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무를 보다 - 전 국립수목원장 신준환이 우리 시대에 던지는 화두
신준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그리 넓지 않은 땅과

햇빛과 적당한 물이 있다면

넌 잘 자랄 테지

 

씨앗에서 싹을 틔우고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가지를 키워가는 네 모습은 씩씩해

 

비와 눈 바람 맞고

새와 벌레와 곰팡이와 함께

사는 너를 보고 배워야겠다

 

 

 

눈을 감고 생각해볼까(이렇게 말만 하고 눈 안 감았어). 어떤 생각이냐면 자신이 숲속에 있는 거지. 숲이라 했지만 산속 숲이야. 이 말 맞는 걸까. 산이 아닌 곳에도 숲이 있을 테지만, 내가 그런 곳에는 가 본 적 없어. 산에는 가 봤지만. 그것도 오래전이네. 가깝지 않지만 멀다고 할 수 없는 곳에 산이 있지만 볼 일이 없으면 가지 않아(이젠 볼 일도 없군). 이건 처음 말하는 건 아닌데 몇해 전까지 다닌 도서관이 거의 산에 가까운 곳에 있었어. 산속은 아니고 산으로 이어지는 곳이야. 몇해 동안 그곳에 다니면서 산길을 걸었는데. 지금은 평평한 길만 걸어. 산길을 걸을 때 만나는 나무와 길을 걸을 때 만나는 나무는 달라. 산에는 나무뿐 아니라 풀이랑 새 벌레 작은 동물(우리나라 동물 아닌 청솔모)도 있군. 길에는 차와 사람이 있지. 사람은 산에도 있군. 그때 다닌 도서관을 중심으로 보면 산길이 여기저기로 이어져 있어. 지금은 길이 걷기에 좋아서 운동하는 사람 많이 다녀. 어느 때는 유치원생을 보기도 했어. 내가 가 본 곳은 공원뿐이야. 도서관에서 공원까지 가는 길은 좀 먼데 한번이라도 걸어봐서 이렇게 말하는군. 공원이 산에 있나 하는 생각을 하겠는데, 맞아. 산으로 가는 거 말고 길을 걸어서 갈 수도 있어. 도서관이 있는 곳 산 이름은 모르고 공원이 있는 산 이름은 알아. 산이 이어져 있어서 산에서 산으로 갈 수 있는 거군. 혹시 산이 하날까. 나도 잘 모르지만 도서관과 공원 다른 산에 있을 거야. 이것은 두 곳 거리가 꽤 멀다고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

 

옛날에는 산 다니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산 다니는 거 그렇게 어렵지 않지. 산에는 사람이 많이 다녀서 만들어진 길도 있고 사람이 편하게 다니기 위해 만든 길도 있잖아. 내가 간 산은 사람이 많이 다녀서 만들어진 길도 있고 사람이 편하게 다니려고 만든 길도 있어. 도서관에서 공원까지 산길을 걸어갈 수도 있고 차를 타고 갈 수도 있어. 큰 차는 어렵고 작은 차로. 산길 다니다 보면 사람뿐 아니라 가끔 차도 지나갔어. 앞에서 산길에는 차 없다고 했는데. 가끔 봐서 잊어버린 거였군. 거기 차는 다니면 안 될지도 모르는데. 어떤 산은 차로 어느 높이쯤 올라가는 길을 닦기도 했지. 사람은 높은 산에도 편하게 가려고 하는군. 아니 몸이 편하지 않은 사람은 그렇게라도 산에 갈 수 있겠군. 움직이는 게 그렇게 힘들지 않다면 산은 자기 다리로 걸어서 오르는 게 좋다고 봐. 차나 다른 것을 타면 놓치는 게 많으니까. 산을 오르고 내리면 몸뿐 아니라 마음도 좋지. 이렇게 말하니까 내가 산에 오르는 거 좋아하는 것 같군. 도서관이 있는 산은 그리 높지 않고 거기에서 더 오른 적은 없어(집에 와서 책을 볼 생각 때문이었을지도). 그곳이 아닌 다른 산은 오래전에 오른 적 있어. 아주 높지 않았지만 끝까지 오르니 기분 좋더군. 지금 생각하니 그때 둘레를 보기보다 산을 올라야 한다는 생각만 한 것 같아. 좀더 둘레를 봤다면 좋았을 텐데(산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 잘 본대. 그런 시도 있지). 도서관으로 가는 산길에서는 둘레를 둘러봤어. 몇해 동안 가지 않았는데 지금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라. 차이는 뭘까. 산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한번 오르고, 산길은 나 혼자 여러번 걸었군. 여러번이어서 기억에 남았나봐. 추억은 그렇게도 생기는 건지도.

 

 

                         

 

                         

 

 

 

책 제목이 《다시, 나무를 보다》인데 산 이야기를 늘어놓았군. 산과 걷기라고 해야 할까. 몇달 전에 걷기가 나온 책을 보고 나도 자주 걸으면 좀더 자유로울까 했어. 책을 본 다음에 그전보다 자주 오래 걸어야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다지 자주 걷지 못했어. 걷기도 볼 일이 없으면 안 해서 말이야. 한 백년 전만 해도 사람은 거의 걸어다녔는데. 일백년 좀 오래전인가. 기분이 안 좋을 때 걸으면 기분이 괜찮아지기도 하지. 내가 기분을 푸는 방법은 걷기보다 책 보기야. 책 보기보다 삼십분이나 한시간 걷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를 텐데. 어떤 책이든 보면 안 좋은 기분이 풀리는데, 다 보고 나면 다시 안 좋아. 그때는 ‘뭐라고 쓰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생각 늘 해도 어떻게든 쓰기 시작하면 끝이 나. 가끔 내 안 좋은 마음을 드러내는 말을 해서 그런 말 왜 썼을까 하고, 다음부터는 그런 건 안 써야지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또 쓰더군. 안 좋은 걸 되풀이하다니. 이번에도 이런 쓸데없는 말을 하다니. 어쩌면 안 좋은 마음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일지도. 안 좋은 일이 있는 건 아닌데 혼자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기도 해. 생각하려면 좀 좋은 걸 해야 할 텐데. 요즘 사람은 휴대전화기 때문에 생각할 시간이 별로 없다고 하더라구. 나는 컴퓨터는 써도 휴대전화기는 없어서 생각할 시간 아주 많아. 휴대전화기 처음부터 아예 안 썼다면 모를까 한번 쓰기 시작하면 없애기 힘들겠지. 거기에 끌려다니지 않도록 애쓸 수밖에 없겠어. 휴대전화기 써도 생각 안 하는 건 아니겠네. 다른 때는 쓸데없는 생각하고 책 읽을 때 좀 나은 생각을 하더라구. 휴대전화기로 좋은 걸 보면 좋은 생각하겠지.

 

휴대전화기 인터넷(컴퓨터)은 없애기 좀 어려워도 텔레비전은 안 보고 살 수 있어. 예전에는 나도 텔레비전 좀 봤는데 지금은 안 봐.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보는 건 아니지만. 나무는 서로 의존하고 산다는 말을 보니, 얼마전에 본 <원피스>에서 루피가 한 말이 떠올랐어. 나미가 사는 마을에서 사람을 지배한 어인 아론이 루피한테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냐고 하니, 자신은 아무것도 못해서 다른 사람한테 도움받는다고 했어. 루피는 자신이 검도 못 쓰고, 항해술도 모르고, 요리고 못하고, 거짓말도 못해서 도움받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고 아주 크게 말했어. 이런 말을 예전에 했다니. 루피는 누군가한테 도움받는 걸 그리 부끄럽게(미안하게) 여기지 않는군. 자신이 못하는 건 인정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쉬운 것 같지만 어려운 일이야. 나무는 여러가지와 관계를 잘 맺고 살아가더군. 그게 서로한테 도움이 되기 때문이겠지. 사람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일 어려워. 내가 어렵게 여겨서 이런 말을 했군.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건 알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 처지에서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일 없을지도. 이건 잘못 생각할 수도 있겠군. 자신이 그 사람이 되기보다 자신한테 어떤 일이 있으면 어떨까 하니까. 이런 생각이 안 좋은 건 아니겠지. 남을 생각하는 거니까. 사람은 남이 될 수 없다는 말도 있더군. 다른 사람 마음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이런 생각이 들어. 다른 사람 마음을 알려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마음을 잘 들여다보는 게 더 중요하다는. 나무가 있는 산에 가면 자신을 찾을 수 있다는데.

 

맨 처음에 숲속에 있는 것을 생각해보자 했는데, 그 말은 하나도 안 했군. 산속 조용한 듯하지만 나무와 풀 새와 벌레가 활발하게 움직이겠지. 귀 기울이면 잘 들릴지도. 새가 노래하는 건 잘 들리겠군. 나무도 조용히 둘레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는대. 나무는 말하지 않고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것 같군. 나도 그러고 싶어. 말은 잘 안 하지만, 아니 거의 안 해. 생각의 가지를 뻗기보다 가지치기를 하면 훨씬 편안할 텐데. 나무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나무는 우리와 가까이 있는 것 가운데 하나야. 진짜 나무도 있고, 책과 종이와 책장. 나는 나무가 모인 숲보다 책숲을 더 거닐어. 산에는 가지 못해도 길을 걸으면서 나무를 만나야겠어.

 

 

 

 

산길

 

 

 

산길을 걷다보면

바람소리 새소리 들린다

 

산길을 걷다보면

나무랑 꽃이 인사한다

 

산길을 걷다보면

무거운 마음이 가벼워진다

 

산길을 걷다보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다

 

산길을 걷다보면

너에게 이를지도

 

산길을 걷다보면……

 

 

 

희선

 

 

 

 

☆―

 

책이란 남의 지식을 받아들이는 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 내면을 읽는 것이기도 하다. 글자는 없지만 사람들은 숲을 보고 하늘이 만든 책無子天書이라고 한다. 숲을 읽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읽는 것이기도 하다.  (22쪽)

 

 

숲에서는 아는 체하지 말자. 내가 모르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숲이다.  (171쪽)

 

 

나무는 오래될수록 자기 속을 비운다. (……)

 

속은 비우지만 뜻을 비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고목은 영험하다. 숲속 큰 고목에는 전설에 나옴직한 곰도 겨울잠 잔다. 마을 어귀 커다란 고목 속이 빈 곳에는 마을 아이들도 와서 놀았다. 아무런 실속이 없고 덧없을 때는 오래된 나무를 보자. 나는 누구한테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지? 나는 누구한테 내 속을 내어줄 수 있는지? 그런 지혜를 키울 수 없는지? 덧없다고 생각할 때는 고목이 구멍을 키우듯 지혜를 길러보자.  (3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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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7 23: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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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9 01: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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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2 00: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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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3 01: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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