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소파
조영주 지음 / 해냄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무슨 말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책을 보고 느낌을 쓰는 건 갈수록 힘들다. 느낀 점만 쓰는 건 아니기는 하지만. 정석주는 사진작가다. 지금은 사진작가로 사진을 찍기보다 붉은 소파를 가지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그것만 찍었다(붉은 소파에 앉은 사람). 그게 열다섯해다. 열다섯해 하면 생각나는 건 뭘까, 살인 공소시효다. 정석주 딸은 열다섯해 전에 누군가한테 붉은 소파 위에서 죽임 당했다. 그건 303 연쇄살인사건으로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정석주 스스로 범인을 찾으려고 붉은 소파를 가지고 다니면서 사람 사진을 찍었다. 정석주는 범인이 거기에 앉으면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정석주 제자 이재혁이 찾아오고 정석주는 시체 사진을 찍게 된다. 죽은 여자는 어떤 아파트 303호에서 살던 사람이고, 얼마 뒤에 정석주 딸이 죽임 당한 빌라와 같은 곳에서 죽은 여자와 불륜관계였던 남자가 죽임 당한다. 정석주는 사진을 찍다가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낸다. 그것도 있지만 사진기를 잘 아는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을 보고, 그게 범인을 잡는 일로 이어진다. 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 정석주는 딸 은혜와 닮은 형사 김나영을 만난다.

 

정석주가 시체 사진만 찍은 건 아니다. 엄마가 사라지고 열여덟해 만에 영구시체로 나타난 번역가 김명희 프로필 사진도 찍으려 한다. 사진작가는 사람을 찍을 때 그 사람을 알아야 더 잘 찍을 수 있을까. 정석주는 김명희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제대로 찍으려 했다. 붉은 소파에 앉은 사람한테도 정석주는 말을 걸었는데. 김명희도 붉은 소파에 앉힌다. 자기 목에 상처를 내는 김명희를 보고 정석주는 예전에 자신이 사귄 모델을 떠올렸다. 그때 정석주는 모델이 보내는 구해달라는 신호를 못 들은 척하고 달아났다. 이제는 달아나지 않은 건가. 붉은 소파에 앉으면 자기 이야기를 더 잘할까. 붉은 소파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말할 기회가 온 걸 거다. 정석주는 그걸 말하게 하는 자리를 만든 거겠지. 죄를 짓고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괴로움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은 다 괴로워한다. 그런 사람이 더 많다면 좀더 나은 세상이 될 텐데 싶다.

 

죄를 지으면 죗값을 치르는 게 낫겠지. 죗값을 치르지 않고 살면 그 일에 갇혀 살지도. 공소시효가 지나면 죗값을 치르지 못하겠다. 마음의 상처는 공소시효가 없다고 한다. 상처받는 것도 괴롭지만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는 것도 괴로울 거다. 늘 속죄하는 마음으로 산다 해도 힘들겠지.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싶다. 용서 받을 수 없으면, 스스로 용서할 수밖에 없을지도. 둘레 사람이 그런 말해도 자신은 받아들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말할 기회가 있는 사람도 있지만, 기회가 없는 사람도 있다. 사라진 사람이 언젠가 돌아오기를 바라고 기다린 것 같은데. 그 사람은 죽었을까. 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자기 상처를 낫게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걸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하고 싶어서. 그걸 안고 죽을 수밖에. 죽을 때는 미련이 없는 게 낫겠지. 아무리 잘 살려 해도 그렇게 하는 거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정석주 딸을 죽인 범인을 찾아낸다고 말하면 이상할까. 멀리 있지 않았지만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살아있기라도 해야 피해자 식구는 범인을 원망할 텐데, 그런 사람이 없다니. 정석주가 알게 되는 건 별로 좋지 않다. 그 일이 더 중요할지도. 그건 정석주 자신을 아는 거다. 사이코패스라는 누군가와 똑같은 자신이다. 사람은 자신을 얼마나 알까. 자기 자신을 다 알기는 어렵겠지. 안다 해도 거기에서 눈을 돌리기도 한다. 정석주도 힘들어했다. 자신을 사진작가로 만든 건 다른 사람이라 생각했다. 누군가한테서 도움을 받는다 해도 재능이 없으면 잘되기 힘들다. 정석주는 재능이 있었던 거다. 재능만 있으면 안 되고 그걸 좋아해야 한다. 정석주는 자신이 사진을 좋아한다는 걸 깨닫는다. 자신이 담은 사진을 누군가 보고 감동하면 기뻐했다. 이건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 자신이 좋아하는 걸로 칭찬받으면 기쁜 거. 그런 걸 사이코패스라 할 수 있을까. 정석주는 이제라도 자신과 닮은 사람이 뒤를 돌아보게 했다. 누구한테나 지난날은 있다. 지난날이 있고 오늘이 있는 거지. 역사와 다르지 않구나.

 

이걸 보기 전에는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할 수 없다 생각했다. 그건 그 사람을 놓아버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도 든다. 가까운 사람이 그 사람을 생각하고 나아지게 해야 할 텐데, 하는. 이건 그냥 바라보기만 하는 것과 다르지 않겠다. 남을 괴롭히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도 괴롭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것과 앞에서 말한 건 좀 다를까. 사람은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도 될지도. 아무리 마음을 써도 바뀌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한다. 난 긍정스러운 사람이 아니다. 나도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은 피하고 싶다. 그런 사람 피하기만 하면 안 될지도. 그게 나쁘다는 걸 말하면 조금은 생각하지 않을까. 그건 끈기가 있고 그 사람을 믿어야 할 수 있겠다. 그렇게 해서 조금 달라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또 같은 말이구나. 5장 태초에를 보다보니 앞에서 본 것은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렸다. 앞에도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이라도 정리했다. 앞에 이야기가 있어서 뒤에 이야기도 나온 거다.

 

좀더 좋은 생각을 쓰고 싶었는데, 이런 말은 안 하는 게 나았겠다. 정석주는 앞에 드러나는 사람이고 잘 보이지 않는 곳에 한사람이 더 있다. 그 두사람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떤 일은 내가 생각한 게 맞았다. 그건 일부러 알게 한 걸지도. 잘못, 죄를 지은 사람을 찾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다음을 말한다. 작가는 죄를 지은 사람도 구원받기를 바라는 걸지도.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건 참 힘든 일이다. 처지를 바꿔 생각하면 다를지도. 사람은 다 죄인이라는 말도 있다. 살다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른다. 그것을 그냥 두기보다 제대로 마주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지. 상처도 그렇구나.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다는 아니지만, 무언가에 매여 사는 것도 안 좋다. 안 좋은 걸 알아도 그렇게 사는 사람 많겠지. 이런 책을 보고 조금씩 풀어가면 좋겠다. 나도 그래야 할 텐데.

 

 

 

*더하는 말

 

이것을 올리면서 내가 제목을 왜 저렇게 지었지, 하는 생각을 했다. 다시 바꾸기도 그래서 그냥 썼는데 생각났다. 한 사람 때문에 그런 거였다. 정석주가 구원하려고 한 사람. 그게 지난날과 상관있어서. 살인 공소시효는 열다섯해였다가 2007년에 스물다섯해(25년)로 바뀌었다. 2013년에도 법이 바뀌고 달라지고, 지금은 공소시효가 없어졌다. 우리나라도 살인 공소시효가 없어졌구나. 누군가를 죽이고 죗값을 치른다고 해도 그걸로 끝난 건 아니다.

 

 

 

희선

 

 

 

 

☆―

 

“범인 검거는 단순히 피해자와 그 유족을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도 살인자를 구원하려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살인자는 잡힐 때까지 자신이 지은 죄 안에서 허우적 거립니다. 누군가 그 사람이 저지른 죄를 눈치챌 때까지는 속죄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135쪽)

 

 

“(……) 제가 아는 인간다움이란, 과거에서 오는 것입니다. 지금껏 자신이 축적해 온 것들, 그것들을 똑바로 보고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모든 것을 감당하는 일입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잘한 것은 칭찬하고,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는 것입니다.”  (3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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