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인간   読む人間  (2011)

  오에 겐자부로   정수윤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5년 07월 23일

 

 

 

 

 

 

 

 

 

 

 

 

 

이 책을 보기 전에도 비슷한 말을 하는 책을 두권 보았다. 어쩌면 그전에도 만났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시간이 흘러서 확실하게 생각나지 않는다. 이 책보다 먼저 본 두권도 아주 잘 읽지 못해서 많이 잊어버렸다. 앞에 본 두권도 일본 사람이 쓴 거라니 그건 조금 재미있는 일이다. 히라노 게이치로가 쓴 《나란 무엇인가》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오에 겐자부로가 어릴 때부터 책을 읽고 자신의 문제를 소설을 써서 해결하려한 것은 다르지 않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자신이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알려고 소설을 썼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거의 다 깊게 파고들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책의 힘思考術》에서 오사와 마사치는 자기 삶에서 생각할 주제를 찾으라고 했다. 그런 걸 빨리 찾은 사람은 소설가나 철학자가 되어 글을 쓸까. 누구나 십대 사춘기를 맞으면 여러가지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난 별로 못하고 지금도 잘 모르겠다. 무엇인가 생각했겠지만 그게 그렇게 오래 이어지지 않았을 거다. 좀 아쉬운 일이다.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뭔가 생각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알지 못하고 지금까지 왔다. 지금이라도 더 생각하면 뚜렷하게 알 수 있을까.

 

사람이 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는 건 아니다. 작가라 해도 어릴 때부터 책을 잘 읽는 건 아니겠지만, 거의 어릴 때부터 책을 보았다고 말한다. 오에 겐자부로도 그렇다. 오에 겐자부로가 어렸을 때는 전쟁이 한창이었고 전쟁이 끝나고도 시코쿠 깊은 산골에서 살아서 책을 쉽게 볼 수 없었다. 아홉살인 오에 겐자부로한테 어머니가 《허클베리 핀》(마크 트웨인)을 주었다. 오에 겐자부로는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한권밖에 없다 해도 그것을 자꾸 읽기는 어려울 텐데, 오에 겐자부로는 그 책이 아주 재미있었나보다. 오에 겐자부로는 허클베리 핀이 한 말을 보고 평생 어떤 마음 가짐으로 살지 다짐한다. 그 말은 “그래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 다. 어릴 때 그런 말에 끌리다니. 이 말만으로는 왜 저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허클베리 핀을 도와준 짐은 노예였다. 짐이 어떻게 주인 집을 떠났는지 모르겠지만(예전에 한번 읽었지만 잊어버렸다), 허클베리 핀은 짐을 주인한테 돌려줄 테니 현상금을 달라는 편지를 썼다 찢는다. 그 뒤 허클베리 핀은 저런 말을 한다. 짐이 노예로 돌아가는 것보다 자신이 남의 재산을 훔친 죄로 지옥에 가는 게 낫겠다 생각한 거겠지.

 

아쉽게도 지금까지 오에 겐자부로 소설 제대로 못 보았다. 언젠가 보려고 했다가 못 보았다. 이해하기 힘들 것 같아서. 《만엔원년의 풋볼》 《체인지링》은 조금 보다 만 것 같기도 하다. 이해 못하면서 끝까지 봤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제목 보고 에드거 앨런 포를 좋아하나 했는데 그건 맞았다. 오에 겐자부로는 열여섯살에 도쿄대 프랑스 문학과에 가기로 정했다. 그것도 책을 만나고다. 책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다니. 그때 《포 시집》도 만났다. 이런 것을 보고 열여섯에 나는 뭐 했지 했다. 아홉살에도 마찬가지다. 오에 겐자부로는 시를 보고 자신도 그런 문체로 소설을 써 보고 싶다 생각했다. 시를 봤으니 시를 써야 할 것 같은데 소설을 생각하다니. 포는 어려워서 자신한테 더 맞는 사람을 찾으려 하고 만났다. 《엘리엇》 《오든 시집》 윌리엄 블레이크. 이런 이야기 보고 나는 다른 사람이 쓴 걸 보고 그것처럼 쓰고 싶다 생각한 적 있었는지 생각했다. 아쉽게도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지 없는지. 내가 생각한 건 있다. 쉬운 거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거. 오에 겐자부로가 아는 소설가 · 극작가 · 방송작가인 이노우에 히사시는 ‘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깊게, 깊은 것을 재미있게’ 하는 말을 책상에 붙여두었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게 이거구나 싶다. 내가 어려운 것을 잘 몰라서 어려운 것을 쉽게 쓰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책을 보다 조금 웃은 부분이 있다. 그것은 오에 겐자부로가 《신곡》을 오랜 시간을 들여 읽고, 그것과 자기 삶을 소설로 쓴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가 나왔을 때, 책방에는 그 책보다 무라카미 하루키 책 《노르웨이 숲》이 더 잘 보이는 곳에 있었다는 거다. 오에 겐자부로는 《신곡》을 몇해에 걸쳐서 보았는데 어떤 식으로 보았는지는 없다. 그게 어떤지만 말한다. 어떤 글이 아름답다는 말도 있는데 그게 왜 아름다운지도 뚜렷하게 말하면 좋을 텐데. 난 그저 좋다는 말만 한다. ‘아름답다’는 말은 내가 몰라서 못 쓴다. 《신곡》 이야기로 돌아와서, 하나를 그렇게 오랫동안 볼 수 있을까. 《신곡》만 본 게 아니고 단테나 《신곡》을 말하는 책도 함께 보아서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린 건지도. 오에 겐자부로가 책 읽는 방법은 대단하다. 거기에 담긴 게 무엇인지 알 때까지 파는 거다. 그것도 일본말로 옮긴 것만이 아니고 본래말(프랑스말, 영어)로 쓰인 것도 본다. 그거 보고 잠깐 영어 공부를 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영어사전 헌 것 괜찮은 게 있을까 찾아보았다. 새거 사고 공부 거의 안 하면 그걸 산 뜻이 없을 것 같아서(일본말 사전도 사고 잘 안 펴본다). 난 하기 전부터 못할 것을 먼저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떤 일이든 그런 것 같기도. 이런 거 별로 안 좋을 텐데. 오에 겐자부로가 책을 읽은 뒤에는 마무리로 소설을 쓴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이 읽는 책에 있어서 다 잘 본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니 그 반대일 때가 더 많겠다. 책을 보고 자기 삶을 생각하거나 돌아보는 소설을 썼다.

 

앞에서 오에 겐자부로 소설을 제대로 못 보았다고 했는데, 오에 겐자부로 소설을 재미있게 본 사람은 이 책 반가울 것 같다. 소설 이야기가 있으니까. ‘수상한 이인조’라는 말을 보니, 헤르만 헤세가 생각났다. 오에 겐자부로가 쓰는 두 사람은 같아 보이면서도 다른 사람이다. 헤르만 헤세가 쓴 소설에는 빛과 그림자 같은 두 사람이 나온다. 예전에 그 두 사람은 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헤세가 쓴 두 사람은 그게 맞는 것 같지만 오에 겐자부로가 쓴 두 사람은 오에 겐자부로 자신과 오에 겐자부로가 만난 여러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이건 내 생각일 뿐이다. 고등학생 때 만난 친구가 나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지만, 오에는 그 친구를 만난 일을 기쁘게 생각했다.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하게 자신이 막지 못해서 안타깝게 여겼을 것 같다. 오에 겐자부로는 평생에 걸쳐서 읽을 고전을 찾으라고 한다. 난 아직 그런 게 없다. 그런 게 생길지 그것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고전도 없는데, 평생에 걸쳐서 볼 고전을 찾을 수 있을까. 오에 겐자부로처럼 책 읽기는 어려워 보인다. 오에 겐자부로가 그렇게 한 건 그때 책이 별로 없어서였을지도. 지금도 좋아하는 책을 여러번 보는 사람 있겠지만, 거의 한번만 볼 때가 많지 않을까. 많으면 두번. 책을 많이 보기보다 깊이 보아야 한다는데, 깊이 보고 싶기도 하지만 많이 보고 싶기도 해서 책을 볼 때면 할 수 있는 한 집중해서 보려 한다. 생각은 그렇지만 집중 못할 때 많다.

 

사람은 살다보면 어떤 문제에 맞닥뜨린다. 그것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시간을 보내다 잊는 사람도 있다.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소설을 쓰거나 글을 쓸지도. 작가가 아니어도 글은 쓸 수 있다. 책을 보고 생각하고 쓰는 거다. 그렇게 하면 힘든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오래 깊이 파고 들어야 하는 건 뭘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찾지 못했다. 언젠가는 끝나는 삶을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가 있는데, 아주 큰 것보다 작은 것을 생각하고 싶다. 모두 그렇겠구나. 앞으로도 생각해봐야겠다. 책을 읽고 쓰는 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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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3 01: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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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4 03: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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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3 21: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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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4 03: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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