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는이가

  정끝별

  문학동네  2014년 10월 28일

 

 

 

 

 

 

 

 

 

 

 

 

 

 

 

 

 

시인 이름은 들어봤지만 시를 보기는 처음이다. 그런 사람 한둘이 아니다. 시를 보면 나도 시 말투로 말하고 싶다, 마음은. 글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시를 더 많이 만나야 할까보다. 시를 본다고 그걸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정끝별 시는 더 모르겠다. 어떤 건 자기 이야기인 것도 같은데. 아버지가 여든다섯에 세상을 떠나고, 그전에 병원에 있었나보다. 나이 먹고도 아주 많이 아프지 않고 남의 도움 없이도 사는 게 가장 좋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살다보면 아프고 남의 도움을 받기도 해야겠지. 그나마 식구가 있는 사람은 나을지도 모르겠다. 도움 받는 게 미안할지라도. 혼자 사는 사람은 아주 모르는 사람 도움을 받아야겠다. 그런 일 없는 게 가장 좋지만 그렇게 될 수도 있으니 평소에 덕을 쌓는 게 좋겠다. 착한 일 많이 하지 않았지만, 남한테 해를 끼치지 않아도 가끔 안 좋은 일 일어난다. 그걸 생각하니 조금 우울하다. 모든 일을 피해갈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건 왜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불 들어갑니다!

 

하룻밤이든 하룻낮이든

참나무 불더미에 피어나는 아지랑인 듯

 

잦아드는 잉걸불 사이

기다랗고 말간 정강이뼈 하나

 

저 환한 것

저 따듯한 것

 

지는 벚꽃 아래

목침 삼아 베고 누워

한뎃잠이나 한숨 청해볼까

 

털끝만한 그늘 한 점 없이

오직 예쁠 뿐!  (34쪽)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따듯하겠지. 아, 당연한 말을. 아직 봄은 아니지만, 봄이 올 걸 생각하고 <봄>을 앞에 썼다. 입춘 지났으니 봄이 올 날 머지않았다. 마지막 말 봄이 예쁘다는 걸까. 사람도 봄을 맞았을 때 티없이 예쁠까. 아니 어느 철이든 괜찮을 거다. 봄은 꼭 어릴 때만은 아닐지도. 설레는 일이 많이 일어나거나 새로 시작하는 일이 있을 때 봄이라고 하지 않을까. ‘봄은 시작이다.’ 봄 없이 여름 가을 겨울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겠다(바로 나, 이런 말은 왜 했지). 마음은 언제나 봄일 수도 있겠다. 그러기를 바란다면 말이다.

 

 

 

투신천국

 

 

 

재벌 3세가 뛰어내렸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출근한 아침

그날 하루 부산에서만 십대 셋이 뛰어내렸다는 인터넷 오후 뉴스를 보다가

이런, 한강에 뛰어내렸다는 제자의 부음 전화를 받고

저녁 강변북로를 타고 순천향병원에 문상 간다

 

동작대교 난간에 안경과 휴대폰을 놓고 뛰어내린 지

나흘이 지나서야 양화대교 근처에서 발견되었다며

세 달 전 뛰어내린 애인 곁으로 간다는 유서를 남겼다며

내 손을 놓지 못한 채 잘못 키웠다며 면목없다며

그을린 채 상경한 고흥 어미의 흥건했던 손아귀

 

학비 벌랴 군대 마치랴 십 년 동안 대학을 서성였던

동아리방에서 맨발로 먹고 자는 날이 다반사였던

졸업 전날 찹쌀콩떡을 사들고 책거리 인사를 왔던

임시취업비자로 일본 호주 등지를 떠돌다 귀국해

뭐든 해보겠다며 활짝 웃으며 예비 신고식을 했던

 

악 소리도 없이 별똥별처럼 뛰어내린 너는

그날그날을 투신하며 살았던 거지?

발끝에 절벽을 매단 채 살았던 너는

투신할 데가 투신한 애인밖에 없었던 거지?

 

불은 손목을 놓아주지 않던 물먹은 시곗줄과

어둔 강물 어디쯤에서 발을 잃어버린 신발과

새벽 난간 위에 마지막 한숨을 남겼던 너는

 

뛰어내리는 삶이

뛰어내리는 사랑만이 유일했던 거지?  (100~101쪽)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를 쉽게 찾을 수 없는 지금이지만, ‘너’는 군대 다녀오고 대학을 마치고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 했다. 애인이 죽어서 ‘너’도 죽다니. 좋아하는 사람이 죽었다고 자신도 따라죽다니. 그 말만 남겼지만 다른 것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많이 보거나 듣지 못하지만 우리나라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 아주 많다고 한다. 물질은 넘치는 세상인데 마음이 모자란 세상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까닭이 있어설지도 모르겠다. 이 시 다음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이야기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 알려주는 걸까. 그 사람은 성실하게 일하고 그게 잘되고 결혼도 하고 딸도 낳았는데, IMF를 맞고 일이 잘 안 되자 아내와 딸이 떠났다. 아내와 딸은 떠났지만 형은 있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조금 나가면 이웃이 있었다. 이렇게 말해도 이웃과 잘 지내는 건 힘든 일이다. 죽기로 마음먹으면 그런 것도 보이지 않겠지. 죽으려고 했을 때 우연히 음악을 듣고 마음을 접는 사람이 있고, 라디오 방송을 듣고 마음을 접는 사람도 있다. 죽기로 마음먹고 행동으로 옮기려는 사람한테 아주 작은 거라도 나타나면 좋을 텐데.

 

누구나 한번쯤 죽고 싶다 생각할 거다. 그런 순간을 잘 넘기면 괜찮을 텐데.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 죽음을 스스로 앞당겨서 좋을 건 없다. 자신이 죽어서 슬퍼하고 괴로워할 사람을 생각하면 좀 낫지 않을까. 죽어서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자신을 상상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죽으면 아무것도 없겠지. 살았을 때 느끼는 괴로움이나 슬픔 아픔도 없을 거다. 그런 감정에서 달아나고 싶을 때 많겠지만, 그것도 받아들이면 다르게 보일지도 모른다. 나도 잘 못하는 건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권리다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번밖에 없는 삶 그냥 살다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말도 있다. ‘봄이 온다, 살아야겠다.’ ‘비가 내린다, 살아야겠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살 까닭 많겠다.

 

 

 

마음 지치고 쓸쓸한 그대

라디오를 들어요

그대만을 위한 말과 음악이 흘러나올 거예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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