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
하태환 원작, 김새봄 문학, 전윤나 미술, 안진성.박경훈 음악, 연극프로젝트커피 연극 / 새봄출판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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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 괴롭겠지만 좀 참으시오. 물론 우리들이나 그밖에 상부에서도 당신들을 어떻게 할까, 연구하고 있고. 그러나 혁명이 만일 한두 달만 늦었다 해도 대한민국은 공산화 되었을 것 아니오? 참으로 아슬아슬한 순간에 우리가 나라를 구한 것이오. 당신들만은 아니지만 도대체 정치인들이 그동안 해놓은 게 무엇이오? 우리는 겨우 한달 반 만에 양담배 일소했지, 깡패 일소했지, 밀수 일소했지, 시민 생활 질서 확립했지, 절도나 강도 같은 범죄도 없앴지……. 보시오! 필요한 건 다 했소. 이제는 민생문제만 남았소. 하여튼 상부에다가 보고는 잘해두리다.”  (45쪽)

 

 

1961년 5월 16일에는 군사정변(쿠데타)이 일어났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제가 아주 어렸을 때는 5·16 혁명이라고 한 것 같기도 합니다. 언제 쿠데타로 바뀌었는지 모르겠네요. 혁명은 한자말인데 쿠데타는 프랑스말이던가요. 5·16 군사정변이라는 말을 봤습니다. 박정희, 전두환(전 대통령 이름을 막 쓰다니, 전에도 한번 썼네요)이 물러난 뒤에 혁명에서 군사정변으로 바뀌었을지도. 이런 말하면 부끄러운데 5·16 군사정변이 일어난 해 몰랐습니다. 1980년은 아는데. 제가 나기 전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1945년이나 1950년은 알기도 하네요. 5·16 아는 거 거의 없습니다. 학교 다닐 때 조금이라도 배웠을 텐데. 어렸을 때 그때 이야기 나오는 드라마 했던 것 같은데 못 봤어요. 어렸을 때니 봐도 잘 몰랐겠습니다. 드라마 실제와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무엇 때문에 군사정변을 일으켰는지. 이 부분 좀 알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그저 권력을 가지기 위해서, 하는 말로 정리할 수 없을 듯합니다. 그런 마음 아주 없었던 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러니 오랫동안 대통령 했겠지요.

 

우리나라가 일본 지배에서 벗어난 뒤 남쪽은 미국이 북쪽은 소련이 도와준다고 하고 삼팔선을 그었지요. 1950년에서 1953년까지 전쟁을 치른 뒤에는 휴전선을 그었네요. 나라가 둘로 나뉘었으니 남이나 북이나 통일을 해야 한다 생각했겠습니다. 꽤 오랫동안 북한에서 남쪽으로 공작원이 오기도 했지요. 그런 사람을 우리나라에서는 간첩이라 하고 잡고. 간첩 신고하라는 말도 많았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빨갱이냐’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이건 예전에 그랬을지도). 제가 잘 아는 건 아닌데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사회주의를 몰아내려고 했답니다. 그 일에는 미국이 상관했다고. 1960년대에도 통일문제를 많이 생각했을 테지요. 5·16은 왕이 바뀌고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을 죽이는 것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리고 생각하는 게 다르다는 까닭으로 공산당으로 몰아붙이는 것과는 닮았습니다. 정치를 한다고 해도 이념이 다를 수도 있을 텐데. 어쩌면 5·16을 군사정변이 아닌 혁명으로 보이게 하려고 진보당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5·16 뒤에 소급법(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어서 130여명한테 실형을 언도했습니다. 5·16이 일어나고 세해가 지나고 죄가 없다고 했는데, 사람들 풀어주지 않고 감형만 하고 많은 사람이 형을 다 채우고 나왔습니다.

 

일곱해보다 훨씬 긴 옥고를 치른 사람도 많겠지요. 혁신 정치를 한 사람은 죄가 없는데도 그랬군요. 사형을 언도 받고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고 감옥에서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을 한번에 잡아다 가두어서 좁은 감방이 꽉 찼답니다. 1.27평에 일곱 사람. 겨울에는 좀 나아도 여름에는 아주 더웠겠습니다. 포개서 잘 때도 많았다네요. 잘못하지 않아도 잘못된 법 때문에 감옥에 들어갈 수도 있다니. 어렸을 때 저는 드라마에서 죄 없는 사람을 잡아다 고문하고 거짓 자백을 시키는 모습을 보면 무서웠습니다. 진짜 저런 일 있고 내가 그런 일 당하면 어쩌나 했지요. 그런 것 때문에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억울한 일은 누구나 당하고 싶지 않겠지요. 일제강점기에서 이어져 온 것이 고문이군요. 이 책 원작을 쓴 하태환은 중·고등학생을 가르치다 진보당에 들어가고 통일운동과 혁신정치 운동을 펼치다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5·16 바로 뒤에 잡히고 만 일곱해 동안 옥고를 치렀습니다. 이것은 그 안에 있을 때 적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억울하게 잡혀서 감옥에 갇히면 그 사람도 힘들겠지만 식구도 힘들겠습니다. 함께 옥고를 치르는 듯한 느낌이었을지도. 사회에서는 좋은 눈으로 안 봤을 테지요. 시간이 흐른 뒤에는 죄가 없다는 걸 알았겠네요. 감옥에서 사람들은 시간을 그냥 보내지 않고 여러가지를 했더군요. 가장 많이 한 건 책읽기와 사색입니다. 글을 쓴 사람도 있고, 공부에 한이 있던 사람은 그 안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바람을 쐬기 위해 기독교, 천주교, 불교집회에 다 나가고 텔레비전 보는 시간은 극장에 간다고 했습니다. 많은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없지만 작은 것으로 그 생활을 견디려고 했네요. 나이 많은 분은 영어 공부를 시작하려고 했어요. 진보당 사람들 처음에 잡히고 유치장에 갇혔을 때 한 모의재판에서는 모두 죄가 없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그 기대가 무너졌군요. 앞에서 말해야 했는데, 지금 그게 생각났습니다.

 

정치는 어디에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을 늘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서 저는 정치와는 멀다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고. 여러가지를 정하는 건 정치가일 때가 많겠네요. 정치하는 사람은 자신이 몸담은 당 이념만 옳다 생각해야 할까요. 저는 잘 모르지만 어는 한쪽만 좋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생각한 적 있을지도. 좋은 건 늘 좋고 싫은 건 늘 싫은. 사람은 살면서 여러가지를 알면 어떤 문제에 답이 하나만 있지 않다는 걸 깨닫습니다. 저는 아직도 마음이 좁아서 많은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그래도 예전보다 나아졌다 생각합니다. 정치하는 사람은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틀렸다 하지 말고 다른 걸 한번 귀 기울여 들으면 좋겠습니다. 유연성은 정치뿐 아니라 어디에든 있어야 하는 거지요. 5·16과 같은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서로 이야기하고 그 안에서 가장 좋은 것을 찾는다면 그것만큼 좋은 건 없겠지요.

 

 

 

*더하는 말

 

좀 다르지만 《어느 혁명가의 삶》을 보고 났을 때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말을 쓰기도 했네요. 때가 다를 뿐 비슷한 면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전향하지 않은 사람이 더 오래 감옥에 있었겠습니다. 여기 나온 사람은 한국에서 정치를 한 사람이니까요. 형을 다 채우고 나왔지만, 죄가 없다는 판결도 나왔죠. 다른 것 때문에 다시 정치를 할 수 없었다는 말도 있더군요. 그게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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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7 02: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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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8 01: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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