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두 개의 초록

  마종기

  문학과지성사  2015년 05월 26일

 

 

 

 

 

 

 

 

 

 

 

 

 

 

루시드 폴과 나눈 편지를 보고 마종기 시집을 보아야겠다 했는데, 그건 못 보고 몇해 뒤에 나온 것을 먼저 보았다. 이건 2010년에 나온 《하늘의 맨살》 다음에 나왔다. 내가 보려고 한 건 2006년에 나온 《우리는 서로를 부르고 있는 것일까》다. 그때 그 시집에 관심을 가진 건 루시드 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몇해 전에 ebs 라디오 방송에 마종기가 나왔다. 시집이 나왔을 때였는지 루시드 폴과 나눈 편지를 묶은 책이 나왔을 때였는지 잘 모르고, 무슨 말을 했는지 다 잊어버렸는데 라디오 방송에 나온 것은 생각난다. 별거 아닌 일이지만 시인 목소리를 방송에서 듣는 건 신기한 일이다. 시인만 그런 건 아니구나. ebs 라디오 방송에서는 가끔 들을 수 있다(다른 데서도 들을 수 있겠다). 그걸 알아도 챙겨서 듣지 않는다. 내가 우연히 일어나는 일을 좋아하는 거겠지. 이 시집 나온 것도 우연히 알았던 것 같다. 지금까지 마종기 시 제대로 본 적 거의 없는데, 이 시집에는 어떤 시가 담겨있을까 생각했다. 생각해도 떠오르는 건 없었다.

 

시집에 담긴 시를 천천히 깊이 보고 싶었는데 다른 때와 다르지 않게 보았다. 이런 말을 또 하다니. 자세하게 말하기 어려운데 시에서 느껴지는 건 쓸쓸함이다.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와 친구 부인 이야기. 오래 사귄 친구나 둘레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슬프고 쓸쓸하겠지. 친구 부인 영안실에 가서는 자신의 장례식에서는 밝은 노래가 나오기를 바랐다. 사람이 죽는 건 슬픈 일이지만 그걸 받아들여야 하는 거겠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으니까.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아버지도 그린다. 마종기는 어머니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았구나. 나는 모르는데. 어머니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사람은 나이를 아무리 먹고 자식이 있다 해도 부모를 그리는 것일지도. 정확한 건 잘 모르지만 마종기는 자유롭게 살려고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갔다. 정치와 상관있는 일을 해서 여러가지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미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마종기는 미국에서 의사로 지내면서 시를 썼다. 사는 것과 시를 쓰는 일은 아주 동떨어진 건 아닐 거다.

 

 

 

함께 붙잡고 울 수 있는 것도 행복이란 것을 아는 이, 남의 깊은 속까지 다 믿고 있는 이가 희망의 신호다. 당당히 걸어서 사람 마음속까지 들어갈 수 있는 것이 바로 희망이다. 내가 처음 품었던 희망과 지금의 희망은 달라졌다. 희망은 구름같이 변하는 것인가. 벌판같이 나른한 것인가. 희망이 등을 다독이고 속삭였다. 희망은 땅도 아니고 사람이다. 산천초목도 아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고른 섞임이다.

 

내가 세상과 작별할 때에도 나는 희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희망은 아마 날개가 되어줄 것이다. 내가 가진 작은 희망들 때문에 나는 누구라도 용서할 힘이 생겼다. 내 손을 보라, 허영이 치유되는 침묵의 소리. 손해보고 상처받았다고 괴로워하던 남루한 내 생을 안아주면서 가벼워지라고 희망은 오늘도 내게 말해준다.  (<희망에 대하여>에서, 22~23쪽)

 

 

 

희망은 바라는 것이고 빛이다. 바라는 것을 말할 때보다 ‘빛’으로 생각할 때가 더 많지 않나 싶다. 희망은 아주 멀리 있지 않다. 사람은 가까이 있는 것보다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에 있는 걸 더 그린다. 그렇게 헤매다 가까이 있는 것을 알아보면 좋을 텐데. 어딘가로 떠났나 돌아오는 일도 아주 헛된 건 아니겠지. 그게 사람 삶이 아닌가 싶다. 다른 곳에서 자신이 바라는 것을 찾을 수도 있겠지. 그것도 찾으려 해야 찾을 수 있겠다. 뒤에서는 빛이 아닌 바라는 것이 되었구나.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보다 자신이 가진 것을 잘 보아야 한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살면 좋겠지.

 

 

 

3

 

그래 맞아, 시인이 되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어.

한동안 그 초심을 잊고 살아왔구나.

안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해서였어.

맞아, 느끼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했어.

그래서 현자가 된다고 했어.

눈으로 생각도 하고 심장으로 보기도 한다고,

날렵한 세상을 천천히 한눈팔고 걸으면서

탈 없이 욕심 없는 모습으로 산다고 했어.

 

우리는 자주 착각 속에서 살지.

많이 알고 있어서 똑똑한 줄 알지.

사실 알아야 할 것은 하나뿐이야.

우리는 날개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

안 보이는 것은 없는 것일까.

그리고 어느 날 편하게 날개를 펴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잊고 사는 이가 많아.  (<날개>에서, 45~46쪽)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야 하고, 보이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말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겠지. 이 말은 누가 가장 먼저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 말 들은 적 없다 해도 살다보면 깨달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을 더 믿을지도. 사람은 모두 천사라고 하는 걸까. 천사한테 날개가 달렸다고 상상하니까. 그것도 있지만 자유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날개를 펴면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마종기는 고비 사막에서 만난 젊은 여자한테 한국에서 왔느냐고 물어본다. 한국사람처럼 보여서 그랬는데 몽골사람이었다. 한국사람처럼 보이는 몽골 여자를 보고 마종기는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간 고려 여인을 생각한다. 그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됐을까. 고비 사막에서 신기루를 보고 그것을 꿈이라 한다. 사람이 사는 것을 사막을 건너는 것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꿈이 있어야겠지. 진짜 사막에서 보는 신기루는 어떨까.

 

나이를 먹고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도 마종기는 좋게 받아들인다. 나는 가끔 바깥에서 들리는 이런저런 소리 때문에 괴로워하기도 하는데, 차라리 잘 안 들리면 나을까. 그때가 찾아오면 조금 우울할 것 같다. 그런 때는 누구한테나 찾아오겠다. 지금 나중을 생각하면 안 좋을 것 같지만, 천천히 그때를 맞으면 아무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든 그때 나로 살면 되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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