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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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2013)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순례를 떠난 해》가 일본에서 나온 해와 같은 해에 한국에도 나왔다. 조금 차이 날지 모르겠지만 거의 같은 때 나왔다. 그런 일이 처음은 아니겠지만, 말이 많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난 기사는 못 봤는데 돈을 많이 주고 한국말로 옮겼다고 들었다. 인센가. 이 책도 일본에서 나오고 한해가 지나지 않았다. 기회가 오면 한번 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구나. 다른 일은 별로 잘되지 않지만, 책을 만나는 건 가끔 뜻대로 된다. 이것도 가끔이고 우연이다. 이런 일은 나만 겪는 게 아니다. 누구나 우연히 자신이 바라는 일 일어나기도 할 거다. 하루키한테도 그런 일이 있었다. 은행에 갚아야 할 돈을 마련하지 못했는데 길에서 꼬깃꼬깃한 돈을 주웠다. 신기하게도 은행에 갚아야 하는 돈과 같았다. 그 말 다른 데서 본 것 같다. 그것만 그런 게 아니고 다른 이야기도 한번쯤 본 것 같았다. 이걸 읽고 느낀 건, 그동안 내가 하루키 산문을 많이 만났나보다다. 하루키 글 아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자주 만난 건 좋아하는 쪽에 가까운 건가, 그럴지도. 처음 하는 말은 아니지만, 내가 처음 만난 일본 작가가 하루키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일지도.

 

많은 사람이 알겠지만 하루키는 대학에 다니다 결혼하고 회사에 다니는 건 싫어서 재즈 카페를 했다. 이런 걸 보면 하루키는 마음먹으면 잘한다는 느낌이 든다. 아니 좋아하는 걸 해선가. 재즈 카페를 한 건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였다. 그곳에 오는 사람에는 좋은 사람도 있고 별로 안 보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 해도 하루키는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는 것 같다. 사람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 것도 있겠다. 학교 다닐 때 큰일을 겪거나 부모한테 문제도 없었다. 하루키가 공부하는 걸 즐기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자랐다. 부모는 하루키한테 공부 잘해라 하는 말은 거의 하지 않은 듯하다. 하루키는 그런 말 들었겠지만 잘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소설 쓴다고 해서 뭔가 남다를 일을 겪는 건 아니다. 어떤 아픔을 가진 사람이 그걸 말하려 하기도 하지만. 작가는 자기 둘레를 잘 보고 거기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건 자신만 아는 것이기도 하고 남이 마음 쓰지 않는 것이기도 하겠지. 다 알지만 잊은 것도 말하겠다.

 

스물아홉에 하루키는 야구 경기장에서 소설을 써 봐야겠다 생각하고 만년필과 원고지를 샀다. 만년필이랑 원고지 없어도 글은 쓸 수 있는데. 거의 좋은 연장을 마련하고 그것을 제대로 못 쓰기도 하는데, 하루키는 여섯달 동안 썼다. 처음 쓴 건 재미없었다고 한다. 난 안 되나, 하고 그만두지 않고 타자기를 꺼내서 영어로 조금씩 썼다. 그런 식으로 자기만의 문체를 만들었다고 한다. 오에 겐자부로도 자기 문체를 만들려고 영시나 영어 소설을 읽었다던데. 또 영어구나, 영어라는 것일 뿐이지 자신이 늘 쓰는 말이 아닌 것으로 썼다고 말하려는 거겠지. 하루키 소설은 영어로 옮기기 쉽게 쓴다는 말은 일본 사람이 한 말이었다. 하루키가 일부러 그렇게 쓴 건 아니었다. 이건 새롭게 알았다고 해야겠다. 하루키가 영어로 쓴 것을 일본말로 옮기고 고쳐 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군조》 신인상을 받았다. 그때 하루키는 앞으로 자신이 잘되리라 생각했다. 이건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일 거다. 신인상 받고 저런 말 했다면 욕 먹었겠지. 어쩌면 저렇게 생각해서 지금 하루키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면 그렇게 되려고 애쓰기도 한다. 《군조》 신인상을 받아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는 거다. 상을 못 받았다면 소설가로 살지 않았을 거다 했다. 그때가 하루키한테 나타난 갈림길일지도. 다음은 외국에서 살고 소설 쓴 거겠다. 그전에도 있었다. 《양을 둘러싼 모험》을 쓰려 한 때.

 

소설가는 오랫동안 소설을 써야 소설 쓰기를 말할 수 있을까, 몇번 써 보고도 말할 수 있을까. 그건 마음먹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닐지도. 자신이 어떻게 소설을 썼는지 하나하나 생각하다보면, 자신이 그렇게 썼구나 하는 걸 알겠지. 그건 좀 써 봐야 뒤돌아볼 수 있겠다. 하루키도 시간이 흐른 다음에 이런 글을 썼다. 한번 정리해 보고 싶었던 거겠지. 정리했다고 해서 이게 끝은 아니다. 하루키는 지금도 자신이 발전하고 있다고 말한다. 소설을 써서 그런 걸까. 많은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이제와서 뭐 하나’ 한다. 이런 생각은 어릴 때도 할지도. 나이를 먹으면 많은 게 예전과 다를지 몰라도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 같다(난 아직도 철없는데). 난 하루키가 소설을 쓰려고 달리기를 한 거 잘했다 생각한다. 달리기를 할 때 기분은 앞으로도 모를 테지만. 난 걷기 쪽이다. 날마다 걷는 건 아니지만. 학교 다닐 때도 지금도 어디 가려고 걷는다. 단지 걸으려고 걸은 적은 별로 없다. 달리기는 못해도 날마다 걸어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걷는다고 이런저런 게 생각날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걸으면 가끔 좋은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 세상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지금은 예전보다 많은 것 같다. 소설 쓰기는 하루키가 좋아하는 거다. 하루키는 소설을 쓸 수 없어서 괴로운 적이 없었다고 한다. 하루키는 소설을 쓰고 싶을 때만 썼다. 다른 때는 영어를 일본말로 옮기거나 산문을 썼다. 언젠가도 산문을 보고 하루키 산문 재미있네 한 적 있는데, 이 책 볼 때도 그랬다. 하루키가 웃기려고 한 말은 아닐 테지만, 웃음이 좀 낫다. 내가 이상한가. 하루키는 친한 사람한테는 재미있는 면을 조금 보여줄지도. 글로만 그럴까. 난 글로만 말한다. 글 재미있게 못 쓰지만 실제 만나도 재미없다. 말 자체를 안 한다. 소설 쓰는 사람은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지 않아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만나는 건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보다 자신이 쓰는 소설 속 사람 만나기를 좋아할까.

 

다른 사람이 어떻게 글을 쓰는지 알아도 그것대로 쓰는 건 어렵다. 글쓰기도 사람마다 다르다.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걸 찾은 사람은 작가(소설가)가 되는 건지도. 하루키는 그걸 찾고 지금도 쓴다. 자신을 믿고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가기도 한다. 하루키는 그런 게 있어서 좋겠다. 난 늘 자신없는데. 하루키 말하다 ‘난 어떤데’ 하는 말을 하다니. 책을 보면 자기 생각도 하지 않는가. 그런 건 자기 마음속에 담아두어야 하는 것일지도. 사람은 다 자신으로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은 될 수 없다. 남을 보면 자신을 알게 되기도 한다. 소설을 보는 것도 자신을 찾고 싶은 마음에설까. 하루키 소설 조금 읽기는 했지만 잘 못 읽었다. 그런 거 다시 보기도 해야 할 텐데. 이 책을 봐서 이렇게 생각하는 거구나. 난 언제나 우연이 찾아오기를 바라니까. 이런 거 별로 안 좋을지도 모르겠다. 난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 같다. 조금 애쓰고 우연이 찾아오길. 나는 나다. 하루키가 아프지 않고 소설 오래 쓰기를 바란다.

 

 

 

희선

 

 

 

 

☆―

 

첫 소설을 쓸 때 느꼈던, 문장을 만드는 일의 ‘기분 좋음’ ‘즐거움’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 ‘자, 이제부터 뭘 써 볼까’ 하고 생각을 굴립니다. 그때는 정말로 행복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뭔가 써내는 것을 괴로움이라고 느낀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소설을 쓸 수 없어 고생했다는 경험도(고맙게도) 없습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 제 생각에는 즐겁지 않다면 애초에 소설 쓰는 뜻은 없습니다. 고역으로 소설을 쓴다는 생각에 저는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소설이라는 건 기본으로 퐁퐁 샘솟듯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57쪽)

 

 

제임스 조이스는 ‘상상력imagination이란 기억이다’고 실로 간결하게 정의했습니다. 딱 맞는 말입니다.  (125쪽)

 

 

외로운 일, 이라 하면 무척 범속한 말이지만 소설을 쓴다는 것은, 더욱이 긴 소설을 쓰는 경우에는 실제로 꽤 외로운 일입니다. 때때로 깊은 우물 밑바닥에 혼자 앉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고 아무도 “오늘 아주 잘했어” 하고 어깨를 토닥이고 위로하지도 않습니다. 그 결과물인 작품이 누군가한테 칭찬을 받는 일도 있지만(물론 잘되면), 그것을 써내는 일 그 자체를 사람들은 딱히 평가해주지 않습니다. 그건 작가 혼자 묵묵히 짊어지고 가야 할 짐입니다.  (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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