 그런 말이 있어서 썼지만, 조선시대에 전업작가로 사는 건 지금보다 힘들었을 것 같다. 책을 읽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지금은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용휴와 이옥이 놓인 현실이 책을 읽고 글만 쓰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머지 다섯 사람도 과거를 보고 벼슬을 했지만 그렇게 잘되지는 않았다. 허균은 사회 부조리에 통곡하고 신분차별에 화를 냈다. 글에도 그런 마음을 담았다. 일곱 사람은 그 시대에서 삐져나온 못 같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정약용은 정조가 죽은 다음에 유배를 떠났지만. 정약용은 유배 간 곳에서 사람을 가르치고 글도 많이 썼다. 유배가 아주 나쁜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벼슬자리를 물러났다면 덜 억울했겠지만.

 

오래전 글이지만 지금 읽어도 괜찮은 건 시대를 앞선 거겠지. 그건 언제까지고 이어질 거다. 일곱 사람은 그런 식으로 글을 쓴 듯하다. 참신하고 독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려 했다. <춘향가>는 신분을 넘은 사랑이라 하는데(다른 해석도 있겠지만), 자유연애도 말하는 게 아닌가 싶다. 신분이 다른 사람이 만났지만 여자가 죽고 남자도 일찍 죽어서 안타까운 이야기 <심생의 사랑>을 보니, 신분이 다른 사람이 만나는 것뿐 아니라 자유연애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것 같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도 자유연애를 하거나 바란 사람 있지 않았을까. 이옥이 쓴 산문 몇 편은 소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글이 어떻다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못하겠다. 글과 그 사람이 어긋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지금은 글과 그 사람이 똑같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글과 사람을 따로따로 보기도 한다. 산문은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자기 안을 잘 들여다보거나 바깥을 보고 다시 자신으로 돌아오기도 하니까. 어떤 글이든 안 쓰는 것보다 쓰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쓴대로 살지 못해도 그게 무의식에 남아서 때때로 자신을 일깨울거다.

 

 

 

희선

 

 

 

 

☆―

 

종일토록 망련된 말을 하지 말고

종신토록 망령된 생각을 하지 말자!

남들은 대장부라고 안 해도

나는 그를 대장부라고 하리라!

 

마음에 조바심과 망령됨을 갖지 말자!

오래 지나면 꽃이 피리라.

입에 비루하고 속된 것을 올리지 말자!

오래 지나면 향기가 피어나리라.

 

<서쪽 문설주에 쓰다>, 이덕무 (44쪽)

 

 

“마음이 한가로우면 몸은 저절로 한가롭다.”  (147쪽  이덕무)

 

 

큰 사귐은 꼭 얼굴을 봐야 하는 것도 아니고, 깊은 우정은 꼭 가깝게 지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황면지(黃勉之)는 오중(吳中) 포의일 뿐이고, 이헌길(李獻吉)은 문장의 대가에다 지위까지 높아서 그때 세상 귀인으로 거드름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천 리 멀리 편지를 보내 결국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하니 예로부터 드문 성대한 행동이라 하겠습니다.  (163쪽  이덕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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