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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기다림
오츠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차 사고로 눈이 보이지 않게 되고 얼마전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혼자 살게 된 혼마 미치루, 역 플랫폼으로 전철이 달려올 때 사람을 밀어서 죽인 것처럼 보여서 경찰한테 쫓기게 된 오이시 아키히로. 관계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다. 아키히로가 있었던 역 플랫폼은 미치루 집에서 보였다. 아키히로는 전부터 미치루가 시각장애인이고 혼자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키히로는 미치루 집에 몰래 숨어들어서 역 플랫폼에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아무리 미치루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집에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를까. 그렇다, 미치루는 아키히로가 집 안에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만 모른 척한다. 가만히 있으면 아키히로가 자신을 해치지 않으리라고 여겼다. 아키히로는 미치루한테 들키지 않기 위해서 아주 조심한다. 미치루가 자신이 있다는 것을 알고 경찰한테 신고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해한다.
두 사람이 서로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나타내게 된 것은 미치루가 찬장 앞에 놓고 올라간 낡은 의자에서 떨어졌을 때다. 미치루는 아키히로가 자신이 다치지 않게 한 것에 대해 자기도 모르게 고맙다고 말했다. 다음 날 아키히로는 미치루가 고타츠 안에 들어가 누워 있을 때 발소리를 내고 걸어가 부엌으로 이어지는 미닫이를 열었다 닫았다. 저녁에 미치루는 식탁에 아키히로의 스튜를 준비하고 기다렸다. 아키히로는 식탁에 앉아서 스튜를 먹었다. 그리고 그 뒤에도 미치루와 아키히로는 함께 밥을 먹었다.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을 때도 있구나 했다. 사실 두 사람이 이때 할 수 있는 말이 없기는 했다. 아키히로는 경찰한테 쫓기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키히로와 미치루는 조금 비슷하다. 무엇이 비슷한가 하면,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사는 일에 서툰 것이다. 아키히로는 누군가한테 상처받기 전에 아예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고 했다. 미치루는 눈이 보이지 않게 되고는 밖에 나가기보다 집에만 있으려고 했다. 앞으로도 혼자 그렇게 살아갈 생각이었다. 그래도 둘 다 마음속으로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싶어했다. 아키히로는 미치루한테, 미치루는 아키히로한테 문 밖으로 나갈 용기를 갖게 해주었다. 사실은 미치루가 혼자 밖에 나가는 일을 무척 무서워했을 때 아키히로가 미치루 손을 이끌어 밖으로 나갔다. 미치루는 지팡이로 길을 더듬으며 친구 카즈에 집에 갔다. 미치루한테는 어렸을 적 친구인 카즈에가 있었다. 카즈에가 미치루를 많이 도와주었는데, 미치루가 집에만 있지 않기를 바랐다. 언제까지나 자신이 함께 있어주지 못한다면서. 맞는 말이기는 한데 잘 모르겠다. 그냥 마음 편하게 살면 안 될까. 꼭 무서운 바깥에 나가야 하는 걸까. 이 말을 쓰고 말았다.
이 이야기 따듯하다. 두 사람의 관계만 생각하면 아주 좋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에서 끝나지 않고 더 넓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나는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그러면서 ‘바깥은 생각보다 따스해’라고 쓰다니. 이것을 느낄 수 있다면 좋은 것이고, 느끼지 못하면 또 어떠리. 이번이 두번째로 읽은 건데 여전히 잘 못 쓰는구나. 시작부터 좀 별로였다. 사건에 대한 것보다는 두 사람에 초점을 맞춰서 읽어보기 바란다. 그렇게 읽을 수밖에 없기는 하다.
바깥은 무서워
너를 지켜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하지만 그런 것만 있는 것은 아니야
네 마음을 위로해주는
하늘 바람 나무 새도 있어
어때?
이제 나가보고 싶지
그래,
바깥은 생각보다 따스해
희선
☆―
옛날에 아키히로는 교복을 입고 공부하던 학교에서도, 작업복을 입고 일하던 회사에서도, 언제나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디에 있어도 손바닥에 땀이 배는 긴장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말로 내가 있어도 되는 곳은 어디일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필요했던 것은 있을 곳이 아니었다. 필요했던 것은, 자신의 존재를 허용해 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2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