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시 한편 쓰고 싶다

  나태주

  리오북스  2016년 03월 29일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행복>, 나태주, 2001  (291쪽)

 

 

 

가끔 어떻게 하면 글을 쓸까 합니다.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해야 한다지요.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시나 소설이 쓰고 싶기도 합니다. 그건 대체 어떻게 하면 쓸까 해요. 그럴 때 글쓰기 책이 도움이 될지. 그런 책이 보이면 읽고 싶기도 합니다. 저걸 보면 뭔가 쓸 수 있을까 하는 거지요. 이 책도 그런 마음으로 봤다고 해야겠네요. 이런 책이 나온 걸 봤을 때는 보고 싶다 했는데, 그렇다고 실망한 건 아닙니다. 시 쓰기는 스스로 알아내는 것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알아내기보다 써 봐야 하는 거네요. 나태주 시는 거의 모릅니다. 시인 이름은 아는데 시는 잘 알려진 <풀꽃>밖에 모릅니다. 왜 지금까지 나태주 시집은 한권도 만나지 못했는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책 속에 나온 시는 처음 본 것 같지 않았습니다. 우연히 지나면서 보았나 봅니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를 가르쳤다는 것도 알아요. 아는 건 그 정도뿐입니다.

 

제가 앞에서 시나 소설이 쓰고 싶다 했잖아요. 아쉽게도 그런 생각을 늘 하는 건 아니예요. 쓰고 싶은 사람은 자나깨나 그것만 생각한다고 하던데, 저는 어느 순간 그런 생각에 빠지고 시간이 흐르면 덜합니다. 그건 책 읽고 쓰기를 해서일 듯합니다. 시와 소설과는 조금 다르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게 아니어서 열병이 오래 가지 않는가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건 ‘쓸 게 없어’예요. 가끔 무언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것을 차근차근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게 문제군요. 떠오르는 걸 놓치지 않고 잡아서 글로 나타내야 하는데 그걸 할 때는 아주 가끔이니. 시는 우리가 사는 세상 어디에나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시라고 하는 말은 글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괜찮다고 봅니다. 글감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운 곳에 있지요. 행복(파랑새)도 마찬가지네요. 행복이라는 게 요즘들어 많이 말한 건 아니군요. 저는 행복하게 살고 싶다 생각한 적은 거의 없어요(이 말 몇번째 하는 건지). 불행이라는 것도 별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하고 싶은 걸 하자 할 수 있는 걸 하자일지도. 작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걸 시로 쓰면 좋겠지요. 저도 잘 못하는 거네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나태주, 2002

 

 

 

풀꽃, 은 아이들한테 한 말이 시가 되었답니다. 저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도 말은 잘 안 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걸 들으면 기분이 안 좋기도 했습니다. 좋은 말보다 안 좋은 말할 때가 많아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의 안 좋은 말도 하더군요. 다른 사람과 어울렸다기보다 그 자리에 있어서 그런 말을 들은 거네요. 그런 말을 들으면 제가 없는 곳에서는 제 이야기를 할까 하는 생각도 조금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만나면 남의 뒷이야기 하는 건 아니겠지요. 좋은 이야기도 하겠지요. 그런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사람이 하는 말만 있는 건 아니예요. 자연도 말을 합니다. 아니 자신이 자연한테 말을 걸어야지요. 귀 기울여 듣기도 해야겠네요. 그러면 다른 사람 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기 마음 알기도 어려운데 남의 마음을 어떻게 아나 싶지만, 알려고 애쓰면 다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알 수 있겠지요. 시(글) 쓰기는 마음 공부 같기도 하네요.

 

시인이나 글쓰는 사람은 다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고 시나 글을 쓰는 걸까요. 그런 사람이 많지만 김용택은 조금 달랐네요. 나태주는 만 열다섯에 시에 빠졌답니다. 그걸 보고 저는 그 나이에 뭐 했나 생각해보니, 늦은 밤에 라디오 듣고 좋아하는 노래는 외웠더군요. 시하고는 좀 다르지만 아주 다른 건 아닙니다(제가 그때 좋아한 노래는 세상이나 삶을 말하는 거였어요. 가끔 사랑 노래도 좋아했네요). 누군가를 좋아해서 그 마음을 글로 써 본 적도 없군요. 아주 없는 건 아닌가. 저는 늘 조금 좋아하다 말았습니다. 시와 소설 쓰기를 생각하는 것과 같다니. 푹 빠진 적이 없어서 글쓰기도 어중간한 걸까요. 시는 삶의 발견, 세상의 발견이라 하는데 글도 마찬가지네요. 엄청난 것을 안 것은 아니지만, 작은 거라도 새롭게 보면 재미있지요. 흔한 것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기네요. 날마다 같은 날보다 날마다 새로운 날이라 하면 설레겠습니다. 저도 그날이 그날이다 여기고 삽니다. 가끔 걷다가 나무와 꽃을 만나면 기분이 괜찮습니다. 나무나 꽃은 자기 할 일을 말없이 하잖아요. 사람은 그 모습을 보고 배우는군요.

 

어린이는 정말 놀라운 말을 할까요. 가까운 곳에 어린이는 없으니, 제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놀라운 말을 할 때가 있었을지.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는 말을 해서. 무엇이든 알고 싶어하고 순수하게 보면 어린이 마음을 조금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어린이는 순수하기에 잔인하기도 합니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어린이한테 목숨이 소중하다는 걸 가르쳐주어야겠지요. 시가 아픈 마음에 붙이는 반창고가 될까요. 그럴 수 있겠네요. 저는 그런 경험 안 해 본 것 같아요. 그런 일이 있었지만 잊어버린 건지도. 저는 어떤 일이 있을 때 시를 보기보다 우연히 마음에 드는 시를 만났습니다. 마음 아프고 지친 사람은 마음을 쉬게 하려고 시를 찾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사람 마음을 생각하고 시를 쓰면 좋겠지요. 사람한테 도움을 주고 사람을 살리는 시가 좋겠습니다.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속에 시 하나 싹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시>, 나태주, 1989

 

 

 

시는 타고나야 쓸 수 있고 소설은 애쓰면 쓸 수 있다고 하지만, 시심은 누구한테나 있습니다(시도 재능이 있어야 쓰는 건 아닐 거예요. 저는 그렇게 믿고 싶네요). 많은 사람이 보고 좋아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쓴 시를 한 사람이라도 좋아하면 괜찮은 거죠. 자기 자신이 가장 좋아하겠습니다. 저도 제가 쓴 거 유치해도 좋아합니다. 이렇게 책을 봤으니 시 한편이라도 써야 하는데, 바로 쓰려니 떠오르지 않네요. 시를 더 만나고 시가 찾아오면 그것을 놓치지 않아야겠습니다. 말만 하지 않아야 할 텐데. 중학생한테 시를 만나게 하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국어시간에도 시를 배우지만 그건 재미없지요. 시가 마음을 조용하게 해주기도 하겠지요. 이 말하니 조용하게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라는 말이 생각나는군요. 이건 시를 쓰려고 할 때예요. 시를 읽는 것도 좋지만, 써 보는 것도 재미있어요.

 

 

 

 

 

 

편지

 

 

 

깊은 밤 그대가 생각나

편지를 썼습니다

 

이른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빨간 우체통에 넣었죠

 

낮에는 비 오고

바람도 세게 불었어요

 

그대에게 가기 전에

젖지 않을지

날아가지 않을지

괜한 걱정을 했어요

 

그대여

제 편지 잘 받으셨어요

 

 

 

희선

 

 

 

 

☆―

 

시는 노래와 같은 글입니다. 그림과 같은 글입니다. 노래와 그림을 한 번만 듣고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듣고 보는 것처럼, 시도 여러 번 되풀이하여 읽고 또 읽으면서 느끼고 또 느껴야 합니다. 이럴 때 시가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글이 될 것입니다.  (44쪽)

 

 

‘시는 우리 둘레에 셀 수 없이 많다. 그것을 찾는 것이 시 쓰기다. 그러려면 밝은 귀와 눈이 있어야 한다. 아직도 시인들은 그것을 다 찾지 못했다. 그것을 찾기만 하면 그 사람이 주인이 된다.’  (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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