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라스의 마녀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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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수학 잘 모른다. 수학은 어떤 식으로 나뉘는지 잘 모르지만 과학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는 거 안다. 과학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알기 위한 것일까, 우주도 알려고 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물리 법칙으로 알 수 있을까. 날씨가 어떨지는 조금 알지만 지진이 일어나는 건 잘 모르는 듯하다. 지진이 일어날 때 감지는 해도 그걸 막지는 못한다. 자연재해는 다 그렇구나. 무엇인가 일어난다는 걸 알면 피할 수도 있을 텐데 아직은 어렵겠지. 언젠가는 그것도 알 수 있을까. 물리를 잘 모르는 사람도 경험으로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조금 알기도 한다. 그것은 경험이 쌓여서 아는 거겠지. 그런 것을 아주 많이 모아두면 그 안에서 법칙을 찾아낼 수 있다. 그건 사람보다는 기계가 더 잘할 것 같다. 그걸 기계 힘을 빌리지 않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엄청 대단하다 느끼겠다. 그런 사람은 앞으로 일어날 일도 알 수 있다고 하니. 언젠가 그런 거 본 적 있다. 그건 운동 신경이 좋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상대가 그 사람을 공격할 때 그게 어디에서 올지 알고 피했다. 그런 모습 한번이 아니고 여러 번 보았구나. 관찰을 잘하면 보통 사람도 그건 알지도 모르겠다. 남이 어떻게 행동하길 바라고 그렇게 움직이게 하는 것은 별로다.

 

사람 마음을 알려고 하는 건 심리학일까, 거기에서 정신분석도 들어가겠지. 여기에 하나 더 들어가겠다. 바로 뇌과학이다. 예전에는 심리학이 과학과 관계있다는 생각 못했다. 마음은 과학으로 알기 어렵다 생각했으니까. 마음은 어디에 있고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싶다. 뇌와 상관있겠지. 사람 자체가 아주 정밀한 기계라는 말도 있다. 그런 말이 있는 것이지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계산에서 벗어난 행동도 한다. 왜 이런 말을 한 건지, 이 이야기를 어디로 끌고 갈 건지.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작가가 되고 서른해를 맞아 쓴 거다. 어느새 서른해라니, 책은 여든번째라고 한다. 서른해 동안 여든권 쓴 거면 아주 많은 거겠지. 몇해 전에 스물다섯해였는데, 작가가 된 서른해 기념으로 쓴 것도 이거 하나가 아니다. 이번 거 보면서 누굴 중심으로 읽어야 하나 했다. 책을 볼 때면 어떤 한 사람을 중심으로 보기도 하는데, 한 사람 마음에 자기 마음을 맞춰서 읽는 건가. 처음에 나온 우하라 마도카는 엄마와 토네이도를 만나고 마도카는 살았지만 엄마는 죽었다. 시간이 흐른 뒤 나온 마도카는 그때와 달랐다. 그런 마도카를 경호하는 다케오 도오루. 다케오 도오루는 경찰을 그만두고 경호회사에서 일했는데 그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그런 다케오가 마도카를 경호한다. 마도카한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도카 둘레에서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는 걸 깨닫는다. 온천지에서 황화수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 그 일을 수사하는 형사 나카오카. 지구화학 환경분석가로 황화수소 사고가 일어난 까닭을 알아 보려다 여러 가지를 알게 되는 교수 아오에 슈스케. 황화수소 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은 영화감독 아마카즈 사이세이. 마도카 아버지 뇌신경외과의사 우하라 젠타로. 이밖에도 여러 사람이 나온다.

 

나중에 말할 거면서, ‘당신은 알 거 없다. 당신과는 상관없다.’ 말하는 걸 볼 때는 기분 조금 안 좋았다. 내가 그런 말을 들은 것 같아서였을까. 비밀실험 같은 건 아무리 식구라 해도 말하지 않겠지. 그게 많은 사람한테 알려지면 안 좋을 테니까. 일부러 한 건 아니지만, 뇌수술을 했더니 어떤 일이 일어나서 연구하게 된 거였다. 마도카가 가진 게 초능력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황화수소 사고, 뇌수술 상관없어 보이는구나. 앞에서 황화수소 때문에 아마카스 사이세이가 아내와 딸을 잃었다고 했는데, 아들은 죽지 않고 식물인간이 되었다. 그 아들이 뇌수술을 받는다. 그 일은 온천지에서 황화수소 사고로 죽는 사람과 상관있다. 상관이 있으니 누가 나오고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겠지. 이런 책을 볼 때는 그것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아니 이건 이런 책만 그런 건 아니다. 어떤 소설이든 쓸데없는 일은 없을지도. 우리가 살아가는 건 어떨까. 이건 잘 모르겠다. 늘 긴장하고 살고 싶지 않아서. 순간순간이 소중하지만 늘 놓치지 않을 수 없다. 흐르는 대로 둘 수밖에. 책도 그런 식으로 볼 때가 많다(장편소설은 그렇게 봐도 괜찮겠지).

 

이걸 보니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 나온 소설이 생각났다. 누쿠이 도쿠로 소설 《미소 짓는 사람》이다. 그것뿐 아니라 여러 가지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여기 나온 것으로 그게 설명이 될지 그건 잘 모르겠다. 세상에는 이것저것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못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뭐든 잘한다고 함께 사는 사람까지 그러기를 바라면 안 된다. 사람은 물건이나 작품이 아니다. 살면서 그것을 깨닫는 사람도 있지만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모성애와 부성애가 유전자 때문에 아주 없는 사람도 있을까. 그게 없는 사람이라 해도 자라는 환경이 괜찮다면 이상해지지 않을지도 모를 텐데. 자기 식구가 자신처럼 완벽해야 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잘못하면 세상 사람이 다 그래야 한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모든 것에서 뛰어난 사람만 있어야 한다 생각한 사람 없었을까. 히틀러가 생각난다. 만화영화에서도 가끔 그런 사람 봤다. 사람은 다 다르다. 다르기 때문에 재미있다. 모든 것에서 뛰어난 사람이 뭐든 잘할까, 그건 아니다. 세상은 평범한 많은 사람이 움직인다.

 

 

 

희선

 

 

 

 

☆―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은 꿈을 가질 수 있습니다.”  (4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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