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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가을 2024 ㅣ 소설 보다
권희진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9월
평점 :

시간이 잘 흘러간다. 한해에 네번 그 철에 나오는 ‘소설 보다’를 그때 바로 못 봐서 아쉽다. 꼭 그때 만나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번에 만난 《소설 보다 : 가을 2024》 표지는 가을 느낌이 나는구나. 다른 때도 그 철을 느끼게 하는 거였겠다. 내가 제대로 안 봤던 건지도. 색은 봤구나. 이번 거 가을은 주홍색과 의자 그리고 단풍이겠지. 가을날 의자에 앉아 단풍을 바라보는 게 생각난다. 난 그런 적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저 걸으면서 단풍과 하늘을 봤다(다시 그런 때가 찾아왔구나).
걷기 말하니 이번 ‘소설 보다 : 가을’에 걷는 사람이 나오는 이야기가 두편 실렸다는 게 생각난다. 권희진 소설 <걷기의 활용>과 정기현 소설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이다. 걷기가 나오기는 해도 조금 다르구나. <걷기의 활용>에는 제목에 걷기가 들어가서 그런 게 나오려나 생각할 것 같다. 나도 그랬다. 개를 데리고 가는 사람을 보고 ‘나’는 ‘태수 형’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태수 형’이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사람 이야기를 하는 걸로 보면, <걷기의 활용>(권희진)과 <옮겨붙은 소망>(이미상)으로 생각해도 되겠다. 이렇게 묶어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걷기는 하지만 무작정 오래 걷지는 않는다. ‘걷기의 활용’에서 ‘나’는 참 많이 걸었다. 걸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하고 그게 뭔지 알려고 한 거였을지도. ‘나’와 태수의 사이. 아니 ‘나’가 태수를 어떻게 생각한 건지. 이것도 아닌가. 태수가 죽기 전에 하지 못한 말일지도. 묻지 못한 것도 있었구나. ‘나’가 태수한테 ‘원하는 거. 글쎄, 남들처럼 살다가 남들처럼 죽는 거. 말라비틀어지든 머리털이 다 빠지든 그게 어떤 모습이든 노인이 됐다가 사라지는 거. 그런 거를 당신이랑 같이 겪는 거! (37쪽)’ 하는 말을 했다고 해서 태수가 달라졌을지 그건 알기 어렵다. ‘나’가 알았던 태수와 태수가 사귄 K가 알았던 태수는 달랐다. 그건 그렇겠지. 사람이 누군가를 다 알기는 어렵다. 어떤 사람이 자기 앞에서는 잘 웃어도 다른 사람 앞에서는 잘 웃지 않고 불안한 모습을 보일지도 모른다.
두번째 이야기 <옮겨붙은 소망>(이미상)에도 죽은 사람이 나온다고 썼구나. ‘나’가 아는 부부 이야기다. 부부는 일을 잘 하고 마흔 후반에 아파트 대출금을 모두 갚고 5억엔 산 아파트가 오르고 10억이 되자 아파트를 팔고 2억짜리 빌라로 이사했다. 아파트를 판 돈으로 살아도 칠십대까지 산다고 했는데, 한달에 삼백만원 쓰는 거 많은 거 아닌가. 어쨌든 가진 돈으로 여유롭게 살 것 같은데 그 뒤 아내는 우울증으로 집에 누워 있기만 했다. 남편도 아내를 따라했지만 우울증은 아니었다. 그런 남편을 본 아내는 지금까지 해 보지 않은 일을 해 보자고 한다. 그러다 남편은 사람들과 시위를 하다 죽는다. 그렇게 죽다니.
아내는 남편이 죽기 전에도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에서 앤티크 빈티지 보석을 샀다. 그런 걸 왜 사나 하는 생각이 조금 들지만. ‘나’는 클릭 도우미로 아내가 사고 싶은 보석을 사는 일을 했다. 아내가 빨리 돈을 적어넣지 못해서. 이해는 안 되지만, 그저 그런가 보다 해야지. 남편이 죽고 한해가 채 되지 않아 아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소설 보면서 나라면 그러지 않을 텐데 했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겠지. 나도 별거 아닌 걸로 우울해지니 말이다. 돈이 많다 해도 우울해질 수 있겠다. 앤티크 빈티지 보석을 사고 조금 나아질지도 모르겠다. 골칫거리 형제가 있다는 이야기도 안 나오고 부모가 아프다는 말도 안 나오는데.
여기에 걷는 이야기가 두 편 나온다고 했구나. <슬픈 마음 있는 사람>(정기현)에서 기은은 자신이 사는 곳(거여동)을 걸었다. 교회에 다니면서. 기은은 길에서 ‘김병철 들어라’로 시작하는 낙서를 찾기도 했다. 그건 교회에서 알게 된 준영이 이야기해줘서 그랬구나. 교회는 그리 크지 않은 곳인가 보다. 거기 다니는 사람이 적은 걸 보니. 기은과 준영 두 사람을 보니 첫번째 이야기에서 본 ‘나’와 태수가 생각나기도 했다. 소설은 사람 이야기기는 하지만. 기은과 준영 이야기보다 ‘김병철 들어라’ 하는 글을 여기 저기 쓴 사람 이야기가 더 기억에 남는구나. 다단계 회사에서 열세해나 일한 아들 때문에 썼단다. 김병철이 죽고 난 뒤에도 그걸 썼단다. 그걸 쓴 최창엽이나 아들은 어떻게 됐을까. 지금은 좀 낫기를. 거여동에는 오카리나 박물관이 있을지.
희선