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사물들 : 사물을 대하는 네 가지 감각

  허수경 외

  한겨레출판  2015년 05월 15일

 

 

 

 

 

 

 

 

 

 

 

 

책을 보기 전부터 무엇을 쓸지 생각했어. 뚜렷하게 생각한 건 아니고, 이 책을 보고 나면 어떤 사물을 말할 수 있겠지 생각했어. 하지만 책을 다 봐도 달리 떠오르는 건 없었어. 이럴 수가. 평소에 내가 사물을 눈여겨 보는지 그것도 잘 모르겠어. 아마 거의 그냥 지나쳤겠지. 무엇이든 잘 관찰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렇게 가만히 쓸 때는 그래야겠다 생각하지만 바깥에 나가면 잊어버리고 걷기에 바빠. 꼭 밖에만 사물이 있는 건 아닌데. 여기에 실린 글에도 집에서 보고 쓰는 사물도 있어. 자신이 쓰는 것, 다른 사람이 쓰는 것. 사물을 보고 떠올린 생각을 시로 쓰기도 하는가봐. 여기에 글을 쓴 사람은 다 시인이야. 추억이 많은 듯해. 부모님 이야기도 있고 형제 자매 그리고 친구 이야기도 해. 때론 모르는 사람도 말해. 사물은 그저 사물로만 있는 건 아니군. 사람이 쓰고 보기도 하니 사람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을지도. 사물은 생각할까, 사람이 쓰고 생각하면 마음을 갖게 될까. 별 생각을 다 했군.

 

 

 

공중전화

 

 

나는 전화하는 거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말을 잘 못해서 그런 것도 있고, 전화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할 말이 없어서 전화를 안 하는 거군. 내가 전화를 아주 안 한 건 아니야. 먼저 할 말을 생각하고 전화했어. 공중전화를 자주 쓴 건 아니지만. 우리 집에 전화가 생긴 건 언제였을까.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집에 전화 없었어. 셋방에서 살 때도 있었으니까. 전화가 없어서 공중전화를 썼느냐 하면 그런 건 아니야. 숫자는 많이 줄었지만 지금도 길에 공중전화 있어. 예전에는 전화를 쓰고 있으면 뒤에서 다른 사람이 기다리기도 했는데, 지금은 공중전화 쓰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아. 사람이 쓰러 오지 않아서 공중전화가 쓸쓸하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지금은 공중전화보다 휴대전화기를 쓰지. 집 전화도 쓰지 않는 사람 많을 것 같아. 우리 집에는 아직 전화 있어. 내가 누군가한테 공중전화로 연락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없군. 멀리 떨어진 사람한테 전화할 때는 동전을 준비해서 했다고도 하더군. 이제는 그런 낭만은 없겠군. 동전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시간이 가지 않기를 바란 사람도 있었을 것 같아. 그런 일도 있고, 할 말만 짧게 하기도 했겠어.

 

공일오비 노래 <텅빈 거리에서>에 나오는 공중전화요금 얼마인지 알아. 이십원이야. 그런 때도 있었다니, 그걸 나도 알다니. 공중전화요금 그렇게 많이 오르지 않았어. 아직 칠십원일걸. 시간은 어느 정도나 되는지 모르겠군. 전에는 3분이 기본이었는데. 이것도 바뀌지 않았겠지. 시간이 흐르고 바뀌는 것을 아쉬워할 수만은 없겠지. 아직 길에서 공중전화 볼 수 있지만 언젠가는 거의 보이지 않을 것 같기도 해. 그렇다고 아주 없어지는 건 아니겠지. 나처럼 휴대전화기 없는 사람도 있으니 공중전화 조금이라도 있어야 해. 전화할 일은 없지만 갑자기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잖아.

 

며칠 지나고 공중전화가 나오는 꿈 꿨어.

 

 

 

우체통

 

 

지금 많이 보이지 않는 것에는 뭐가 또 있을까. ‘빨간 우체통’이지. 이렇게 말했지만 내 눈에는 우체통 많이 보여. 몇해 만에 우체통 색칠도 새로 했더군. 처음에는 우체국 앞 우체통만 칠했구나 했는데, 며칠 지나니까 다른 곳 우체통도 새로 칠했더군. 하루에 다 칠하지 않고 여러 날에 걸쳐서 칠했는가봐. 얼마전에 우체통에 편지가 얼마 없으면 그 우체통 없앤다는 글을 봤어. 지금까지 내가 본 우체통 가운데 없어진 건 아직 없어. 내가 편지 넣는 우체통은 하나지만. 그 우체통은 나 때문에 사라지지 않을지도. 나만 편지 보내는 것도 아닌데 이런 생각을 했군. 지금은 편지가 줄어서 일자리를 잃은 집배원도 많대. 이건 택배를 보내주는 곳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겠어. 그래도 편지는 우체국에서 보내거나 우체통에 넣어야 제맛이 나. 예전에는 빠른우편도 있었는데. 그게 있었다 해도 나는 거의 보통으로 보냈어. 시간이 걸려서 가는 게 더 좋잖아. 가끔 생각보다 많이 걸릴 때도 있지만. 편지가 가거나 나한테 오기까지 보통 나흘 걸리는데 이것보다 더 걸릴 때도 있더라구. 편지 줄었는데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군. 사람이 하는 일이니 그럴 수도 있다 해야겠어.

 

공중전화, 우체통은 다 기다리는 거군. 우체통은 자기 안에 편지가 자주 떨어지지 않아서 쓸쓸해할 것 같아. 그러다 그 자리를 아예 떠나야 한다면 얼마나 슬플까. 기다리는 마음 내가 잘 알지. 나도 늘 기다리니까. 아니 나만 기다리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어. 우체통 하나라도 더 남게 편지 써서 넣어보는 건 어때. 편지 우체통에 처음 넣어보는 사람은 그것을 정말 가져갈까 할지도. 우체통에는 편지 거두어가는 시간도 적혀있어. 그 시간보다 좀더 빨리 넣으면 편지 가져갈거야. 편지 보내려고 우체통에 자주 넣어도 잘 갈까 하는 걱정 여전히 해. 그저 잘 가기를 바랄 수밖에 없고 거의 잘 가.

 

(편지 받는 꿈 꿨어. 나한테는 편지가 한통 오고, 다른 사람한테는 편지가 아주 많이 왔어. 편지함에서 꺼내도 꺼내도 자꾸 나왔어. 나한테 편지 한통이라도 와서 좋았어.)

 

 

 

푸른 곰팡이

──산책시 1

 

이문재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푸른이 맞을까, 파란이라 해야 할 것 같지만 푸를 때도 있고 파랄 때도 있는 듯...)

 

 

 

사물이 하는 이야기를 듣기보다 내가 생각하는 사물을 말했군. 아니 하나 있어. 공중전화와 우체통은 사람을 기다린다는 거. 사물과 사람한테는 서로가 있어야 해. 이렇게 말하니 앞으로 사물이 하는 말 잘 듣고 싶기도 하네.

 

 

 

희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맥거핀 2015-10-05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중전화와 우체통, 공통점이 많은 것 같아요. 말씀하신대로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사이에 있는 것이라는 점도 그렇고...이제는 예전보다 찾는 이들이 적어졌다는 점에서도 그런 것 같습니다.

진짜 저는 공중전화를 사용해 본지가 정말 오래된 것 같아요. 동전을 넣는 전화기이든, 혹은 카드를 넣는 전화기이든 말이죠. 공중전화하면 생각나는 일이 있는데, 예전에 학교 다닐 때 공중전화에서 긴줄 서던 기억이 항상 나요. 삐삐 시대에 말이죠. (나이가 나오나요?) 그 때 학교 셔틀버스 타는 데 앞에 공중전화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줄이 항상 정말 길었어요. 하도 줄이 길어서 줄을 설 때면 으레 책을 한 권 손에 들고 기다렸죠. 지금 생각해보면 재미있어요. 그 당시에 그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도 용케 기다렸구나 하고 말이죠. 요즘 같은 시대에 몇 분만 통화 안되도 답답해 하잖아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삐삐 보내고 그렇게 한참 있다가 통화하고 그런게 너무나도 당연했는데...

희선 2015-10-07 02:23   좋아요 0 | URL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것으로 잘 했는데... 아직 아주 없어진 건 아니니까 앞으로도 한동안 그 일을 하겠죠 저는 공중전화 보기는 해도 쓰는 일은 거의 없네요 예전에도 그랬고...

예전에 공중전화카드 돈 조금 든 게 있었는데 그것도 다 못 썼어요 돈 조금 남았는데 예전에 넣어보니 안 나오더군요 남은 거 다 쓸걸 하는 생각이... 그곳에는 공중전화가 하나밖에 없었나보네요 그렇게 길게 줄을 섰다니... 그런 모습 아주 못 본 건 아니군요 기다렸다가 쓰기도 하다니, 예전에는 잘 기다리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러지 못하는 듯하네요 세상이 빨리 돌아가는군요 은행에서도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 많아요 저는 일부러 기다리기도 하는데, 기다리지 말고 기계로 하라고 하거나 다른 창구에서 받기도 합니다(공과금, 거의 제가 우체국에 내러 갑니다) 사람 대하는 거 안 좋아해도 우체국에서 기계로 하는 것은 별로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도서관에서도 그랬는데, 이제는 기계로 빌리고 돌려줍니다 사람보다 기계를 상대하는 일이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은행 통장 없어진다는 말도 있던데... 좀 빠른 거 아닌가 싶습니다 은행 이야기가 나와서 이런 말을 했네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